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현재는 과거에서 시작한다. 손목시계, 다이버 시계, 파일럿 시계 등 시계 업계의 굵직한 줄기들도 ‘0’에서 ‘1’로 전환되는 시발점이 존재했다. 일분일초를 앞다퉈 최신 모델들이 쏟아져나오는 이 시대를 역주행하는 마음으로 ‘최초’의 순간을 더듬어 보자. 그대가 사랑한 시계들, 그 뿌리는 바로 이들로부터 시작됐다.
최초의 손목시계 – 산토스 드 까르띠에
과연 어떤 손목시계에 ‘최초’라는 타이틀을 부여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반적으로는 까르띠에 산토스 드 까르띠에가 최초의 손목시계라고 흔히들 알고 있는데, 그 사실관계를 엄연히 따져보면 ‘남성용 손목시계를 대중적으로 퍼뜨린’ 최초의 시계라고 말해야 한다.
1906년 산토스 뒤몽이 25.5초간의 동력 비행을 성공했을 때 그의 손목에는 까르띠에 시계가 있었다. 파일럿이자 사교계의 유명 인사였던 그가 역사적인 업적을 달성한 순간에 손목시계를 착용했다는 사건은 당시까지만 해도 상류층 여성들의 고가 액세서리로 인식됐던 손목시계를 남자가 차도 폼나는 ‘선망의 시계’로 뒤바꿔버렸다. 이를 계기로 까르띠에는 1908년부터 소수 고객에게 특별 제작 판매를 시작했다고. 그렇게 ‘까르띠에 산토스’는 최초의 손목시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세기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최초의 파일럿 시계 – 제니스 스페셜 워치
조금 전 최초의 손목시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까르띠에 산토스는 최초의 파일럿 시계라는 대목에서도 늘 화두가 되는 모델이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파일럿이 공식적으로 착용한 최초의 시계’이지 파일럿이라는 종목에 특화된 최초의 시계는 아니다.
때는 1909년 프랑스, 루이 블레리오가 ‘제니스 스페셜’이라는 시계를 차고 37분간의 영국해협횡단에 성공한다. 이 시계는 까르띠에 산토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케이스와 숫자가 커서 시인성이 뛰어나 비행해 적합한 찐 파일럿 시계였으니, 최초의 파일럿 시계라는 타이틀은 제니스에게 부여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을까. 산토스 뒤몽이 그랬듯 루이 블레리오가 유명세를 타면서 제니스의 파일럿 시계도 대중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다.
최초의 다이버 시계 – 블랑팡 피프티패덤즈 / 조디악 씨울프
이미 다이버 시계의 상징이 되어버린 롤렉스의 서브마리너. 그렇다면 최초의 다이버 시계도 그들의 차지였을까. 일단 1926년 실링 처리가 된 오이스터 케이스를 개발하며 방수 시계를 가장 선보인 브랜드이긴 하다. 잠수는 아니고 수영 정도가 가능했던 수준. 1930-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오메가와 파네라이가 군인들을 위한 잠수 시계를 제작했고, 이때 시계들은 베젤과 스크류다운 크라운 없이 방수만 가능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모던 다이버 시계의 형태가 처음 모습을 내비친 것은 1953년, 블랑팡과 조디악을 통해서다. 블랑팡은 피프티패덤즈를, 조디악은 씨울프를 같은 해 출시했지만 안타깝게도 명예는 블랑팡에게만 몰빵됐다. 당시 프랑스 해군에게 공식 납품됐던 블랑팡 피프티패덤즈는 전설적인 시계가 됐지만, 방수 스펙도 200m로 블랑팡의 무려 두 배의 성능을 자랑했던 조디악은 이름을 떨치지 못했다.
고급화 전략을 펼쳤던 블랑팡과는 달리 서민의 브랜드였기 때문이었을까, 유명세와는 인연이 없었고. 그렇게 민간인과 계급이 낮은 군인의 사랑을 받다가 쿼츠 대란 때 휘청거리더니 현재 아닌 과거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조디악 킬러라는 연쇄 살인마가 조디악 시계 마크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등 끔찍한 범죄자의 선택을 받아 브랜드의 행보와는 무관하게 이미지만 실추됐던, 안타까운 흑역사까지. 이런 점에서 보면 좋은 시계를 만들어낸다 해서 꼭 잘되고 유명해지는 것도 아닌 듯. 이 시대에도 이미지메이킹, 마케팅의 힘은 막강했던 것 같다.
최초의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시계 – 제니스 엘 프리메로
시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전설의 무브먼트. 1969년 데뷔해 반세기째 역사를 쓰고 있는 제니스 엘 프리메로를 칭하는 수식어다. 비슷한 시기에 브라이틀링, 호이어, 해밀턴-뷰렌 등이 공동 개발한 크로노매틱 칼리버 11이 등장했고, 세이코도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를 연이어 내놨기 때문에 과연 정말 최초의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순서야 어찌 됐건 엘 프리메로가 현대 기계식 크로노그래프의 특징들을 고루 갖춘 독보적인 무브먼트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모든 시계가 수동으로 태엽을 감아줘야만 했던 그 당시,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로터가 회전해서 동력을 제공하는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의 등장은 파격 그 자체였고. 아울러, 18,000~21,600vph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상황 속 시간당 36,000회 진동하는 고진동 무브먼트를 선보였다는 점에서도 선구적이었다.
1970년대 초반 미국의 기업에 인수되며 자취를 감췄다가 엘 프리메로 개발에 참여했던 수석 워치메이커 찰스 베르모트가 설계도면과 부품을 잘 보관해 둔 덕에 1980년대 초반 극적인 부활을 맞게 된 드라마틱한 사연도 이 역사적인 시계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1990년대는 롤렉스의 데이토나 컬렉션에 탑재되며 세계적인 인지도를 닦았고, 콩코드, 쇼메, 파네라이, 태그호이어 등 수많은 고급 크로노그래프 시계에 탑재되며 세월에 구애받지 않는 명기임을 증명했으니, 엘 프리메로의 명성에 누군들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저 이대로 살아있는 현재가 되어주기를 잠잠히 응원할 뿐이다.
최초의 투르비용 시계 – 브레게 Ref.169
때는 1801년 6월 26일.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전혀 새로운 시계 조절 장치 ‘투르비용’에 대해 10년 간의 특허권을 취득한다. 중력을 발견한 과학자가 뉴튼이라면, 중력에 맞서는 시계 조절 장치 ‘투르비용’을 발명한 워치 메이커는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였다. 하이엔드 시계 빅5 중 하나, 그 브레게의 창립자 맞다.
시계의 위치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지구의 중력이 오실레이터에 영향을 끼쳐 오차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그 문제를 해결하려 분당 1회전 주기의 투르비용을 발명해 시계의 정확도를 개선한 이도 그였다. 1801년 특허를 내고 1823년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작고할 때까지 18년 간 제작된 투르비용이 단 35개였다니, 이 사실만 봐도 그 과정이 얼마나 까다로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투르비용의 기능성을 추월하는 첨단 시계 제작 기술이 널리고 널린 현대까지도 관리하기 어지간히 까다로운 데다 충격에 약하고 값비싼 이 무브먼트의 생산과 수요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워치메이킹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라는 역사성. 신비롭고 아름다운 고유의 미학, 최정상의 워치메이커만이 구현할 수 있다는 희소성과 헤리티지 때문이겠지. 당장 소장할 수는 없더라도 보고 감각하는 일은 자유니까. 투르비용의 정수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 방면에서 최초이자 최고의 브랜드 브레게로 입장해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