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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수 석고 논란’ 총정리, 한국 MMA를 뒤집어 놓으셨다
2023-07-31T20:26:05+09:00

더 이미지 구겨진 로드FC와 ‘까방권’ 셀프 소진한 블랙컴뱃.

격투기 팬들은 믿을 수 없었다. 국내 입식격투기 최강자 명현만이 무너졌다. 그것도 자신보다 18kg이나 체중이 덜 나가는 미들급 종합격투기(MMA) 선수에게 킥복싱 룰로 패배했다. 다운까지 허용하고 끝내 대미지를 회복하지 못해 스스로 경기를 포기했다.

믿기 싫었다. 약 40만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유튜버인 명현만이 조폭이나 하는 이레 주지 문신을 한 황인수에게 졌다. 격투기 팬들의 욕받이 로드FC가 총애하는 미들급 챔피언에게 졌다. 안와가 골절되고 코뼈까지 부러졌다. 세상에 정의가 바로 서려면 무언가 이유가 필요했다.

석고 핸드랩, 합리적 의심과 음모론 사이

그래서 나온 게 석고 논란이다. 황인수가 핸드랩 안에 석고를 숨기고 경기를 했기 때문에 고작 미들급 MMA 선수가 헤비급 입식 최강자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거다. 여기까지는 음모론에 불과했다.

명현만의 아내가 나서며 논란이 심각해졌다. 명현만의 아내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명선수가 라이트에 눈이 그렇게 됐다..? 이상하다. 명선수 시합 한두 번 하니..? 베테랑이 기권? 이상하다. 그동안 경기할 때 쓴 핸드랩 다 가지고 있다던데.. 의미가 있나 보다. 맞은 선수가 느꼈다. 펀치가 이상하다고. 그거 참고하다가 기권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명현만짐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도 이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사실상 당사자인 명현만 선수 측에서 황인수 선수의 핸드랩을 의심한 상황이 됐기에 핸드랩 논란은 삽시간에 격투기 커뮤니티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경기력 향상 약물(PED)과 마약, 가정폭력, 뺑소니 사고로 악명 높은 전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존 존스가 헤비급 UFC 타이틀에 도전하는데도 모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석고 논란만 불타올랐다.

그다음으로 참전한 건 격투기 관장, 격투기 기자를 포함한 유튜버들이었다. 이들에 의해 이제 석고 논란은 석고 핸드랩 논란으로 전환됐다. 실제로 석고를 넣지는 않았지만, 주먹을 보호하기 위한 밴디지를 고정하기 위해 붙이는 테이프를 주먹 너클 파트에 여러 번 덧대면 거의 석고와 같은 강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연 영상을 통해 너클 파트에 20번 가까이 테이핑을 한 다음에 황인수 핸드랩의 강도가 이렇게 석고 수준이라는 식으로 강조했다.

명현만은 은퇴 영상을 통해 다시 한번 석고 핸드랩 논란에 불을 지폈다. 명현만은 영상에서 “황인수와 경기는 저의 패배가 맞습니다. ‘핸드랩에 문제가 있었든 없었든’ 펀치를 허용했고 제 실력이 부족했고, 제가 그만큼 준비를 많이 못 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단체 또한 팬들과 지금보다 더욱 소통하시고, 규정을 더욱 체계적으로 만든다면 격투기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밝을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로드FC의 규정이 허술함을 지적했다. 명현만 본인의 발언을 들은 아내의 발언으로 인해 점화된 논란에 명현만은 마치 제삼자인 양 한 발짝 빠져서 황인수의 핸드랩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이를 통해 명현만은 자신의 최측근이 불을 지핀 논란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와 석고 핸드랩 사건의 잠재적 피해자로 자신을 정립한 듯하다. 아내를 통해 논란을 일으킨 사실상의 당사자로서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아내를 통해 의혹을 제기할 정도로 자신이 있었다면 직접 공정한 조건에서의 재경기를 요청하거나 진상 조사를 요청했어야 했다. 그 정도로 자신이 없었다면 아내의 언급에 대해 해명하거나 언급 자체를 않았어야 했다. 정작 명현만 본인도 너클 파트에 테이핑을 했음이 밝혀졌고, 명현만 측의 코너인 위승배 감독이 너클에 테이핑을 여러 번 한 과거 영상도 공개됐기 때문에 명현만의 행동은 더 비겁하게 비춰질 수 있다.

황인수는 핸드랩 하는 과정을 공개하며 소위 석고 핸드랩을 하지 않았고, 보관하고 있는 핸드랩을 공개하면서 딱딱하지 않고 말랑말랑하다고 해명했으나 소용없었다. 황인수는 경기 당일 99kg이었던 헤비급 체중의 선수로 가벼운 10온스 글러브를 낄 경우 충분히 가공할 파괴력을 낼 수 있다. 안와는 인간의 뼈 중에서 가장 약한 부분 중 하나기 때문에 황인수보다 훨씬 가벼운 선수들도 잽이나 스트레이트 공격으로 안와골절을 낼 수 있다. 10온스 글러브를 착용하는 프로 복싱 시합(슈퍼 웰터급 이상)에서 안와골절이 발생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하지만 황인수는 눈대중으로 별다른 증거도 없이, 단지 명현만을 TKO 시켰단 이유로 테이핑을 덕지덕지 바른 더티 파이터로 낙인찍혔다.

로드FC와 해외 단체 규정은?

이 시리즈를 통해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로드FC는 격투기 팬들의 공식 욕받이다. 로드FC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10년이 넘게 대회를 열어온 장수 MMA 단체지만 정문홍 회장의 독선적 스타일은 해외리그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국내리그는 일단 무시하고 보는 국내 스포츠팬들에게 좋은 먹잇감을 제공했다. 격투기 커뮤니티에서 환대받고 싶다면 일단 로드FC에 대해 욕을 퍼부으면 된다. 역시나 이번에도 역시 로드FC는 욕을 먹었다. 핸드랩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정도 없고, 제대로 핸드랩을 검사하지도 않는 삼류단체라는 비난이 끝없이 쏟아졌다.

홈페이지에 나온 영문 규정을 검토해본 결과 로드FC 핸드랩 규정은 큰 결함은 없다. 먼저 핸드랩은 단체에서 지정한 공정함을 보장하는 스태프에 의해서 수행되지 않고 선수 스스로가 한다. 대신 선수가 단체의 도움을 원한다면 미리 요청할 수 있다. UFC에서는 따로 스태프가 핸드랩을 해주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논란이 발생할 여지는 적으며, 책임 소재도 분명하다. 둘째, 테이핑 부분이다. “의료용 테이프는 손목 근처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양손에 직접 사용될 수 있다. 테이프는 손등을 두 번 가로지를 수 있고, 주먹을 쥐었을 때 너클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확장될 수 있다.” 너클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확장될 수 있다가 손등을 두 번 가로지르는 것에 포함된다면 로드FC에서는 너클 부분 테이핑이 두 번까지 허용되는 셈이다. 셋째, 출전자는 공식 대기실에서 대회 오피셜(심판, 판정 등 규제하는 인원)이 보는 앞에서 핸드랩을 해야 한다. 넷째, 오피셜이 핸드랩을 승인하고, 마킹을 하기 전까지 글러브를 착용할 수 없다.

<미국 MMA 핸드랩 통합 규정 | 출처: 미국권투협의회(ABC)>

로드FC의 규정 자체는 해외 단체들과 비교해 크게 손색이 없다. 인터넷 ‘썰’들과 달리 UFC와 벨라토르 등 미국 단체들이 준수해야 하는 미국 ABC의 MMA 통합룰에서도 너클 파트에 대한 테이핑은 복싱과 달리 2회까지 허용된다. 세계 최고의 킥복싱 단체 글로리 킥복싱에서도 너클 파트에 대한 테이핑은 3회까지 허용된다. 좀 더 공정을 기할 수 있기 위해 핸드랩을 해주는 컷맨 같은 인력이 따로 있다면 더 좋을 수 있겠다, 정도의 아쉬움만 있을 뿐이다. 이는 원래 오피셜이 감아주다가 선수들이 불만을 제기해서 선수들이 직접 감는 방식으로 변한 거라고 하는데 현재 팬들의 기준이 워낙 높아진 상황이라 가능하다면 오피셜이 다시 감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게 좋아 보인다.

문제가 있다면 규정이 정확히 지켜지고 있다는 신뢰가 없다는 거다. 황인수 선수 측의 영상을 보면 로드FC 오피셜이 대기실에서 선수가 핸드랩을 하는 내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지는 않은 걸로 보인다. 너클 파트에 대한 테이핑도 2회까지 한계로 보이지만 로드FC 자체의 테이핑 영상을 봐도 2회보다는 더 하는 걸로 보인다. 로드FC 오피셜은 핸드랩을 다 만져보고 딱딱하거나 하는 등의 문제가 없을 경우에만 핸드랩 위에 사인을 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공식 대기실에서 상대 팀의 선수들과 감독이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각각 다른 팀의 여러 선수들이 한 대기실을 공유하며, 오피셜도 종종 감독하는 상황에서 심각한 부정을 저지르기는 어렵다는 게 로드FC 경기를 뛰어본 선수들과 코치들의 중론이다.

로드FC에겐 억울한 측면이 있다. 로드FC는 그래도 유일하게 큰 사고 없이 한국에서 10년 이상을 이어온 유일한 MMA 단체다. 모든 단체들 중에서 가장 규정이 잘 정비돼 있고, 오피셜도 가장 체계 있게 갖춰져 있다. 로드FC가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다른 단체는 이 정도 수준도 안 된다. 하지만 로드FC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상황에서 로드FC가 규정을 정확하게 준수하고 있지 않다면 팬들의 불신을 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이번에도 역시 문제는 정문홍 로드FC 회장의 대처였다. 정문홍 회장은 로드FC의 명문 규정을 설명하고, 실제 오피셜들이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아직 부족한 점은 고쳐나가겠다고 대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명현만의 팬들이 명현만의 패배를 못 받아들인다며 팬들을 탓하는 뉘앙스로 말했다. 제삼자는 명현만 팬들과 로드FC 안티들의 지나치게 편향된 태도를 비판할 수 있지만 신뢰도가 바닥인 로드FC 단체에서는 그러면 안 됐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그동안 신뢰를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개선을 약속하며 팬들을 달래야 했다.

명현만 선수와도 원만히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걸 구태여 통화 내용을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새벽 2시에 부상을 입은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 그 아내의 속을 뒤집어놔 이 사태 촉발의 원인을 제공했다. 로드FC가 현재의 위기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우선적으로 정문홍 회장부터 바뀌어야 한다. 로드FC 063 메인 이벤트의 흥행은 황인수 vs 명현만이라는 일회성 이벤트의 흥행이지, 로드FC의 흥행이 아니다.

그리고 블랙컴뱃은?

로드FC가 욕받이가 된 덕을 톡톡히 본 단체가 블랙컴뱃이다. 블랙컴뱃은 특유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비 격투기 팬층과 기존 격투기 팬층을 결합해 설립 1년 만에 급속도로 성장했다. 블랙컴뱃은 다른 단체, 특히 로드FC를 겨냥하는 듯한 마케팅을 많이 했다. 로드FC 출신 선수들인 양해준, 김민우 등을 영입한 다음에 다른 단체보다 3배 이상 대전료를 더 주고, 스폰서까지 얻어준다는 식으로 마케팅했다. 물론, 선수가 진심에서 우러나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블랙컴뱃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연출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이번에도 블랙컴뱃은 다른 단체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높이 세울 수 있는 떡밥을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어코 석고 핸드랩 떡밥을 물었다. 블랙컴뱃 대표 검정은 바로 영상을 올려 “블랙컴뱃은 신생 단체인데 핸드랩 규정에 대해서는 많이 예민한 편이라 공식으로 출범하고 난 다음부터 이 규정에 대해서는 확실히 운영하고 있었다. 심판진들의 회의록에 다 나와 있고, 규칙에도 매뉴얼이 나와 있다. 주먹 너클 파트에 테이핑을 아예 금지하고 있더라고 나와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블랙컴뱃짐 관장으로서 검정의 코치도 맡았던 박형근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것이 거짓이라고 폭로했다. 자신이 검정에게 너클 파트 테이핑도 해줬으며, 적어도 딥 대항전 멤버 선발전 후 자신이 나가기 전까지는 그런 규정이 없었다고 말했다. 블랙컴뱃 갤러리를 주축으로 블랙컴뱃에서 선수들이 너클 파트 테이핑을 한 영상도 계속 발굴됐다. 실제로 블랙컴뱃 홈페이지에 있는 공식 규정에는 너클 파트에 대한 규정이 나와 있지 않다. 검정은 해명하겠다며 라이브를 켰지만 어떤 제대로 된 해명도 내놓지 못했다.

블랙컴뱃이 이렇게 거짓말까지 해가며 로드FC를 비판한 이유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도 됐기 때문이다. 격투기 팬들은 건수만 잡히면 신나서 로드FC 욕을 했고, 다른 단체들은 추켜올렸다. 특히, 대전료 많이 주고, 홍보 잘해줘서, 스폰서 많이 받는다고 선수들이 언급하는 블랙컴뱃에 대해 찬사를 보내며 로드FC를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블랙컴뱃은 태만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든 어차피 격투기 팬들은 블랙컴뱃의 편이고, 로드FC의 적이다. 코인을 타자’라고 마음먹지 않기 어려웠을 거다.

이후 아버지 교회 4억 리모델링 논란, 바이럴 업체 논란, 홀덤 칩 상금 논란, 대전료 논란 등 수없는 논란이 이어졌고, 블랙컴뱃 측은 이에 대해 유튜브 콘텐츠를 위한 ‘연출’이라고만 하며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이제 블랙컴뱃의 모든 콘텐츠는 진실성이 의심받게 됐다. 블랙컴뱃 갤러리에서 ‘연출’은 밈이 됐다. “그거 다 연출인데요?” 지금까지 블랙컴뱃에 대해 찬양 일변도였던 격투기 커뮤니티에서는 서서히 블랙컴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무채색’ 시절부터 쌓아 올린 영상 불법 도용, 코너 맥그리거와 호르헤 마스비달 티셔츠 무단 도용 판매 등 여러 가지 논란도 재발굴됐다. 과장과 거짓말이 섞인 특유의 마케팅은 이교덕 기자가 “검정은 젊은 정문홍 로드FC 대표 같다. 마케팅 접근이 비슷하다.”고 말할 정도다. 지금 격투기 커뮤니티에서 로드FC 얘기만 나오면 구태이자 사회악이라고 저주하지만, 머잖아 블랙컴뱃도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다. 이번 석고 논란으로 블랙컴뱃에게 있던 신생 단체 ‘까방권’은 모두 소진됐다. 그렇다고 로드FC가 다시 살아날 거 같지는 않지만, 승승장구하던 블랙컴뱃에게도 위기가 찾아온 거다. 그것도 대표의 자충수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은 있다. 어쨌든 이제 국내 단체들은 너클 파트 테이핑을 2~3회 이내로 제한하고, 단체 오피셜이 핸드랩을 직접 감거나 최소한 감독을 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정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서 좋은 방향이다.

어쩌면 이번 기회를 통해 블랙컴뱃도 배움을 얻어 더 정직하게 단체를 운영할 수도 있다. 로드FC도 블랙컴뱃과의 경쟁을 통해 보다 열린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건 단체를 이끌어 가는 대표의 마인드다. 이번 석고 논란 사태를 통해 팬과 언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받아들일 점은 받아들이며 열린 자세로 단체를 운영한다면 한국에서도 언젠가 ONE이나 RIZIN처럼, 아니면 전성기 로드FC 시절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단체가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 MMA 단체 대표들은 대체로 본인들이 한국에서 아무도 가지 못한 힘든 길을 외롭게 걸어가고 있다며, 외부의 무분별한 공격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자신과 다른 의견은 이제 모두 ‘공격’으로밖에 안 받아들여진다. 블랙컴뱃 대표 검정의 최근 발언들에서도 이런 뉘앙스가 보이고 있다. 부디 한국 MMA 단체 대표와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뚝심은 뚝심대로 지키면서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 멋진 단체를 만들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