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가 개봉했다. 작품 소개 글 첫머리에 놓인 수식 중 하나가 눈에 들었다. ‘A24의 첫’ 블록버스터 작품이라는 것. 이 영화의 색깔을 가장 뚜렷이 보여줄 수 있는 키워드는 마치 감독도, 배우도 아닌 뉴욕 기반 영화 제작·배급사 A24라고 읽혔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주가 주축인 서부군과 나머지 19개 주가 손을 잡은 플로리다 연합이 극단으로 나뉘어 내전을 벌이는 가상 상황이다. 혼란한 시국에서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한 종군 기자 리(커스틴 던스트)의 시선과 여정으로 영화는 흘러간다. 블록버스터 전쟁영화지만 단순히 총칼을 겨누고, 음모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위기 상황 속에 관객들을 놓아 딜레마의 순간순간을 맞게 할 뿐이다. A24가 만드는 영화는 이렇다. 기존의 문법을 답습하기보다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이들에게 소화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을 선보이는 이곳. 영화와 나, 그 사이 교집합을 찾아 헤매는 시네필들의 추앙을 받을 수밖에 없는 A24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영잘알’들이 만들었어요
소신껏 마이웨이
A24를 세운 건 90년대 영화 세계를 풍부하게 향유한 사람들이었다. 영화 파이낸싱 그룹 구겐하임 파트너스를 이끌었던 다니엘 카츠, 영화 제작사 빅 비치 필름스의 존 호지스, 영화 배급사 오실로스코프의 데이비드 펜켈. 창립자들은 시네필임은 물론 영화를 직접 경험했기에 이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났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유통구조 및 배급사가 갖는 관행과 과감히 다른 행보를 보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그 구조가 얼마나 유해한지 알기 때문에.
영화사 이름에도 꽤나 낭만적인 서사가 있다. 창립자 중 한 명인 카츠가 이탈리아 로마와 테라모를 연결하는 103마일 고속도로를 달리며 창립에 대한 확실한 마음을 다졌고, 그때 만났던 도로명이 바로 A24다. 3.4%만이 수익을 내고, 90%는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사라지는 미국 독립 영화 시장의 척박한 상황. 이 확률을 모를 리 만무했겠지만, 그들은 마치 구세주처럼 이 씬에 등장한다.
그들은 LA가 아닌 뉴욕 맨해튼에 사무실을 얻었다. LA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 도시로 유니버설 픽처스, 워너 브라더스,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같은 주요 배급사의 베이스가 되는 곳이다. 독자적으로 간섭 없이,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영화씬을 일구어 나간 그들의 행보와 일치하는 선택이다. 그렇게 2012년 8월 ‘A24 Films’라는 배급사로 첫걸음을 뗀다.
스크린에 불어온 새로운 감각
딱 보면 A24
A24가 포착한 영화들은 어딘지 일맥 하는 구석이 있다. 감각적인 미장센, 화면과 하나처럼 흐르는 음악, 재기발랄한 스토리 등 뻔한 구석이 없어 배급한 영화 리스트들은 A24의 필모 그 자체가 되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음악을 재료로 삼은 <스프링 브레이커스>, 할리우드 스타들의 집을 턴 실화 배경 10대들의 이야기 <블링 링>, 사랑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더 랍스터> 등 독특한 분위기로 발칙한 서사를 완성시킨 작품들이다.
영화 속 프레임에 넘실대는 은유는 가끔은 시처럼 흐르고 정적처럼 멈춘다. A24가 선택한 이러한 감각이 젊은 층의 팬덤을 형성시킨 주된 요소일 것이다.
2016년, A24는 한 단계 성장 가능성을 엿봤다. 배급뿐만 아니라 제작 분야로도 발을 넓히기 시작했다. 대형 영화 배급 회사는 제작과 배급을 겸한다. 영화 제작부터 영화관에 작품이 걸리는 전 과정에 모두 개입하게 된다는 뜻이다. 편집, 홍보 및 극장 상영을 포함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영화의 전권을 소유한다고도 이해할 수 있겠다. 이 계급적이고 기업적인 구조로 인해 감독의 창의성이 희생되는 경우가 일쑤였다.
카츠는 이에 대해 언급했다. 이 상황에서 아무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돌려 생각하면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걸출한 재능을 발휘할 기회의 장을 발견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창립자의 생각은 곧 현실이 된다.
브래드 피트가 공동 대표로 있는 플랜 B 엔터테인먼트와 협력하여 그들은 첫 제작에 나선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 <문라이트>가 바로 그 작품이다. 희곡 <달빛 아래서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를 각색한 것으로 베리 젠킨스(Barry Jenkins)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단편 영화를 몇 편 찍었고, HBO의 레프트오버(The Leftovers) 각본을 썼고, 생계유지를 위해 목수로 일하는 37세 영화감독이었다. ‘마약에 중독된 엄마를 가진 게이 흑인 소년에 대한 3부작 영화이고, 고작 15,000달러가 든 작품을 만들어 본 감독’에게 과연 어떤 제작사가 손을 내밀어 줄까. 감독은 그들이 바로 A24였다고 말했다.
문라이트가 개봉한 이듬해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발표 이후 소란이 있었다. 호명된 <라라랜드> 관계자들이 나와 수상 소감을 말하던 중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고, 일순간 작품상 주인공이 바뀌어버렸다. <라라랜드>가 아닌 함께 노미네이트 되었던 <문라이트>가 영예를 안게 된 것. 400만 달러(약 43억 원) 제작비로 8개 부분에 지명되며 그날 밤 오스카를 호령한 건 <문라이트>였다.
신예부터 거장까지
스토리만 좋다면 모두 환영
위험을 즐기는 이들처럼 A24는 <램>의 발디마르 요한손, <유전>, <미드소마>의 아리 에스터, <언컷 젬스> 사프디 형제 등 떠오르는 감독을 발굴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노아 바움백, 그레타 거윅, 소피아 코폴라 등은 물론 최근 <듄> 시리즈로 다시 한번 명성을 각인시킨 드니 빌뇌브,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나단 글레이저 등 걸출한 감독도 A24를 찾는다.
제작사가 고수하는 ‘감독 방임주의’. 이 자유로운 창작 방식을 경험한 이들은 입을 모아 A24를 칭찬했고, 그렇게 관계를 맺은 이들은 이 제작사에서 꾸준히 다작을 한다. 좋은 이야기가 있는 곳에 A24가 있고, 그 서사를 가장 자유롭게 실현할 곳도 바로 A24라는 의미다.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은 “A24는 이제 막 데뷔하는 신인 감독들과 많이 일한다. 위험성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스튜디오”라고 말했다. 불안을 기꺼이 돌파할 이야기의 힘을 가진 감독들을 알아보는 일, 이것이 A24의 혜안이겠다.
감독들만이 사랑한 곳은 아니다. A24는 아는 얼굴을 새롭게 만들어 버리는 재주도 있으니까. 영화 <스위스 아미 맨>에 등장하는 이 배우, 다니엘 래드클리프다. 해리포터로 익숙한 그가 생각지도 못한 역할을 맡았다. 그건 바로 매니라는 이름의 시체. 무인도에 갇힌 행크(폴 다노)가 시체와 우정을 나누는 기발한 발상으로 2016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을 탔다.
<라이트하우스>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로버트 패틴슨의 불안과 광기를 목도할 수 있어 의미가 깊다. 미친 연기라는 호평과 찬사가 쏟아졌다. 주어진 자유 속에서 배우들의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을 관전하는 일은 즐겁다.
브랜딩 배워가세요
영화 제작사 그 이상
소셜 미디어 마케팅 방식이 완전히 활성화되지 않았던 2010년대 초반, 그들은 일찍이 SNS를 활용했다. <엑스 마키나> 홍보를 위해 주인공 A.I. 에이바 역의 틴더 챗 봇을 만들어 많은 이들과 교류했고, <더 위치> 마케팅을 위해 등장하는 사탄 염소 블랙 필립의 트위터 계정을 개설, 영화와 관객 간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 성공했다.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누구보다 빠르게 선점한 것이다.
사실 별도 마케팅 없이도 A24가 선사하는 특유의 몽환적인 미장센은 자신의 감각을 전시하기 좋은 소셜 채널에서 더욱 진가가 드러나기도.
브랜딩이란 것은 소비자와 브랜드 간의 유대에 기반한다. 이 제작사에 대한 열렬한 환호는 A24 All Access(AAA24) 서비스에서도 알 수 있다. 월 10달러를 내면 잡지, 무료 영화 티켓, 생일 선물, 굿즈 할인, 독점 콘텐츠 제공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멤버십 제도다. 이러한 서비스를 통해 팬들은 브랜드와의 친밀도를 높이고 소속감을 형성하게 된다. 감도 높은 다양한 굿즈는 시네필들의 가까운 곳에 놓이며 마치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은 영화 배급사를 일상으로 끌어들였다.
TV 프로그램 제작도 시작, 작년 에미상 시상식에서 무려 8관왕에 오른 <성난 사람들>을 만들어낸 A24. 더 다채로워진 채널에서 성 소수자, 이민자의 삶, 실체 없이 두려움의 그림자로 선사하는 공포 등, 이 영화 제작사만이 낼 수 있는 자유로운 영화적 화법을 올해 역시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A24 영화 굿즈 추천
A24는 굿즈 맛집. A24 팬이 아니더라도 탐나는 아이템을 가져왔다. 국내 직배송도 가능하다.
양초와 비누를 만드는 워리 마이어스와의 협업이다. 100% 순수 식물성 제품으로 소량 수작업 제작하며 달콤한 바질 향으로 시작해 데이지 잔향이 남는다. 화면조정시간 생각나는 사랑스러운 아이템.
브랜드를 사랑한다면 노트북 기꺼이 내줘야 한다. 팩당 15개의 오리지널 A24 스티커가 들어 있다. 거울, 반짝이, 홀로그램 등 특수 마감이 있는 다양한 스티커의 향연 속으로 입장하시길.
가장 강렬했던 세계관 중 하나 핫도그 손가락. 에디터도 ‘에에올’ 굿즈 중 돌멩이 다음으로 갖고 싶었던 아이템. 펄럭거리는 이 라텍스 장갑 한 켤레 가질 수 있다면, 괜히 모두에게 다정해지고 싶은 기분.
영화 속 등장하는 하르가 사원을 축소한 아이템이다. 나무, 카모마일, 파출리 향이 특징인 하지 축제를 떠오르게 하는 향이 포함되어 있다. 조금 무서운 건 기분 탓일까.
11개의 미공개 트랙과 100페이지 넘는 미공개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니콜라스 브리텔이 직접 쓴 악보와 감독 배리 젠킨스의 에세이까지 꽉꽉 담았다. 아직 그 소년의 눈빛을 기억한다면 지나치지 못할 거다.
<아이 쏘우 더 티비 글로우> TV 정적을 떠올리게 하는 회색이다. 앞면에는 악마에 맞서 싸우는 핑크 오페이크, 뒷면에 A24 로고 자수로 키치함을 더한다.
A24 올해의 티셔츠다. 예쁘다 했더니 AAA24 멤버십 한정판 아이템. 앞면에 스크린 인쇄된 큼직한 글씨의 빈티지한 색감이 마음에 쏙. 소재는 코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