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대표 라이벌 맨유와 리버풀. 노스웨스트 더비라는 명칭까지 있을 정도로 그 역사가 길고 깊다. 하지만 축알못,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 없음. 그렇다면 맨유를, 리버풀을 사랑하는 팬은 축알못조차 그들이 응원하는 팀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누가 축알못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방구석 노스웨스트 더비가 유라시아 반대편 서울에서 개최된다.
패널 소개
정윤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패널)
2005년 맨유 경기 시청을 계기로 축구 입문과 더불어 맨유 덕질을 시작했다.
구동현 (리버풀 FC 패널)
2008년 페르난도 토레스 선수의 금발에 반해 리버풀의 팬이 되어버렸다.
박찬우 (축알못 패널)
축구가 발로 하는 스포츠라는 사실 정도만 아는 완벽한 축구 문외한이다.
규칙 설명
토론은 전통과 문화, 실력과 성적, 선수와 감독, 매력 포인트 총 4개의 주제로 이루어진다. 각 항목의 토론이 끝날 때마다 축알못 패널은 어느 팀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는지 선택하며, 선택받은 팀이 승점 1점을 획득한다. 최종적으로 더 많은 승점을 획득한 쪽이 이 토론의 승리자가 된다.
전통과 문화
100년이 훌쩍 넘는 두 구단의 역사
정윤섭
맨유를 설명하기 위해 빠질 수 없는 게 구단을 지탱하는 노동자 정신이다. 지금은 어마어마한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구단이지만, 그 시작은 철도 노동자가 만든 자그마한 팀이었다. 돈으로 시작한 관계가 아니어서인지, 지금까지도 비즈니스 관계를 뛰어넘는 끈끈함이 맨유에는 있다. 맨유를 대표하는 감독 중 알렉스 퍼거슨이 있는데, 그의 사무실에 걸려 있던 사진이 이를 잘 대변한다. 인부 11명이 철제 난간에 위태롭게 앉아 점심을 먹는 사진이다. 동료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팀 정신이 여실히 느껴지지 않나?
구동현
그거 연출된 사진인 거 모르나. 빌딩 홍보용 사진 보고 팀 정신을 운운하는 게 웃기다. 끈끈함이 기준이라면 리버풀이 더 우위에 있다. 리버풀 선수들은 웬만해선 다른 팀으로 가지 않는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스포츠 관련 우스갯소리로 LG 팬과 리버풀 팬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겠는가. 리버풀은 한때 붉은 제국이라 불리며 유럽을 호령한 강팀이었지만, 내가 좋아하기 시작하자마자 오랜 침체기를 겪었다. 위르겐 클롭이라는 감독이 오기 전까지 오랜 암흑기를 겪었음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존버는 승리한다.
정윤섭
바로 공격하는 모습을 봐라. 원래 리버풀 팬은 과격하기로 유명하다. 소위 훌리건이라 불리는 극성팬의 원조 격이다. 리버풀 팬의 과격한 난동으로 39명이 죽은 헤이젤 참사도 있었다. 애초에 리버풀이 맨체스터에 앙심을 가지는 건 역사적인 이유도 있다. 항구 도시였던 리버풀이 맨체스터가 운하를 건설하면서 망하게 된 거니까.
구동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어쨌든 분명한 건 리버풀은 팀도 팬도 오랜 노력과 기다림 끝에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는 거다. 언더독이었던 팀이 감독과 함께 재건한 스토리, 낭만 넘치지 않는가. 마이클 에드워즈라는 기가 막히는 스포팅 디렉터 덕에 기반도 탄탄한 상태다. 비록 클롭이 은퇴한 상황이지만, 이제는 시스템이 충분히 구축돼 누군가 빠진다 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 맨유는 돈은 말도 안 되게 벌면서 선수나 구장에는 투자를 안 한다.
박찬우
이야기를 들어보니 맨유는 정신적 정체성이 강하다면, 리버풀은 좋은 시스템이 구축된 팀이라고 생각된다. 일부 선수나 감독이 바뀌어도 좀 더 탄탄히 유지될 리버풀에 조금 더 마음이 간다.
맨유 0 : 1 리버풀
실력과 성적
국내파 맨유, 해외파 리버풀
해당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과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리그를 간단하게라도 알아야 한다. 내용에 앞서 짤막한 설명을 추가한다.
FA컵 잉글랜드 국내 대항전. 프로부터 아마추어 클럽까지 모두 참여한다.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프리미어리그 잉글랜드 국내 대항전. 제일 잘 나가는 프로 1부의 리그다. 승점제로 진행되며 고득점 팀이 우승하게 된다.
챔피언스리그 유럽 전역 대항전. 각국에서 리그 최상위 성적을 거둔 32개 팀이 맞붙는다.
정윤섭
맨유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구단답게 영예로운 타이틀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잉글랜드 최초로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팀,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팀이 바로 맨유다. 우리가 프리미어리그 13번 우승하는 동안 리버풀은 딱 1번 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말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구동현
정작 가장 최근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맨유가 리버풀보다 한참 아래 등수였다는 사실은 잊으셨는지. 리버풀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다소 약세를 보인 건 사실이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리버풀이 잉글랜드 최다 우승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내 1등보다 아시아 1등이 더 좋지 않겠는가. 3회 연속 우승 혹은 통산 5회 우승팀만 트로피를 영구 소장하는 데, 리버풀이 잉글랜드에서는 유일하다. 지금은 제도도 바뀌어서 맨유는 영원히 못 하는 일이다.
정윤섭
그래도 맨유가 역사적으로 왕조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구단임은 변함없다. 무엇보다 잉글랜드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한 기록이 있다. 트레블은 한 시즌의 프리미어리그, FA컵,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석권하는 걸 말한다. 말이 쉽지, 사실 하나하나가 대단한 리그이기 때문에 한번에 모두 우승하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그리고 리버풀은 트레블 못했다.
구동현
20년 전에 트레블한 거 축하한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에는 맨유나 리버풀이나 고만고만하다고 느낀다. 사실 두 팀 다 슬럼프의 아픔을 알다 보니 동병상련의 마음이 있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악역 같달까. 놀리는 것도 상대 팀이 어느 정도는 해야 그 맛이 난다. 지금은 맨시티라는 공동의 적을 욕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두 팬이 끄덕이며 악수를 나눔)
박찬우
솔직히 대단히 와닿지는 않지만, 둘 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이 낫다고 판단하기 힘드니 무승부로 하고 싶다.
맨유 0 : 1 리버풀
선수와 감독
이들이 곧 구단의 상징일지니
구동현
의리하면 리버풀이다. 축구에는 이른바 성골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다. 그 지역 출신인 선수를 칭하는 로컬 보이, 프로 구단 산하 유소년 축구팀인 유스, 하나의 팀에서만 활동한 원 클럽 맨의 길을 걸어온 선수들이다. 리버풀에서는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와 커티스 존스 선수가 그 길을 걷고 있다. 아깝게 원 클럽 맨 타이틀은 놓쳤지만, 명불허전 리버풀의 상징과도 같은 스티븐 제라드가 있다.
정윤섭
리버풀은 솔직히 말하면 제라드 말고는 상징성이 없다. 그에 비해 맨유는, 좀 많다. 축구계에서는 별들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컴 들어봤나? 그 유명한 베컴도 맨유 유스 출신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인 호날두도 맨유, 실력으로 정평이 난 루니도 맨유다. 축구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도 알 법한 슈퍼스타가 맨유에는 즐비하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해버지, 박지성이 있지 않은가.
구동현
웨인 루니조차도 자신이 함께했던, 상대했던 선수 중 최고를 제라드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맨유 간판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도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축구 선수가 제라드라고 했었고 말이다. 감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리버풀에는 낭만의 결정체인 위르겐 클롭 감독이 있다. 그는 중위권을 전전하며 암흑기에 빠져있던 리버풀에 굳이 부임했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그야말로 낭만 아닌가. 클롭의 리버풀은 모든 대회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정윤섭
클롭 멋있는 거, 솔직히 인정한다. 하지만 언급했다시피 맨유에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라는 명장이 있다. 그는 무려 27년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었다. 짬이 다르다. 게다가 퍼거슨은 역대 최고의 축구 감독을 꼽을 때마다 항상 1, 2위로 거론되는, 그야말로 레전드 감독이다.
박찬우
이건 솔직히 축구 잘 모르는 입장에서 맨유의 압승이다. 나도 아는 선수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맨유 1 : 1 리버풀
매력 포인트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유
정윤섭
지난 5월 25일 FA컵 결승전인 맨유 대 맨시티 경기가 있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용납할 수 없는 낮은 성적을 받았던 터라, 이마저 지면 팬들의 자존감은 가루가 될 위기였다. 심지어 상대가 지역 라이벌인 맨시티였기 때문에 더더욱. 결과는 승리. 저조한 리그 성적과 파죽지세 맨시티의 기량 덕분에 온갖 조롱을 받던 상황이라 더욱 값졌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희망을 좇는 스피릿이 빛나지 않는가. 노동자 정신에서 출발한 불굴의 정신이야말로 맨유의 진정한 매력이 아닌가 싶다.
구동현
구단을 지배하는 열광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종료 직전에 극적으로 승부와 직결되는 골을 극장골이라고 하는데, 리버풀은 중요한 순간에 극장골이 터진 역사가 있다. 그래서인지 후반에 팬들의 함성이 제일 크다. 중계 카메라로 봐도 압도되는 듯한 느낌이 있다. 구단과 팬 사이의 끈끈함도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You’ll Never Walk Alone,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응원가 제목만 봐도 팀과 팬의 유대가 느껴지지 않는가. 가장 낭만적이면서 가족적인 팀이다.
박찬우
번외로 각 팀의 최고의 골을 하나씩 꼽아주면 좋겠다.
정윤섭
챔피언스리그 2010-11 8강 2차전 맨유 대 첼시의 박지성 골을 뽑고 싶다. 1-1로 비기던 상황에서 우리의 박지성이 결승 골을 시원하게 넣어주었다.
구동현
국뽕은 반칙 아닌가. 챔피언스 리스 2018-19 4강 2차전 리버풀 대 바르셀로나를 고르겠다. 일명 안필드의 기적이라 불린다. 두 번의 경기 총합 스코어로 진출이 좌우되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첫 경기 0:3, 두 번째 경기 4:0이라는 드라마 같은 경기를 보여줬다.
박찬우
개인적으로 체계적인 전략이 있는 걸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리버풀이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리버풀이 스타 선수 없이, 엘리트 위주의 축구가 아닌 팀으로서 활약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리버풀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
맨유 1 : 2 리버풀
이번 방구석 노스웨스트 더비에서 축알못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리버풀이었다. 스포츠 팀의 팬이 된다는 건 단순히 이기고 지는 데만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다. 그 문화와 하나됨을 의미한다. 팀의 지난 발자취, 그들을 하나로 묶는 끈끈한 정신, 승리와 패배를 거듭하며 느끼는 희로애락까지도. 팬들에게 맨유와 리버풀은 그저 스포츠 팀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 토론으로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겼다면, 마음에 드는 팀을 정하고 그들과의 여정에 동참해 보는 건 어떠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