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존경받는 20세기 재즈 뮤지션 중 한 명인 마일스 데이비스는 예나 지금이나 스타일로 회자된다. 재즈 퓨전의 아버지로 불리었던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사운드를 재해석하거나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들었고, 이런 활동만으로도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풍기는 세련미와 화려함은 많은 이들이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그는 독특한 스타일 조합을 만드는데 재능이 있었다. 품위와 우아함을 찾는 유명 재즈 연주가들 사이에서 데이비스는 다른 스타일 행보를 보였다.
언제나 한발 앞서는
40년대 세련되고 심플한 스타일부터 수십 년이 흐른 뒤인 70년대의 파격적인 복장까지, 그가 걸어왔던 시대의 정점을 보여주는 여러 스타일은 지금도 많은 남성이 좇고 있다. 이처럼 그의 패션 스타일은 그가 걸어온 음악적인 길과 비견될 정도로 굉장한 족적을 남겼다. 음악만큼이나 패션도 모험적이고 진보적이었다.
그의 예술, 존재감, 카리스마 원천이 바로 패션이었고, 그에게 패션은 하나의 신념이었다. 또한, 패션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인 동시에 이 예술가가 그 누구보다 한발 앞선 시대에 살고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샤프한 이미지
데이비스는 언제나 깔끔하게 차려입는 것을 선호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의 모친의 패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자서전, ‘Miles: The Autobiography’에서 데이비스는 “어머니는 밍크코트, 다이아몬드를 갖고 있고, 다양한 모자와 아이템에 관심이 많았던 아주 화려한 여성이었죠. 어머니의 친구분들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주 화려했습니다”라고 회상하고 있다.
그의 패션 감각은 타고난 재능이지만, 아스테어, 덱스터 고든, 캐리 그랜트와 같은 등 다른 스타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또한 동료 재즈 뮤지션이자 롤모델 중 한 명인 콜맨 호킨스에게는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 감각에도 영향을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호킨스는 때때로 어린 데이비스에게 유행하는 옷을 선물하기도 했다고.
데이비스는 그의 옷들이 옷걸이에 걸려있을 때만큼 그의 몸에 잘 어울리도록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택한 것이 복싱이었는데, 영화배우이자 권투 선수였던 슈거 레이 레너드 정도 실력은 아니더라도 건강과 체격에 대한 집념만큼은 이에 못지않다는 걸 보여주듯 그의 정신을 본받아 헤로인 중독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데이비스의 패션에는 ‘적응’이 필요했다. 낯설게 다가온다는 얘기다. 그는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룩을 만들어냈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말이다. 이런 모험은 성공적이었고 그가 만들어낸 조합은 때로는 의아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언제나 잘 어울렸다. 퓨전 재즈가 데이비스의 음악적인 성취라면 진취적인 자세로 패션에 다가간 것 또한 같은 선상의 업적이다.
멋의 완성은 태도에 있다. 그가 옷을 입는 것이지, 옷이 그를 입는 것이 아니라는 자신감. 트렌디하고 당당한 모습은 언제나 그가 최고의 패션 감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또렷이 보여주었다.
기억에 남는 룩
데이비스는 뉴욕 ‘Tunnel Club’에서 앤디 워홀과 함께한 유명 일본 디자이너 사토 고신의 1987 컬렉션에서 모델로 무대에 올랐다. 보답으로 사토는 안감은 호피 무늬, 바깥은 보라색 여우 털로 포인트를 준 검은색 밍크코트를 만들어 데이비스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데이비스는 백악관을 방문할 때도 사토의 옷을 입고 가기도 했다.
그는 때때로 구제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 정장 옷깃을 슬래시로 리폼하기도 했는데, 이는 에드워드 8세 때문에 유명해진 룩을 따라 한 것이었다. 그의 초창기 스타일은 컨트리클럽 느낌이 살짝 있어 40년대와 50년대 무대와 매우 잘 어울렸다.
60년대에 이르러서 데이비스는 좀 더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했다. 깔끔한 남성복과 폰지 수트를 연상하면 된다. 모두 당대 이탈리안과 프렌치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다. 데이비스는 베이지나 그레이 같은 뉴트럴 계열의 폰지 수트를 즐겨 입으며 쾌활한 매력을 뽐냈다. 그는 공연이 끝나도 시어서커 수트, 흰색 와이셔츠, 수제 사슴 가죽 로퍼를 입고 휴식을 취했던 사람이었다.
파격적이었던 70년대에도 데이비스의 스타일은 튀었다. 그는 그 시대의 모든 유행을 최대한으로 뽑아냈다. 보라색 나팔바지, 두꺼운 흰색 구두, 셔츠 없이 가죽 재킷만 입던 데이비스에겐 그 모든 것이 위화감 없이 잘 어울렸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그의 스타일도 고향인 이스트세인트루이스에서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감각과 수입 의류에 대한 사랑은 놀림거리가 되곤 했다. 아방가르드한 요소가 있던 그의 독특한 복장들은 당대 흔했던 길거리패션과는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스타일 따라하기
그의 여러 룩만 봐도 데이비스는 하나의 스타일 아이콘이었다. 무엇이든 다 잘 어울리는 남자라면 그런 마일스의 룩을 따라하기도 쉽겠지만, 패션 감각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 그것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드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마일스의 룩 중에서도 덜 복잡하고 충분히 따라 하기 쉬운 것들도 있다. 만약 티셔츠와 청바지 코디에서 졸업하고 싶은 당신이라면 시도해보기 제격. 데이비스 캐쥬얼룩은 그가 60년대에 자주 입었던 폴로 셔츠와 봄버 재킷 조합이다.
심플하지만 자신감을 드러내는 아웃핏으로 신경을 안 쓴 것 같으면서도 쓴 것처럼 보이는 ‘꾸안꾸’ 스타일이다. 한눈에 봐도 세련되어 보이는 ‘Paige 엘리엇 봄버 재킷’은 청바지부터 치노 바지까지 다양한 아이템과 잘 어울린다.
데이비스만큼 정장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21세기 수트에서 요구되는 깔끔한 라인의 맞춤 제작이라니, 과연 시대를 앞선 감각이다. 핀스트라이프 무늬가 대조를 이루며 무대에서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당당함을 선사해주었다. 정장에 있어서는 ‘브룩스 브라더스 리젠트 핏 투 버튼 스트라이프 1818’을 따라올 자가 없다.
1970년에 그 유명한 ‘Bitches Brew’를 발매한 데이비스는 스타일에서도 여러 장벽을 부쉈다. 그야말로 실험적인 시기로 틀을 벗어날 기회들을 많이 잡았다.
패션을 하나의 신념으로 생각했던 것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는 지미 헨드릭스 장례식에 벨벳 재킷에 두 줄 목걸이를 하고 나타났다. 거기에 멋들어지게 장식한 스카프와 스터드 벨트까지.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에게 그의 재킷에다 벨벳 옷깃을 달아 달라고 할 만큼 데이비스는 벨벳 소재를 즐겨 입었다. 그래서 그가 무대, 저녁 약속뿐만 아니라 장례식에서도 벨벳 소재를 입은 것이 별로 놀랍지 않은 정도다. 데이비스가 애정한 보라색 벨벳 재킷과 비슷한 것으로는 ‘랄프 로렌 퍼플 배이직 코튼 벨벳 재킷’이 있다.
그는 지미 헨드릭스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받았다. 그가 가진 보헤미안 분위기에서 드러나듯 데이비스는 보수적인 면모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분방함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 당시 연예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웨그를 갖고 있었다. 데이비스 말고 터번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80년대의 극적이고 지나친 화려함을 가장 잘 활용한 데이비스가 무대에서 소화한 옷들은 당대 엘리트였던 그에게 하나같이 잘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화려한 패턴의 배기 팬츠에 ‘디스퀘어드2 싱글 브레스트 블레이저’와 같은 현란한 상의들이 평상복이었다. 크롭된 네온 블레이저에 어깨 패드, 화려한 패턴의 블라우스 거기에 이세이 미야케의 제품까지 가세한 이 콤비는 오직 데이비스만이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데이비스의 스타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정의’다. 그는 음악이든 패션이든 그의 커리어 어떤 분야에서도 정체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진화, 성장, 발전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그가 가진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는 남들이 시도해보지 못한 스타일을 선택하게 했다. 그는 수많은 곳에서 영감을 받았고, 사람들이 결코 잊지 못할, 잊히지 않을 결과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