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질주하는 IT 기술의 뒤를 쫓기에도 벅찬 시대다. 변화의 속도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요즘, 두 눈을 의심하게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사(NASA)의 유인 달 탐사 임무인 아르테미스 2호(Artemis II)에 투입될 카메라로 니콘 D5가 선정됐다는 것.
현지 시각 4월 1일 오후 6시 24분, 몇 차례 연기됐던 발사가 이뤄지면 네 명의 우주비행사는 약 10일간 달 궤도를 도는 여정에 나선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2016년 출시된 DSLR이 들려 있을 예정이다.
1972년 아폴로 17 이후 약 50년 만에 인류를 다시 달 근처로 보내는 임무다. 그 여정에 투입된 장비라고 보기엔 다소 오래된 모델. 오리온 캡슐 내부의 일상부터, 달 근접 비행 중 창밖으로 펼쳐질 풍경까지 담아낼 카메라로 왜 이 기종이 선택됐는지 궁금해졌다.
니콘 D5가 선택받은 이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찐친
플래그십 모델에 한 자릿수 넘버를 부여하는 작명법에서도 드러나듯, 니콘의 최상위 라인업을 대표하는 카메라다. D5는 전작 D4s 이후 약 2년 만에 등장한 플래그십 DSLR로 2016년 1월 CES에서 공개됐다.
당시 카메라 시장은 소니가 2013년 A7 시리즈를 통해 풀프레임 미러리스 시장을 개척하며 빠르게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DSLR은 약 75%의 점유율을 유지하며 주류의 자리를 지켜내는 중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D5는 DSLR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특히 ISO 328만에 달하는 초고감도 성능은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가히 놀라운 수준이었으니까.

사진 전문 매체 페타픽셀(PetaPixel)은 이러한 결정해 대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전한다. 이 카메라가 낮은 노이즈와 넓은 다이내믹 레인지로 햇빛을 받은 우주선 표면과 짙은 우주 공간의 그림자 사이 극단적인 대비를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D5는 당시 기준은 물론 지금도 현역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하지만 단순한 성능만으로 아르테미스 2호에 탑승하게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더 뛰어난 사양의 카메라가 넘쳐나는 요즘이니까. D5가 우주로 향하게 된 그 배경에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니콘과 나사의 관계가 자리한다. 우주 카메라 하면 흔히 핫셀블라드(Hasselblad)를 떠올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출발점에 불과하다.

1965년, 미국 시장에서 높은 신뢰성으로 명성이 높았던 니콘이 나사로부터 220도 초광각 렌즈 개발을 의뢰 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만든 니코르 6mm f/5.6 어안 렌즈의 성공적인 납품으로 니콘의 기술력은 나사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이러한 인연으로 이어져 니콘은 아폴로 15 미션을 통해 처음으로 나사에 카메라를 납품하게 된다. 이때 사용된 장비는 중앙 중점 TTL 측광 시스템을 갖춘, 니콘 F를 기반으로 제작한 포토믹 FTN(Photomic FTN) SLR 카메라였다.

그 이후로도 니콘과 나사의 협력은 꾸준히 이어졌다. 1999년부터는 니콘 F5와 니코르 렌즈가 우주 정거장에 탑재되어 과학 연구와 유지 보수는 물론 지구와 우주를 기록하는 데 활용되기 시작했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도 관계는 계속된다. 2008년에는 D2XS가 투입됐고, 2013년에는 D4 DSLR 38대가, 2016년에는 추가로 10대가 나사에 제공됐다. D5 역시 2017년부터 국제우주정거장에서 광막한 우주의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반세기 넘게 이어진 협력은 단순한 장비 공급의 의미를 넘어 선다. 심우주의 극한 환경에서는 최신 사양보다 이미 검증된 안정성과 신뢰성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지구 밖을 나서는 카메라는 어떤 모습?
우주를 견뎌라
우주는 변수의 공간이다. 극심한 온도 변화 태양 빛을 바로 받으면 영상 120°C까지 올라갔다가, 그늘로 들어가면 영하 150°C까지 떨어진다. 강력한 방사선의 습격도 견뎌내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이 카메라를 다루는 우주인들의 장비와 움직임 역시 지상과는 전혀 다르다. 두꺼운 우주복과 장갑, 제한된 시야와 둔해진 감각 속에서 조작이 이뤄진다. 결국 이에 맞춰 카메라의 형태와 구조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니콘은 지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했다고 설명했다. 유해 가스나 화재를 유발하지 않는 구조를 갖추며 지표면보다 훨씬 강한 태양광과 기기 표면에서 발생하는 반사광에도 건재해야 하니까.
이러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초기 납품 카메라는 외관부터 내부 구조까지 전면적인 개조에 들어갔다. 지구에서는 고무, 플라스틱, 윤활유 같은 일반적인 재료들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진공 상태에서는 다르다. 빠르게 열화되거나 증발하여 카메라 작동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접착제와 납땜 방식 역시 나사 규격에 맞게 재설계된다.

또한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쉽게 다룰 수 있도록 필름 감기 레버의 손가락 패드와 필름 되감기 노브, 필름 카운터의 숫자와 창을 모두 확대했다. 교환식 렌즈에는 초점 링에 두 개의 돌기를 추가해, 사용자가 이를 잡고 돌리는 것만으로도 보다 정확하고 직관적으로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죽 질감의 바디 커버는 무광 블랙 금속판으로 교체했다.
이토록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발사 시 엄격한 중량 제한까지 더해져 예비 장비를 실을 수 없어서다. 그만큼 다시 한번 신뢰성에 방점이 찍힌다.
우주로 간 카메라?
핫셀블라드만 있는 건 아니다
시작은 영원히 남는 법. 우주와 카메라를 이야기할 때 핫셀블라드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핫셀블라드와 나사의 인연은 1962년 머큐리 프로그램이 그 시작이다. 당시 사진 찍기가 취미였던 우주비행사 후보 월터 쉬라는 플라나 80mm f/2.8 렌즈가 장착된 핫셀블라드 500C를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기존 장비의 결과물에 아쉬움을 느낀 그는, 핫셀블라드의 뛰어난 화질을 근거로 이 카메라를 우주 촬영에 도입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그의 강력한 제안이 핫셀블라드의 역사를 한 페이지로 남는다.

나사는 그의 말을 수용해 몇 대의 500C를 구입한 뒤 우주 환경에 맞게 개조를 진행한다. 1962년 10월 머큐리 8호에 탑재되며 처음으로 우주에 나섰다. 그리고 대망의 바로 그날.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핫셀블라드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이 펼쳐진다. 닐 암스트롱의 가슴에 부착된 채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순간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달 표면 촬영을 위해 선택된 것은 자이스 비오곤 60mm f/5.6 렌즈를 마운트한 핫셀블라드 500EL 카메라였다.
핫셀블라드처럼 유명한 카메라만 우주에 다녀온 건 아니다. 40달러짜리 카메라도 지구를 벗어났다. 1962년 2월 20일 발사된 미국 유인 우주선 머큐리-아틀라스 6호. 기상 악화로 10차례나 연기된 끝에 출발한 이 로켓에는 존 글렌이라는 우주인이 타고 있었다. 그는 40달러짜리 안스토 오토셋이라는 카메라를 구매해 나사 엔지니어들과 함께 개조를 했다. 권총형 손잡이를 부착하고, 버튼들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약 4시간 55분 동안 세 차례 지구 궤도를 도는 임무에서 글렌은 이 카메라로 인류 최초의 컬러 지구 사진을 촬영했다. 우주에서 바라본 푸른 지구의 이미지는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후 몇 년간 안스코오토셋은 이 카메라를 ‘우주비행사가 우주에서 손에 들고 촬영한 최초의 카메라‘로 마케팅을 펼치며 큰 주목을 받았다.
현재 니콘만 우주를 담고 있는 건 아니다. 고프로, 소니 α7S II, CE-SAT 초소형 위성 안에는 캐논 EOS 5D Mark III와 EOS R5가 들어있다. 브랜드와 종류를 떠나 카메라는 우주비행사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장면을 포착하고, 지구로 데이터를 전송하며, 때로는 임무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도 한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는 사실을 전 인류가 믿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카메라가 찍어온 사진 한 장 덕분이었다. 극한의 환경 속 임무. 그 한가운데 카메라가 있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이 계속되는 한 낯선 세계로 향하는 이 합승은 계속될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