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의 경영진 헤게모니 싸움에 장정석 감독이 희생양이 됐다. 장감독은 올시즌 한국리시즈 준우승 성과를 냈지만, 키움은 재계약을 포기했다. 대신 손혁 전 SK 와이번스 투수 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모두를 놀라게 한 결정이었다.
장정석 감독도 마찬가지다. 재계약을 예상하고 밝은 표정으로 구단을 찾은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갔다는 후문이다.
코치 경험도 없던 장정석, 감독이 되다
1973년생 장정석 감독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덕수상고와 중앙대를 거쳐 1996년 2차 3라운드 지명으로 현대 유니콘스 유니폼을 입었다. 포지션은 외야수였다. 2002년에는 KIA 타이거즈로 새 둥지를 틀었다. 다만 선수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다.
이후 2004년 현대유니콘스 프런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2008년 키움 히어로즈가 창단되면서 장 감독도 1군 매니저로 함께 했다. 2016년에는 운영팀장까지 맡았고, 같은해 10월에는 키움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동안 그가 보좌했던 염경엽 감독의 자리에 오른 것.
‘깜짝’ 선임이었다. 무명에 가까운 선수 출신에 이어 코치 경험마저 없었던 그다. 하지만 장 감독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다.
준비된 ‘초보 감독’
장 감독은 기록원과 매니저, 운영팀장을 거쳐 사령탑이 됐지만, 시작은 순조롭지 못했다. 2017시즌 이정후, 최원태라는 유망주를 발견했지만, 가을야구에는 오르지 못했다. 5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모두 장 감독에게 향했다.
하지만 시련은 잠시였다. ‘4번 타자’ 박병호가 미국 메이저리그 미네소타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다시 키움으로 돌아오면서, 전력이 다시 탄탄해졌다. 키움은 2018시즌 정규리그 4위 기록,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IA를 제압했고, 준플레이오프에서도 한화 이글스를 꺾었다. 플레이오프에서 염 감독이 이끄는 SK와 5차전 명승부 끝에 아쉬움을 남겼다. 과감한 투수 교체, 적재적소의 선수 기용이 인정을 받았다.
가을야구를 경험한 키움은 2019시즌 더 탄탄해졌다. 정규리그 3위를 차지했고, SK를 꺾고 한국시리즈 티켓을 거머쥐었다. 끝내 두산 베어스를 넘진 못했지만, 준우승이라는 값진 기록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장 감독은 현장 지원 역할까지 훌륭하게 해냈다. 코칭스태프, 선수단 등과 지속적이며 유기적인 소통을 했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선보였다. 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경기 운영도 돋보였다. 원칙을 지키는 선수 관리와 선수단 장악력으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구단 입장에서도 재계약을 안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디서부터 실타래가 꼬였나
사실 장 감독은 처음 선임됐을 때부터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장석 전 대표이사가 앉힌 ‘바지 감독’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장 감독은 그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를 스스로의 힘으로 직접 뗐지만, 결국 구단 내 권력 다툼의 피해자가 됐다.
이 전 대표이사는 2018년 2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2018년 10월 KBO로부터 영구 실격 징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옥중 경영’ 의혹이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연루된 박준상 전 대표가 사임했고, 자문변호사도 떠났다. 곧 허민 이사회 의장, 하송 대표이사 체제로 바뀌었고, 바로 ‘이장석 색깔 지우기’에 나섰다. 그 희생양이 장정석 감독이었다.
“장 감독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를 스스로의 힘으로 직접 뗐지만, 결국 구단 내 권력 다툼의 피해자가 됐다.”
물론 인정받은 사령탑과의 재계약 여부는 구단이 결정할 사항이다. 그렇다 해도 구단은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가 없었다. 대개 구단들은 계약 만료 전에 재계약을 제의한다. 하지만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에도 재계약 협상은 없었다. 대신 구단은 손혁 신임 감독 소식을 전했다. 이것이 논란이 되자 구단에서는 뒤늦게 재계약 불발 이유를 해명했다.
구단은 “감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장 전 감독 재계약과 관련해 이장석 전 대표의 지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옥중 경영’에 연루됐다는 얘기다. 이어 “경영진 간 대화 녹취록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장 전 감독이 이 전 대표를 직접 접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구단에서 직접 녹취록을 확인했는지는 미지수다. 구단은 “임은주 부사장이 녹취록이 있다고 해 9월에 감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자료 제출 요구에도 해당 녹취록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고, 임은주 부사장은 “하송 대표에게 녹취록을 직접 들려줬다. 녹취록 중 장정석 전 감독의 재계약과 관련된 내용은 없다”며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펼쳤다.
이에 키움은 사실관계 확인 없이 감독 교체를 결정했다는 의혹을 증폭시켰다. 아울러 허민 의장이 수석코치로 손혁 코치를 제안했지만, 장 감독이 이를 거절했고, 바로 손혁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이 선임 과정 또한 매끄럽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예의 지킨 장정석 감독
숱한 논란 속에 장정석 감독 마음도 편치 않았다. 장 감독은 11월 7일 취재진과 팬들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전했다.
장 감독은 “이장석 대표님의 교도소 이감 후 접견을 간 것은 사실이다. 인사를 다녀오자는 권유를 해와 구단 변호사, 구단 직원과 함께 지방 경기 이동일이었던 월요일에 찾아갔다”면서 “접견 시간은 약 15분 정도였는데, 그중 이 대표님과 나의 대화는 5분 전후였던 것 같다. 인사와 안부를 서로 묻는 게 전부였다. 접견이 끝나고 나올 때쯤 ‘계속 좋은 경기 부탁한다’고 하시면서 ‘재계약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설명했다. 뒤이어 “허 의장과 지난주에 미팅을 했고, 그 자리에서 새 수석코치 영입을 제안하셨다. 내부 승격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반대 의견을 냈다”고 했다.
“경영진의 진흙탕 싸움 속에서 장 감독은 희생양이 됐고, 키움을 응원하는 팬들과 선수단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야말로 ‘의혹 투성이’다. 경영진의 진흙탕 싸움 속에서 장 감독은 희생양이 됐고, 손혁 신임 감독도 피해자다. 무엇보다 키움을 응원하는 팬들, 선수단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KBO도 사태 수습에 나섰다. 키움은 11월 8일 경위서 제출을 했고, KBO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사태 파악에 나선다. 다만 KBO 징계에 대한 실효성에는 의구심이 든다. ‘클린 베이스볼’을 외친 KBO지만, ‘클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