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따라 간다고 했던가. 정말 가요계를 싹 쓸어 버린 혼성 3인조 신인 ‘싹쓰리’가 음악방송 1위까지 거머쥐며 평균연령 40대 저력을 당당히 증명하는 중이다. 가요 생태계상 혼성 그룹이 설 자리가 없어진 지금, 싹쓰리의 데뷔로 남과 여의 조합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는 이제서야 깨닫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혼성 그룹 감성, 이 리스트에서 충전하자.
에디터 푸네스의 추천곡
Track 01. 거북이 – 비행기
“이 시대 최고의 댄스곡은 모다?”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당연 3인조 혼성 댄스그룹 거북이의 ‘비행기’라고 말할 거다. 지금은 고인이 된 터틀맨이 작사와 작곡에 참여한 이 노래는 2006년 7월 발매된 4집 앨범 수록곡. 경쾌한 멜로디와 동요적인 가사가 어른들의 아련한 추억을 건드리기도, 동심을 잃어버린 현실을 비춰 어딘지 씁쓸함을 자아내기도 하는 노래다.
나온 지는 꽤 됐지만, 아직도 예능 프로 브금으로 애용되는 건 물론 EBS 간판스타 펭수가 줄곧 흥얼거리는 최애곡이기도 하다. 슈퍼주니어, 신화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 가볍게 넘고 1위를 차지했던 저력, 다시 감상할 타임.
Track 02. W & Whale – R.P.G Shine
로맨틱의 정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를 부른 코나 멤버 배영준을 주축으로 한재원, 김상훈이 2001년 W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일렉트로닉 장르를 보다 친숙하게 대중에게 전하며 음악계에 신선함을 주입한 그들이 2007년 여성 보컬 웨일을 영입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고 특히 드라마, 광고 음악 작업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리고 바로 이 노래도 ‘SK브로드밴드’ CF에 삽입돼 중독성 짙은 사운드로 광고 음악계의 한 획을 진하게 그어주셨다. 만약 이 곡이 썩 마음에 든다면 케세라세라 OST ‘월광’, ‘마릴린몬로’도 꼭 찾아 플레이하길.
Track 03. 박은옥, 정태춘 – 92년 장마, 종로에서
이 노래를 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역행한 듯한 착각이 인다. ‘웬디스’ 햄버거 간판, ‘깃발 군중’, ‘물대포’, ‘구로 공단’ 등 그 시대를 반추하는 가사 속 투쟁의 정서가 드러나 자못 숙연함이 느껴지는 곡. 1993년 세상에 나온 이 노래는 가요 사전심의를 맡았던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잣대를 거부하며 불법으로 발매된 앨범인데, 사전 검열 제도를 폐지하는 데 바로 이 앨범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마치 하나의 목소리처럼 어우러지는 정태춘과 박은옥, 부부 싱어송라이터의 포크 감성은 비 오는 날 꼭 들어야 마땅하다.
에디터 형규의 추천곡
Track 04. 코리아나 – Stay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주제가였던 ‘Hand in hand’가 담긴 코리아나의 해당 풀렝스 앨범에 수록된 곡. 물론 올림픽 주제곡이었던 그 곡을 비롯해 ‘Victory’등의 곡이 가장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싱글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로 ‘Stay’를 꼽는다. 앨범 전곡의 구성이 물 흐르듯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어 198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를 가장 완벽하게 살린 앨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퍼포머인 코리아나의 역할도 좋았지만, 사실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거장 조르지오 모로더의 힘이 제일 컸다.
Track 05. 잼 – 난 멈추지 않는다
1990년대 가요계의 가장 상징적인 ‘원 히트 원더’. 잼은 정말로 이 곡 빼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룹이었지만, 이 단 한 곡이 가져다준 충격파는 엄청났다. 게다가 동시대에 나왔던 어린이 영화 ‘키드캅’의 영향으로 꼬꼬마들에게도 친숙해서, 단기 임팩트로만 치면 역대급이었다. 사실 리더인 조진수가 혼자 다 해 먹어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재능이 돋보인 원맨 그룹이기도. 다만 이들은 스타일링부터 집단 군무, 전반적인 콘셉트까지 당시 ZOO 같은 일본 그룹의 완벽한 카피캣이었다. 그래도 추억이 뭔지, 기억 속에서 미화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Track 06. 크리스탈 레인 – Superstar
2장의 앨범으로 끝나기에는 아쉬울 만큼 크리스탈레인은 훌륭한 음악을 들려줬던 애시드 재즈/팝 밴드다. 충분히 대중적인 접근방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주의 테크닉이라던가 송라이팅 구성까지 완벽하게 밸런스를 맞추는 모습은 분명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지점이다. ‘Superstar’는 2012년에 나온 밴드의 2집에서 킥오프 트랙을 담당하는 상큼한 업템포 넘버로, 그대로 묻히기엔 너무 아쉬운 수작이다.
Track 07. Nightwish – Wish I had an Angel
핀란드의 국민밴드, 유럽의 록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이트위시의 명작 <Once>에 수록된 불멸의 명곡. 타르야의 고혹적인 소프라노와 마르코의 폭발적인 남성 보컬의 대비가 가장 극명하게 작용하는 곡으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벌스와 코러스를 나누어 전개해나가는 부분에서는 일종의 쾌감마저 느끼게 한다. 뛰어난 멜로디 메이킹과 머리를 들썩이게 만드는 댄서블한 리듬 파트도 훌륭해서, 덕분에 공연 시 가장 폭발적인 관객 반응을 끌어내는 밴드의 라이브 단골 넘버다.
에디터 신원의 추천곡
Track 08. 투투 – 일과 이분의 일
발랄하고 경쾌한 리듬 속 찐득찐득한 질척거림이 시작된다. 아직은 그리운 전 여친을 길에서 마주쳤고 발칙한 우연에 기대어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 보는데. 웬걸,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치 정확히 반으로 나누려 했으나 한쪽으로 몰려버린 쌍쌍바처럼. 우리가 사귀었을 때 둘이었지만, 그녀에겐 남자의 반쪽이 따라가고 그에겐 반쪽만 남아있다고 쌕쌕거리며 독백 같은 고백을 해댄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을 이토록 시적으로 귀엽게 표현할 수 있는지. 여기에 김지훈의 매끄러운 보컬과 황혜영의 무표정 댄스가 어우러져 비로소 이 곡은 완성된다.
Track 09. 샵 – 내입술…따뜻한 커피처럼
메인 래퍼 장석현, 메인 보컬 이지혜, 서브 보컬 서지영, 리드 래퍼 크리스까지 1998년이 아닌 2020년 현재 멤버, 가사, 멜로디 전부 그대로 데뷔했다 하더라도 어느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어 보인다. 멤버들의 불화로 결성 4년 만에 해체하긴 했지만, 지금은 오손도손 사이좋게 지낸다고 하니 다시 결합해 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려나.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어김없이 통하는 이야기. 이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고. 그걸 알지만서도 죽을 것만 같은 아픔은 막을 도리가 없다. 그 당연한 공식을 절절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는데, 제목 때문인지 곡 전체의 분위기가 씁쓸하니 감미로운 커피 한 잔 같다.
Track 10. 주주클럽 – 나는 나
목소리를 꺾어 부르는 독특한 창법과 ‘떼떼떼떼’로 수많은 패러디를 낳기도 했던 노래. 만남도 이별도 쿨하고 쉬워진 요즘과는 확실히 다른 속도의 느리고 진중한 감성을 녹여낸 가사가 정겹기 그지없다. 비록 연락처는 삭제하고 다시 안 볼 사이더라도 ‘내가 사랑을 했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 언제까지나’라며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다짐하는 박애주의적 속내가 풋풋하게 마음을 건드리고. 순수했던 그 시절로 잠시 소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