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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루샤 시계는 진짜 시계일까?
2024-08-02T12:29:54+09:00
에르메스 시계

정답은 없다.

시계는 일반적으로 정통적인 시계 브랜드와 패션 시계 브랜드로 나뉜다. 보수적인 시계 업계는 화려한 패션 시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이 둘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워치스앤원더스,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 에르메스, 루이 비통, 샤넬의 이름이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의견이 분분한 난제, 패션 하우스의 시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에루샤 시계는 ‘진짜 시계’다

시계에 진심

패션 하우스가 시계를 만든 건 오래전부터다. 시계를 단순 액세서리로 보는 것을 넘어, 제법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시계 제작을 위한 공방을 설립하는 것은 물론, 전통적인 워치 메이커와 협업하고 무브먼트 제조사를 인수하는 등 천문학적인 돈을 시계 제작에 쓴다. 참신한 디자인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력, 전통 시계 업계에 대한 존중까지 시계에 진심인 이들의 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에르메스

에르메스의 워치메이킹 역사는 19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르메스 자료보관소에는 사진 한 장이 있는데,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에르메스 창립자 3대손 에밀 에르메스의 네 딸들. 둘째 딸 재클린 손목에 채워진 가죽 스트랩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말 안장을 만드는 기술을 이용해 아빠가 직접 스트랩을 만든 시계다.

에르메스의 시계에 대한 마음은 각별하다. 1978년 스위스 비엔에 시계 생산 부서 라몽트르 에르메스(La Montre Hermès)를 설립한 게 그 증거다. 이후 무브먼트 제조사 보셰 매뉴팩처의 지분을 인수하여 자체 무브먼트를 개발했고, 다이얼 제조사 나테베르, 케이스 제조사 조세프 에랄드의 지분을 연달아 사들였다. 워치메이킹 기반을 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버튼을 누르면 시곗바늘이 멈추는 시계,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는 워치메이킹 능력을 착실히 쌓아놓은 결과물. 시간을 멈추게 하는 시계라니, 어떤 시계 브랜드가 이와 같은 상상을 했을까? 에르메스의 자유로운 관점은 정통 시계 브랜드의 어법을 탈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오랜 워치메이킹 역사가 뒷받침된 건 물론이다.

샤넬

패션 하우스의 시계는 보수적인 시계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기도 한다. 패션 하우스만의 창의력을 담아 독특한 디자인의 컴플리케이션을 선보이는 것이다. 전통 시계 브랜드와 비교해 아예 다르게 접근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샤넬. 

샤넬은 디자인을 먼저 구상한 뒤 그에 맞는 무브먼트를 만든다. 투르비용 케이지 위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무브먼트, 칼리버 5가 그 예다. 기존 무브먼트를 활용해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디자인에서부터 시작한 결과 시계의 감각적이고 예술적인 면모가 발휘될 수 있었다.

디자인은 워치 메이킹 기술에 녹아있다. 전통 시계 업계와 공존하기 위한 샤넬의 노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스위스의 매뉴팩처 G&F 샤트랑을 시작으로 벨앤로스, F.P 주른과 로맹 고티에의 지분을 획득했고, 튜더 소유의 무브먼트 제조업체 케니시의 지분을 인수하여 시계 제조 능력을 자체적으로 확보한 것이다.

루이 비통

루이 비통은 스위스의 독립 시계 브랜드 아크리비아와 함께 LVRR-01 크로노그래프 소네리를 제작했다. 크로노그래프와 소네리 기능을 합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시계다. 올해 워치스앤원더스에서는 투르비용의 조형미를 드라마틱하게 살린 시계, 보야제 플라잉 투르비옹 플리크아주르를 선보였다. 스켈레톤 가공한 플레이트에 반투명 에나멜 기법을 조합한 독창적인 디자인이 돋보인다.

여기에는 루이 비통이 2014년 스위스 제네바에 세운 시계 공방 라 파브리끄 뒤 덩(La Fabrique du Temps)의 힘이 컸다. 스핀 타임 무브먼트, 땅부르 미니 리피터, 에스칼 월드 타임 등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제작한 매뉴팩처다. 다이얼 공방 레만 카드란을 인수한 것도 이맘때쯤.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두 개의 본상을 받을 수 있던 건 차근차근 시계 제작 능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진짜 시계’는 따로 있다

사연을 간직한 시계

한 점의 시계는 인류 문명 발전의 산물. 작은 시계 하나에는 정교한 매커니즘과 장인정신, 브랜드의 역사와 철학이 담겨있다. 정통 시계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것은 이런 장인들의 집념과 노력을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과 같다. 시계라는 한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그들이다.

시계의 역사는 도구로서의 역할과 함께한다. 군인 및 파일럿의 임무 수행을 위해,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특정 목적의 시계가 발명됐고, 이를 위한 과정에서 수많은 ‘최초’ 시계가 세상에 나왔다.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은 분야를 개척한 땀과 집념, 도전 정신이 시계에 녹아있는 셈이다.

블랑팡의 경우가 그렇다. 7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는 시계 역사의 변곡점이 되는 다이버 워치 조상님. 남은 다이빙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단방향 회전 베젤, 어두운 심해에서 빛을 발하는 야광 인덱스, 완벽한 방수를 위해 이중으로 닫은 크라운 등 오늘날 다이빙 워치의 원형은 블랑팡에서 시작됐다.

오메가는 어떠한가.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는 인류 최초로 달을 밟기 위해 영하 18도부터 최고 93도에 이르는 온도 변화를 겪어냈다. 인류가 최초로 남극 대륙을 횡단할 때도 오메가가 있었다. 1989년 12월, 이탈리아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영하 40도의 기온과 145km/h의 강풍에 맞서 올바른 방향을 알 수 있었던 건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덕분. 극한의 도전에 함께하며 역사 이정표를 세운 순간엔 늘 오메가가 있었다.

파일럿 시계를 말할 땐 제니스를 빠트릴 수 없다. 1909년 7월, 프랑스의 루이 블레리오는 직접 개발한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처음 건넌 인물. 오늘날 비행이라 일컫는 그 순간에는 제니스 시계가 있었다. 비행기 계기판만큼 커다란 다이얼과 인덱스, 항공 장갑을 끼고도 편하게 조작할 수 있는 빅 크라운, 어두운 밤하늘에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야광 핸즈까지. 제니스는 현재 파일럿 시계의 표준을 새롭게 도입했다.

시계라는 세상은 참 이상하다. 물건의 쓸모보단 그 역사와 이야기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건이 기능을 넘어 사연을 간직하면 물건에 애정이 깃들고 의지가 생긴다. 오늘날 실용적인 목적 없이도 전통 시계 브랜드를 고집하는 것도 이 까닭. 어떤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지금까지 왔는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계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와 다른 시계에는 충분히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어떤 목적과 역사가 담기지 않은, 고유의 사연과 매력이 없는 시계에 충분한 애정이 깃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만약 그 시작이 단순 치장을 위한 장신구였다면, 시계에서 브랜드 이름이나 마케팅이 먼저 보인다면 말이다.

패션과 시계 그 사이, 패션 하우스 시계

정통 시계 브랜드보다 캐주얼하게 접근할 수 있다. 농익은 워치메이킹 기술과 화려한 디자인이 만난 패션 하우스의 시계들.

01
모던 앤 스포티

에르메스 H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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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의 에르메스 H08. 옆으로 누운 8자는 무한대를 상징하며, 은은한 실버 인덱스는 블랙 세라믹 베젤과 대조를 이루어 긴장감을 유도한다. 생생한 컬러의 러버 스트랩으로 착용감은 더욱 편안하다.

Specification

  • 케이스 직경 : 42mm
  • 케이스 소재 : 티타늄
  • 무브먼트 : H1837
  • 방수 : 100m
02
직사각형 속 정사각형

에르메스 케이프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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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구조가 우아하고도 경쾌하다. 배를 정박할 때 쓰는 앵커 체인링크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다. 1991년 디자이너 앙리 도리니에 의해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Specification

  • 케이스 직경 : 41mm
  • 케이스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 무브먼트 : 쿼츠
  • 방수 : 30m
03
젠더리스

샤넬 J12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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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시의 칼리버 12.1을 탑재했다. 튜더 MT5600에서 파생된 무브먼트다. 곡선 브리지로 고정한 프리 스프링 밸런스를 갖췄으며 파워 리저브는 70시간. 내구성이 뒤어난 세라믹과 스틸 케이스로 제작됐다.

Specification

  • 케이스 직경 : 38mm
  • 케이스 소재 : 세라믹, 옐로 골드
  • 무브먼트 : 칼리버 12.1
  • 방수 : 200m
04
하이 컴플리케이션

루이 비통 LVRR-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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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독립 시계 브랜드 아틀리에 아크리비아와 함께 개발했다.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소네리 기능과 크로노그래프를 결합했다. LV 모노그램과 AKRIVIA가 절묘하게 결합된 사파이어 다이얼이야말로 협업의 정수.

Specification

  • 케이스 직경 : 39.9mm
  • 케이스 소재 : 플래티넘
  • 무브먼트 : 칼리버 VRR-01
  • 방수 : 30m
05
기술과 예술 사이

루이 비통 보야제 플라잉 투르비옹 플리크아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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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의 수공예 작업으로 플리크아주르 에나멜 기법을 완성했다. 1분마다 스스로 회전하는 조속기의 케이스는 알파벳 V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 정확히 중심에 맞춰진 두 시곗바늘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Specification

  • 케이스 직경 : 41mm
  • 케이스 소재 : 백금, 플래티넘
  • 무브먼트 : Q7EBBY
  • 방수 : 5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