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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 그리고 칵테일의 역사
- 럼과 브랜디, 그리고 무궁무진한 위스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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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걸리, 청주, 약주 등 우리의 양조주를 찾아서
- 태초의 술에 가까운 양조주, 맥주 그리고 와인
- 술의 역사, 그리고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
어둑한 밤, 희미한 조명이 비추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없이 많은 위스키병이 백바에 진열되어있다. 차분한 음악과 글라스가 맞닿는 소리, 공간을 메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분위기에 압도당해 두리번대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펼친다. 그러나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이니, 메뉴를 봐도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는 나의 손가락은 결국 가장 저렴한 위스키를 가리키며 ‘이거 한 잔 주세요’ 라고 소심하게 말한다.
혹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첫 바를 방문한 스무 살 때 본인의 이야기다. 이번에는 위스키를 필두로 럼, 브랜디 같은 상징적인 증류주들을 소개한다.
럼(Rum)
럼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만들 수 있지만, 대부분의 럼은 카리브해 지역에서 생산된다. 럼은 본래 설탕 생산과정에서 파생된 부산물이었다. 설탕을 정제할 때 당밀(molasses)이라고 하는 끈적한 액체가 남는데, 이 당밀을 발효시켜 증류한 것이 바로 럼이다.[1]
다른 증류주와 달리 럼은 색깔로 숙성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캐러멜 색소의 사용이 잦고, 당밀과 같은 첨가물을 통해 색을 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반대로, 숙성시킨 후에 다시 필터링을 통해 색을 제거하는 방식도 사용한다.
럼은 부드럽고 가벼운 스타일부터, 진하고 강렬한 스타일까지 스케일이 굉장히 넓다.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지역의 럼은 대체로 가벼운 스타일인데, 대량 생산이 가능한 연속식 증류기를 사용하고 오크 숙성을 최소화해 깔끔한 맛을 선사한다. 가장 많이 알려진 럼 칵테일 하면 모히토(Mojito)가 떠오르는데, 보통 이런 라이트한 스타일의 럼을 많이 사용한다. 반면에 자메이카(Jamaica)나 바베이도스(Barbados) 지역의 럼은 중후하고 거칠기로 유명하다. 바텐더들은 흔히 그 맛을 펑키(Funky)하다고 표현하는데, 고무나 가죽에서 나는 그런 향을 떠올리면 된다.
럼은 다양한 스타일이 있고, 저마다 개성이 강하다. 따라서 럼 칵테일을 만들 때는 종종 다른 스타일의 럼끼리 블렌딩을 하기도 한다.
럼은 다양한 스타일이 있고, 저마다 개성이 강하다. 따라서 럼 칵테일을 만들 때는 종종 다른 스타일의 럼끼리 블렌딩을 하기도 한다. 깔끔한 스타일의 럼을 베이스로, 약간의 중후한 느낌을 더하는 식으로 블렌딩을 하다 보면, 한 가지 럼을 사용했을 때보다 더욱 복합적인 맛을 낼 수 있다.
럼으로 만든 가장 유명한 칵테일 중 다이커리(Daiquiri)라는 칵테일이 있는데 럼, 라임, 설탕 단 세 가지 조합으로 완성되는 칵테일이다. 그런데 바텐더마다 이 다이커리에 대한 해석이 천차만별이라 어떤 브랜드를 사용하는지, 어떤 식으로 럼을 블렌딩 하는지에 따라 맛이 각기 다 다르다. 바텐더들이 좋아하는 스피릿이며, 바텐더들이 다른 바를 방문하면 악수 대신 작은 잔에 다이커리를 나눠 마시기도 한다.
브랜디(Brandy)
‘Burnt wine을 뜻하는 ‘Brandiwijn’에서 유래한 브랜디는 와인을 증류한 증류주이다. 좁은 의미에서 브랜디는 포도를 발효시켜 만든 와인을 증류한 원액을 숙성시킨 증류주를 말한다. 코냑(Cognac)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브랜디(Brandy)라는 과실 (사과, 라즈베리, 배, 체리 등)로 만든 증류주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좁은 의미에서 브랜디는 포도를 발효시켜 만든 와인을 증류한 원액을 숙성시킨 증류주를 말한다.
간혹 주정에 향료를 넣고 당을 첨가한 후 ‘브랜디’라고 명명하는 저도수의 제품들(체리 브랜디, 애프리콧 브랜디 등)이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것들은 브랜디보다는 리큐르라고 부르는 게 맞다. 브랜디는 다른 증류주처럼 깨끗하고 투명한 도수가 높은 술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가장 유명한 브랜디인 코냑(Cognac)부터 살펴보자. 코냑은 사실 코냑이 생산되는 프랑스의 지역 이름이다. 모든 코냑은 반드시 이 코냑 지역에서 생산돼야 한다. 코냑은 위니 블랑(Ugni Blanc) 등의 포도로 만든 와인을 증류해 최소 2년 이상 프랑스 오크통(French Limousin Oak)에 숙성시킨다. 블렌딩 과정에서 사용되는 원액의 최소 숙성기간이 2년 이상 숙성 시 ‘VS’(Very Special) 혹은 ‘Three Star’ 등급, 4년 이상 숙성 시 ‘VSOP’(Very Special Old Pale) 등급, 6년 이상 숙성 시 ‘XO’(Extra Old)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실제로는 더 높은 숙성기간을 가지고 있다.
사과를 이용한 브랜디도 있다.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y) 지역의 칼바도스(Calvados)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노르망디 지역에서는 포도가 잘 자라지 않는 대신 사과가 유명하다. 이 사과를 이용한 발효주인 사이다(Cider)를 증류해 숙성한 것이 칼바도스다. ‘Fine’, ‘Three Star’, ‘Original’로 표기된 것은 최소 2년, ‘Vieux’, ‘Reserve’가 3년, ‘Vieux Reserve’, ‘VO’, ‘VSOP’는 4년, ‘Hors d’Age’, ‘Extra’, ‘XO’ 라고 표기된 것은 최소 6년 이상 숙성된 것이다. 국내에도 사과 브랜디를 제조하는 증류소가 몇 군데 있다.
코냑과 칼바도스가 숙성된 브랜디라면, 숙성을 거치지 않은 브랜디도 있다. 페루와 칠레의 피스코(Pisco)가 대표적이다. 피스코는 달콤하고 플로럴한 머스캣(Muscat) 품종의 포도를 주로 사용하여 만들어지는데, 사실 숙성을 완전히 거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페루에서 생산되는 모든 피스코는 반드시 3개월간 숙성을 거쳐야하는데, 이때 숙성은 오크통이 아닌 보티하(Botija)라고 불리우는 흙으로 만든 항아리에서 진행된다. 다만 오크통과 같은 숙성에 관여하는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비숙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남미에서 많이 소비되지만,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캘리포니아에서 피스코를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피스코로 만든 대표적인 칵테일로는 피스코 사워(Pisco Sour)가 있다.
위스키(Whisk(e)y)
위스키는 사실 굉장히 광범위한 카테고리다. 생산지역이나, 원재료, 숙성 방식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입문자에게 조금 어려운 영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는 몇 가지 포인트만 기억한다면, 머릿속에 맛의 지도가 그려질 것이다.
제조 과정에서의 디테일한 규정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위스키는 오크통 숙성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위스키는 ‘생명의 물(water of life)’을 뜻하는 게일어 ‘uisce beatha’에서 왔다. 위스키는 곡식을 증류한 증류원액을 오크통에 숙성하여 만든다. 밀, 보리, 오트, 옥수수, 호밀, 쌀 무엇이든 재료가 될 수 있다. 이 원재료를 당화시키고, 발효시킨 후 증류하여 오크통에 숙성하면 그것이 바로 위스키이다. 위스키는 제조 지역에 제한이 없어서 어느 나라에서나 만들 수 있다. 여타의 술이 그렇듯 제조 과정에서의 디테일한 규정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위스키는 오크통 숙성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위스키는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나눌 수 있다.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스타일 위스키’(Scottish-Irish Style Whisky), 그리고 ‘북미 스타일 위스키’ (North American Style Whiskey). 현대에는 전통적인 위스키 생산국을 넘어 많은 국가에서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지만, 이들 역시 넓게 보면 두 가지 스타일 중 하나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자세히 본 독자는 알겠지만,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위스키에는 ‘e’가 빠져있고, 북미 스타일 위스키에는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실제로 표기하는 Whisk(e)y의 표기법이다. 자, 이제 우리는 두 가지에 집중하며 차이를 살펴볼 것이다. 첫 번째는 원재료, 두 번째는 숙성 방식이다.
먼저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스타일의 위스키는 보리를 원재료로 사용한다. 발아 중인 보리를 말린 것을 몰트(Malt)라고 하는데, 이 몰트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이때 몰트를 100% 사용한 것을 몰트 위스키(Malt Whisky), 그중에서도 한 증류소에서 나온 원액만 사용한 것을 싱글몰트 위스키(Single Malt Whisky)라고 부른다. 몰트 외에 다른 곡류를 이용한 원액을 섞으면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y)가 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발렌타인, 조니워커, 시바스 리갈 등이 블렌디드 위스키에 속한다.
이 부류 안에서도 스코틀랜드 위스키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바로 피트(Peat)의 사용이다. 피트는 스코틀랜드 전역에 분포하는 풀이나 이끼, 헤더 등 식물이 분해되어 땅속에 쌓인 응축물이다. 스코틀랜드 위스키는 몰트에 이 피트의 향을 입힐 수 있다. 이 피트양 조절에 따라 흔히 스모키(Smoky) 하다고 말하는 풍미의 차이가 나게 된다. 반면, 아일랜드의 경우 피트를 대부분 사용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스타일의 위스키는 최소 3년 이상 숙성해야 하는데,[2] 이를 위해 이미 사용된 오크통을 사용한다. 버번이나 셰리 와인을 숙성했던 오크통을 수입해서 거기에 위스키 원액을 숙성하면, 그 과정에서 오크통에 배어있는 달콤한 향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버번을 숙성했던 오크통에서는 주로 바닐라나 꿀 같은 향을 얻을 수 있고, 좀 더 밝은 빛의 위스키가 나온다. 셰리 와인을 숙성했던 오크통을 사용하면 다크초콜릿이나 말린 과일 같은 풍미를 얻을 수 있고, 진한 붉은 빛의 위스키가 된다. 이렇게 위스키의 색만 봐도 대충 맛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북미 스타일 위스키의 경우 대부분 옥수수나 호밀, 그리고 밀 등을 사용한다. 북미 스타일 위스키 중 가장 대표적인 카테고리가 바로 ‘버번 위스키’(Bourbon Whiskey), 그리고 ‘라이 위스키’(Rye Whiskey)다. 버번은 미국에서 생산된, 옥수수 함량이 51%~80%[3] 되는 위스키를 말하고, 호밀 함량이 51% 이상 되는 위스키는 라이 위스키가 된다. 보통 한 증류소에서 같은 이름으로 버번과 라이 두 가지 제품을 출시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생각하면 옥수수빵과 호밀빵을 생각하면 된다. 달콤하고 풍만한 옥수수빵처럼 버번은 좀 더 달짝지근한 느낌이 있는 반면, 담백한 호밀빵처럼 라이 위스키는 고소하고 스파이시한 느낌이 있다.
미국 위스키는 법적으로 숙성에 새로운 오크통을 사용해야 하는데, 오크통 안쪽을 태우는 작업인 Charring을 한 후에 위스키 원액을 넣어 숙성시킨다. 숙성 기간에 제한은 없지만, 보통 ‘Straight’ 이라는 단어가 붙어있다면 2년 이상 숙성된 제품이다.
[1] 당밀 대신 사탕수수 즙을 사용하는 럼도 있지만, 대부분의 럼은 당밀을 원재료로 사용한다.
[2]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위스키에 해당한다. 이 스타일을 따르는 위스키 중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것들은 그 나라의 법에 따라 숙성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 있다.
[3] 옥수수 함량 81% 이상은 Corn Whiskey 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