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씬에 지금껏 없던 캐릭터가 등장했다. 지하철 노선에 따라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는가 하면, 군용 슬리퍼, 샌들, 심지어 맨발 러닝으로 풀코스 마라톤을 완파한다. 자신을 ‘낭만에 미친 물고기’라 소개하는 유튜버 매드사카나의 이야기다.
그의 자연스럽고 솔직한 면면을 보고 듣고자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눴다. 버선발로 에디터를 맞이한 그는 제법 머쓱한 눈치였다. 눈에 띄게 차분했다. 누군가에게는 기행으로 보일 법한 도전을 일삼는 열정파 유튜버가 아닌, 지극히 예사로운 멀쑥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그의 이야기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한다.
유튜브에서 매드사카나 채널을 운영하는 29살 김도하라고 한다. 낭만을 핵심 키워드로, 달리기를 주 콘텐츠로 다루고 있다.
유튜브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는 소설가의 길을 걷고자 했다. 몇 년 동안 글을 썼지만 신춘문예의 문턱은 너무 높더라. 영화로 가야 하나 싶어 있는 돈 다 털어 단편 영화를 만들었는데, 마찬가지로 결과가 좋지 못했다. 이제 뭘 해볼까 하다가 시작한 게 매드사카나 채널이다.
도전에 거침이 없어 보인다.
입대 전까지 해외 여행을 많이 다녔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느 정도 돈이 모으면 나가고, 모으면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21개국을 오가며 경험해 보니, 세상에 무서울 게 별로 없다는 걸 배운 것 같다. 대단해 보였던 것도 막상 부딪혀 보면 그렇게 크지 않았던 순간이 많았달까. 덕분에 이제는 어떤 것이든 편하게 도전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1년 넘게 유튜브를 해보니 어떤가.
이쯤이면 구독자 10만 명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웃음) 지금 1,600명 정도인데, 차근차근히 해나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천천히 다져 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직업적인 의미에서 바라봤는데, 요즘은 개인적인 재미가 더 커졌다.
하고 싶다기보다는 해야만 해서 시작한 쪽에 가까운 건가.
유튜브 자체가 목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일단 유명해져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 혼자서 소설을 쓸 때는 없었던 기회가 생길 수 있을 테니까. 오늘 인터뷰도 일종의 기회 아닌가. 일단 유명해져 보자,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게 궁금했다.

낭만을 주제로 잡은 이유는 뭔가.
블루오션이라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낭만은 점점 죽어가고, 평가절하되고 있으니까. 인생 전체가 낭만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내가 파고들 틈이 있는 기회의 땅처럼 보였다.
낭만이라는 키워드가 무색하게 전략적인 선택으로 느껴진다.
내가 은근히 전략적인 사람이다. 이전에는 취미로 사진을 많이 찍었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진은 우연히 찍힌 사진이 아니라 치밀하게 짜여진 사진이더라. 설령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낭만일지라도.
다들 낭만은 비합리적이라 말하지만, 모두가 합리를 따를 때 비합리를 추구하는 게 되려 합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의 합리를 따라갔다면 내 가랑이가 찢어졌을 거다. 내게는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덕분에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영상에도 준비가 많이 들어가나.
비밀이긴 한데, 내 영상은 대부분 각본이 있다. 어디에 써놓거나 하진 않지만, 어느 시점에 어떤 대사를 한다는 대략적인 틀을 만들어 놓는다. 예를 들어 지하철 달리기를 할 때 이 역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겠다는 식으로. 영상 완성도가 낮아서 사람들이 낭만으로 봐주는 것 같다.(웃음)
영상적으로 더 업그레이드할 계획은 없나.
요소를 더 줄여볼 생각만 하고 있다. 자막을 아예 없앤다든지, 대사를 아예 안 한다든지. 밀란 쿤데라가 말하기를 인간이 개성을 가지는 방법은 더하기와 빼기 두 가지라고 하더라. 나는 내 개성을 가지는 길로 빼기를 선택한 거다.
그래서인지 집도 꽤 간소하다.
그나마 지금은 책상도 두고 하면서 짐이 좀 생긴 거다. 이 집으로 이사 올 때는 차 한 대에 모든 게 실렸다. 물건의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머리에 용량을 더 차지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뭔가 집중하기 전에 청소부터 하지 않나. 집중해야 할 일이 많은데, 눈에 시답잖은 게 보이면 정신이 흐트러져서 자연스럽게 덜어냄을 추구하게 된 것 같다.
평소 생활도 단출한 편인가.
그런 편이다. 파트타임 근무와 유튜브 촬영을 병행하고 있고, 나머지 시간에는 평범하게 지낸다. 밥 해 먹고, 책 읽고, 영화 보고, 달리기하고. 원래도 그랬지만, 지금 집이 워낙 외진 곳에 있다 보니 더 덜어내면서 살게 됐다.

도심과 거리가 먼 집의 위치도 의도적이었나.
사실 이렇게까지 외곽으로 올 생각은 없긴 했다. 산에서 뛸 생각을 하고 있었어서, 부동산 앱 켜놓고 산 근처로만 둘러봤다. 그러다 딱 하나, 지금의 집을 발견한 거다. 동네 자체가 북한산에 둘러싸여 있어서 너무 좋았다. 전에 살던 집은 북촌이라 해가 들지 않아서 볕에 대한 결핍이 있었는데, 남향인 데다가 통창으로 자연이 보이는 구조도 마음에 들었다.
러그가 눈에 띈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을 읽고 사고 싶어졌다. ‘인생에 대해 알고 싶으면 러그를 보면 된다’라는 말이다. 페르시아 러그를 사려고 터키까지 갔었는데, 거기가 훨씬 비싸더라. 1, 200만 원은 우스울 정도다. 그래서 이케아에서 샀다. 6, 70만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이케아나 무인양품처럼 합리적인 브랜드를 선호하는 편이다. 지금껏 브랜드에서 보여준 행보가 있으니, 러그를 70만 원에 팔아도 설득이 된다.

책이나 사람처럼 주변의 영향을 받아 체화하는 편인 것 같다. 마라톤 대회에서 다른 참가자끼리 나누는 말을 듣고 끝까지 완주하지 않았나. ‘아직 포기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라는 말로 기억한다.
나는 내가 정반대로 주변에 영향을 전혀 안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들어보니 그런 것 같다. 일부러 들으려고 듣는 건 아닌데 항상 귀가 열려 있고, 뭔가 듣게 되면 하루 종일 그 말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워낙 혼자 있기를 좋아하다 보니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자연스럽게 몸이 열리는 것 같다.
유튜브에서 보여준 샌들 신고 달리기, 맨발 달리기 같은 콘텐츠도 주변의 영향에서 시작됐나.
첫 마라톤이었던 2023년 JTBC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맨발로 뛰는 사람을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그러다 1년 정도 지나고 천안 흥타령 울트라 마라톤에 나갔다. 그곳에서 만난 분이 30km까지 맨발로 뛰어본 경험을 공유하더라. 그 말을 듣고 한 달 뒤쯤 열릴 JTBC 마라톤을 맨발로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게 됐다. 죽는 줄 알았다. 살아서 해본 것 중에 제일 힘들었다.
포기할 법도 한데 끝까지 완주했다.
사실 창피해서라도 포기 못 하게끔 의도한 것도 있다. 팬츠만 입고 뛰지 않았나. 맨발에 웃통은 없고, 등에 낙서까지 그려놨는데 중간에 포기하면 그 상태로 지하철 타고 가야 했다. 그건 도저히 힘들지 않겠나. 자신을 절벽에 밀어놓고 날아오를지 떨어질지를 실험을 한 거다. 직접 해보니 해볼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후회하는 건가.
후회하지는 않지만 권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계속 도전하는 이유가 있나.
자신을 벼랑 끝에 몰아 놓는 심리가 계속 있는 것 같다. 나태할 때는 또 한없이 나태해지는 사람이라서. 수십 킬로미터를 뛰어야 하는 지하철 노선 따라 달리기 같은 콘텐츠가 내가 만든 일종의 나태지옥이랄까.
달리기하면서 바뀐 점은 뭔가.
사람들을 좀 더 애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첫 마라톤 나갔을 때가 생각이 나는데, 30km 지점에서 갑자기 소름이 돋더라. 이 힘든 걸 모두가 묵묵히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정념을 불태우면서 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에게 비교적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오만하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신체보다는 내적인 변화를 더 체감한 건가.
신체적으로도 변한 게 있다. 체격은 그대로인데 발이 더 커졌다. 슬리퍼나 샌들 같은 걸 신고 뛰니까 발에도 근육이 붙었나 보다. 옛날에는 275나 280 사이즈를 신었는데, 이제는 발볼 제일 넓은 290으로 신어야 발에 맞더라. 발에도 근육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대회에 나가면 알아보는 사람도 있지 않나.
확실히 알게 된 점이 있다면, 나는 유명해져야만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유명해지는 게 싫은 사람이다. 그릇이 간장 종지만한 내게는 좀 버겁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인데, 다시 해외로 나가서 유목민으로 사는 건 어떨까 싶다. 알아보는 사람 없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직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직 글을 놓지 않은 건가.
곧 전자책으로 나온다. 5년 전부터 썼던 12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될 예정이다. 사실 한동안 글을 피하기도 했다. 문학을 읽으면 계속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최근에는 책도 인문학 위주로 읽었다. 건축이나 역사처럼 유튜브에 도움이 될 만한. 그런데 글 쓰는 게 너무 재밌다. 인스타그램에 시답잖은 글을 쓰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소설을 쓰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 김도하의 최종적인 방향은 글을 쓰는 사람인가.
각본가나 소설가 쪽이 유력하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비슷한 질문을 할 때마다 항상 필름 메이커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하게 계속 가지고 있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서는 영화인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면 좋겠다.
본인에게 영화는 어떤 존재인가.
최종 목적지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예술가로서 길을 계속 가고 싶은데, 그 극단이 어딘가 하면 영화 감독인 것 같다. 영화는 제7의 예술이라 부를 정도로 모든 예술을 아우르는 장르이지 않나. 그래서 막연하게 영화 감독이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만들었던 영화를 공개할 예정은 없나.
이거를 유튜브 멤버십으로 공개할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긴 하다.(웃음) 사실 무성 영화에 재미도 없어서 내놔도 되나 싶다. 이벤트처럼 구독자 상영회를 개최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