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신발 쇼핑에 두 가지 선택지만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편안하고 실용적인 스니커즈와 멋 좀 내고 싶을 때는 정장 구두, 이렇게 두 개다. 그리고 그 틈에 클래이(CLAE)가 등장했다. 이들은 기발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며, 양자택일에 익숙했던 남성 신발 시장의 판도를 뒤집었다. 편안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할 수 있고, 아니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약 20년 전, 스니커즈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 브랜드는 신발 외에도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영역을 넓혀갔다. 오늘날의 클래이가 있기까지 이들이 지나온 과정과 앞으로 보여 줄 미래를 지금 소개한다.
인디 씬의 감성이 묻은 클래이, 그 매력의 시작
클래이는 서울, 뉴욕, LA를 오가며 살았던 디자이너 최성의 다양한 경험에서 시작됐다. 최성은 자신의 직업의식과 가치관은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서, 그의 성격과 비전은 뉴욕에서 비롯된 것이라 회고했다. 그렇다면 LA는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한 인터뷰에서 그는 “LA에서는 여유롭게 사는 법을 배웠다.”고 밝혔다.
이미 인디 스트릿 웨어 씬에 몸담고 있었던 최성은 그래픽과 의류를 디자인하다, 1997년 공동창립자로 브랜드 PNB Nation을 론칭했다. 그리고 몇 년 후 클래이를 만들었다. 그는 하입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브랜드 시작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1년 스니커즈와 구두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어요. 클래이를 통해 이 두 가지 신발의 장점만 모아 스타일리시 하면서도 편안하고, 어디든 잘 어울리는 신발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
클래이를 통해 이 두 가지 신발의 장점만 모아 스타일리시 하면서도 편안하고, 어디든 잘 어울리는 신발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물론 성공을 향한 여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최성의 비전을 완전히 구현한 브랜드로 탈바꿈하기 위해 3년간 재정비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한 발짝 물러선 후 다시 복귀한 최성은 당시를 떠올리며, “물론 걱정이 되긴 했어요. 하지만 그때가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죠. 다시 돌아온 후 초반 몇 시즌은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준비한 것을 선보이고 제품이 팔리기 시작하면서 안도감을 느꼈어요. 제 판단이 옳았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고 언급했다.
떠오를 때를 아는 클래이, 그 2막
돌아온 클래이는 유명세를 떨치면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상승가도를 달렸다. 클래이 하이브리드 컬렉션을 이끌어나가는 그의 신념은 이렇다. “신발 트렌드는 점점 더 미니멀하고, 클래식한 스타일을 좇아가는 것 같아요. 전통적인 하드-바텀 신발이나, 레드 윙스(Red Wings)의 워크 부츠가 다시 돌아오고, 모든 곳에서 척 테일러와 클래식 반스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익숙한 것들을 비틀고, 재해석하는 거죠. 기능성을 좀 더 캐주얼한 형태로 담아내서 융합하고, 언제나 고급 재료를 사용하고, 최고의 공정을 거쳐 만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대체 끊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은 어디일까? 그는 호주 운동화 매거진 ‘스니커 프리커(Sneaker Freaker)’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디자인은 깔끔하고 간결한 미드 센트리 모던 미술과 80~90년대 뉴욕의 에너지에서 영향을 받았어요. 이 두 가지는 젊음, 강렬함, 전통 그리고 실용성까지 갖춘 신발을 만들도록 합니다. 또한 여행, 음악, 음식, 디자인, 예술, 영화에서 발견되는 수만 가지 인생과 그 안에 담긴 새로움이 저의 원동력이에요.”
여행, 음악, 음식, 디자인, 예술, 영화에서 발견되는 수만 가지 인생과 그 안에 담긴 새로움이 저의 원동력이에요.
그는 역사적인 인물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브루스 리에게서는 ‘유연함과 현명한 접근 방식’을, 마일스 데이비스에게서는 ‘영원한 스타일과 멈춰있지 않는 용기’를, 그리고 존 콜트레인에게서는 ‘자신의 작업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전념하는 태도’를 배웠다며 영감의 원천에 대해 언급했다.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인디 신발 브랜드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클래이를 여느 브랜드들과 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그 지점은 어디일까. 최성은 경쟁자들을 위협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오히려 그는 남성을 위한 신발들이 다양해져 가는 것에 신이 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가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우리가 모두 과거에서 영감을 받고, 혁신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어떻게 그 영감을 내재화하고, 해석하고, 콘셉트화하고, 가공하고, 만들어냈는지가 차별화의 핵심이죠. 많은 의류, 신발 브랜드들이 이전의 것들을 잘못된 방식으로 다루는데, 그런 경우라면 차라리 ‘황금기’를 그저 건드리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태도가 바로 클래이를 미니멀리스트 스니커즈 선두에 세운 것이 아닐까.
여기에 더해 최성은 폴로, 바버, 유니클로, Nom de Guerre를 “자신이 어떤 브랜드인지, 어디로 향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는” 브랜드라고 언급했다.
클래이가 자신있게 추천하는 네 가지 색깔의 스니커즈
클래이의 열렬한 마니아든, 아직 이 새로운 신발의 세계를 맛보지 못한 사람이든, 당신의 마음에 쏙 들 요즘 가장 핫한 몇 가지 제품을 소개한다. 이들은 참깨색 누버크에서부터, 어두운 분홍색 스웨이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질과 색상을 자랑한다.
전통적인 운동화를 새롭게 해석한 로우탑 Bradley는 브랜드의 가장 대표적인 스타일로, 맨즈 저널(Men’s Journal) ‘11 Sneakers That Are Totally Office-Appropriate’에 이름을 올렸다.
과하지 않은 우아함과 가볍지 않은 캐주얼함을 구현한 Ellington은 GQ의 “Obsession of the Day” 코너에서 극찬을 받았다.
Gregory는 클래식 스포츠 신발에 섬세함을 더한 제품으로, Spy의 “5 Best Sneakers for Grown-Up Skater Style”에 선정됐다.
Richard Zip Vibram은 세계적인 스트릿 웨어 부티크 Highs and Lows와의 협업으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첼시 부츠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또한 Agnes B, American Rag, Publish Brand를 비롯해 여러 브랜드와 진행한 파트너십에서도 클래이 특유 캘리포니아스러운 느낌을 선사한다.
만약 신발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성은 자신에게 영감이 된 스타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그들을 오마주한다. “수년 동안 제게 많은 영감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사용해요. 그들이 저마다 가진 비전, 탐험, 노력과 성취의 기술 등에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보트 슈즈를 참고한 Cousteau는 자크 쿠스토의 이름을 따온 것인데, 그는 해양 탐험의 선구자였죠. ‘많은 사람이 바다를 공격하지만, 나는 바다와 사랑을 나눈다.’라고 밝혔던 그의 멋진 생각을 아는데 어떻게 다른 이름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저희 제품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같은 신발로 완전히 갖춰 입은 스타일과 편안한 스타일을 모두 완벽히 소화할 수 있다는 거죠.
여기서 최성이 몇 가지 연출 팁을 소개했다. “저는 깔끔하고 간결한 디자인의 제품을 함께 입는데, 아마 저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겠죠. 제 경험에 따르면, 유니클로나 유니스, A.P.C.는 기본에 충실한 브랜드에요. 품질과 디자인을 모두 잡는 동시에 특유의 간결한 디자인과 디테일은 클래이 신발을 더 매력적이게 해주죠. 저희 제품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같은 신발로 완전히 갖춰 입은 스타일과 편안한 스타일을 모두 완벽히 소화할 수 있다는 거죠.” 그는 무지와 파타고니아처럼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한결같은’ 브랜드의 팬이기도 하다.
클래이가 그리는 미래
최성은 누구를 생각하며 이런 디자인을 했을까. 그는 우리의 질문에 ‘젊은 사람, 나이 많은 사람, 그리고 그사이 모든 연령대”라고 답했다. 좋은 신발 한 켤레를 소중히 여기는 모든 사람을 생각하며 만든 셈이다. “개인적으로 저는 스타일과 편안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하루 온종일 신고 다닐 수 있는 신발이 필요해요. CLAE는 변화하는 남성복의 흐름에 발을 맞춰 나아가죠. 저는 클래이가 이 시대는 물론 미래의 신발이 향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해 초, 롤링스톤스의 “8 Sneakers Your Favorite Artists are Wearing Right Now”에 실린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다. 클래이 마니아로는 최근 화보에서 Bradleys를 착용한 뮤지션 숀 멘데스(Shawn Mendes)를 들 수 있다. 또한 데이비드 베컴, 톰 브래디, 레기 부시, 톰 크루즈도 클래이를 즐겨 신는 유명인사에 속한다.
데이비드 베컴, 톰 브래디, 레기 부시, 톰 크루즈도 클래이를 즐겨 신는 유명인사에 속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클래이가 가진 여유로움과 멋스러움은 더 이상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2년 전, 유니섹스 컬렉션인 CLAE for Everyone을 론칭했다. Uncover LA는 이제 클래이 커플 운동화도 가능하다고 화색을 표했다.
최성은 클래이를 통해 남성 신발의 판도를 뒤집어 놓으며 인상적인 한 획을 그었지만, 때문에 어릴 적 꿈을 놓쳤다. 그는 하입비스트에서 “저는 항상 뉴욕 닉스의 주전 포인트 가드가 되고 싶었어요.”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는 그가 엠마뉴얼 무디에이와 데니스 스미스 주니어가 되기를 포기하고, 신발과 무한한 항해 중인 것에 고마움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