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블로그 ‘형돈월드’를 운영하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김형돈이라는 사람. 옷으로 자신을 말하던 그가 요즘엔 산을 오르고, 산 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잔다. 그리고 산을 달린다. 좋아하는 것들로 삶을 가득 채우는 데에 망설임이 없는 그와 패션, 산, 달리기, 음악 등 그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단정하고 정갈한 말들은 나직하고 맑고 선명해 동이 터 오는 새벽 산을 닮았다. 그가 좋아하는 그 산의 모습 말이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등산, 트레일러닝, 러닝 이 세 가지 아웃도어 활동을 취미로 하고 있는 김형돈이라고 합니다. 현재 패션 블로그 ‘형돈 원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하다 보면 무슨 일 하시냐고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사실 제가 좋아하는 이런 취미들과는 관계없는 일을 하거든요. 상용차에 들어가는 자동차 부품을 수리하고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흔히 말하는 막노동까지는 아니지만서도 망치질 정도의 몸 쓰는 일 정도는 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언제부터 블로그를 시작했고,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블로그는 2009년부터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무신사 같은 패션 커뮤니티에서 꽤 오래 활동했고, 그곳에 제가 옷 입은 사진을 올리다가 문득 이제 제 개인 공간에 사진을 모아서 아카이빙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한 거 같네요.
요즘에는 산에 빠져 계신 것 같아요. 등산을 자주 다니게 된 계기가 있나요.
가방 안에 필요한 장비를 가지고 산에 올라 텐트 치고, 밥해 먹고 이런 백패킹 문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렇게 장비를 하나하나 모으면서 어차피 산에는 가야 하니까 일단 등산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산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이 주는 매력에 푹 빠지게 됐어요. 그동안 계속 도시에서 생활하며 쇼핑하고 카페 가고 뭐 이런 문화거리를 즐기다가 이런 것과 완전히 동떨어진 산이라는 공간에 가니까 내가 살던 풍경에서는 볼 수 없던 자연의 색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지더라고요.
녹음이 무성한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 내는 사르르 소리, 햇빛이 내리쬘 때 나뭇잎에 해가 비춰 빛이 쪼개져 내려오는 장면 같은 것들이요. 그동안 영화 속에서는 봤지만, 도시에서는 접할 수 없었는데 생경하고 아름다운 이런 경험을 통해 산을 계속 찾게 된 거 같아요.
자연스레 패션과 등산이라는 카테고리가 만나면서 또 형돈 님만의 아웃도어 패션 컬렉션이 완성되었을 거 같아요.
산에 오시는 분들의 등산 착장을 보면 신발부터 시작해서 사용하는 아이템들이 다 비슷비슷해요. 더군다나 산이라는 그 한정적인 장소에 모이다 보니까 겹칠 확률도 더 높아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최대한 일부러 유행하는 브랜드를 피해서 그것과 기능적으로는 비슷하나 남들이 잘 모르는 그런 브랜드를 찾으려고 항상 노력해요. 제가 평소 옷을 고르는 기준처럼요.
그동안 꾸준히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옷을 찾고 입었던 일의 확장판 같아요. 아카이빙 된 제 취향 혹은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팔로우를 하고 그들의 물건들을 탐색해요.
사실 저도 어렸을 때는 남들처럼 노스페이스 패딩, 바람막이 같은 것들이나 유행하는 아이템들을 사고 입고 싶어 했는데 학생 형편에 모든걸 다 가질 순 없잖아요. 그래서 이것과 비슷하지만 좀 더 저렴한 다른 물건을 찾아보자는 식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르면서도 비슷하고 또 다른 예쁜 구석을 가진 아이템들이 있는지를 알게 됐어요. 또 그런 지점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제 블로그를 찾아오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류 유행과는 멀어지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옷을 고르는 뚜렷한 기준이 있듯 오르고 싶은 산을 정하는 기준도 있으신가요.
인적이 드문 한산한 산을 좋아해요. 그냥 제 취향인 거 같은데 제가 일단 산에서 느끼는 매력 중 하나가 자연의 소리라고 말씀드렸듯이 그 고요함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보통 산에 갈 때도 새벽 출발을 선호해요. 새벽 다섯 시쯤에 혼자 음악 들으면서 천천히 산을 오르고 또 하산하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아요. 바람 소리, 가끔 짐승 소리 외 제 숨소리, 듣고 있는 음악만 산에 남은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모든 것을 지웠을 때 평온해지는 거 같아요.
두 번째로는 산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매력이 있는 곳을 골라요. 예를 들어 놀이공원 안에 롤러코스터같이 스릴 있는 놀이기구도 있고 회전목마, 관람차 등 다양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놀이기구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산을 고를 때도 산에서 제가 느꼈던 매력들, 예를 들어서 풍경이 아름다운 편한 능선길을 걸을 수 있는가, 중간에 바위가 많아서 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스릴 있는 코스가 있는지 정상에 올랐을 때 풍경은 어떤지, 하산길에 발을 씻을 수 있는 계곡을 만날 수 있는지 등 여러 요소가 담긴 하나의 테마파크 같은 산을 고르려고 노력하죠.
산은 계절마다 색도, 느낌도 모두 다르잖아요. 어떤 계절의 산을 가장 좋아하세요.
저는 역시 겨울이 제일 멋진 거 같아요. 일단 겨울 산은 다른 계절보다 오르는 사람도 적고 그 고요함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역시 산 풍경 중에서 눈 내린 설산이 제일 이쁘다고 생각해서 저는 겨울을 가장 좋아합니다.
가장 최근에 갔던 산은.
동네 산악회 분들과 가평에 있는 연인산에 갔던 게 가장 최근에 간 산이에요. 코스가 여러 가지인데 정상까지 오르기도 쉬운 편이고 사는 곳과 멀지 않은 경기권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이 찾는 산으로 알고 있습니다.
등산하실 때 마치 사진처럼 찍혀서 마음에 남아있는 장면, 혹은 기억이 있으신가요.
제가 작년 봄쯤에 혼자 홀로 소백산을 올랐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가 슬럼프였던 거 같아요. 사람 만나는 것도 재미가 없고 일도 많아서 몸도 지치고 그냥 모든 게 다 싫었던 시기였어요. 뭐할까 고민하다가 혼자 산이나 가자 해서 새벽 세 시쯤에 출발해 다섯 시부터 소백산에 오르기 시작했죠.
저는 보통 산에 오를 때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을 즐겨듣는 편인데 그날도 류이치 사카모토 연주를 들으면서 산을 올랐어요. 그날은 정상을 찍고 내려오기까지 아무도 못 마주쳤어요.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비수기여서 그랬던 거 같아요. 그렇게 홀로 6시간 정도 등산을 하는 동안 마음속으로 엄청 큰 평온함을 얻었던 거 같아요. 모든 생각을 그 산에다 다 내려놓고 온 기분이었거든요. 등산을 마치고 내려왔을 때 되게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 후로 소백산을 자주 찾아요.
왜 류이치 사카모토인가요.
특별히 등산이라기보다는 제 삶에 있어서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이 어떤 의미인가로 연결 짓는 게 더 맞는 거 같아요. 저는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이 좋은 점이 그의 음악을 들을 때 감정적으로 기쁜 감정과 슬픈 감정도 아닌 약간 회색의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모든 걸 0으로 만드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산에 모든 걸 내려놓고 올 때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들으면 비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더 즐겨 듣는 거 같아요.
자연과 살을 비비는 아웃도어 활동할 때 꼭 지키려고 하는 본인의 규칙이 있으신가요.
LNT(Leave No Trace), 쓰레기를 포함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연에 제가 잠깐 기대 있다가 가는 것이니까요. 이것이 자연에게 베풀 수 있는 배려가 아닐까 생각해요. 또 저는 몸이 힘들 정도로 거리, 난도를 높여 역동적으로 산을 타는 편인데 이에 맞춰서 백패킹 짐을 최대한 간소하게 무게를 줄여 꾸리려고 해요. 그래야 멀리 걷고 높이 오르는데 더 효율적이니까요.
산에서 타인을 위해 자제해줬으면 하는 행동들이 있나요.
흡연인 거 같아요. 산불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도 크고 등산로는 보통 되게 좁다 보니까 어디 숨어서 피더라도 담배 냄새가 오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불쾌하게 느껴져요. 저는 조용하게 산 타는 걸 좋아하니까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건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등산과 러닝을 넘어 트레일 러닝도 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트레일 러닝은 관심도 없었고 산을 달리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지리산에서 트레일 러닝 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산은 등산로가 그렇게 넓지 않잖아요. 그곳을 등산객을 위협할 정도로 빨리 지나가는 행위가 좀 불쾌하게 느껴졌고 나는 절대 트레일 러닝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우연히 주변 트레일 러닝 하는 친구들을 따라갔다가 등산과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트레일 러닝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내리막길을 달릴 때예요. 등산은 스틱으로 천천히 내려오게 되는데 트레일 러닝은 내리막길을 두 발로 뛰어 내려오잖아요. 이게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의외로 되게 스릴 있어요. 앞에 지형이나 장애물을 보면서 즉각적으로 피하면서 쏜살같이 내려올 때 제가 마치 닌자가 된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해요(웃음).
혼자 즐기는 걸 넘어 대회도 참가하시나요.
트레일 러닝은 작년부터 시작했고 올해까지 총 세 번의 대회를 나갔어요. ‘트랜스 제주’라고 제주도에서 매년 열리는 대회에요. 거리는 50km로 참가했었고요. 이 대회를 두 번 나갔어요. 한번은 ‘운탄고도 스카이 레이스’라고 정선에 있는 스키장에서 개최되는 건데 42km 코스로 참가를 했습니다.
드림 러닝 코스, 혹은 산이 있나요.
일본 북알프스 트래킹을 한번 가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높은 산이 많기도 하고 그렇다 보니까 백패킹 거리도 길어질 수 있거든요. 국내는 일반적으로 1박 2일 백패킹이 정형화되어있는 편인데 일본의 북알프스, 남알프스 같은 이런 백패킹 코스는 보통 3박 4일 일정으로 짜이더라고요. 중간에 산장도 있는데 하이커들에게 맥주나 간단한 요리도 팔고 모여서 거기서 잠을 잘 수도 있어요. 그렇게 경험의 폭을 좀 더 넓혀보고 싶어요.
히말라야도 누가 데려가 준다면 가보고 싶긴 한데 일본이 더 현실성 있는 계획 같아요. 일본 백패킹 코스만 가도 매우 만족스럽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나 더 얘기하자면 백패커들의 성지라도 불리는 미국의 PCT(Pacific Crest Trail) 코스가 있거든요. 몇 개월 동안 걷는 장거리 백패킹 구간인데 그중에서도 JMT(John Muir Trail)라고 하는 코스가 되게 아름답다고 들었어요. 거기를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등산, 러닝, 패션 말고 자신을 설명할만한 키워드가 있다면.
음악 듣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좋아해요. 사실은 제가 들으려고 애플 뮤직에 매월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서 올리고 있는데요. 혹시나 좋아해 주시는 분이 있으실까 싶어서 블로그에도 포스팅하고 SNS 등에도 공유를 했는데 또 저의 음악 취향을 같이 즐겨 주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고맙고, 요즘은 다양한 취미 활동 중에서 플레이리스트 좋다고, 잘 듣고 있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의 응원이 제일 기분 좋기도 해요.
요즘 즐겨듣는 곡은.
지금 막 떠오르는 건 겨울이다 보니까 역시 김동률이 생각나는데, 그 음악 중에서 4집 앨범 6번 트랙 ‘잔향’이 떠올라요. 이왕이면 5번 트랙의 ‘River’라는 연주곡이거든요. 그래서 5번 트랙과 6번 트랙을 함께 듣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블로그 소개 글, 은은하게 살고 싶다는 무슨 의미인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스 봤을 때 존재감 있게 반짝이는 느낌이잖아요. 항상 저는 딱 그 지점을 지향해요. 옷을 입더라고 유행과 너무 가까워지면 오래가지 못하는 것처럼 힙한 것을 따라가다 보면 금방 식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혼자만이 있을 수 있는 외딴섬을 지향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블로그에도 은은하게 살고 싶다고 적어놨죠.
등산 인플루언서나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계획이 있나요.
거창한 계획은 없어요. 지금도 제 유튜브 채널에 주변 친구들과 백패킹한 영상을 남기는데 이것을 좀 더 꾸준히 하고 싶고 그간의 추억을 모아 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제 성향상 유튜브 영상을 찍더라도 제가 좋아하는 것만 담고 싶어요. 옷도 내가 좋아야 입고 싶지 댓가성으로 제안이 온다면 그건 못하겠다고 말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정말 좋아해야 행동으로 옮겨지는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좋아하고 자주 쓰는 등산 아이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골드윈(Goldwin)의 퍼텍스 쉴드에어 재킷(Pertex Shieldair Jacket)은 나비에 영감을 받아서 제작되었다고 하는 만큼 착용감이 너무 편해요. 전면 메시 포켓에 장갑 같은 소지품을 넣어 보관하다 바로 꺼내 사용하기도 좋고 투웨이 지퍼라서 열이 오른다 싶을 때는 반대쪽을 개방해 열을 배출할 수도 있어요.
레키(LEKI)라는 브랜드의 MCT 12 트래킹 폴인데요. 이미 되게 유명한 제품이에요. 카본으로 만들어졌고, 트레일 러닝과 등산 두 경우에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그 중간 지점의 무게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이 제품을 선택한 이유는 스트랩이 끈이 아닌 장갑 형태로 되어 있고 탈부착이 가능해 쥐고 있다가 손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굉장히 편리하더라고요.
가방은 제가 최근 등산할 때 자주 메는 가방 중 하나인데요. 고싸머기어(Gossamer Gear)라는 브랜드의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라는 모델이에요. 이 색깔은 구형이라서 더 이상 생산은 되지 않고 요즘에는 회색으로만 출시되더라고요. 일단 되게 가볍습니다. 이렇다 할 디테일은 없지만 워낙 가벼워 당일 등산하기에 적합하고 조금 무리한다면 겨울까지 쓸 수 있어요. 곰돌이 패치를 구입해 직접 바늘로 한 땀 한 땀 작업해 더 애정이 가기도 해요.
그 외에도 도쿄 여행에서 사 온 노스페이스(North Face)의 플라이트 시리즈 이멀전시 후 후디(Flight series Emergency Hoodie), 소어 러닝(Soar Running)의 울 패치 캡(WoolTech Cap), 세티스파이(Satisfy)의 타이 다이 삭스(Tie Dye Socks) 같은 아이템들도 자주 착용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