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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주는 안도감. 방 구석구석 꼼꼼히도 어지럽힌 나의 게으름도, 헝클어지고 꾀죄죄한 몰골도, 입안 가득 먹거리를 욱여넣는 게걸스러움도 모두 품어주는 그곳. 알량한 체면과 자존심에 얼굴을 씰룩거리며 짓이겨 넣었던 박장대소도, 체할 듯 얹혀 있던 억울하고 초라해진 마음 눈물 콧물 범벅에 적셔 쏟아내도 모두 품어주는 나의 세상. 나에게 집이 주는 안락함의 향취에 침잠하는 것은 어떠한 매력적인 바깥 활동의 유혹에도 쉽사리 양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은 나에게 나름 큰 결심을 요하는 일이다. 일종의 의례와도 같달까.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마스크 말고도 나에게는ㅡ어쩌면 대다수에게ㅡ써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공적인 나’라는 가면. 그 가면을 써야만 바깥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온갖 사람과, 집단과, 공간이 고대하는 연극을 상연할 채비가 끝난다. 그 가면이 감춰주는 나의 민낯이, 갖은 못남이 진정한 나이고, 그래서 저 문 안쪽에서만 오롯이 실재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혹시 어쩌면’이라는, 목에 걸린 생선 가시 같은 찝찝한 물음표가 머릿속 한 편에서 쉽사리 떠나질 않는다.
아웃도어라는 주제로 이달의 테마 커버 스토리를 작성하기 위해 ‘집돌이’인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많지 않다. 굳이 설은 경험과 지식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아는 체 할 수도 있겠지만, 영민한 독자들은 이를 달갑게 볼 리 만무할 것이고, 무엇보다 양심이라는 달달한 것이 남아 있는지 쉽게 허락되지가 않는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관망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웃도어 풍경의 묘사 정도에 그칠 것이다. 작은 바람을 보탠다면, 나의 조망이 아웃도어 활동에 심취한 사람이든 입문자에게든 한 번쯤 생각해 볼거리를 던져줄 수도 있으리라는 정도.
어린 시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갔던 등산을 제외한다면, 나의 첫 아웃도어 활동 경험은 2014년 스위스에서였다(첫 경험 치고는 지나친 호사였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로 올라가는 산 중턱 그린델발트(Grindelwald)라는 마을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애초에 아웃도어 활동은 안중에도 없었다. 첫 스위스 방문이었고, 으레 그렇듯 유명한 관광지를 훑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탓이었기에 단지 경유지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머물렀던 숙소 주인장은 지나칠만큼 친화력이 좋았던 50대 남성이었다. 마치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Devil’s Advocate)>의 존 밀튼(알 파치노)처럼 능글맞고 심지어 음흉한 구석도 있어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썩 기분 나쁜 캐릭터는 아니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꼰대’ 같은 구석도 있었다. 그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융프라우요흐만 보고 갈 거면 너는 제대로 된 스위스 여행도 못 하고 집에 가는 꼴’이라는 훈수를 거듭하며 나를 계획에 없던 다른 활동으로 등 떠밀었다.
사실 그의 속내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패키지를 판매하려는 것이었다. 웃는 낯에 침 뱉을 수는 없어 아예 거절할 수는 없었으나,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았기에 일단 그가 추천해준 트래킹 코스를 돌아보겠다고 했다. 그린델발트에서 출발해 피르스트(First)까지 올라가는 곤돌라를 탄 후 바흐알프제(Bachalpsee) 호수까지 이어지는 코스였는데, 왕복 2시간 정도의 짧은 구간이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뗐다.
출발이 썩 좋지는 못했다. 피르스트에 올라오니 안개가 너무 짙어 2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별다른 통제를 하지 않기에 일단 발걸음을 옮겼으나, 이내 두려움의 감정이 처음 찾아왔던 설렘을 앞서 질렀다. 처음 발을 딛는 타지, 해발 2,265m의 높은 고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연이라는 환경이 모여 만들어내는 중압감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의 상상력을 넘어선 어떤 위협이 엄습할지도 모른다는, 통제할 수 없음에 대한 공포. 내 아웃도어 경험의 출발이었다.
조심조심 더딘 발걸음을 옮기며 나의 마음을 살펴보니, 그곳에 두려움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짜증·부아·초조함·경계심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함께 뒤엉켜 있었다. ‘진짜 길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동물이 튀어나와 공격하기라도 하면 어쩌지?’, ‘비싼 돈 써서 왔는데, 돈 아깝게 이게 뭔 고생이지’. 안갯속을 헤쳐 나가는 한걸음 한걸음에 이처럼 실로 멍청하고 얼토당토않은 생각들이 함께 박자를 맞췄다.
심지어 신고 있던 신발도 오래 걷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데다 소슬한 날씨에 적합하지 않은 얇은 옷까지 더해져서 그런지, 부모님과 함께였어도 내 안위가 우선이었겠다, 는 패륜적인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생각들을 거듭하는 스스로가 신기하기까지 했다. 평소라면 혹은 남의 이야기라면 쓸데없고 못난 걱정이라 코웃음 쳤을 생각들을 너무나 진지하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지, 이게 나의 솔직하고 벌거벗은 원형인지. 집 안에서 ‘공적인 나’라는 가면을 벗는 것만으로도 온전한 내가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아래 깊이 침전되어 있던 또 다른 내 모습이 있었던 것인지. 단지 그것이 드러날 조건이 충분하지 않았을 뿐이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변덕스러운 자연의 예측 불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도심 속 규격화된 삶과 이러한 규칙성에서 비롯되는 안전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보기 좋게 산산조각난다. 아무런 장비와 정보도 없는 상태, 그 현대문명의 이기를 빼앗아간 야생이 불안과 울화를 안겨줬으리라. 이것이 내 첫 아웃도어 경험, 첫 깨달음이다. 저 문 너머, 모질고 통제할 수 없는 저 자연이 ‘나’를 대변하는 겹겹의 꺼풀들을 모두 벗겨내는 세상, 그게 아웃도어 활동의 본질이 아닐까.’
한 시간이면 갈 거리를 거의 두 시간을 허비해 목적지에 도착하니, 마침 거짓말같이 안개가 걷히고 바이알프제 호수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쁜 감정들이 머물던 자리에는 어느새 외경심과 성취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나올 때는 두렵고 초조했던 풍경들,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든 것이 머릿속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편됐다. 너무도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던 소 떼, ‘멋진 시간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모니크와 발리의 글귀가 새겨진 벤치, 여정의 끝을 알리던 아기자기한 자갈길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한 폭의 잘 그린 풍경화처럼 기억에 되새겨졌다. 불확실한 여정 끝에 찾아오는 안도감과 성취감, 이 또한 아웃도어 활동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이후에도 이따금씩 나름의 아웃도어 활동(그래봐야 대부분 등산, 트래킹이 전부지만)을 하면서도 당시만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감상이 반복되었다. 당연히 나의 단편적인 경험이 아웃도어 활동의 본질이라고 할 만한 근거는 없다. 아웃도어 활동 본연의 쾌락과 즐거움을 쫓는 이도, 나에게 맞는 장비를 테스트해 보는 데서 재미를 찾는 이도,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은 이도, 자연을 개척한다는 정복욕을 추구하는 이도 저마다의 아웃도어 활동을 하는 이유와 철학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와 관련해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지점은 있다고 본다. 최근 국내 아웃도어 활동의 동향을 보면 쏠림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생각이 든다. 아웃도어 활동이 패션 트렌드와 동의어로 사용되거나 등산, 캠핑 같은 특정 활동으로 협소하게 정의되는 추세가 그러하다. 또한, 일부 유명 TV 프로그램이나 광고의 영향으로 아웃도어 활동 자체를 음미하기보다는 ‘소비’하는 경향도 짙어 보인다. 그만큼 다양한 종류의 아웃도어 활동을 경험할 기회도 적은 편이고, 활동 자체의 의미보다 행위만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안타까움을 남긴다.
국가마다, 사람마다 정의가 조금씩 다르지만, ‘규칙이나 기록, 경쟁 없이 자연에서 즐기는 모든 활동’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아웃도어 활동의 다양성이 보장된 나라에서는 서핑, 낚시, 하이킹, 카야킹, 패러글라이딩 등 야외(자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일컫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자연적 배경을 가진 각각의 아웃도어 활동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재미를 선사할 뿐 아니라, 대부분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이 자연과 마주함으로써 저마다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마음의 자양분을 얻을 기회를 제공한다.
7월의 임볼든 테마 ‘아웃도어’ 콘텐츠들도 독자들이 좀 더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의 면면과 의미를 모색해 보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 그만큼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에 대한 소개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싣고 있다. 마침 오랜 기간 자연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동떨어져야만 했던 시기도 끝났으니, 임볼든 콘텐츠를 참고삼아 아웃도어 활동과 자연의 다채로운 면면을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지.
임볼든이 이번 7월부터 월별 테마를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게 되었다. 매월 독자들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도록 테마와 관련된 전문가 칼럼, 인터뷰, 아이템 및 공간 소개, 체험기 등 다양한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번 달 테마인 ‘아웃도어’와 관련해서는 아웃도어 업계에서 오랜 시간 종사해온 전문가들의 칼럼을 비롯해 여름에 즐길 수 있는 아웃도어 활동 이야기, 아웃도어 활동에 특화된 자동차 및 바이크 등을 소개하는 콘텐츠가 순차적으로 업로드될 예정이다.
또한, <고아웃매거진> 김환기 편집장의 목소리로 최신 아웃도어 트렌드와 추천 아이템 및 스팟, 취재 중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어볼 수 있는 인터뷰도 함께한다. 이외에도 텐트의 기원과 변천사를 훑어보는 ‘사물 이야기’, 거대한 팬덤을 거느리며 문화 현상으로까지 자리 잡은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스토리 등 알차고 유익한 콘텐츠들이 가득 준비되어 있다.
저 문 너머, 자연과 내가 마주한 그곳. 임볼든의 7월 테마 ‘아웃도어’ 콘텐츠와 함께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