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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 오이스터 100주년부터 파텍 필립 노틸러스 50년까지 (+ 영상)
2026-01-08T15:14:22+09:00
롤렉스 오이스터

2026년에도 즐거운 시계 생활.

시계 브랜드에게 기념일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시간은 그들에게 재료이자 중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시계를 만든다는 것은 시간을 축적하고 관리하는 일. 그래서 시계 브랜드는 유독 몇 년이 지났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2026년은 많은 시계 브랜드가 중요한 기념일을 맞는다. 롤렉스 오이스터 100주년과 튜더 100주년, 파텍 필립 노틸러스의 50년까지. 그리고 이 숫자들은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시계 산업이 언제, 무엇을 선택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2026년 시계 브랜드의 주요 기념일과,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롤렉스 오이스터 100주년

오늘날 시계의 기준이 되다

1920년대 손목시계의 가장 큰 문제는 케이스. 먼지와 습기, 충격은 정밀 기계에 치명적이었고, 아무리 정확한 시계라도 일상에서 믿고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손목시계는 여전히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장신구였다.

1926년 롤렉스(Rolex)는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한다. 오이스터 케이스다. 케이스백과 크라운을 스크류 다운 방식으로 고정하고, 베젤과 크리스탈은 케이스에 꽉 잠기게 만들어 하나의 밀폐된 구조를 완성했다. 시계 구조를 새롭게 설계해, 방수라는 실질적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구조는 손목시계의 쓰임을 바꿨다. 비를 맞아도, 땀에 젖어도, 물에 닿아도 시계는 계속 작동했다. 착용자는 시계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고, 손목시계는 조심해서 다루는 물건에서 매일 착용하는 도구로 이동했다.

1927년 메르세데스 글라이츠의 영국 해협 횡단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손목에는 오이스터 케이스를 적용한 롤렉스가 채워져 있었고, 수영이 끝난 뒤에도 시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어느 광고보다 설득력 있고, 어떤 기술 설명보다 신뢰감을 주는 사건이었다.

방수가 가능한 손목시계는 곧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시계는 움직임과 함께하는 장비가 됐고, 스포츠 선수, 탐험가, 군인, 전문 직업인 등 많은 사람이 손목시계를 사용하게 됐다. 이후 등장하는 다이버 워치, 파일럿 워치 등 각종 프로페셔널 시계의 계보는 모두 이 구조적 전환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크류 다운 크라운, 밀폐된 케이스 구조, 실질적인 방수 성능. 이는 더 이상 롤렉스만의 전유물이 아닌, 오늘날 손목시계의 기본 조건이 됐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롤렉스가 ‘도구 시계의 기준’으로 언급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오이스터는 디자인이 아니라, 시계 사용 방식을 바꾼 구조였기 때문이다.

튜더 100주년

롤렉스와 같은 구조, 다른 목적

1926년, 한스 빌스도르프는 이미 롤렉스라는 성공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튜더(Tudor)를 만든 이유는 명확했다. 롤렉스를 통해 손목시계의 신뢰성을 증명한 뒤, 이를 더 넓은 사용 환경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손목시계는 여전히 취약한 물건이었다. 충격과 수분은 시계의 가장 큰 적이었고, 매일 차기에는 불안 요소가 많았다. 그리고 롤렉스 오이스터 케이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며 손목시계의 신뢰성을 증명했다. 튜더는 그다음 단계였다. 이미 입증된 구조를 실제 사용하는 현장으로 확장하는 것. 더 많은 사람, 더 현실적인 조건에서 신뢰받는 시계를 만드는 것이 튜더의 목적이었다.

튜더는 롤렉스와 핵심 구조를 공유했다. 방수 케이스, 크라운 설계, 검증된 케이스 구조까지 동일했다. 대신 무브먼트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안정성과 정비성이 입증된 범용 무브먼트를 채택해 가격을 낮추는 대신, 실사용에서의 신뢰를 유지하는 전략이었다. 정확도보다 중요한 것은 안정성이었다. 

이 전략은 곧 사용처로 증명된다. 군용 시계, 다이버 워치, 탐험 장비 등 튜더는 매장 쇼윈도보다 현장에 가까웠다. 프랑스 해군 다이버가 튜더를 착용했고, 극지 탐험과 다양한 전문 환경에서 튜더는 신뢰받는 장비로 자리 잡았다. 롤렉스의 기술이 상징이었다면, 튜더의 기술은 도구였던 셈이다.

그렇게 튜더는 가격과 신뢰 사이에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시계 산업에서 드물게 시도된 균형 실험이었다. 하이엔드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대중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가격과 목적을 제시한 브랜드. 튜더는 롤렉스와 같은 구조로 다른 삶을 상상했고, 그 선택은 지금까지도 의미있게 남아있다.

파텍 필립 노틸러스 50주년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탄생

쿼츠 파동이 한창이던 1976년, 가장 보수적인 하이엔드 브랜드 중 하나였던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은 이례적인 선택을 한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스포츠 시계를 선보인 것이다. 금, 귀금속 드레스 워치가 중심이던 브랜드의 기존 질서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당시 상식에서 이 조합은 말이 되지 않았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실용적인 재료로서 높은 가격을 받는 일이 드물었고, 스포츠 워치는 도구에 가까웠으므로. 파텍 필립이 드레스 워치 문법에서 벗어나는 것도 이례적이었다. 럭셔리와 스포츠, 그리고 스틸 케이스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파텍 필립 노틸러스는 이 질서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방수 구조의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일체형 브레이슬릿, 대담한 스포츠 워치 디자인 위에 파텍 필립의 최고급 마감과 가격을 얹은 것이다. 새로운 무브먼트나 기술은 없었다. 대신 파텍 필립은 사고 방식의 전환을 선택했다. 시계를 어떻게 만드는가보다, 고급 시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었다.

쿼츠 파동 이후 기계식 시계는 더 정확할 필요도, 더 편리할 필요도 없었다. 대신 사람들이 계속 착용하고 싶어야 했다. 고급 시계는 더 이상 재료의 값만으로 설명되지 않았고, 시계는 무엇으로 만들었는가보다 어떤 디자인인지, 어떻게 착용하는지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한가운데서 노틸러스는 럭셔리의 기준을 다시 쓰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조심해서 꺼내는 물건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계속 착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의 확장. 노틸러스는 정장과 일상, 특별한 날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시계를 제안했고, 그렇게 기계식 시계는 취미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으로 살아남는다. 노틸러스 50주년이 의미 있는 이유는, 이 시계가 여전히 그 질문에 유효한 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태그호이어 몬자 50주년

시계가 문화를 입었을 때

1970년대 기계식 시계는 방향을 잃고 있었다. 쿼츠 파동으로 정확도 경쟁은 무의미해졌고, 성능만으로 시계를 선택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다. 기계식 시계는 스스로 존재 이유를 다시 설명해야 했다.

이때 태그호이어(Tag Heuer)가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시계는 얼마나 정확한가가 아닌,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 답이 1976년 등장한 몬자였다. 몬자는 페라리가 1964년 이후 처음으로 F1 컨스트럭터 및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탄생한 시계다. 

태그호이어 몬자는 모터스포츠의 감정과 기억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대담한 케이스, 강한한 다이얼, 직관적인 크로노그래프 레이아웃. 몬자의 디자인은 서킷의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번역한 결과였다. 속도와 위험, 팀워크와 승리의 감정이 손목 위로 옮겨졌다.

몬자가 보여준 가능성은 분명했다. 시계는 특정 스포츠, 라이프스타일과 결합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이후 스포츠 워치는 단순한 기능 분류가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속하는지를 말하는 장르로 확장됐다. 태그호이어 몬자는 크로노그래프라는 측정 도구를 문화적 코드로 끌어올린 상징이었다.

갈레 200주년

역사의 귀환

1826년 설립된 갈레(Gallet)가 200주년을 맞아 다시 돌아온다. 오늘날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시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갈레는 크로노그래프의 핵심에서 만나게 되는 브랜드다. 특히 19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정확한 시간 측정이 곧 성공으로 이어지던 시대와 갈레는 매우 가깝게 맞닿아 있었다.

항공과 모터스포츠, 탐험과 장거리 이동이 본격화되던 시기, 갈레의 시계는 현장에 있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 시간 측정에서 레이싱과 파일럿 워치에 이르기까지. 갈레는 크로노그래프를 통해 신뢰를 쌓았고, 전문가를 위한 계측 도구로 분명히 자리매김했다. 시간을 나타내는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장비에 가까웠다. 

그 방식은 일관됐다. 유행을 만들기보다 올바른 기준을 제시하는 것. 초기 크로노그래프 발전 과정에서 갈레의 실험적인 기술은 실제 사용 환경에 빠르게 적용됐고, 정확성과 내구성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검증을 거쳤다. 갈레는 화려한 아이콘은 남기지 않았지만, 스포츠 워치와 파일럿 워치가 따르게 될 원형을 남긴 셈이다. 

그럼에도 갈레는 시장에서 점차 사라졌다. 쿼츠 파동 이후 기계식 크로노그래프의 수요는 급감했고, 기술 중심 브랜드였던 갈레는 대규모 마케팅이나 컬렉션 전략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시대 흐름 속에서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갈레가 200주년을 맞아 브라이틀링의 소유로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시계 시장이 정체성과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만큼, 갈레가 지닌 역사와 의미를 다시 이어가겠다는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갈레의 귀환은 시계가 본래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독립 시계 브랜드의 기념일

짧은 시간, 높은 밀도

독립 시계 브랜드의 역사는 길지 않다. 하지만 그 밀도는 유난히 높다. 대규모 생산이나 안정된 공식을 따르기보다, 각자의 철학과 미학,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독립 시계는 시계 산업의 실험실에 가깝다. 시계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곳. 어쩌면 브랜드 연차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얼마나 깊이 밀어붙였는가 일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를 들 수 있다. 1996년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만든 미셸 파르미지아니. 그의 시계는 시작부터 방향이 분명했다. 새로움을 발명하기보다, 이미 완성된 언어를 가장 정확하게 구사하는 것이다.

손으로 새긴 기요셰 장식, 8일 파워리저브를 구현한 칼리버 PF110 등 그의 초기 작품들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과감한 전복이나 급진적 디자인 대신, 고전적인 비례와 마감을 현대적으로 정제해 ‘현대 클래식’이라는 자리를 구축한 것. 그렇게 파르미지아니는 독립 시계가 반드시 급진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보존과 계승 또한 가장 높은 형태의 창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리차드 밀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독립 시계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2001년 설립된 이 브랜드의 25년은 소재와 구조, 제작 방식 전반에 새로운 문법을 도입한 시간. 항공과 F1에서 차용한 소재, 극단적인 경량화, 퍼포먼스를 전제로 한 구조 설계, 극단적인 내구 테스트 등 리차드 밀의 시계는 고성능 장비에 가까웠다. 

25년은 시계 역사에서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리차드 밀은 그 시간을 압축해 사용했다. 오랜 역사를 쌓지 않아도, 속도와 밀도로 강력한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말이다. 그렇게 리차드 밀은 가장 젊은 브랜드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가장 즉각적으로 인식되는 이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