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국가 중 평균 근로시간은 최상위, 평균 수면시간은 최하위권인 한국. 유독 한국인이 잠이 없는 건지 아니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건지. 현대인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불면증으로 전문가를 찾는 이가 54만 명을 넘어섰다는 통계가 말해주듯 불면증은 이제 너무나 흔한 병으로 인식되고 있고, 사람들은 점점 그 심각성에 둔감해졌다.
중요한 PT나 계약을 앞두고 잔뜩 예민해져, 밤잠을 설치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처음엔 그저 직장과 인간관계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며칠 밤을 뒤척이던 것이 신경과민증, 우울증, 불안증세, 공황장애 등으로 이어져 고질적인 불면증을 일으킨다.
그런 요즘, 잠 못 자는 사람들 덕에 수혜를 보는 곳이 있다는데? 슬리포노믹스(‘sleep’과 ‘economics’의 합성어) 시장은 잠 못 자는 한국인들 때문에 지난 몇 년 사이 급성장 중이다. 숙면을 돕는 라텍스와 기능성 침대, 캔들과 디퓨저, 수면 습관을 점검하는 웨어러블 IT 기기, 잠을 유도하는 허브차 등은 물론 낮잠 카페까지 인기란다. 이 중에서도 시장 점유율을 계속 올리고 있는 불면증에 좋은 ‘허브티’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코와 입이 모두 행복한, 라벤더(lavender) 티
‘허브의 여왕’이라 불리는 보랏빛 라벤더는 ‘씻는다’라는 뜻의 라틴어 ‘라바레(lavare)’에서 유래되었다. 향유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목욕제로 사용되었고, 꽃잎은 귀족들 사이에서 곱게 갈아 만든 비스킷으로 사랑받았다고 전해진다. 달콤하고 짙은 라벤더 향은 불안감, 긴장감, 초조함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어 불면증 치료와 예방에 좋다.
또한 신경성 위염과 두통에도 효과적이라 하여 드라이플라워, 포푸리, 허브티, 아로마 오일 등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라벤더 티는 잠들기 전 100도의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면 편안한 잠자리에 들게 한다. 또한 향만으로도 숙면 테라피 효과가 있다고 하니 베개에 라벤더 티백을 몇 개 넣어보자.
숙면을 돕고 진정 효과가 뛰어난, 캐모마일(chamomile) 티
기원전부터 약초로 사용될 만큼 진정 효과가 매우 뛰어난 허브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식물로부터 사과 향이 난다고 하여 ‘땅 위의 사과’라는 뜻을 담아 ‘카마이멜론(khamaimelon)’이라 불렀고, 여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염증을 가라앉히는 소염작용, 통증 완화에 도움을 주며 불안감, 초조함 등의 감정들을 완화해 신경 과민증, 불면증에 매우 탁월하다. 유럽에서는 가정상비약으로 사용될 정도.
게다가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프루티 계열의 은은한 향은 호불호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캐모마일은 어느 카페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대중적인 허브티다. 이 차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가까운 카페에 들러 메뉴판을 꼼꼼히 들여다보자. 단, 국화과 식물에 알레르기가 있는 이들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염증을 가라앉히는 소염작용, 통증 완화에 도움을 주며 불안감, 초조함 등의 감정들을 완화해 신경 과민증, 불면증에 매우 탁월하다.
우울증 치료와 불면증 해소에 좋은, 레몬버베나 티
요리 향신료로도 많이 사용되는 레몬버베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인들 사이에서 탁월한 진정 효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신경 고조, 흥분 초조함을 가라앉히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효능이 뛰어난 데다, 소화 촉진과 위통 완화에도 효과적이어서 실제 프랑스에서는 ‘베르뱅(verveine)’이라는 이름으로 식후에 즐기는 티다.
특히 레몬을 닮아 싱그럽고 상큼한 이 향은 극도로 예민하고 우울한 상태에서 마시면 더욱 진가를 발한다. 몸을 평온하게 이완시켜 평정심을 찾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심신 안정과 다운된 기분을 고양한다.
눈과 몸의 피로 회복에 효과적인, 히비스커스 티
이집트 신화 속의 미의 여신 ‘히비스(Hibis)’와 ‘닮는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스코(Isco)’가 합쳐진 이름으로, ‘히비스를 닮은 아름다운 꽃’, ‘신에게 바치는 꽃’이란 뜻을 가졌다. 기원전 4천 년 전부터 아프리카 약재로 사용되었던 히비스커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아름다움을 위해 즐겨 마셨던 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좋은 효과뿐 아니라 다른 어떤 허브티도 따라 할 수 없는 붉은 루비 빛깔 수색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 티 블렌딩에 자주 사용된다. 이 붉은 안토시아닌계 색소는 눈의 피로를 풀어주며 신맛을 내는 구연산과 히비스커스산 성분은 신진대사를 돕는다. 또한 몸에 쌓인 피로도 풀어준다. 이밖에도, 이뇨 작용을 통한 붓기 완화, 숙취 해소, 수분 보충 효과가 있어 이집트인들은 ‘카르카데(karkade)’라는 건강 차로 즐겨 찾는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잠을 자기 위해 돈을 쓰는 아이러니한 현대 사회지만, 여기 작은 습관 하나로 불면증을 이기는 방법이 있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잠이 들기 전, 앞서 소개한 허브티 한 잔과 함께 하루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당신의 어깨 위에 앉은 여러 가지 의무감을 잠시 내려놓고 ‘혼차’를 하며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옛말에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이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과 TV 대신 말끔히 정리된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혼차’를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