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판에 기웃거리는 2천만 구독자 관종 유튜버라는 타이틀을 떼어버리고 이제는 정말 진지한 한 명의 선수로 바라볼 때가 된 것일까. 유튜버 제이크 폴과 전 UFC 웰터급 챔피언 타이론 우들리와의 복싱 경기 2차전에서 제이크 폴이 그림 같은 KO 승리를 거뒀다.
폴은 현지 시각으로 지난 18일 미국 플로리다 탬파 아말리 아레나에서 열린 타이론 우들리와의 2차전에서 6라운드 2분 12초 만에 전 UFC 챔피언을 KO로 눕혔다.
192파운드(87kg) 계약 체중 8라운드 복싱 경기로 치러진 폴과 우들리의 이번 2차전은 극적으로 성사됐다. 지난 8월 열린 1차전에서 8라운드 판정패로 자존심을 구긴 우들리는 이후 지속적으로 폴에게 재경기를 요구해왔다. 폴은 “약속대로 ‘난 제이크 폴을 사랑한다(I love Jake Paul)’는 문신을 새기고 오면 생각해보겠다”고 받아쳤고, 이에 우들리는 실제로 해당 문신을 자신의 몸에 새기기까지 했다. 대신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지키기 위함이었는지, 우들리는 손가락 욕설을 하기 위해 왼손 중지에 문신을 새긴 뒤 이를 사진으로 인증했다.
문신까지 새겨가며 폴과의 2차전을 바랐던 우들리였지만, 둘의 대결은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폴은 “손가락 정도에 새긴 것은 소용이 없다”며 우들리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고, 대신 타이슨 퓨리의 동생인 토미 퓨리와의 경기를 확정 지었다. 그러나 지난 6일, 경기가 채 2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퓨리가 부상으로 이탈했다. 이 매치업에 우들리가 급하게 투입되면서 의도치 않았던 폴과 우들리의 2차전이 성사됐다.
경기 양상은 지난 1차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소극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던 우들리는 이번에도 굉장히 절제하면서 펀치를 냈다. 특히 제대로 된 공격이 이어질 찰나에는 어김없이 광속 클린치 세례가 이어졌고, 라운드가 흘러갈수록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경기 중반으로 갈수록 우들리가 조금씩 우세를 점하기도 했다. 유효타의 숫자는 비슷했지만, 대미지 측면에서 보면 우들리가 더 인상적인 샷을 많이 남겼다. 심지어 클린치 후 떨어지는 과정에서 레슬링 하듯 폴을 넘어뜨리기도 했다. 물론 고의성 공격은 아니었지만, 우들리는 이런 식으로 폴의 체력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체력적으로 지친 기색을 보여주던 폴이 힘을 내기 시작한 건 5라운드부터였다. 잽과 스트레이트, 바디샷을 다양하게 내며 우들리에게 차곡차곡 대미지를 누적시켰다. 결국 이게 주효했다. 6라운드에서 폴은 마치 바디샷을 낼 것처럼 시선으로 페인트를 준 뒤 바로 궤적을 돌려 라이트 훅을 날렸다. 이 페이크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간 우들리가 순간적으로 왼손 가드를 내렸고, 텅 빈 안면으로 폴의 주먹이 깨끗하게 들어갔다. 그대로 우들리는 앞으로 고꾸라졌고, 심판은 곧바로 KO를 선언했다.
이번 승리로 폴은 향후 MMA 파이터들과의 흥행몰이용 복싱 매치 메이킹에 제대로 추진력을 얻었다. 실제로 폴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카마루 우스만, 네이트 디아즈, 호르헤 마스비달, 코너 맥그리거를 나에게 붙여라. 내가 그 녀석들도 모두 개망신을 당하게 해 주겠다”며 곧바로 UFC의 현 챔피언 및 스타 파이터들을 향해 도발에 나섰다. 여기에 마스비달은 곧바로 “너는 절대 내 대전료를 맞춰주지도 못할 거다. 내가 싸우는 이유는 오로지 돈, 아니면 세계 최고라는 명분밖에 없는데, 너는 둘 중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응수했다.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제이크 폴을 중심으로 한 대립 구도가 형성되며 벌써부터 이슈 몰이에 나선 모양새다.
원래 유튜버가 되기 전부터 복싱과 레슬링을 수련해온 폴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적인 측면에서 확실히 도드라질 정도의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주먹도 무거워 녹아웃 파워까지 갖췄다. 여기에 스타성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순수 복싱 베이스가 약한 MMA 파이터만을 골라 어그로를 끌면서 판을 짜는 능력도 출중하다.
한편 폴은 복싱에만 얽매이지 않고 종합격투기에도 도전할 뜻을 밝혔다. 실제로 전 UFC 라이트급 챔피언이자 29승 무패로 은퇴한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와 최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MMA 데뷔를 목표로 그와 함께 훈련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흥분한 MMA 파이터들의 러시가 이어지는 것은 아마도 완벽하게 폴이 그리는 그림일 것이다.
어쨌든 복싱 판을 서커스로 만들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확실히 업계의 판도를 흥미로운 양상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욕적인 KO 장면의 희생자이자 아마도 오는 2022년 최고의 밈 소재로 거의 등극 확정인 타이론 우들리에게 안타까운 위로의 뜻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