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영화 ‘소공녀'(2018)의 명대사처럼, 집도 절도 없지만, 물욕은 있다. 티끌 같은 월급 모아봤자 티끌이니, 그냥 쓰자. 근로자의 날을 맞아 노동과 소비, 그 처연한 관계를 수치화했다. 도대체 몇 시간 일해야 살 수 있을까? 2019년 최저시급 8,350원, 주 40시간 기준으로 계산했다.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아마 못 사겠지.
김혜순 ‘어느 별의 지옥’
·가격: ₩8,000
·노동 시간: 57분
몸뚱이 풀가동 시켜야 먹고 살 수 있는 지옥에 갇혔다. 건물주 제외. 하지만 이곳은 1시간만 일하면 이런 시를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별이기도.
제13회 서울재즈페스티벌 2019
·가격: 1일권 ₩165,000 / 2일권 ₩245,000
·노동 시간: 20시간 / 29시간
색깔별 돗자리 보유자라도 이 페스티벌엔 팔찌 없으면 못 들어간다. 월요일부터 수요일 점심시간까지 일하면 입장 가능. 얼리버드 티켓 예약했으면 노동시간 좀 줄었을 텐데. 혹시 특기가 엿듣기, 취미는 무임승차라면 올림픽 공원에서 열리니 귀동냥 찬스를 써보심이 어떨는지.
오프화이트 DIAG STENCIL L/S T-SHIRT
·가격: €392 (한화 약 52만 원)
·노동 시간: 63시간
셀럽들이 사랑하는 스트릿 브랜드 오프화이트를 론칭하며 세계 패션계의 지형도를 바꾼 가장 핫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그의 옷 한 벌 소장할 자금 마련에 채 2주가 안 걸린다. 옷장을 열어보라. 8일만 일하면 될 것을 50만 원짜리 티 한 장 안 사고 그동안 뭐 했나.
슈프림 x 노스페이스 익스페디션 자켓
·가격: ₩2,590,000
·노동 시간: 311시간
재킷이라고 다 같은 재킷이던가. 그냥 집 앞 슈퍼 가듯 툭 하나 걸쳤을 뿐인데 힙스터 감성 폭발이다. 주 40시간으로 약 7주 정도 꼬박 일하면 살 수 있다. 비싼 옷은 막 입어야 제맛. 아무렇게나 굴려 입을 260만 원짜리 바람막이 재킷 하나 마련하는 일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라이카 Q2
·가격: $5,000 (약 5백8십만원)
·노동 시간: 695시간 소요
카메라 덕후라면 빨간 딱지의 로망 한 번 느껴봐야지 않겠나. 그 소박한 꿈, 4개월만 일하면 가능하다.
롤렉스 GMT 마스터-II
·가격: CFH 8,800 (약 1천만 원)
·노동 시간: 1,198시간 소요
꼭 차고 싶었던 롤렉스, 7개월만 일하면 찰 수 있다. 갑자기 일하고 싶은 욕구가 팍팍 생기는 듯?!
그뢰벨 포지 발랑시에 컨템포레인
·가격: $210,000 (약 2억4천만 원)
·노동 시간: 2만8,742시간 소요
7개월짜리가 롤렉스가 눈에 안 찬다면 좀 더 비싼 시계는 어떤가? 넘사벽일 것만 같았던 2억4천짜리 그뢰벨 포지도 계산해보니 13년 10개월만 일하면 살 수 있다. 생각보다 할 만하다.
부가티 La Voiture Noire
·가격: €16,700,000 (약 214억 원)
·노동 시간: 2백56만 시간 소요
살면서 부가티 한번 쯤은 타봐야 하지 않겠나. 1,232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숨만 쉬고 번다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를 살 수 있다. 물론 D모 그룹 H회장의 일당 5억 짜리 황제노역이라면 43일만 일해도 되는 껌값이다.
212 Fifth Avenue 펜트하우스
·가격: $73,800,000 (약 810억 원)
·노동 시간: 9백7십만598시간 소요
뉴욕의 초호화 펜트하우스는 아무래도 사기 힘들 것 같다. 주 40시간으로는 4,664년, 주 168시간 다 채워서 먹지도 자지도 않고 일해도 1,444년이 걸린다. 거의 인류의 역사와 비슷한 시간을 노동만 해야 한다는 것. 4,664년의 노동이 끝났다고 퇴근하긴 이르다. 세금은 별도라 146년 더 채워야 한다는 것 잊지 말자.
번외: 카카오T바이크
·가격: ₩5,500 (최초 1시간 기준)
·노동 시간: 39분 소요
시급을 받는 즉시 당장 밖으로 나가 자전거 안장 위에 앉자. 한 시간 시급만 받아도 85분 동안 페달을 굴리며 정승같은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심지어 이렇게 타고도 350원이 남는다. 아, 보증금 만 원은 조금 비굴하지만 친구한테 빌려서 내자. 어차피 다시 돌려줄텐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