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얼은 시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구성 요소답게 시계의 얼굴이라 불린다. 그래서인지 시계 디자인의 역사는 다이얼의 변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쿼츠가 세상을 뒤흔들던 시절에도, 하이엔드 메이커가 전통을 지키는 지금도, 시계 제작자는 그 작은 원판에 새로움을 담고자 끊임없는 실험과 시도를 반복했다. 그 험난한 과정에서 독특한 시계 다이얼 제품은 탄생한 것이다.
세상 만물은 모두 영감이 되었다. 다이얼에는 바다와 대지의 기운이 담기기도, 별빛과 우주가 펼쳐지기도 했다. 평범함을 넘어 특별함을 추구하고 싶다면, 조금은 낯선 다이얼의 세계로 고개를 돌려 보자. 단조롭던 시계 컬렉션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 줄 테니까.
개성 넘치는 독특한 시계 다이얼 6
메테오라이트 다이얼
일명 운석 다이얼. 겉으로만 운석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 운석을 활용하는 다이얼이다. 나미비아 지역의 기베온(Gibeon), 스웨덴의 무오니오날루스타(Muonionalusta) 등 지구 곳곳에 떨어진 운석을 채취해 가공한다. 극도로 한정된 자원이지만, 의외로 여러 브랜드에서 이를 활용한 시계를 선보이고 있다. 운석에 나타나는 비트만슈테텐 패턴(Widmanstätten Pattern)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지구상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수집가의 마음에 더욱 불을 지른다.

롤렉스(Rolex)는 2000년대 초 데이토나와 데이데이트에 운석 다이얼을 적용해, 최초는 아니지만 대중에게 메테오라이트의 매력을 널리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오메가(Omega)는 최초로 달에 착륙한 시계 브랜드답게 운석 다이얼에 심혈을 기울이는 중. 다소 가라앉은 톤의 색상이 대부분인 운석 다이얼에 다양한 색조를 적용해 이전에 없던 감각적인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메테오라이트를 논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브랜드가 있다. 우주의 미학을 시계에 담아내는 스위스 브랜드 루이 무아네(Louis Moinet)다. 12종의 운석을 다이얼에 탑재한 코스모폴리스 모델은 가장 많은 운석을 삽입한 시계로 기네스 세계 기록을 세우기까지 했다. 우주를 테마로 하는 시계는 많지만, 우주의 산물을 그대로 손목으로 옮기는 운석 다이얼이야말로 진정한 우주 시계라 칭할 수 있겠다.
마더 오브 펄 다이얼
진주조개 등 여러 연체동물의 껍데기를 활용해 제작되는 다이얼이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있던 자개장의 영롱한 무늬가 시계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쉽다. 어느 면에서 빛을 받는지에 따라,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수없이 다양한 버전으로 광채가 바뀐다. 덕분에 사진발 안 받는 다이얼 순위를 뽑는다면 당당히 상위권을 차지할 예정. 깔끔하고 담백한 타입보다는 화려한 시계를 선호하는 사람에게 제격이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걸맞게 높은 금액대로 책정되는 편이다. 합리적인 럭셔리를 추구하는 프레드릭 콘스탄트(Frederique Constant)지만, 마더 오브 펄과 클래식 투르비용을 결합한 모델 매뉴팩처는 일반적인 모델보다 10배 비싼 가격으로 선보였다. 롤렉스 또한 진주 자개 다이얼을 탑재한 모델의 경우 일반 모델 대비 확연히 큰 값을 지불해야 한다.

에디터의 사심으로 고른 마더 오브 펄 다이얼 워치는 오리스(Oris)의 아퀴스 뉴욕 하버 리미티드 에디션. 뉴욕항의 굴 개체수 회복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발매된 시계에 마더 오브 펄이 적용된 건 명분과 미학을 모두 챙긴 탁월한 선택이었다. 뉴욕항의 조류 낀 바닷물과 굴 껍데기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컬러를 선정했다고. 천연 소재 특성상 생산된 모든 모델이 조금씩 다른 무늬를 가진 점도 매력적이다.
흑요석 다이얼
옵시디언, 즉 흑요석은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지는 천연 화산 유리다. 보통 반투명하면서 깊고 짙은 검정을 띤 모습으로 알려졌지만, 빨간색, 갈색, 회색, 녹색, 심지어 투명색일 수도 있다. 결정이 섞여 반짝임이 있는 스노우 플레이크 옵시디언은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다. 가공 난도가 상당한 편이지만, 하이엔드의 느낌을 자아내기에 적합해 최고급 브랜드에서 주로 채택한다.

위 사진은 2023년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블루 옵시디언 다이얼을 처음 선보인 피아제(Piaget)의 폴로 퍼페추얼 캘린더 울트라-씬 모델이다. 추가적인 염색이나 처리 과정을 거친 게 아닌, 자연적으로 생성된 흑요석을 가공했다. 용암이 굳을 때 형성된 미네랄 방울이 빛을 산란시켜 다양한 색조를 띠게 만든 것이다. 마치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자연의 산물이라니, 이 얼마나 신비로운가.

옵시디언은 롤렉스와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떠돈다. 1970년대 롤렉스 중 옵시디언 다이얼로 불리는 모델이 점점 빈티지 시장에 많아지자, 다이얼에 천연 옵시디언이 쓰인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일반적인 옵시디언에 비해 너무 매끄럽고 균일했으며, 그 어떤 자료에서도 옵시디언 다이얼이 실제로 장착됐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현재는 흑요석이 아니라 파티나가 생긴 오닉스 다이얼이라는 의견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드 다이얼
그랜드 세이코(Grand Seiko)의 대표 기종인 SLGH005는 다이얼에 자작나무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하게 제작해도 진짜 나무를 따라잡을 수는 없는 법. 최근에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1970~80년대에는 실제 나무를 활용한 우드 다이얼이 적잖이 출시됐었다. 자연의 결이 가져다주는 따뜻한 질감과 고즈넉한 분위기는, 비교적 차가운 쪽에 가까운 시계의 세계에서 낯선 감각이긴 하다. 소재 특성상 충격과 습기에 민감해 품질 관리가 까다로워서 시계 브랜드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듯.

어떤 목재를 사용했는지에 따라 고유의 색감과 무늬가 나타나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월넛을 적용한 롤렉스의 다이얼은 곡선적이면서 밝아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로즈우드로 다이얼을 제작한 까르띠에(Cartier) 탱크 오가닉은 나무의 결도 직선인 데다가 색도 훨씬 어두워 세련된 느낌이다. 물론 같은 모델이더라도 완전히 똑같은 디자인은 없는, 각각이 세상에 하나뿐인 시계이기도 하다.

수십 년 전에 성행했다 뿐이지, 우드 다이얼의 명맥이 아예 끊긴 건 아니다. 2000년대 이후에도 나무는 간간이 얼굴을 비추는 중이다. 자케 드로(Jaquet Droz)는 그랑 세콩드 모델에 흑단나무를 적용해 발매한 바 있다. 부가티 57SC 아틀란틱 쿠페의 실내를 본떠 제작된 랄프 로렌(Ralph Lauren)의 시계는, 자동차의 대시보드와 동일한 느릅나무를 다이얼에 녹여냈다. 우드 다이얼의 시대가 다시금 돌아오기를.
포셀린 다이얼
식음료만을 담아내던 도자기가 시간을 품었다. 맑고 밝은 백색, 유광과 무광이 공존하는 독특한 질감이 특징적이다. 에나멜과 맨눈으로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해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에나멜 다이얼은 스틸 플레이트 위에 층을 쌓아 제작하는 반면, 포셀린은 다이얼 전체가 도자기로 만들어진다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포셀린은 에나멜에 비해 깨지기 쉬운 재질이어서 제작이 상당히 어렵고, 표면에 디자인을 입히기 위해서는 더욱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불과 몇 년 전, 포셀린 다이얼로 화제를 불러 모은 브랜드가 있었으니. 바로 세이코(Seiko)다. 프레사지 라인으로 출시된 SPB171의 다이얼에 포셀린을 적용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브랜드 내에서는 나름 고가 라인이지만, 타사 제품과 비교하면 훨씬 합리적인 가격으로 포셀린을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일본 아리타 현 도자기 장인의 손으로 제작된 만큼 품질도 비교 불가 수준.

백자에 청색의 그림이나 무늬가 들어간 모습이 익숙하듯, 포셀린은 푸른색과 짝꿍처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아틀리에 웬(Atelier Wen)의 하오 모델은 우윳빛 반투명함과 아름답고 정교한 무늬의 청화백자를 오마주했다. 진(Sinn) 1746 포셀린은 블루, 퍼플, 차콜 그레이 세 가지 색상으로 출시됐지만, 무엇보다 블루가 찰떡으로 어울린다. 진의 시계에서 알 수 있듯 핸드 페인팅의 느낌이 제대로 묻어난다는 것 또한 포셀린의 장점이 될 수 있겠다.
어벤추린 다이얼
별이 무수하게 흩뿌려진 우주를 연상케 하는 어벤추린의 미감은 문페이즈처럼 천체와 관련된 기능을 지닌 시계와 잘 어우러진다. 천연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벤추린으로 출시되는 시계 대부분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어벤추린 유리를 사용한다. 이는 녹인 유리에 금속 입자를 첨가하는 형식으로 제작된다. 천연 어벤추린을 쓰는 경우도 드물게 존재하지만, 광택으로 따지면 오히려 어벤추린 유리가 더 뛰어나다.

어벤추린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화려하지만, 주얼리와 레이어드하면 눈부심의 정점을 찍을 수 있다. 2025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가장 반짝인 시계는 쇼파드(Chopard)의 디아망트 문페이즈가 아니었을까? 어벤추린을 둥글게 에워싼 다이아몬드는 다이얼의 빛나는 우아함을 더 돋보이게 한다.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 랑데부 데즐링은 베젤뿐만 아니라 다이얼에도 다이아몬드를 배치해, 시계가 뽐낼 수 있는 극한의 광채를 뿜어내는 중이다.

시계보다는 하나의 주얼리 개념에 가까운 휘황찬란한 시계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고 어벤추린에서 완전히 눈을 돌리지는 말자. 담백하게 풀어내는 모델도 존재하니까. 베네치아니코(Venezianico)의 레덴토레 어벤추리나는 모든 요소를 덜어내고 온 시선을 다이얼에 맞췄다. 미세한 움직임에도 명민하게 반응하는 어벤추린의 반짝임을 만끽하고 싶다면, 베네치아니코 쪽이 더 적절한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