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에서 아이폰용 무선 충전 방식 맥세이프를 발표한 날, 새로 나온 아이폰을 놔두고 맥세이프에 대해 화를 내던 친구를 안다. 무선 충전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에너지 낭비인데, 아이폰처럼 많이 팔리는 기기에서 저걸 기본인 양 지원하면 어떻게 하냐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 황당했는데, 다른 원고를 쓰다 ‘비트코인과 NFT는 환경의 적이다.’라고 적었다. 그래, 큰 낭비가 문제라면 작은 낭비도 문제지.
생각해보니 스마트 기기가 환경에 그리 좋지는 못하다. 그래서일까? 최근 지구를 지키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는 그런 기기가 많아지고 있다. 뭐든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게 최선이긴 하겠지만, 이왕 살 거라면 지금부터 소개할 친환경 스마트 기기를 고려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래야 아나바다의 미덕을 갖춘 스마트 기기들이 더 늘어나고, 더 많이 만들어질 테니까.
살 때 굳이 돈 아낄 필요 없다고 말하는 기기 카테고리가 있다. 노트북 컴퓨터와 태블릿 PC다. 좋은 걸 사면 오래 쓰게 된다. 필자는 2011년에 출시된 맥북 에어를 아직 쓴다. 워낙 많이 팔려서 배터리나 여러 부품을 쉽게 구해 고쳐 쓸 수 있던 탓이다. 불행히도 요즘 나오는 노트북 컴퓨터는 이용자가 수리해 쓰기 쉽지 않다. 프레임워크 노트북은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들었다. 직접 조립해서 쓸 수 있는 제품으로, 모든 부품이 모듈화되어 있어서, 필요에 따라 바꿔쓸 수도, 고장 난 부분만 따로 사서 쓸 수도 있다. 나중에 부품을 바꿔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 아직은 이런 ‘수리할 수 있는’ 제품 생태계에 참여하는 기업이 별로 없지만, 점점 늘어나길 바란다.
·한마디: 친환경 재질로 만들어진 제품만 원한다면, M1 맥북 에어 시리즈가 있다.
노트북에 프레임워크가 있다면, 스마트폰에는 페어폰이 있다. 이제는 모두 잊은 구글의 모듈형 스마트폰 프로젝트 아라(Ara)와는 다르게, 정말 살 수 있는 조립식 스마트폰이다. 배터리나 디스플레이, 카메라가 고장 나도 필요한 부품만 사서 고쳐 쓰면 된다. 품질 보증 기간은 5년. OS 업데이트 역시 지원한다. 본체 재질 역시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물론 그렇기에, 최신 스마트폰처럼 매끈하고 아름답진 않다. 두께도 두껍고 225g으로 꽤 무겁다. 가격도 비슷한 성능을 지닌 폰보다 더 비싸다. 단점은 있지만, 이번 페어폰 4는 지난 2와 3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 무엇보다, 좀 더 고치기 쉬워졌다. 제로 웨이스트라는 관점으로 평가했을 때, 페어폰 4만큼 괜찮은 스마트폰은 없다.
·한마디: 유럽에서만 판매 중이다. 고로 한국에선 부품을 구하는 것도 일이라는 거.
프레임워크와 페어폰이 아나바다 개념을 가진 제품이라면, 삼성 에코 리모컨은 개념을 달리한다. CES 2022에서 공개된 이 제품은 에너지 하베스팅이라 부르는 기술을 이용해 생활 공간에서 전기를 수거해서 충전한다. 다르게 말해 충전이 필요 없는 리모컨이다(USB-C 충전을 지원하긴 한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이 제품에 들어간 충전 모듈을 저렴하게 보급할 수 있다면, 앞으로 우리는 건전지가 필요 없는 가정에서 살 수 있다. 삼성전자만 이런 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 OPPO에선 전기 없는 통신(Zero Power Communication)에 대한 백서를 발표하고, 가까운 미래에 여러 가전 제품을 전기 없이 쓸 수 있게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마디: 상용화 가능성이 작다.
‘왜 이 제품이 여기에?’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수도. 뱅앤올룹슨에서 만든 이 스피커는 작고 예쁘고 다재다능하고 좋은 소리를 들려주며 아주 비싸다. 그리고 아주 오래 쓸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국제 친환경 C2C(Cradle to Cradle)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알루미늄 프레임부터 배터리, 패브릭, 목재 커버 등을 모두 교체할 수 있다. 크롬캐스트와 애플 에어플레이2, 구글 어시스턴트를 지원하기에 쓰고 있는 제품과 호환되는지를 걱정할 필요도 적다. 허접한 여러 개보다 똑똑한 하나를 갖고 싶다면, 이 스피커는 충분히 고려할만한 옵션이 될 수 있다.
·한마디: ‘돈이 있다면’ 당장 지를 제품.
킥스타터에서 펀딩에 성공한 아드리아노는 구형 스마트 기기를 방범 카메라나 홈 허브로 쓸 수 있게 바꿔주는 스마트 스탠드다. 스마트폰을 집에 있는 스마트 전구나 온도 조절기 같은 스마트홈 기기를 제어하는 장치로 바꿔준달까. 원하면 추가 부품을 구매해 화재경보기 같은 다른 기기로도 쓸 수 있다. 스탠드에 설치된 스마트 기기는 음성, 제스처와 스마트폰 앱으로 조작한다. 모바일 네트워크, 지그비, 와이파이, 블루투스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해 쓸 수도 있다. 그러니까 버려지는 스마트 기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게 되는 거다. 남는 스마트폰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나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요즘, 새로운 해결책을 찾았다고 봐도 좋겠다.
·한마디: 가능성은 큰데 실용성은 미지수. 누가 구형 스마트폰 활용 커뮤니티라도 만들어줬으면.
조금 가벼운 제품도 얘기해보자. H2O 수압 샤워 라디오는 샤워기에 연결해, 물이 지나가는 힘으로 발전,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는 제품이다. 오래전 자전거에 달려 있던 발전식 전조등을 떠올리면 된다. 당연히 전원에 연결할 필요가 없고, 물만 나오면 계속 쓸 수 있다. 샤워하려고 물을 트는 순간 좋아하는 라디오 채널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충전 같은 걸 걱정할 필요도 없다. 욕실에서 음악 듣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딱 맞는 제품이지만, 들으려면 계속 물을 틀어놔야 한다는 단점도.
·한마디: 알아요. 추운 겨울에 당신도 뜨거운 물 맞으면서 헬렐레하고 있다는 거.
집에서 간단히 태양광 충전기를 쓸 수는 없을까? 그룹허그의 창문형 태양열 충전기 같은 제품이 있기는 하지만, 용량이 적어서 실용성이 조금 떨어진다. 제네락 태양광 발전기는 가정용으로 나온, 태양광 전기 백업 장치다. 태양광으로 4시간 정도 충전하면, 최대 7일간 가정용 비상 전원으로 쓸 수 있다(일반 전기로도 충전 가능). 용량은 1566WH와 2060WH 두 가지로 가정용 공구나 의료 기기, 전기 주전자 같은 전기를 많이 먹는 가전제품도 사용이 가능하다. 충전된 전기는 최대 1년간 저장된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곳에선 크게 필요 없지만, 비상용 전기가 필요한 사람은 이런 제품을 한 대 정도 갖춰둬도 좋겠다.
·한마디: 아파트를 벗어나면 반드시 살 거다.
당장 쓸 수 있는 친환경 스마트 제품을 원한다면, 접근성 좋은 이케아 아이템이 있다. 슈고는 드물게 예쁘게 나온 건전지 충전기다. 동시에 8개의 건전지가 들어가며, AAA와 AA 건전지를 함께 충전할 수도 있다.
·한마디: 아쉽지만, 지금은 품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