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E는 올해 첫 시즌을 연 전기차 오프로드 레이싱 시리즈다. 이 챔피언십 시리즈의 콘셉트, 메시지, 이벤트 등 그 면면을 살펴보면 실로 원대한 포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익스트림 E는 단순히 전기 레이싱카 이벤트만으로 한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모터스포츠라는 테두리를 넘어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국제적 노력까지 겸비했으니 말이다. 익스트림 E는 기후변화의 징후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다섯 곳의 지역에서 진행되며, 차량의 운송은 여객선을 개조한 배를 통해 해상으로만 이루어진다.
익스트림 E 챔피언십의 참가 명단에는 10개의 레이싱 팀이 있는데, 각 팀은 모터스포츠계의 성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남성 레이서 한 명과 여성 공동 레이서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터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시도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프로 레이서들이 첫 시즌에 참가하며, 레이스가 빠르고 치열한 페이스로 진행될 수 있도록 모든 레이서가 동일한 레이싱카를 타고 경쟁하도록 하였다.
익스트림 E는 그 어느 레이싱 시리즈보다도 포용적이고 친환경적인 시리즈를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는 시리즈에 참가할 예정인 프로 오프로드 레이서 크리스틴 GZ(Christine Giampaoli Zonca)와 유선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2020년 여름에 나왔던 특집호를 읽어본 독자라면, 크리스틴 GZ라는 이름이 낯익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지나친 이상주의로 비칠 수 있는 익스트림E의 컨셉, 크리스틴 GZ와의 지난 인터뷰를 통해 그 면면을 속속들이 파헤쳐보자.
익스트림 E의 기원
익스트림 E는 2018년 알레한드로 아각(Alejandro Agag)에 의해 설립됐다. 전직 정치인이었던 그는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으로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공식 웹사이트에는 익스트림 E가 어느 아침 식사 자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적혀있다. 아각과 프로 레이서 겸 팀 오너인 길 드 페란(Gil de Ferran)은 레이싱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외진 곳에서 기후변화의 현실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아각과 프로 레이서 겸 팀 오너인 길 드 페란(Gil de Ferran)은 레이싱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외진 곳에서 기후변화의 현실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익스트림 E라는 이름만 들었을 때는 역동적이면서도 외진 곳에서 펼쳐지는 오프로드 레이싱 시리즈라는 점 덕에 다카르 랠리를 연상하기 쉽지만, 익스트림 E는 2021년 한 해 동안 북극·사막·바다·아마존·빙하와 같은 환경에서 레이싱 이벤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러한 장소들은 오프로드 레이싱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들로서, 익스트림 E의 과학 위원회(Scientific Committee)가 2년간의 연구 끝에 선정한 곳들이다.
이벤트 개최국 최종 명단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세네갈, 그린란드, 브라질, 파타고니아가 포함되어 있다.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는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적극 알리는 형태로 진행된다. 선정된 장소와 테마는 다음과 같다.
-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화
- 세네갈의 해수면 상승
- 녹고 있는 그린란드의 만년설
-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 벌채
- 파타고니아의 빙하 퇴적
익스트림 E는 이러한 다섯 가지 지역에 대한 전 세계적 주목을 이끌어내는 것을 넘어, 레이싱 프로그램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남길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에 따르면, 익스트림 E 프로그램은 아마존 열대우림의 100헥타르가량을 다시 숲으로 조성하고, 세네갈에 100만 그루의 맹그로브를 심는 등 다양한 노력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그 목적은 단순히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직접적인 조처를 하는 것까지 확장된다.
쟁쟁한 레이서 로스터 그리고 크리스틴 GZ
2021년 2월 기준, 익스트림 E에는 10개의 레이싱 팀이 경기에 출전할 예정으로서, 프로 레이서 중에서도 프리미어급 레이서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이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은 세바스티앙 로브(Sebastien Loeb), 크리스티나 구티에레스(Cristina Gutierrez)와 함께 출전할 예정이다. 또 다른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인 니코 로즈버그(Nico Roseberg)와 젠슨 버튼(Jenson Button) 역시 경쟁 대열에 합류한다. 익스트림 E 공식 룰에 따르면, 남성 1명과 여성 1명의 팀 구성이 필요하며, 2월 기준 레이싱 팀 명단은 아래와 같다.
- Mattias Ekström and Claudia Hürtgen – Abt Sportline Cupra XE Team
- Carlos Sainz and Laia Sanz – Acciona Sainz XE Team
- Timmy Hansen and Catie Munnings – Andretti United XE Team
- Kyle LeDuc and Sara Price – Chip Ganassi Racing
- Oliver Bennett and Christine Giampaoli – Hispano Suiza Xite Energy Team
- Jenson Button (공동 여성 드라이버 미발표) – JBXE Team
- Johan Kristoffersson and Molly Taylor – Rosberg Xtreme Racing
- Stéphane Sarrazin and Jamie Chadwick – Veloce Racing
- Sébastien Loeb and Cristina Gutiérrez – Team X44
크리스틴 GZ는 올리버 베넷(Oliver Bennett)이 공동 레이서로 뛰는 Hispano Suiza Xite Energy 팀으로 참가할 예정이다. 베넷은 FIA 월드 랠리크로스 챔피언십(FIA World Rallycorss Championship)과 짐카나 그리드(Gymkhana GRID)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영국의 드라이버다. 크리스틴 GZ의 경우 지난해 가을 아바텔 레이싱팀(Avatel Racing Team) 소속으로 안달루시아 로드 투 다카르 랠리(Andalucía Road to Dakar Rally) T2 부문에서 랜드크루저로 3위에 올랐다.
인터뷰를 통해 크리스틴 GZ에게 새로운 레이싱카, 새로운 팀으로 경기에 참여하는 데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크리스틴이 GZ가 속한 이스파노 수이자 엑사이트 에너지 팀은 (Hispano Suiza Xite Energy Team) 1904년 설립된 스페인 자동차 브랜드 이스파노 수이자와 천연 카페인 에너지 드링크 회사 엑사이트 에너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팀이다.
크리스틴은 이 팀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는 질문에, “이스파노 수이자 엑사이트 에너지 팀에 합류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내 고향이나 다름없는 스페인을 대표할 기회이기도 하고, 이 대회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모터스포츠 대회라는 점에서 나에게는 특별히 큰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익스트림 E는 혁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첫걸음을 뗀 정통 모터스포츠
그는 익스트림 E가 “혁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첫걸음을 뗀 정통 모터스포츠”라며 “고성능 전기차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발상은 (스포츠의) 격렬함과 이성을 적절하게 조화시킴으로 전 세계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또한 “혼성으로 팀을 구성하는 방법은 남성 일변도의 모터스포츠계에서 여성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익스트림 E가 두 성별 간의 싸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터스포츠에서 전례에 없던 방식으로 성평등을 추구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라고 전했다.
오디세이-21 일렉트릭 SUV 오프로드 레이스카
익스트림 E의 각 팀은 스파크 레이싱 테크놀로지(Spark Racing Technology)가 설계 및 제작한 전기 SUV 차량 오디세이-21을 타고 경주에 참여한다. 오디세이 21은 2019년 굿우드 스피드 페스티벌(Goodwood Festival of Speed)에서 첫선을 보인 차량이다. 오프로드 레이서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작된 오디세이-21은 윌리엄스 어드밴스트 엔지니어링(Williams Advanced Engineering)의 440kW 배터리팩을 탑재, 550마력의 출력을 자랑한다. 4.5초의 제로백과 40도가량의 가파른 경사도 거뜬히 오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공차중량은 1,650kg으로 2,500kg에 가까운 테슬라 모델 X 및 다른 전기 SUV와 비교했을 때 매우 가벼운 편에 속한다. 스파크 레이싱 테크놀로지는 차체를 가볍게 유지하기 위해 차량에 CBMM의 니오비움 강화 강철 합금 튜브 프레임을 장착했다. 니오비움은 순수 티타늄과 비슷한 경도를 가진 소재이다. 추가 요소로는 안전을 위해 부착된 롤 케이지, 콘티넨탈 타이어 등이 있다.
오디세이-21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2020 다카르 랠리에서 모터스포츠계에 데뷔하였다. 드리프트의 대가 켄 블락(Ken Block)이 운전대를 잡았다.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오프로드 레이싱 중 하나인 이 대회의 마지막 경주에서 오디세이-21은 3위를 기록으로써 그 탄탄한 성능을 증명하였다.
친환경적 ‘모함’ 세인트 헬레나
익스트림 E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는 필요한 장비와 차량을 5개의 장소로 수송하는 방법이다. 핵심은 영국 왕립 우편 서비스(British Royal Mail Service, RMS)에서 화물선 및 여객선으로 사용하던 세인트 헬레나(St. Helena)에 있다. ‘모함(mother ship)’이라는 별명을 가진 세인트 헬레나가 챔피언십의 인프라, 레이싱카, 선내 실험실을 각 경기장으로 운반한다.
세인트 헤레나는 ECO 모드를 탑재, 순항 속도로 운행 중 하나의 엔진만을 사용해 연비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세인트 헬레나는 1990년부터 2016년까지 30여 년간 보급선으로 운항했던 배다. 몇몇 기사에 따르면, 이 배는 RMS의 이름을 걸고 운항한 마지막 두 척의 배 중 하나이다. 익스트림 E가 전달하고자 하는 친환경적 메시지에 걸맞게,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중고 화물선을 활용하게 된 것이다. 또한, 최대한의 에너지 효율성을 내기 위한 선박의 개조도 이루어졌다.
세인트 헬레나의 엔진과 발전기는 황 함량이 낮은 해양 디젤 연료로 작동되도록 변경되었다. 변경을 통해 ECO 모드를 탑재, 순항 속도로 운행 중 하나의 엔진만을 사용해 연비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대체로 기존의 하드웨어와 인테리어는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지만, 일부는 새롭게 단장되기도 했다. 세인트 헬레나는 현재 영국 리버풀에 정박 중이며, 3월경 사우디아라비아로 출발할 예정이다.
익스트림 E 중계는 어디서
익스트림 E는 전 세계로 방송되며, 40개 이상의 각국 방송사들이 중계에 나선다. 대표적으로 폭스 스포츠, ESPN, BBC, 스카이 스포츠, 버진 미디어, 유로 스포츠가 중계에 참여했다. 익스트림 E의 웹사이트를 방문해보면, 중계에 참여한 미디어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달력에 방송날짜를 미리 체크해두도록 하자.
시즌 1 레이스 스케줄
익스트림 E의 첫 번째 시즌은 4월 3-4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식적으로 막을 열었다. 이후로 나머지 4개의 레이스가 연이어 시작된다.
- 세네갈 (5월 29-30일)
- 그린란드 (8월 28-29일)
- 브라질 (10월 23-24일)
- 파타고니아 (12월 11-12일)
익스트림 E의 경기 진행 방식
각 지역에서 주말 동안 각기 4라운드로 구성된 7개의 경기가 진행된다. 레이서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두 번의 예선전을 치르게 되며, 각 라운드는 두 개의 레이스로 구성된다. 점수는 최종 순위에 따라 부여된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팀들은 1차 준결승전에 진출하고, 나머지는 2차 준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전에는 두 준결승전에서 상위 3개 득점팀이 진출한다.
각 경기는 정해진 코스를 두 바퀴 도는 방식이다. 첫 바퀴를 돌고 나서 공동 드라이버들은 포지션을 변경해야 한다. 이러한 규칙은 각 팀의 공동 드라이버들이 다른 드라이버의 역할을 완벽히 숙지하고 수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팀 간의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동한다. 그 어떤 모터스포츠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방식이다. 오로지 익스트림 E에서만 경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팀원들의 긴밀한 협력을 필요로 한다.
다른 에너지원, 같은 퍼포먼스
2020년대에 들어서며 내연기관 차량의 개발 중지 및 전기차 전환을 선언하는 제조사들이 늘고 있다. 전기차가 우리가 찾아오던 환경을 위한 해법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오늘날의 대세인 것은 분명하다. 익스트림 E는 전기차가 산을 넘거나, 사막을 가로질러, 또 눈밭을 가로지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 보인다.
익스트림 E는 전기차가 산을 넘거나, 사막을 가로질러, 또 눈밭을 가로지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 보인다.
익스트림 E의 CEO이자 설립자인 알레한드로 아각은 최근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1년간 일어난 여러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재의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을 굉장히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의 모험은 이제 세인트 헬레나의 항해로부터 시작한다. 이는 수년간 쏟아온 노력의 절정이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첫 행사에 모든 자동차, 드라이버, 과학자들이 참여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익스트림 E의 메시지, 드라이버, 차량, 장소는 완전히 새로운 오프로드 레이싱 경험을 선사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이제 우리는 그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임볼든은 크리스틴 GZ가 익스트림 E와 함께 전 세계를 누비는 동안 안전한 여행과 즐거운 레이싱을 즐기기를 기원하며, 이 독특한 챔피언십 시리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전해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 시리즈의 첫 번째 시즌의 새로운 소식을 받아보려면 소셜 미디어에서 익스트림 E를 검색해보라.
Edited by 강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