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시계가 벌써 보름치를 돌았다. 새해 결심이 ‘작심한달’로 끝나지 않게끔 저마다의 사투가 치열할 때. 대부분의 소망은 약속이라도 한 듯 운동, 공부, 독서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수렴한다. 몸 근육과 뇌 근육을 키우는 일은 대신해 줄 수 없지만, 독서에 흥미를 불어넣을 묘책은 있다. 읽는 행위를 공유의 즐거움으로 바꾸는 요즘 식 독서법, 교환독서 이야기다.
독서는 더 이상 혼자만의 취미가 아니다. 텍스트힙 시대에서 책은 함께 사유하고 감정을 나누는 듯한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로 변모한다. 어느 순간 멀어져 버린 활자와 유대를 쌓고 싶다면,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을 묻는 말에 위축되고 싶지 않다면. 지금 가장 트렌디한 독서법, 교환독서를 눈여겨보자.
책도 맞들면 낫다, 교환독서
흥미를 붙이는 게 1순위
교환독서는 말 그대로 책을 교환하며 읽는 독서법이다. 하나의 책을 여럿이 돌려 읽고, 독서 과정에서 메모를 남겨 각자의 의견을 공유하는 식. 기록은 일종의 댓글처럼 역할 한다. 책이 만인의 관심사로 등극한 시대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지만, 알고 보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전부터 조용히 즐기던 소소한 유희였으니까.
본격적인 유행은 SNS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 X(구 트위터) 유저가 정대건 작가의 소설 <급류>로 교환독서를 진행한 사진을 업로드했다. 이 글은 얼마 가지 않아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모았고, ‘교환독서’라는 개념을 대중에게 처음으로 널리 알린 사건이 되었다. 이후에는 출판사나 작가들까지 마케팅 포인트로 적극 활용할 정도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교환독서가 빠르게 번질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일단 재밌어 보이기 때문이다. 독서에 있어 가장 큰 진입장벽은 흥미의 부재다. 아무리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한들 재미가 없으면 손이 가지 않는 게 현실이니까. 교환독서는 다르다. 앞선 독자가 남긴 코멘트를 보며 책을 읽으니, 친구와의 사사로운 잡담을 곁들인 영화 시청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혼자 읽으면서도 함께 보는 재미가 있는 셈이다.
텍스트힙의 흐름에 완벽하게 부합한다는 점 역시 교환독서 유행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시대의 독자들은 ‘과시적 독서’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독서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소통한다. 교환독서는 순번이 모두 돌면 각자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하나의 기록물이 완성된다. 추억으로만 남겨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인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에도 최적이다.
교환독서, 어떻게 하면 되나요
책을 어떻게 여럿이 읽어?
사실 교환독서의 관건은 사람을 구하는 일이다. 둘이서도 가능은 하지만 적어도 세 명 정도는 모아야 내용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다. 단, 누구와 하는지에 따라 책에 적는 메모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자. 허물없는 친구끼리라면 합법적 악플을 곁들인 지적 유희가 되지만, 사고의 깊이가 충만한 사람과 함께하면 생각지도 못한 인사이트를 얻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향하는 바가 어느 쪽에 가까운지 숙려하자.
주변에서 찾을 수 없다면 온라인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교환독서 모임은 소모임 앱, 오픈채팅방 등 취미를 공유하는 플랫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출판사나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 평소 취향이 맞는 곳이 있다면 팔로우하자. 기록을 허용하는 독립 서점에 구비된 책을 읽으며 체험판처럼 경험하는 방법도 시도해 볼만하다.

함께할 상대를 구했다면 준비는 사실상 끝이다. 첫 번째 순서가 책을 선정하고, 순번을 정해 스케줄에 따라 읽으면 된다.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기한 엄수를 주지시켜야 한다. 메모의 방식은 약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각자 다른 색의 펜을 사용하면 구분하기도 편하고 조금 더 다채로운 그림을 만들 수 있다. 책이 지저분해지는 게 싫다면 인덱스나 투명 메모지를 활용하자.
순서를 모두 마치고 첫 번째 사람에게 책이 돌아가면 회차가 끝난다. 가능하다면 다 같이 모여 마무리하는 자리를 가지도록 하자. 서로 아직 읽지 못한 코멘트를 공유하고, 내용 전반을 훑어보며 자유롭게 담소를 나누는 시간으로. 완성된 책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은 물론 효능감까지 한층 높일 수 있다.

여러 권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법도 있다. 책을 각각 하나씩 선정한 후 기한마다 릴레이로 넘기는 식이다. 이 경우 몇 권의 책을 연달아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순서가 지나도 붕 뜨는 시간이 생기지 않아 흐름을 이어가기 좋다. 모임의 성격에 맞춰 적합한 쪽으로 선택하자.
직접 해봤다, 교환독서 후기
장단점과 유의 사항까지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임볼든 에디터 세 명이 교환독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선정 도서는 앞서 언급한 정대건 작가의 <급류>. 교환독서의 상징성이 짙은 작품이라는 점을 적극 고려했다. 평소 로맨스 소설과는 거리를 두었던 지라,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장르에 발을 담가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취향의 경계를 허물고 평소 읽지 않던 장르를 접하게 해준다는 사실은 교환독서가 지닌 명확한 즐거움 중 하나다.

각자에게 주어진 기한은 일주일. 누구 하나라도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전체적인 일정이 어긋나다 보니 책임감이 절로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평소 지각을 밥 먹듯 하거나 약속에 지나치게 관대한 사람과는 교환독서 멤버로 엮이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이롭다. 이번 교환독서 활동은 3주라는 계획된 시간 안에 차질 없이 끝마칠 수 있었다.
돌아온 책을 훑어보며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손에 잡히는 추억이 하나 생겼구나. 손 글씨 가득한 결과물은 책을 읽고 글자를 끄적이던 당시의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다. 기념하고 싶은 순간을 모바일 이미지로 대체하는 디지털 시대이기에, 실물로 무언가를 남기는 행위는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시대의 감각과 조금 다른 결의 경험을 원하고 바란다면 교환독서가 하나의 답이 되어줄 수 있겠다.

메모는 페이지 곳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담겼다. 읽는 사람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리액션형, 인물에 완전히 동화돼 내용을 곱씹는 몰입형,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분석형 등. 백미는 내 의견과 충돌하는 대댓글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같은 문장을 두고도 서로 다른 시선이 교차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혼자 읽을 때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풍성한 사유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책 내용과 별개로 코멘트만 봐도 순수 재미가 충만했다. 책을 읽을 때도 기록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첫 타자였던 터라 순서가 다 끝나고 나서야 볼 수 있었던 점은 아쉬웠다. 반대로 본문을 읽기도 전에 메모를 보게 돼 온전한 작품 감상이 어려웠다는 다른 에디터의 후기 또한 존재했다.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는다면 상관없지만, 한 번만 진행할 거라면 이러한 점을 고려해 순서를 정하도록 하자.

돌이켜보면 책을 읽는 태도부터 변화가 있었다. 뭐라도 기록해야 한다는 가벼운 압박은 평소보다 훨씬 면밀하게 내용을 살피게 만든다. 줄거리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관련한 개인적 경험을 떠올리기도 하며 여백을 채워나갔다. 이렇게나 공들여 읽은 덕분에 다른 어떤 책보다도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독서는 이제 정적인 취미를 넘어 역동적인 소통의 창구가 되었다. 혼자 읽을 때의 고독함 대신 함께 읽을 때의 북적임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독서는 지루한 과업이 아닌 기다려지는 놀이가 된다. 올해의 첫 페이지를 교환독서로 장식해 보는 것은 어떨까. 타인의 사유가 덧입혀진 문장들 사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살아있는 독서의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입문용으로 딱, 교환독서 책 추천 5
다소 짧은 기한 내에 읽어야 하는 교환 독서의 특성상, 괜한 욕심으로 교양서적을 골랐다간 완독조차 못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 책을 선택할 때는 가독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자.
추리 장르는 교환독서의 묘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다. 각자 주인공이 된 듯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일종의 ‘지적 역할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야기 구조가 너무 단순하면 첫 주자가 결말을 쉽게 예측해 뒤에 읽을 사람들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으니, 어느 정도 난도가 보장된 정교한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
<유다의 별>은 일제강점기 실존했던 사이비 종교 ‘백백교’의 진상을 파헤치는 변호사 고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직 변호사 출신 작가가 집필한 만큼 치밀한 법률적 고증은 물론, 반전의 존재를 미리 알고 보더라도 전율이 돋는 서사가 압권이다. 감탄할 준비를 충분히 하고 책을 펼치도록 하자.
로맨스 장르는 교환독서에서 리액션 맛집으로 통한다. 사랑만큼 남녀노소 쉽게 공감하고 과몰입할 수 있는 주제도 없으니까. 설레는 문장 옆에 적힌 타인의 생생한 호들갑 메모를 읽다 보면, 종이 너머로 육성이 들리는 듯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이들의 열띤 반응을 마음껏 즐기려면 첫 번째 순서는 피해야 한다.
SF와 로맨스가 만난 독특한 설정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구에서 한아뿐>의 본질은 로맨스의 정석 그 자체다. 친구의 연애사를 전해 듣는 마음으로 읽다 보면 마지막 장에 다다르는 것도 순식간. 낯설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사랑을 말하는 이 책으로 다정한 기록을 공유하자.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문학 장르를 꼽자면 시가 아닐까? 아무리 곱씹어도 이해할 수 없는 비유로 둘러싸인 단어의 나열로 느껴지기에 십상이니까. 평소 시와 담쌓고 독서 생활을 이어 왔다면, 이번 기회를 빌려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어쨌든 활자의 분량은 적으니 완독 자체는 어렵지 않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구절,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진은영 시인의 시 <청혼>의 첫 줄이다. 이 문장을 제목으로 내건 시집은 뜨거운 연애의 감정부터 낮고 깊게 가라앉은 잠연의 사랑까지, 보다 넓은 범주의 사랑을 노래한다. 어렵다고 겁먹지 말자. 각자의 해석을 주고받다 보면, 어렴풋이라도 시가 와 닿는 순간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
호러 장르의 묘미는 고립감. 하지만 그 점 때문에 선뜻 책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 또한 많다. 영화는 누군가의 손이라도 맞잡고 볼 수 있지만, 독서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영역이니까. 하지만 이제 교환독서라는 든든한 댓글 부대가 있으니, 공포 소설도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짜릿한 놀이가 된다.
현실과 허구를 뒤섞은 모큐멘터리 장르 소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실존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인터뷰, 독자 제보, 커뮤니티 글 등 다양한 포맷의 자료를 나열하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하게 무너뜨린다. 경악 섞인 메모를 이정표 삼아 혼자서는 발 들일 수 없었던 금기된 장소로 떠나보자.
사람들은 싫어하는 사람을 헐뜯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쏟곤 하지만, 정작 좋은 사람을 떠올리며 칭찬하는 일은 드물다. 후자보다는 전자가 스트레스 해소와 도파민 충족에 더 효과적인 것도 사실이니까. 본인도 모르게 인색했던 일, ‘칭찬’과 ‘다정함’을 교환독서의 테마로 정해보는 건 어떨까.
<좋은 사람 도감>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좋은 사람’의 면면을 따뜻하게 수집한 기록이다. 각각의 케이스가 너무나 사소해서 황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각자의 인연과 에피소드를 편하게 나눠 보자. 사연 하나하나가 모여 모두의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