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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샬라메의 남자, 하이더 아커만 (+영상)
2024-10-14T08:37:34+09:00

톰 포드의 새 시대를 열 수 있을까.

톰 포드(Tom Ford)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하이더 아커만(Haider Ackermann)을 임명했다. 이름은 낯설 수 있어도, 그의 옷은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거다. 항상 세간의 화제가 되는 티모시 샬라메의 레드 카펫 룩 대부분이 하이더 아커만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등이 훤히 파인 레드 실크 수트는 잊을려야 잊을 수가 없다.

하이더 아커만이 디렉터로 임명됐다는 소식에 톰 포드 팬덤은 떠들썩한 상황. 의견은 갈리지만 주를 이루는 건 그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혹자는 설립자가 브랜드를 떠난 후 다소 어수선한 톰 포드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유일한 디자이너라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티모시가 사랑하고 지드래곤이 애정한 남자, 하이더 아커만에 대해 알아보자.

하이더 아커만은 누구인가

칼 라거펠트가 콕 찍은 디자이너

하이더 아커만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로 패션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미니멀리즘을 베이스에 두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탁월한 균형감으로 초반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이후 디올, 메종 마르지엘라와 같은 걸출한 디자인 하우스의 러브콜은 물론, 전설적인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가 자신의 뒤를 이어 샤넬을 맡을 이상적인 후계자로 언급할 정도로 인정받는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 여성복만을 만들던 그가 돌연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남성 컬렉션을 선보였다. 큰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전개했음에도 반응은 가히 폭발적. 시간이 지나도 하이더 아커만 표 남성복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에 더해 그는 본인이 입는 옷을 대부분 직접 제작했었는데,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는지 묻는 남성들의 문의가 꾸준히 있었다고. 그렇게 14S/S 시즌을 기점으로 그의 남성복 역사가 시작됐다.

벨루티(Berlut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면서 하이더 아커만의 역량은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점잖은 신사 이미지를 고수하던 벨루티에 캐주얼을 더하고자 했다. 주황이나 핑크처럼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색상을 활용하고, 같은 디자인의 재킷을 여러 소재로 만들어 각기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고유의 아이덴티티 속에서 새로움을 더한 아커만의 손길은 불과 세 시즌 만에 벨루티 역사에 전례 없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벨루티 이후 잠잠하던 그가 다시금 런웨이로 돌아온 건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 23S/S 시즌의 게스트 디자이너로 참여해 여전히도 감각적인 면모를 여실히 뽐냈다. 여태 컬렉션을 꾸민 다른 인물들이 장 폴 고티에의 화려한 측면을 부각했던 반면, 하이더 아커만은 그를 존경하는 본질적인 면모, 즉 탁월한 테일러링에 집중해 컬렉션을 펼쳤다. 유려하게 흐르는 완벽한 실루엣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후로 아커만은 여느 때 못지않은 열일 모먼트를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웨어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휠라와의 협업은 물론, 캐나다구스 최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한 데 이어 톰 포드까지. 현시점 가장 뜨거운 디자이너를 꼽는다면 그의 이름은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다.

하이더 아커만의 패션

새로운 관능을 제시하다

영민한 색채 활용

하이더 아커만은 선명한 색조로 매혹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걸출한 디자이너다. 완전히 대비되는 색상을 함께 배치하는 대담함은 기본이요, 그 안에서 조화를 꽃 피워내는 감각은 놀라울 정도. 톰 포드가 직접 “하이더 아커만의 색상 활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언급하기도 했으니 말 다 했다.

단순히 화려하고 강렬한 색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의 베이스는 블랙과 화이트. 브랜드 특유의 클래식한 관능미를 이어가면서, 지금껏 없던 컬러 팔레트를 더할 하이더 아커만의 톰 포드를 기대해 봐도 좋겠다.

감각적인 원단 사용

그의 옷을 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 고급스럽다. 물론 만만찮게 비싼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의류인 만큼 응당 그래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유독 고급진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 비결은 바로 원단에 있다. 

아커만은 다양한 옷감을 실험적으로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단순히 여러 재료를 쓸 뿐 아니라, 각 원단의 고유한 특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그의 주특기인 실크와 벨벳은 완연하게 살아 있는 부드러운 광택감이 일품이다.

구조적인 미학

‘새로운 이브 생 로랑’은 하이더 아커만이 가진 또 하나의 별명이다. 테일러링으로 정평이 난 디자이너의 대를 이을 만큼 정교한 테일러링이 그의 디자인을 단단하게 지탱한다. 섬세한 재단은 완벽한 핏을 형성하고, 옷과 착용자는 하나가 되어 구조적인 실루엣을 완성한다. 복잡함 없이 절제된 라인 또한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을 한층 강화하는 요소다.

딱 떨어지는 옷이 불편해 보일 수 있겠지만, 아커만은 기본적으로 캐주얼함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다. 천이 몸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듯 표현하는 드레이핑 기법은 하이더 아커만의 시그니처. 어깨나 허리 부분을 흐르는 듯 유연하게 디자인해 우아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구현한다.

모호한 성별의 경계

젠더리스라는 용어가 어색하지만은 않은 시대. 패션계에서는 대세가 된 젠더 플루이드 트렌드의 적임자로 하이더 아커만만 한 사람이 있을까. 기반 자체가 여성복에 있기에, 그가 전개하는 남성복은 기존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화려한 색을 입히고, 신체 라인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여성복의 디테일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전통적인 남성성을 강조하는 톰 포드지만, 하이더 아커만을 영입했다는 건 시대적 흐름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 아닐는지. 물론 아커만도 벨루티에서 보여줬듯 브랜드와 본인의 디자인 사이 적절한 균형을 찾겠지만 말이다. 과연 톰 포드 ver.2는 정형화된 남성의 관능을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에 채널 고정해야겠다.

티모시가 입은 하이더 아커만

이 정도면 소울메이트

20년도 더 되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두터운 우정을 자랑하는 하이더 아커만과 티모시 샬라메. 공식 석상에서 심심찮게 아커만의 의상을 착용하는 티모시를 보면, 개인적인 친분을 넘어 뮤즈 역할을 도맡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티모시 샬라메는 이전에 서양 남성이 추구하던 전형적인 마초다움과는 전혀 다른 매력의 소유자이기에, 중성적인 아커만의 옷과의 궁합은 그야말로 최고봉. 하이더 아커만이 담아내는 매력을 티모시의 아웃핏으로 한껏 느껴보자.

2022 베니스영화제 레드 카펫의 주인공은 단연 티모시 샬라메였다. 등이 완전히 파인 백리스 레드 실크 수트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파격 그 자체. 실루엣은 남성적인 수트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만, 탄탄한 몸매가 온전히 드러나며 오히려 남성미가 부각되는 효과까지 얻었다.

하이더 아커만이 벨루티에서 작업한 컬렉션을 입은 모습. 특유의 테일러링으로 핏하게 떨어지는 라인이 멋을 배가한다. 거기에 아커만의 강점인 다채로운 컬러와 부드러운 원단감이 더해져 세련된 남성상을 만들어 냈다.

독창적인 패턴 플레이도 하이더 아커만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2019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눈길을 확 사로잡는 화려한 패턴의 재킷으로 주목을 받았다. 블랙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 2018 거버너스 어워즈에서는 몸을 휘감는 듯한 패턴이 포인트가 됐다.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준 2019 베니스 영화제. 그레이 톤 실크 수트는 광택감으로 반짝였고, 허리에 벨트 두 개를 둘러 만든 실루엣은 유려했다. 삐딱하게 접어 올린 아랫단으로 비대칭을 사랑하는 하이더 아커만 스타일링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