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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은 유통기한이 없는 방부제 잔뜩 넣은 통조림인줄 알았는데.

속절없이 지나가는 젊은 날만큼 막을 수 없는 사랑의 불청객, 그의 이름은 권태기. 이건 뭐, 내가 몰아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때가 오면 예고 없이 앓다가 잘 이겨내면 여전히 함께인 것이고 혹은 인생에 가장 가깝고 소중했던 존재를 도려내는 결말을 맞을지도 모르는 일. 그 누구도 섣부른 조언을 하거나 고민을 책임져줄 수 없는 문제이기에, 그대 만약 이 순간 권태감에 짓눌려 지난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이 노래를 벗 삼아 동행하길 바라며 한 줌 한 줌 모았다.

에디터 푸네스의 추천곡

Track 01. 이소라 – It’s Gonna Be Rolling (Feat. 박효신)

2000년 발매된 이소라 4집 앨범 ‘꽃’의 수록곡으로 풋내 진동하는 신인 박효신과 함께 불렀다. 혼자라면 이 질펀한 감정의 소용돌이 따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마음 잘못 디뎠다가 사랑이라는 감정놀음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는 고단함을 경쾌한 멜로디 속에 담아냈다. 관계의 성숙이라는 단계로 나아가거나, 이별이라는 예정된 수순을 밟거나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미련이라는 끈을 잡고, 식어버린 눈빛으로 상대를 대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

Track 02. 장범준 – 잠이 오질 않네요

까만 밤을 지새워도 피곤한 줄 모르고,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몰랐던 때가 당신과 그녀 사이에도 있었다. 의미 없는 말에 미사여구를 달아 틈 날 때 마다 꺼내 보던 설레던 나날들 말이다. 영원은 없고, 사랑은 낡고, 끝은 이미 와 있다지만 빛나던 감정은 또렷이 남는다. 고로 짝사랑을 향한 호구 송 장범준의 ‘잠이 오질 않네요’를 들으며, 존재만으로 감사했던 그 기분을 되새김질해 보는 것도 묘책. 사실, 권태에 능사가 있기는 한가 싶지만.

Track 03. 브로콜리너마저 –  앵콜요청금지

공기에 살얼음이 낀 듯, 자신의 숨 한번에 함께 지은 시간들이 무너져 내릴까 애처로운 눈짓의 그녀와 마주 앉아 있다면, 날카로운 아니 그보다 더 나쁜 무신경한 말들로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있는 당신이라면 이 노래가 생각의 여지를 던질지도 모른다. 아무리 앙코르를 요청해도, 헤집어진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선 그녀를 다시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권태는 인간의 숙명이고, 모든 사랑은 시한부지만, 언제나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오만함은 금물. 후회는 언제나 열 걸음 멀리서 걸어오고 있다.


에디터 형규의 추천곡

Track 04. 윤상 – 넌 쉽게 말했지만

https://youtu.be/ob-fOQ1IaXI

1992년 발매라는 시간적 배경이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이다. 윤상은 거의 30년 전에도 이렇게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는 자신만의 세련되고 도회적인 멜로디를 뽑아낼 줄 아는 작곡가였다. 덕분에 이 곡은 훗날 조원선과 아이유가 부른 버전이 더 유명해졌는데, 원곡이 윤상의 28년 전 2집 앨범에 담긴 수록곡인 것을 알고 놀라는 이들이 많은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 멜로디만큼이나 인상적인 건 가사도 한몫한다. ‘숨기려 해도 느낄 수 있잖아 이미 사라진 너의 웃음을, 말을 할수록 변명처럼 느껴지는걸’ 같은 문장은 지금 봐도 그다지 촌스럽지도, 조야하지도 않고 굉장히 매끄럽게 읽힌다. 맞다. 올 데까지 온, 웃음이 사라진 얼굴을 마주한다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다.

Track 05. Zedd – Clarity

같은 EDM이라도 음악적 근본이 있는 뮤지션과 없는 디제이가 만든 결과물은 다소 다른 결을 가진다. 그래서 제드(Zedd)의 음악은 더 독보적인 입지를 갖는다. 그를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만들어준 첫 풀렝스 앨범의 타이틀이자 대표적인 트랙 ‘Clarity’가 단적인 예다. 물론 서정적인 멜로디와 구성은 같이 작업한 매튜 코마가 쓴 톱 라인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제드가 아니었으면 이런 걸출한 명곡이 나왔을 거라고 예상하기도 어렵다. ‘우리의 사랑이 비극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는’ 심정을 절절하게 노래하는 시적인 가사도 일품. 분명 흔한 공장형 EDM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성이다.

Track 06. 이랑 – 이상한 일

권태기가 두 사람 모두 동시에 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데, 그녀는 항상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감정 없는 말을 뱉으며 뚱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볼 때의 그 비참함. 이건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너는 카페에 앉아 감정이 없다고 내게 말했지,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아무 말도 안 했지, 뭔가 반복되는 기분 뭔가 반복되는 이별’을 읊조리는 이랑의 낭랑한 목소리는 되레 기분을 더욱 처량하게 만든다. 아. 물론 지금 이걸 쓰고 있는 필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아니겠지? 아닐거야 아마.


에디터 신원의 추천곡

Track 07. Khalid – Talk (feat. Hwasa)

2019년 4월 5일에 발매한 칼리드의 정규 2집 앨범 “Free Spirit’의 5번째 트랙. 그 유명한 디스클로저가 프로듀싱과 작곡에 참여했으며, 이 센치한 비트 또한 그의 작품이라고. 뭐랄까, 어쩐지 괜히 설렐 일도 없고 뭘 해봐도 새로움 없이 시들시들한 권태기의 감정선처럼 멜로디도 힘 쫙 빼고 심드렁하게 흐르다 희미하게 사라져버리는 느낌이다. 

‘우리 대화 좀 하면 안 되겠니.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얘기 좀 나누자.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나아질 게 없어.’ 이 시기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가사. 역시 사랑의 설렘도 권태기도 국경을 초월하는 만국 공통의 언어인가보다.

Track 08. 백예린 –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그래,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해 논하는 수많은 연구가 증명했듯 권태기는 단순히 변덕이라기엔 거스르기 힘든 생물학적 작용을 동반하는 증상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계속 오래 먹다 보면 감흥이 사라지는데 사람이라고 다를 바 있겠나. 세기의 로맨스가 사랑받는 이유는 그만큼 ‘영원히’ 오래오래 한결같이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기적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다.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라고.  

Track 09. 케이시 – 그때가 좋았어

‘이젠 내가 편하니, 작은 설렘조차 욕심이겠지’ 반복되는 시간에 지쳐가는 심리를 꿰뚫어 보는 가사가 가슴에 꽂히는 노래. 연애 초에는 카톡 하나, 전화 한 통, 별것도 아닌 일로 설렘의 연속을 누릴 수 있었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풋풋했던 감정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간절하지만 가질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 버린다. 노력해도 어쩔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당장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은 잠시 내려두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진 않다. 어떻게든 언젠가는 결론이 먼저 나를 찾아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