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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후에 남겨진 것들 : 에디터의 지름 목록
2023-02-22T18:55:31+09:00

캐리어 무게가 23kg을 넘지 않는 선에서.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3주간 정박했다. 여행이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한국과 미국 시차를 넘나드는 외노자 모드다. 에디터들은 출장의 본분을 잊지 않으면서 나름 즐거움을 찾고자 두리번거렸고, 순간의 쾌락일지언정 짬을 내어 돈을 썼다. 합리적 소비라 우기며 소소한 지름 리스트를 펼쳐 보겠다.

<에디터 신원>

마그넷

경유지였던 샌프란시스코에서 구매한 SAN FRANCISCO 바게트 마그넷. 미국 텍사스 오스틴으로 가는 길고 긴 여정 중 첫 번째 지름 아이템이다. 해외 경험도 거의 없을뿐더러, 마그넷을 구매한 것도 처음. 실은 옆에 있던 동료 에디터가 좋다고 구매하기에 얼른 따라 집었다.

그렇게 시작된 마그넷 쇼핑 릴레이. 오스틴 시내의 소품샵에서도 평소 좋아하던 빈티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마그넷을 데려왔다. 핑크색 타자기와 상큼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언니의 얼굴이 왠지 볼 때마다 기분이 상쾌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무래도 이번 출장을 시작으로 마그넷 수집이란 새로운 취미 겸 돈 셀 구멍이 하나 생긴 듯. 그래, 지갑은 얇아져도 냉장고 문은 풍성해질 거다.

구찌 선글라스

일단 해외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으면 가장 먼저 열리는 특권, 바로 면세점 쇼핑이다. 평소 쓸 일도 없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도 딱히 찾지 못해 선글라스 하나 없던 차에 선글라스 쇼핑은 하나의 미션이 됐다. 텍사스는 미국 내에서도 햇볕 뜨겁기로 소문난 곳이라 멋이 아닌 눈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가져가야 할 필수템이었기 때문. 

면세점의 매의 눈으로 선글라스 코너를 돌아보던 중 운명 같은 선글라스를 발견했다. 쓰자마자 ‘아, 이건 내 거다’라고 말하고 있는 아이템을 발견한 순간의 쾌감이란. 이 맛에 시간과 노동력을 기꺼이 내어주고 카드를 긁는다.

빈티지 스푼

빈티지가 매력적인 이유. 사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지 어느 정도 세월이 흘렀다면 같은 제품이 어딘가에 존재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만큼 희소성도 높아지고 가치도 수직상승한다. 그래서 빈티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나만의 물건이 오는 기분을 선사한다. 과연 내가 사기까지 긴 세월 동안 어떤 사람을 거쳐왔을지 상상하는 재미는 덤이다.  

이 스푼은 1920년대 생산된 빈티지 스푼에 오스틴의 아티스트들이 글자를 새겨 완성했다. 특히 ‘CUPPA HAPPY’가 적힌 스푼은 한 친구를 떠올리며 골랐는데, 우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행복 한 컵”이란 메시지가 있는 이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라고 줄 생각이다. 물론, 지극히 시니컬한 그 친구의 반응은 아직 미지수. 

오스틴 모텔 테니스볼

가격은 단 5달러. 이번에 쇼핑한 물건 중 가장 저렴한 아이템이다. 무심코 들어간 곳이었는데 알고 보니 오스틴의 명물이었대서 놀랐고, 내 안목을 다시 한번 검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곳은 바로 Austin Motel. 테니스공에도 오롯이 새겨져 있다.

미국의 모텔은 유흥가 한복판에 즐비한 한국의 모텔과는 완연히 다른 인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워낙 땅덩이가 넓은 미국의 고속도로를 지나다 잠시 쉬어가는 아주 건전한 이미지라는 것. 오스틴 모텔에 딸린 소품 샵엔 자체 제작한 소품들이 다양하게 자리했고, 디자인은 수준급이었다. 한국의 모텔에선 볼 수 없는 생경한 풍경. 모텔이라는 글자가 걸려서 차마 맘에 드는 티셔츠를 사지 못했는데 후문을 알고서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에디터 Sonny>

코치 스니커즈

닳고 더러워질 수 있는 것에 마음 안 주고, 정교하고 오래 가는 것에 집착하는 시계·카메라 전문 에디터인지라 딱히 신발에 대한 욕심은 없는 편이다. 그래도 한때 형형색색 요란한 신발에 빠졌던 시기도 있어 이것저것 많이 사 봤지만, 모두 스쳐 지나가는 썸이었을 뿐. 그러던 어느 날, 십 년의 신발 권태기를 두 동강 내며 이 고급진 정갈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코치에서 신발을 살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꽤 괜찮은 모델이 많이 있는 것 같기도.

라코스테 수영복

피서는 일 년에 고작 한두 번 갈까 말까 하니까. 또 잘 안 쓰는 물건을 사두는 성격이 아니라서. 이러한 이유로 내 인생에서 산 수영복은 정말 몇 벌 없었다. 그러나 몇 해씩 여름마다 사진에 똑같은 수영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는 괜히 측은해져, 언제부턴가 괜찮은 수영복이 보이면 별생각 안 하고 사기로 했다. 한창 클 때의 아이도 아니고 왜 진즉에 안 사 입었지 생각을 하며, 오늘도 수영복 레파토리에 하나를 추가했다.

와비 파커 안경테

맘에 쏙 드는 안경테를 찾아 나선 지 거의 반년, 이번에도 맘에 드는 안경테가 없으면 라식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와비 파커 매장에 들어갔다. 수십 가지에 달하는 모든 안경을 각각 서너 번씩 꼈다 뺐다 하고 거울을 보며 고민하던 나의 비장한 눈빛은 두 번 틀린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마주할 때의 그것을 연상시켰다. 결국 결승전까지 간 두 가지 중에 고를 수가 없어서, 둘 다 샀다. 도수 알을 추가해도 테만 사는 것과 동일한 가격이라 꽤나 저렴한 편이다. 직접 찍은 사진이 없는 이유는 아직 도수를 넣은 안경을 배송받지 못했기 때문.


<에디터 푸네스>

아티스트 프린트 + 소니 E 35mm f/1.8 OSS

차가 없으면, 이동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넓디넓은 대륙. 다른 이들은 모두 일정이 있어 차에 얹어갈 수 없었던 탓, 점심 외식 후 자유시간이란 것이 생겼다. 의지할 것은 운동과 담쌓은 두 다리뿐이었던 시간, 오스틴의 땡볕을 피하고자 들른 우연한 숍에서 만났다. 기명의 죽음들이 묻어 있는 이 사진 한 장은 흐드러진 생의 한 철과 맞닿아 있다.

영어를 못하면, 웃음 많고 사람 좋은 동양인으로 인식되는 대륙. 기억, 니은, 디귿만으로 잘 버텨온 기특한 내 지난날들에 눈 흘기며 토익책이라도 펼쳐주고 싶었던 때. 놀랍게도 영어 한마디 하지 않고 중고거래를 이뤄냈다. 일행 중 한 명이 자신의 렌즈 소니 E 35mm f/1.8 OSS를 내 카메라에 장착했고, 7년 동안 한 몸처럼 붙어있던 번들 렌즈가 분리된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산 금액에 5만 원을 더 붙여 에누리 따위 없는 쿨 거래로 단렌즈 겟. 인생 첫 중고거래, 타국에서 면전 거래로 대성공.

마그넷

가장 가성비 좋게 여행을 기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마그넷이다. 심지어 냉장고에 붙여 놓는 것이 보통이니, 맥주 한 캔 꺼내다가 이제는 낯설어진 지명과 갑작스러운 아이컨택을 할 수도 있는 나름 낭만적인 아이템.

오스틴 다운타운 6번가에 가면 윗옷을 탈의한 여성들이 자유롭게 거니는 모습을 간혹 목도할 수 있단다. 이토록 자유로운 도시를 대변하는 매력적인 마그넷 하나와 가운뎃손가락 살짝 기지개 켠 삼십 대의 소심한 반항을 담은 아이템 하나 데려왔다.

웨스트엘름 머그잔

모셔야 한다. 가볍길 한가, 깨지기는 또 얼마나 쉽고. 하지만 조심스레 국경을 넘는 고단함 따위야 컵 안에 따뜻한 커피를 담아낸 장면 하나면 충분한 보상이 된다.

산드로 카디건

하필 세일의 향연이다. 경주마에게 직진만 하라며 씌어주는 눈가리개라도 착용할 의향이 있었으나, 관성처럼 반가운 눈인사로 매장 문을 연다. 걸려있는 많은 세일 상품들을 꼼꼼히 살피고, 결국 집어 든 옷은 세일 제외 상품. 비싼 건 역시 예쁘니까. 비록 이 옷을 입으려면 한 계절을 꼬박 기다려야 하지만 고이 접어 장롱 한편에 놓고 찬바람 기꺼이 맞이할 준비 됐다.

숙소로 돌아와 동료들에게 평가를 부탁했으나, 환불을 단호하게 권유받았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그날 이목구비 컨디션이 난조를 보인 탓이지, 옷이 어울리지 않았던 건 아니다. 미리 장만한 추석빔이라 치고 연휴 시작 전날인 9월 11일에 입고 출근할 테니, 딱 기대하시길.


<에디터 형규>

칙필레 소스

국내에 진출하지 않은 미국 패스트푸드 브랜드 중에는 인앤아웃(IN-N-OUT)이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면 칙필레(Chick-fil-a)가 단연 압도적이다. 그리고 이 칙필레에는 어떤 음식에 찍어 먹어도 잘 어울리는, 마치 백종원의 만능간장 같은 마성의 소스가 있다. 이 맛에 매료된 나머지, 여유분으로 켜켜이 쌓인 나머지 소스팩을 몽땅 챙겨왔다는 후문.

사실 여기엔 사정이 있다. 양손 가득 두둑해져 가는 동료 에디터들의 광경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 필자만이 쇼핑에 전혀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 덕분에 리스트업할 만한 아이템이 없어 머리를 쥐어 짜낸 끝에 나온 결과물이 바로 이 칙필레 소스다. 그래도 엄밀히 쇼핑 리스트다. 물론 소스는 무료지만, 이걸 얻기 위해 굳이 돈을 내고 햄버거를 사 먹었으니까. 덕분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김치전에 이 칙필레 소스를 찍어먹고 있다.

뉴클리어 오렌지 밤 & 둠스데이 레모네이드

짜고 기름진 고단백 식단에 지친 나머지 한인마트로 레이드를 떠났다가 발견한 충격적인 음료. 평화 무드가 진행되고 있는 남북정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는 아이템이지만, 어쨌든 그 자체로 신박하지 않은가. ‘뉴클리어 오렌지 밤’이라는 센스 폭발의 네이밍이 ‘일단 계산 먼저 하고 어떤 맛인지 꼭 확인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물론 실제 맛은 그냥 평범한 오렌지 음료와 레모네이드였지만. 어쨌든 색다른 의미에서 한류를 수출한 휴전선 너머의 두 지도자에게 박수 아닌 박수(?)를 보낸다. 

아. 참고로 이 음료는 선물용이다. 수취인은 국가안보의 최전선에서 조국 수호에 여념이 없는 군 생활 14년 차 직업군인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