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의 힘은 실로 강하다. 사랑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값비싼 선물보다 정성 어린 손 편지가 좋다는 세간의 이야기도 있으니까. 진위는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편지가 가지는 잠재력과 상징성은 가늠할 수 있지 않은가. 연인에게 쓰는 편지를 ‘고운 글씨로 사랑을 만드는 길’이라 비유한 박정현의 노랫말은 그 의미를 완벽하게 담고 있다.
그렇지만 편지를 쓰는 건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 첫 획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무수한 표현과 가물거리는 기억이 헝클어지면 운을 떼는 일조차 막막해진다. 반대로 눈앞에 놓인 새 편지지처럼 머릿속이 새하얗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글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탓에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 자체가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걱정하지 말자. 상대방을 향한 진정하고 오롯한 마음만 준비되어 있다면, 형식은 그 위에 덧씌우기만 하면 되니까. 혼자만의 짝사랑부터 영글어진 관계까지, 연애 시기별 편지 잘 쓰는 법을 소개한다. 당신의 애정 어린 노력을 응원하며.
짝남 짝녀의 관심이 필요할 때
유재석처럼 재치 있게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하차를 앞둔 이광수에게 적은 유재석의 편지다. 11년의 인연을 마무리하는 글이었지만, 유재석은 감동보다는 웃음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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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보다는 행위에 집중해서
편지 쓸 일이 뭐가 있을까 싶겠지만, 명분은 찾기 나름. 생일이나 승진 같은 뚜렷한 계기에 더해 부서 이동, 새해 인사, 하다못해 초콜릿이라도 하나 받은 사소한 상황도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명심할 점, 이건 연애편지가 아니다. 티끌만 한 관계성을 위한 노력의 일환일 뿐이다. 시답잖은 내용과 서너 줄 정도의 짧은 길이면 충분하다. 성의를 더하면 더할수록 연정을 티 내는 꼴이니까. 아직 당신은 친구1, 동료1, 지인1인 점을 잊지 말자.
진지하기보다는 유머러스하게
유재석의 장난기 가득한 문장을 보자. 앞으로 누구에게 장난을 쳐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로 아쉬움을 표하다가, 순식간에 ‘다른 사람한테 하지 뭐~’ 라는 식의 농담으로 반전을 꾀한다. 저 실없는 ‘ㅋㅋ’를 보라. 너 때문에 안 심심했다는 진솔한 표현의 무게를 단번에 누그러뜨린다.
편지는 그 자체로도 무게감을 가진다. 거기에 내용까지 진지하다면 수신자는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을 거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유머다. 적절한 위트는 사람을 가볍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친근감을 만들어 주니까. 그렇다고 대놓고 깔깔 유머집에 나올 만한 아재 개그를 투척하라는 뜻은 아니다. 내용에 충실하되 감칠맛을 더할 킥 하나면 족하다.
간질간질 두근두근 썸 탈 때
문상훈처럼 담담하게
문상훈은 말보다는 글로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다. 아래의 글은 문상훈이 이끄는 크루 ‘빠더너스’ 일원에게 그가 선물한 편지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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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표현보다는 담백하게
썸은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게 분명한 상태. 동시에 아직 부재한 확신을 만들어가는 기간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불도저처럼 들이미는 건 오히려 마이너스일지 모른다. 얼굴을 마주할 때는 삐져나오는 감정을 숨길 수 없을지언정, 편지 속에서라도 담백해지자. 상대가 부담을 느끼는 순간 그 관계는 좌초될 테니까.
사소하더라도 칭찬을 더해서
문상훈의 편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게 뭐가 됐건 상대의 장점을 찾아내고, 이를 칭찬하는 문장이 담긴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은 분명 저마다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발견해 주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게 칭찬인데, 호감을 느낀 사람이 말해주면 그 얼마나 좋을까.
외모에 대한 칭찬도 나쁘지는 않지만, 다소 뻔하고 상투적이다. 칭찬의 생명은 디테일. 당신의 세심한 관심이 느껴질 만한 구체성을 갖추면 좋다. 버스를 탈 때 인사를 건네는 따뜻한 마음, 재미없는 농담에도 웃어주는 잔잔한 배려, 나의 관심사를 기억해 주는 섬세한 다정함처럼.
불꽃 같은 연애 초기 때
홍진경처럼 거침없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절절한 연애편지라 오해할 법한 홍진경의 글은, 사실 그녀의 친구인 ‘정신’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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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를 넘어 넘치듯이 담아
재고 따지는 건 이제 그만. 공식적으로 교제를 시작했다면, 더 이상 감정을 아끼거나 정제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래서는 안 되는 쪽에 가깝다.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오르는 지금의 애정을 솔직하게 담아 내자. 콩깍지가 잔뜩 씐 이 시기에는 그 어떤 표현도 과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둘만의 기억을 적극 활용해서
연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어도, 둘만의 언어, 장소, 추억은 생각보다 빠르게 축적된다. 응당 커플이라면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영문 모를 웃음 포인트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암구호처럼 비밀스러운 둘만의 기억은 연애편지에 아주 좋은 원료가 된다.
거창할 필요도 없다. 길 가다 함께 본 이상한 간판, 요상한 멜로디를 붙인 유행어, 서로만 알고 있는 유치한 별명 같은 것들. 기억이 서려 있는 문장은 자연스레 미소를 유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흩어질지 모르는 그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부수적인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서로가 편해진 연애 안정기 때
차인표처럼 진솔하게
결혼한 지 6년 2개월 만에 집을 얻은 차인표는 아내 신애라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남겼다. 러브 레터라기보다는 회고나 참회에 가까운 내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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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이제는 하나하나 샅샅이 살피기엔 너무 거대해져 버린 연인과의 시간. 디테일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편지를 적으며 지금껏 함께한 굵은 줄기를 반추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이만치의 기쁨을 건너다보니 어느덧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고. 여태까지 쌓아온 사랑의 역사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줄 테니, 앞으로의 행복도 함께 그려 나가자고.
표현이 어려웠던 미안함을 곁들여
서로가 당연해질수록 어려워지는 말이 있다. 바로 미안하다는 말이다. 모든 기준을 상대방에게 맞추던 시기를 지나, 나의 입장과 의견을 관철하고 싶어지기 때문. 사과의 말을 내뱉는 순간 상대방이 옳고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 이쯤 되면 알겠지만, 그래선 안 된다.
차인표는 그간의 결혼 생활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얼마나 철없는 남편이었는지를 깨달았고, 그 미안함을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썼다. 타이밍을 놓쳐서, 왠지 낯간지러워서, 괜한 자존심에 미뤄둔 한마디가 있다면 조심스레 꺼내 보자. 진심 어린 사과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