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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좋아하는 사람들은 직접 꿰매 입는다
2026-05-04T09:26:10+09:00
사시코

서울에서 일본 사시코 자수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오늘날 우리는 옷을 많이 사지만, 오래 입지는 않는다. 새 옷은 끊임없이 나오고, 옷을 한 벌 사서 입는 횟수는 예전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 자주 입지 않지만 쉽게 버리지도 못한 채, 조금씩 쌓여가는 옷장.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끼게 되는 피로가 있다.

그럼 새 옷을 그만 사는 방법은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때, 서울 어디선가 사람들이 토요일에 모여 사시코 자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진 부분 위에 천을 덧대고, 밝은 실로 스티치를 더해 수선하는 바느질 방법이다. 그렇게 (이들은 왜 토요일 낮에 모여 바느질하는지 궁금한 마음을 잔뜩 품고) 사시코 모임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사시코 자수를?

옷쟁이의 취미 생활

사시코는 일본의 전통 자수 기법이다. 옷감이 귀하던 에도 시대, 찢어진 옷을 쉽게 버릴 수 없어 해진 옷을 덧대고 찢어진 부분을 꿰매며 더 오래 입기 위한 방식이었다. 천을 여러 겹 겹치고, 두꺼운 실로 촘촘히 스티치를 놓는 과정에서 기하학적 패턴이 만들어졌고, 이는 실용을 넘어 장식적인 효과까지 갖게 됐다. 

오늘날 사시코는 일본인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주로 50~60대 여성들이 행주나 걸레, 아이 옷 등에 바느질하는 생활 자수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서울에서 격주 토요일마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 사시코 자수를 한다는 이야기는 조금 의외였다. 장소는 데님 브랜드 ‘데밀’의 신당동 사무실. 봉제 공장이 밀집한 동네에서, 일본 중년 여성의 생활 기술로 알려진 자수를 한다는 건 낯선 일이다.

“데님을 계속 만들면서 새 제품에 대한 피로가 있었어요. 시간에 쫓기며 같은 옷을 만들다 보니 답답함을 느꼈죠. 그런데 자수는 새 옷을 만들지 않아도, 이미 있는 옷에 내 언어로 개입할 수 있더라고요. 제 방식으로 손을 대고 표현할 수 있는 조형 언어였던 거죠.” 사시코 모임을 시작한 데밀 심정수 대표가 말한다.

격주 토요일마다 이곳에는 20~30대 여섯 명이 모인다. 주로 남자들이 꾸준히 참여하는데, 모두 같은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은 신발에 바느질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아이를 위한 담요에 수를 놓는다. 바늘과 실은 무료 제공. 처음부터 사시코를 잘 알고 시작한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옷이 좋아 그 주위를 맴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빈티지 옷을 좋아하다 보니까, 직접 고쳐 입으면 더 오래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수선을 배우러 갔죠. 그런데 배우다 보니 이게 단순한 수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운동화에 바느질 하던 이재헌 씨는 옷 수선을 배우다가 사시코를 접하게 된 케이스. 코 바느질, 시침질을 배우다 사시코로 이어졌고, 이후 데밀에서 연 사시코 클래스를 계기로 이 모임에 정착했다.

“옷 좋아하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고충이 있어요. 버릴 건 없는데 새 옷은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어떤 옷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옷일까 고민하게 되죠”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상용 씨가 덧붙인다. 그가 사시코를 시작한 이유도 그 지점에 있었다. 쌓여가는 옷에 대한 피로감 속에서, 무엇을 남기고 덜어낼지 고민하던 때였다. 그러다 사시코를 알게 됐고, 이미 가진 옷에 어떻게 하면 더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됐다. 이제는 새 옷을 사는 것보다, 가진 옷을 꿰매는 데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시코는 ‘굳이’의 영역

가성비는 최악이지만

“그냥 한 땀 한 땀 하는 게 재밌어요. 하고 있으면 잡생각이 없어져요. 저는 커다란 생각 안 하고 그냥 하거든요. 운동이랑 비슷한 느낌도 있어요. 힘들긴 한데, 하고 나면 오히려 정신이 편안해져요.” 권투 코치인 김대웅 씨는 사시코를 일종의 정신 수양에 비유했다. 별다른 계획 없이, 만화에서 본 구름 모양을 떠올리거나 어울릴 것 같은 스티치를 얹어보며, 마음 가는 대로 바늘이 움직이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긴다.

사시코는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과는 크지 않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라면 명상이나 요가 같은 방법이 있다. 옷이 좋다면 새로 사는 게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왜 직접 바늘을 드는 걸까? 궁금했다. 오랜 시간 고개를 묻고 바느질에 열중하는 이유가. 한마디로 왜 굳이 이 수고로움을 감수하는지가 알고 싶었다. 

“결국 애착이라고 생각해요. 오래된 옷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 옷과 함께 보낸 시간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사시코는 옷을 더 오래 입고 싶어서 하는 거죠.” 오래 입은 옷은 몸에 길들어 있고, 그 옷을 입고 보낸 시간이 함께 남아 있다. 데님에 남은 워싱과 주름, 늘어난 소매와 해진 무릎까지도 모두 그 사람의 시간이다. 이미 내 것이 된 옷 앞에서, 새 옷은 같은 자리를 쉽게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대화 중 김대웅 씨는 ‘옷 환자’라는 단어를 썼다. ‘옷 병’에 걸린 그는 공장에서 만든 워싱보다, 직접 입으며 생긴 색 빠짐과 주름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메우는 게 훨씬 힘들죠. 새로 사는 게 더 쉬워요. 근데 거기서 멈출 수가 없어요. 내가 입어서 나온 흔적은 내가 만든 거니까요.”

다만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에서 사시코를 대하는 방식은 좀 다른 모습이다. 앞서 얘기했듯, 일본에서 사시코는 50~60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해온 생활 바느질이니까. 서울 사시코 모임에 옷 좋아하는 젊은 남성들이 모인다는 것은 일본으로선 ‘낯선 풍경’일 수밖에 없다. 

그럼 지금 사시코가 한국에서 옷 좋아하는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이유는 뭘까? 이들에게 바느질은 실과 시간의 기억이라기보다, 일본의 장인 정신이나 포터 클래식, 캐피탈 같은 브랜드를 통해 접한 이미지에 더 가깝다. “사시코 클래스를 진행한 일본 작가는 ‘한국은 이걸 패션으로 받아들이는구나’ 하며 매우 신기해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사시코를 ‘내 옷처럼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심정수 대표의 설명이다. 

옷을 고쳐 입는 것보다 새 옷을 사는 게 더 즐거운 일이다. 또한 빠르게 바뀌는 유행과 소비 흐름 속에서, 옷을 고쳐 입는 건 시류에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만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내, 아끼는 옷을 오래 곁에 두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 결과물에는 한 사람의 개성과 성격, 취향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마련이고, 사시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혼자 하는 취미, 함께 모인다

스티치 서클

이 모임은 클래스도, 워크숍도 아닌 ‘서클’로 부른다.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평가하지 않고, 같은 작업을 하도록 정해두지 않기 때문이다. “제가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일부러 안 해요. 그게 들어가면 평가가 생기고 자율성이 떨어지잖아요. 취미인데 그러면 리듬이 깨져요.”

사시코는 혼자서 할 수 있는데, 굳이 다 같이 모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비록 심정수 대표의 대답은 다소 평범한 것이었지만. “사실 한번 시작하면 계속하게 되는데, 처음 바늘을 드는 게 제일 어렵거든요. 그래서 약속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다음 이어지는 부연이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그전까지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옷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옷 얘기를 끝까지 할 수 있어서 좋아요. 보통은 ‘예쁘다’ 하고 끝나는데, 우리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에요. 브랜드와 가격부터 해서 어디 원단인지, 어떻게 만들었는지까지 계속 얘기하거든요. 어느 지역 데님인지, 어떤 워싱인지, 봉제는 어떻게 들어갔는지에 대한 얘기요.”

바느질 워크숍도, 클래스도 아닌 바느질 서클. 일본 중년 여성들의 생활 자수였던 사시코를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이어가고, 공동 작업이 아닌 각자 할 일을 하는 모임. 처음 이 모임을 알았을 때 느꼈던 묘한 낯섦이 이제야 조금 선명해졌다.

옷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럽게 원단과 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결국 아끼는 옷을 오래 입기 위해 직접 바늘을 들었다는 것. 그리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세계에 몰두한 채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울림이 있어요. 끝나고 나면 편안하고, 또 다음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심정수 대표의 말이 오래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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