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도구, 시계. 그 안에는 단순한 순간이 아닌, 지난날들과 쌓아온 역사의 무게가 담겨있다. 시계를 만드는 이들이 기념일에 커다란 의미를 두는 것도 이와 같다. 워치 메이커는 시간이 흐른 흔적을 소중히 여기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기에.
2025년에는 시계 역사에서 중요한 일곱 개 브랜드가 기념일을 맞이한다. 브레게 250주년, 바쉐론 콘스탄틴 270주년, 오데마 피게 150주년 등. 시계 브랜드의 역사적 의미와 그동안 이룬 업적, 기념일을 맞아 출시한 시계 및 예상되는 모델을 알아본다.
브레게 250주년
워치메이킹의 역사

워치메이킹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브랜드를 말하자면, 그중 하나는 분명 브레게다. 자동 와인딩, 투르비옹, 퍼페추얼 등 오늘날 시계 기술에 활용되는 메커니즘을 발명하며 역사를 써 내려간 브레게. 창립 250주년을 맞이하는 브레게의 유산과 비전은 올해 출시되는 시계에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브레게 250주년 기념 시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2000년 창립 225주년을 기념한 ‘ref. 1775’ 시계에서 그 모습을 유추해 볼 정도다. 오픈 케이스 백과 로터에 새겨진 ‘1775’ 텍스트가 클래식한 드레스 워치였다. 워치 메이킹 역사를 바꾼 브랜드의 타임 온리 드레스 워치라니. 브레게의 자신감을 명확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가히 상징적이었다.

브레게 250주년 기념행사도 기대해 본다. 오는 11월 소더비와 함께하는 브레게 전용 경매다. 경매의 하이라이트는 1827년 영국 국왕 조지 4세를 위해 특별 제작된 퍼페추얼 택트 시계. 시계 케이스 뒷면에 국왕의 모노그램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메종의 기술력과 장인 정신으로 빚은 아름다운 작품. 브레게의 유산을 기리는 움직임은 계속된다.
오데마 피게 150주년
목표는 언제나 하나

오데마 피게의 역사는 1875년 스위스 르 브라쉬 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쥘 루이 오데마와 에드워드 오귀스트 피게가 함께 만든 시계 공방이 그 시작이다. 이후 이들은 시계 산업에서 굳건한 지위를 만들어 나간다. 세계 최초로 점프아워 시계를 개발했고, 무브먼트가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스켈레톤 시계, 소리로 분 단위의 시간을 알리는 미닛리피터의 개발이 그 예다. 혁신을 개척하는 기술과 대담한 아이디어. 오데마 피게의 목표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지난달 새롭게 공개한 ‘칼리버 7138’는 이의 연장선이다. 창립 150주년을 기념한 차세대 셀프 와인딩 퍼페추얼 캘린더 무브먼트다. 작은 도구를 사용해 작은 도구로 날짜와 월을 설정해야 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올인원 크라운을 도입해 도구 없이도 간편하게 시계를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칼리버 7138은 18캐럿 화이트 골드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18캐럿 샌드 골드 로열 오크에 탑재된다.

오데마 피게가 기념일을 대하는 방식은 지난 2022년 출시된 ‘로얄 오크 50주년’ 기념 에디션을 통해 알 수 있다. 로얄 오크는 첫 출시 이후 여러 차례 페이스리프트를 거쳐왔는데, 2016년 로얄 오크 크로노 ref. 26300 케이스가 39mm에서 41mm로 바뀐 것은 브랜드 역사상 가장 큰 변화였다. 로얄 오크 50주년 기념 에디션은 이와 같은 서사를 품고 있었다. 블랙 그랑드 타피세리 다이얼과 대조되는 41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사파이어 케이스 백을 통해 드러난 ‘50년’ 진동추처럼.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80주년
기념일 그게 뭐에요?

롤렉스에 대해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롤렉스는 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기는 워치 메이커가 아니라는 점이다. 2024년 서브마리너 70주년에는 이렇다 할 것 없이 그냥 지나갔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란 말은 아니다. 2005년에는 GMT-마스터 50주년을 기념한 ‘ref. 116718LN’을 선보인 적 있다. 세라믹 베젤이 적용된 최초의 롤렉스 모델이었다.
올해에는 데이트저스트 80주년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손목시계 최초로 다이얼에 날짜를 표시한 시계니까. 1945년 처음 선보인 롤렉스 데이트저스트는 시계 디자인에 큰 획을 그었다. 3시 방향에 날짜 표시창을 달고, 사이클롭스 렌즈의 확대 기능으로 날짜 시인성을 높인 건 매우 역사적인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심 50m까지 방수가 가능한 오이스터 케이스, 최초의 셀프 와인딩 시스템 등은 오늘날 시계의 대표적인 틀이 됐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유용하고 실용적인 시계였다. 롤렉스 설립자 한스 빌스도르프의 말 ‘워치 메이킹의 진보는 인간 역사의 진보를 촉진해야 한다’를 구현한 듯 했다. 워치 메이킹 역사의 이정표와도 같은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80주년. 2025년에는 기대해 봐도 될까?
까르띠에 파샤 40주년
미니는 어때?
‘파샤 드 까르띠에 워치’가 40주년을 맞이한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1985년, 파샤 드 까르띠에가 차지하는 위상은 남달랐다. 클래식 워치를 주로 선보이던 까르띠에가 스포티즘 이미지를 내세운 유일한 시계이자, 까르띠에 최초의 방수 시계였기 때문이다.

방수 기능만 있는 건 아니었다. 라운드 케이스,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 케이스에 고정된 스크루다운 크라운 등 역동적이고도 섬세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새로운 혁신이었다.
파샤 드 까르띠에 40주년은 당시의 컬트적 인기를 기념하기 적절한 때다. 최근 베누아 미니, 탱크 루이 미니 등 작은 시계를 선보인 까르띠에라서 더 그렇다. 작으면 작을수록 더 매력적인 까르띠에 워치의 세계. 올해에는 파샤 드 까르띠에 워치 미니를 기대해 봐도 될까.
오메가 007 30주년 / 실버 스누피 어워드 55주년
잔치 잔치 열렸네

오메가 씨마스터가 제임스 본드와 함께 스크린을 누비고 다닌 지 30년. 1995년 영화 <골든 아이>부터 오늘까지 본드의 손목엔 늘 오메가 씨마스터가 있었다. 목숨을 건 모험만큼 매우 튼튼하고, 피어스 브로스넌처럼 우아한 모습으로.

제임스 본드와의 인연을 이어온 30년의 시간. 올해 오메가는 어떤 시계를 내놓을까? 2023년 출시한 제임스 본드 60주년 기념 에디션에서 그 모습을 예상할 수 있다. 영화 <골든 아이>에서 본드가 착용한 시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씨마스터 다이버 300m’다. 사파이어 케이스 백에 007 오프닝 시퀀스를 새겨넣고, 롤리팝 센트럴 세컨즈 밴드가 회전하며 무아레 효과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점이 기발했다.
오메가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달에 다녀온 시계다. 그리고 1970년 오메가는 나사와의 여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다. 나사 우주비행사들로부터 실버 스누피 어워드를 수상한 일이다. 우주탐험에 기여한 업적을 기념하고, 아폴로 13호의 무사 귀환에 기여한 공헌을 인정받으며 나사로부터 상을 받았다.

실버 스누피 어워드 수상을 기념하는 것은 오메가의 전통이 됐다. 2015년 ‘아폴로 13 스피드마스터 45주년 기념 에디션’, ‘2020년 스피드마스터 실버 스누피 어워드 50주년 기념 에디션’이 바로 그렇다. 실버 스누피 어워드 55년이 된 지금, 그 영광을 기념하는 특별한 타임피스의 기대는 무리가 아닐지도.
바쉐론 콘스탄틴 270주년
스스로를 넘어서기

바쉐론 콘스탄틴은 ‘히스토릭 222’로 창립 270주년의 역사를 기념한다. 1977년 222주년을 기념하여 출시한 시계를 오마주한 것으로, 1970년대 디자인 코드가 담긴 특별한 타임 피스다. 디자인은 요르크 하이섹이 했다. 주로 파일럿, 다이버를 위한 전통 스포츠 시계에서 벗어나, 포멀과 스포티 경계를 허무는 디자인이었다.
새롭게 재해석한 히스토릭 222는 빈티지와 모던한 분위기가 공존한다. 톱니 모양의 플루티드 베젤, 배럴형 미들 케이스, 말테 크로스 엠블럼 장식 등 오리지널 디테일은 2025년에도 이어진다. 케이스 백에 새겨진 270주년 기념 시그니처도 함께한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또 한 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할지도 모른다. 창립 270주년이니까. 바쉐론 콘스탄틴은 2024년 ‘레 캐비노티에 더더클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으로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계 기록을 세운 바 있다. 63개의 컴플리케이션과 최초로 중국 퍼페추얼 캘리버를 탑재한 시계다. 창립 270년을 맞은 2025년, 바쉐론 콘스탄틴은 스스로 세운 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제라드 페리고 로레아토 50주년
새 옷을 입고 돌아왔다

제라드 페리고가 로레아토 출시 50주년을 맞는다. 로레아토는 1975년 처음 출시되어 수집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모델이다. 날렵한 라인과 통합형 브레이슬릿은 미학과 기능성의 결합. 특유의 팔각형 베젤과 일체형 브레이슬릿이 우아하면서도 스포티한 느낌을 자아낸다.
로레아토 50주년에는 매혹적인 아이스 블루 다이얼로 새 옷을 입었다. 전통 스포츠 시계를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이지만, 견고하고 우아하다. 클루 드 파리를 모티브로 한 다이얼, 움푹 들어간 3개의 레지스터로 균형을 맞췄기 때문일 거다. 케이스 백에는 ‘Special Edition of 180 Pieces’ 텍스트가 새겨졌다. 180개 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