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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한 시도의 가치, 서촌 무용;소
2023-02-21T17:27:32+09:00

쓰다가 닳아버리는 실용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무쓸모.

나지막한 몸짓으로 하루가 지나가는 서촌에 낮엔 디자인 숍, 밤엔 위스키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타협점 없이 보이는 이 두 개의 요소는 ‘쓸모와 취향의 가치를 탐구하는’ 무용;소 크루 고현 에디터와 윤진영 디자이너의 사사로운 취향이다. 한옥 지붕 아래 실용적이지 않아 더 좋은 보사노바, 여행, 위스키, 아줄레주 패턴이 흐르는 이곳에서만큼은 돌 속의 어둠을 상상하며 보내는 무용한 시간도 썩 괜찮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단 두 분께 어떤 호칭을 써야 할까 고민을 좀 했었어요. 단순히 사장님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다른 일들을 하고 계시고, 사실 호칭이 그 사람의 역할을 단편적으로 대변하기도 하니까 조심스러운 부분이더라고요. 혹시 듣기 편한 호칭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저희도 처음에는 헷갈리더라고요. 상업적인 공간이니 사장님 호칭이 당연한 건데, 내내 어색했어요. 저희 둘은 부부기도 하지만 무용;소 안에서만큼은 일종의 크루라 생각하고 있어요. 본업인 에디터, 디자이너로 서로를 대하는데, 호칭도 그렇게 불리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요.

자기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릴게요.

고현 _ 에디터이자 무용;소 크루입니다. 여행지 <론리플래닛 매거진>에서 8년 정도 에디터로 일했고, 막바지에는 잠시 편집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후 재주상회, 어반플레이, 프립이 공동 발행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파인더스> 편집장을 맡고 있어요. 무용;소에서는 위스키 시음실을 담당하고 있죠. 올해는 무용;소에서 무용한 취향을 주제로 한 매거진을 만들 예정입니다.

윤진영 _ 폴카랩 디자이너이자 무용;소 크루입니다. 인테리어 무역 회사에서 영업과 마케팅 일을 10년 정도 했어요. 지금도 재택근무 형태로 마케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폴카랩은 포르투갈 아줄레주 타일에서 영감을 얻은 패턴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요, 슬로라이프와 여행을 주제로 여러 디자인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무용;소에서는 디자인 스토어를 담당하는데, 올해는 다른 창작자나 브랜드와 함께 팝업 전시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쓸모와 취향의 가치를 탐구하는 사사로운 공간’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에요. 무용;소는 그 어떤 취향이든 존중해 줄 것 같은 포용력 넓은 공간처럼 느껴져요.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취향을 들여다보고 가꾸는 시대인 것 같아요. 취향은 늘 상대적이고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없기도 하죠. 무용;소는 저와 아내 그리고 함께하는 크루들이 좋아하는 취향을 공유하는 공간을 지향하는데, 애시당초 다수를 만족시키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소수라도 무용;소의 취향과 분위기에 공감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는 곳이길 바랐죠. 그런 점에서 포용력이 넓은 공간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무용;소가 두 분의 취미, 호감 영역에서 나아갔다고 하셨는데, 사실 취미와는 또 다르게 업이 되려면 잘해야 할 것 같고, 전문가여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단한 프로페셔널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을 염두에 둔 게 아니어서 강박이 있지는 않았어요. 물론 좋아하는 일이기에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들었죠. 디자인 스토어와 위스키 시음실은 각자 평소 품었던 로망을 실현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각자 본업을 병행해야 했기에 무옹;소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기도 해요. 각자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운영 방식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어요.

서촌이라는 동네에 자리를 잡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저희 신혼집이 삼청동의 아담한 한옥이었어요. 그때부터 북촌과 서촌 일대를 자주 오갔는데, 언젠가 서촌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북촌이 관광지에 가깝다면 서촌은 주거지이면서도 사이사이 흥미로운 공간들이 많았고요. 그래서 작업실을 구할 때 무조건 서촌에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알아본 끝에 현재 무용;소 자리를 찾았습니다.

이 공간에 있으면서 만나는 풍경 중 좋아하는 장면이 있으신지.

무용;소 앞 골목을 오갈 때마다 슬며시 보이는 인왕산의 풍경을 좋아해요. 계절마다 묘하게 산의 인상이 달라지죠. 또 마주 보는 건물이 어린이집인 것도 특이한 점이에요. 오후 4시쯤 아이들이 하교할 때 한참 분주해지죠. 저녁에 불 꺼진 어린이집을 바라보며 위스키를 마시는 일도 꽤 생경한 경험입니다.

고현 에디터님은 최근 파인더스라는 잡지를 창간하셨어요. 간단하게 소개 좀 부탁드려요.

‘수상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란 콘셉트의 계간지인데요, 매호 한 가지 주제 아래 인물과 지역, 취미를 두루 다루고 있어요. 1호에서는 ‘수상한 여행가’라는 주제와 함께 여행을 매개로 독특한 성취를 이룬 10인을 다뤘고, 최근 발행한 2호에서는 ‘레터 보내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편지와 뉴스레터를 함께 소개했습니다. 일상에서 발견한 새삼스럽고 흥미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탐정의 관점과 시선으로 계속 찾아볼 예정입니다.

무용;소도 그렇고 디자인을 시작하신 것도, 잡지 창간도 코로나19로 다들 힘들 시기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셨어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 같고, 막연한 두려움은 없으셨는지. 만약 있었다면 그걸 넘어서게 했던 ‘무엇’이 있다면요.

어찌 보면 코로나19 때문에서 안식년 비슷한 휴식기가 생겼고, 조금 무모하게 무용;소라는 공간을 열었고, 저와 아내가 따로 또 같이 일하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런 점에서 코로나19는 저희에게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준 셈이네요. 물론 막연한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에요. 이제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기에 서로의 고민거리를 늘 얘기하고 상의하며 의지를 해요. 같이 무언가를 결정해나가기에 그런 두려움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요.

패턴은 잘 들여다보면 자연, 사물 등 어디에나 있어 그 확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폴카랩이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윤진영 디자이너님은 패턴 작업을 하실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포르투갈 여행에서 만난 아줄레주 타일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지요.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건물 외벽과 내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타일 장식인데, 꼭 대단한 랜드마크가 아니더라도 골목이나 가정에서도 볼 수 있었어요. 제가 리소그라피나 실크 스크린처럼 느린 기법의 작업을 시작했을 때 아줄레주 패턴이 뭔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간 다녀온 여행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아줄레주 패턴 디자인을 하게 된 이유죠. 제가 좋아하는 도시의 기억을 패턴으로 구현해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옥과 아줄레주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몰랐어요. 색상에 따라 단청 느낌도 나고요.

아줄레주가 주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게 하는데요, 실제 제가 작업한 아줄레주 패턴 디자인을 한옥에 장식해보니까 오묘한 분위기가 나더라고요. 국내 여행을 다니다 보니 한옥의 단청 같은 패턴 요소를 새롭게 발견하게 됐어요. 앞으로 한국의 장식 요소를 활용한 패턴 디자인도 작업해보고 싶어요.

무용;소, 폴카랩, 파인더스 말고 요즘 두 분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함께 향유하시는 것 혹은 각자 몰두하고 있는 것 등요.

둘 다 최근 이랑의 음악에 푹 빠졌습니다. 파인더스 2호 편지 주제로 인터뷰이를 찾다가 서간문 작가로서 호기심이 생겼는데, 비록 인터뷰는 여러 사정으로 불발됐지만, 대신 이랑이라는 뮤지션에 대해 좀 더 알게 됐죠. 새해 첫날 열린 공연도 가고, 한정판 LP를 구하기 위해 서울레코드페어에서 반나절 대기까지 했어요. 집에서든 무용;소에서든 지금 거의 두 달 가까이 이랑 음악만 듣고 있습니다. 저희는 뭔가 하나에 꽂히면 좀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이전 직업인 마케터로서 에디터로써 급박하게 치러졌던 ‘마감’라이프는 벗어나셨지만, 어쩌면 이제 하루하루 가게 문을 닫는 게 또 다른 마감이잖아요. 같은 단어지만 두 분께는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요.

무용;소 초기에는 다른 의미에서 하루하루 마감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요. 이제는 마감을 한다기 보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에 더 방점을 두고 있어요. 위스키를 고르는 것부터 플리마켓이나 작은 전시 등을 준비할 때 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죠. 그런 점에서 어떤 마감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요즘 나에게 무용하다고 생각되는 유무형의 것들이 있다면.

고현 _ 올해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하여 아침 시간이 좀 다르게 다가와요. 예전에는 딱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 정도로 여겼는데, 이제는 아침을 좀 알차게 보내려고 하죠. 근래에는 저만의 소소한 챌린지를 시도하고 있는데, 매일 집 앞 공원에서 일출을 보고 오는 거로 하루를 시작해요.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시도하면 운동도 되고 하루의 에너지를 얻게 해주는 것 같아요. 나름 제게 아침의 쓸모가 생긴 셈이죠.

윤진영 _ 저는 수집이요. 지난해 가을 소소한 플리마켓 ‘무용;장’을 열었는데요. 그간 여행에서 모아온 수집품들을 한자리에 소개할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누구나 탐내는 물건 말고도 저는 그냥 일상생활에서도 잘 버리지를 못하거든요. 가령 의류의 택이나 약상자, 포장지, 티켓처럼요. 기회가 되면 이런 일상의 사사로운 수집품을 보여주는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무용;소 추후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올해 미션 중 하나로 무용;소에서 매거진을 만들 계획입니다. 무용한 취향을 좀 더 세밀하게 보여주는 콘텐츠로 제작할 예정인데, 단지 책으로 머무는 게 아니라 무용;소를 기반으로 팝업 전시와 굿즈 등을 같이 선보일 예정이에요. 상반기에 1호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마지막 질문은 이걸 드리고 싶었어요. 고현 에디터님에게 평양냉면이란. 최애 평양 냉면집도 말씀해주세요.

평양냉면은 저희 부부가 모든 취향을 공유할 수 없는 어떤 기준점 같네요. 저와 아내의 음식 취향 중 가장 강하게 갈리는 메뉴인데요. 그러다 보니 함께 먹으러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평양냉면은 싱글몰트 위스키처럼 집마다 미묘하게 다른 개성을 찾는 재미가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남대문시장의 부원면옥을 좋아합니다. 순 메밀 면도 아니고 육수도 향이 강한 편이지만, 언제 가도 편안해서 좋아해요. 곁들여 먹는 녹두전도 맛있고, 무엇보다 가격도 부담 없죠.

 

임볼든 공식 질문, 두 분이 평소에 지참하고 다니시는 소지품(EDC)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고현 _ 시계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냥 손목이 허전해서 습관처럼 차고 다녀요. 도쿄 기치조지의 놋토(knot)라는 브랜드에서 산 시계인데, 마음에 드는 밴드를 커스텀 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밴드를 바꿔가며 착용했는데, 어느 순간 그냥 가죽 밴드를 계속 쓰고 있어요. 가로수길에 매장이 열었다고 하니 조만간 구경하러 가볼 예정입니다.

안경은 작년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에서 구입했어요. 김종필안경인데 평소 안경으로 착용하다가 필요 시 클립 형태 렌즈를 끼워 선글라스로도 사용할 수 있어요. 당시로는 꽤 희소했던 리사이클링 가죽으로 제작된 페이퍼띵스 카드 지갑은 10년 가까이 명함 지갑으로 사용 중이고, 여행 에디터 시절부터 스마트폰보다 노트에 메모하는 걸 선호했는데, 롤반(Rollbahn) 포켓 노트는 커버가 튼튼해서 보일 때마다 구매하고 있어요.

윤진영 _ 노트를 항상 소지해요. 휴대하기 좋은 가볍고 얇은 노트를 선호하죠. 예전부터 저는 기록하는 걸 좋아해서 뭔가를 준비하거나 아이디어 정리가 필요할 때마다 노트에 차곡차곡 기록해요.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스케치를 해보기도 하고요. 폴카랩으로 패턴 디자인을 할 때도 제가 딱 좋아하는 사이즈의 노트를 만들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