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시리즈 ‘너에게 나를 던진다’를 연재 중인 웹툰 작가 김대호에겐 다양한 타이틀이 있다. 본업으로 삼는 웹툰 작가 외에도 그는 프로레슬링 머천다이즈와 의상 디자인을 제작하는 디자이너이자, 또 러스트러블(Lustrouble)이라는 메탈 밴드의 보컬이기도 하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매력을 느낀 모든 것들에 손을 한번 내밀고 나면 절대 놓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좋아하던 것을 꿈꾸고, 그 꿈을 먹고 살아가다 보니 그렇게 웹툰 작가 김대호가 되어있었다고 했다.
한 가지 일에도 제대로 집중하기 어려운 에디터의 눈에는 김대호 작가의 이야기가 너무 신기하게만 보였다. 마치 판타지 소설처럼. 결국, 우리는 그렇게 그를 임볼든의 인터뷰 테이블에 앉혔다.
어떤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웹툰 작가부터 일러스트레이터, 프로레슬링 기어 디자이너, 밴드 보컬까지. 타이틀이 너무 많아서(웃음).
어린 시절부터 저는 한 번 좋아하기 시작한 건 평생에 걸쳐 계속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어린 시절, 6살 때였나. 어린이 그리기 대회에서 수상한 그 순간부터 계속 그림을 그렸고, 좋아하는 프로레슬링도 8살 때 AFKN에서 보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빠져있고. 음악도 삼촌 영향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건스앤로지스나 본 조비, 메탈리카 같은 밴드들 듣기 시작하면서부터였고요. 한번 빠져들면 광적으로 파고드는데, 반면 쉽게 질려 하는 타입도 아니니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도 본인을 소개한다면 어떤 타이틀로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그래도 저는 항상 웹툰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커요. 그림을 업으로 삼고 있고, 지금도 네이버 시리즈에서 ‘너에게 나를 던진다’라는 프로레슬링 웹툰을 연재하고 있고, 1주일에 이 작품을 위해 쓰는 시간이 가장 많으니까요.
그럼 그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네요. ‘프로레슬링’이라는 생소한 소재로 웹툰을 그린다는 게 분명 쉽지 않았을 텐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에는 다른 작품을 먼저 하고, 제가 웹툰 작가로서 파워가 생기면 그때 ‘프로레슬링을 대중에게 더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으로 시작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몇 년 전에 네이버에서 스포츠 웹툰 공모전을 개최하면서 순서가 바뀌었죠. 당시 베스트도전에 연재 중이던 다른 스포츠 웹툰보다 제가 나름대로 깊이가 더 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프로레슬러 조경호 선수에게 감수를 받으면서 함께 도전했습니다.
내심 속으로는 자신이 있었어요. 이건 내가 아니면 아무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소재고, 집중력 있게 풀어나가기만 한다면 분명 좋은 조건으로 연재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었죠. 다만 소재 덕분에 연재 자체는 자신이 있었지만, 막상 연재를 시작하면 인기는 없을 거라는 예상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어요(웃음).
네이버 스포츠 웹툰 공모전 결과는 어땠나요?
아쉽게도 공모전에서는 떨어졌는데, 다행히 웹툰 ‘노블레스’의 글 작가이신 손재호 작가님과 연이 닿았어요. 그때 막 JHS 스튜디오를 창립하셨는데, 제 작품을 좋게 봐주셔서 네이버 시리즈를 통해 연재를 시작하게 됐죠. 지금도 JHS 스튜디오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소 프로레슬링에 대한 애정이 깊고 관련 작업도 하시니 ‘너에게 나를 던진다’ 같은 작품을 하고 계시겠지만, 혹시 그 외에도 작품에 따로 영감을 주는 것이 있나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올타임 베스트 무비가 ‘레옹’입니다. 소녀를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헌신이 너무나도 멋지게 그려지잖아요. 어린 시절부터 그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게 박힌 덕분에 저는 지금도 커다란 어른 한 명이 어린 누군가를 지켜주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해요. ‘너에게 나를 던진다’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어요. 프로레슬러를 꿈꾸는 한별이라는 아이가 가정폭력에 시달릴 때 주인공 혜성이 그를 구해주고, 또 나중에 혜성이 폐인이 되었을 때 한별이가 그를 일으켜주는. 이런 이야기 구도는 아무래도 레옹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군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특별한 소재를 다루는 만큼 혹시 본인이 직접 프로레슬링을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으셨나요?
솔직히 없었는데(웃음), 근데 이건 다 이유가 있어요. 제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Where I am’을 잘 아는 겁니다. 제가 웹툰 작가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CA, 미술학원 강사 같은 일을 했는데, 정말 수많은 친구를 봤어요. 그런데 유심히 보면 그들 모두가 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안 될 것 같은 친구들도 분명 있었거든요. 물론 강사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넌 안돼”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요.
이건 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내가 과연 훌륭한 프로레슬러가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니 답이 정말 빠르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프로레슬링을 직접 하지 않는 건 비교적 쉬운 선택이었죠.
소재가 소재인 만큼 반응이 궁금해요. 독자들 반응도, 그리고 회사의 반응도.
사실 네이버 시리즈 독점작품은 수익이 많이 나는 편은 아니에요. 그런 상황이지만 스스로는 제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요. 매번 마감을 칠 때마다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어서, 현재로서는 나쁘지 않게 잘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소속사인 JHS 스튜디오에는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어쨌든 수익이 크진 않으니깐. 그래도 회사에서는 비전을 제시해주고,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자체에 힘을 많이 얻고 있어요. 차기작도 같이하자고 제의해주셔서 지금 연재 중인 작품과 함께 준비 중입니다.
작가님 그림을 보면 요즘 웹툰보다는 오히려 정통만화에 가까운 무게감 있는 스타일 같아요. 처음부터 웹툰 작가가 목표였나요, 아니면 정통만화 쪽이었나요?
솔직히 고백하면 처음에는 웹툰이라는 플랫폼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저는 정통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잡지연재도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연재 제의도 받았었고. 그런데 그즈음에 하일권 선배의 ‘삼단합체김창남’을 보면서, ‘웹툰이라는 플랫폼이 그저 인스턴트가 아니구나, 이렇게 명작을 만들어낼 수가 있구나’라고 생각이 바뀌었죠. 웹툰 작가로 노선을 수정한 것도 그 부분이 컸어요.
그래도 현재의 웹툰이 작화에 소홀한 점이 저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에요. 혹시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웹툰에서 드로잉의 허들이 낮은 건 결국 소재와 공감대라는 부분이 제일 커요. 잡지만화 시절에는 액션이 거의 9할이었는데, 그때는 충분한 작화와 박진감 넘치는 드로잉이 기본적으로 갖춰지지 않으면 연재가 어려운 시기였죠. 물론 지금도 액션이 강세이긴 하지만 장르가 훨씬 다양해졌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공감대를 끌어내는 부분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핵심이 바뀐 만큼 디테일한 그림보다 간단하고 특색있는 그림체가 오히려 작가의 개성으로 자리할 수도 있는 거고.
그래도 너무 좋은 소재의 작품들이 준비되지 않은 드로잉으로 연재가 되는 걸 보면 여전히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열등감이 들기도 했어요. ‘나는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 무수한 시간 동안 노력하고 준비해왔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시간이 없어도 너무나 높은 위치에 있구나’ 같은 생각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들보다 더 좋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었다면 제가 그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요? 이런 미련이나 후회도 결국엔 ‘Where I am’인 셈이죠.
보통 웹툰 작가들은 일주일 단위로 사이클이 돌아가잖아요. 작업하고, 마감치고. 작가님의 일주일은 어떻게 돌아가나요?
저는 월요일에 무조건 스토리를 쓰고 콘티를 짭니다. 그 후에 빠르면 이틀, 늦어도 사흘이면 펜선이 끝나요. 그리고 채색 작가가 하루 정도 채색을 입히면, 제가 하루 안에 다시 마무리해서 완성하는 스케줄로 흘러갑니다. 이 과정이 총 4~5일 안에 끝나요.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밴드에 하루를 쓰고, 외주작업을 하는 게 있다면 거기에도 하루를 또 쓰고. 만약 연애하는 중이라면 데이트도 하고요. 일주일 중 제 작품을 다 하고 나면 보통 2~3일 정도의 시간이 남아요. 그 나머지 시간을 최대한 쪼개서 활용하는 편이죠.
웹툰 하나만 하기도 벅찰 텐데 밴드에 외주작업까지, 이게 다 가능한가요?
저는 멀티태스킹이 잘 되는 타입이에요. 작업할 때도 항상 드라마나 영화를 틀어놓고 계속 그림을 그리는 편입니다. 누가 총을 맞거나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면 슬쩍슬쩍 보고 다시 그리고, 이런 식으로 멀티태스킹이 거의 생활화 되어있어요.
잠자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입니다. 잠자는 시간 자체가 아까워요. 오늘도 한 3시간 자고 나왔는데, 물론 숙면하면 만족감은 있겠지만, 잠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면 항상 후회되더라고요.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작업을 하나라도 더 한다거나, 하다못해 영화라도 한 편 더 보면 영감이 떠오를 수도 있는 거니깐.
그렇게 시간을 쪼갠 덕분에 프로레슬링 기어 디자인도, 러스트러블이라는 밴드 활동도 동시에 할 수 있었던 거네요.
네. 프로레슬링 관련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작업은 예전에 WWE에서 에반 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맷 사이달이라는 선수가 한국에 내한해서 경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인연이 닿아서 그 선수의 티셔츠 작업을 하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음악은 고등학교 때 동창을 성인이 된 뒤 우연히 만났다가 밴드를 시작하게 됐고요. 지금은 재작년 11월에 결성한 러스트러블(Lustrouble)이라는 밴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동경하던 프로레슬러들과 작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은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수나 이야기가 있나요?
단연 리코셰입니다. 일본 인디 단체에서 활동할 때부터 같이 일을 해오던 선수였는데요. 그러다가 신일본프로레슬링이라는 더 큰 무대로 갔고, 여기서도 머천다이즈 작업을 같이하면서 계속 소통했어요. 그랬던 친구가 결국 WWE까지 진출하게 된 거죠. 사실 세계 최고의 무대에 올라간 만큼, 저를 다시 찾아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오히려 제게 연락해서 경기복 디자인 의뢰를 맡겨서 깜짝 놀랐습니다. 심지어 경기복 디자인 같은 건 일본 활동 시절에도 맡긴 적이 없는 작업이었거든요.
멋진 마인드네요. 어떻게 보면 같이 성장해나간 셈이군요.
너무 고마웠어요. 당연히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다해서 작업했습니다. 제가 디자인한 경기복을 입고 WWE 로얄럼블, NXT 테이크오버 같은 거대한 쇼에 출전하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남다르더라고요. 밑바닥에 있을 때부터 꾸준히 절 믿어준 선수가 세계 최고의 리그에 가서도 잊지 않고 절 다시 찾아줬다는 게. 나중에는 결국 리코셰의 여자친구인 케이시 카탄자로라는 선수의 작업도 제가 하게 됐는데, 그 시간이 저에게는 가장 의미가 컸던 사건이 아니었나 싶어요.
지금 보면 대체로 그림과 프로레슬링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반면에, 러스트러블 활동은 또 전혀 다른 분야입니다. 혹시 음악인으로서 밴드 활동은 단순 취미일까요, 아니면 그 이상으로 올라가고픈 욕망이 있나요?
홍대의 모든 인디밴드는 엄밀히 말하면 직장인 밴드입니다. 저도 친한 밴드 지인한테 “우리가 하는 건 취미일까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 돌아온 대답이 “진지한 취미지”라는 답변이었어요. 모든 밴드가 다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비록 일주일에 하루 이틀에 불과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하고 싶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정말 많은 사람이 웹툰에 도전하고 있잖아요. 혹시 그들에게 특별히 해줄 조언이 있다면 부탁드려도 될까요.
웹툰의 맹점은 작화가 부족해도 자극적인 소재나, 그림 이외의 요소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작가들 커뮤니티를 보면 작화가 전혀 안 되는 사람이 콘티를 짜고, 작화가 되는 프로작가를 따로 구해서 그림을 입히는 방식으로 작업해서 데뷔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런 케이스는 정말 소재와 스토리가 너무나도 기발한, 1%도 안 되는 극소수의 경우예요. 그들을 보면서 ‘저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엄청난 착각인 거죠.
제가 앞서 계속 언급한 대로 가장 중요한 건 ‘Where I am’을 아는 거예요. 냉정하게 본인의 수준이 못 미친다고 생각되면 도전하지 않는 것도 큰 용기와 결단이라고 봐요. 웹툰 작가라는게 결국 연재처가 없으면 무수입의 백수나 마찬가진데, 이걸 모두 감내해야 하거든요. 어지간한 각오로는 시작조차 할 수도 없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이런 꿈을 꾸고 있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부터는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준비하라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임볼든의 공식 질문입니다. 작가님의 EDC를 소개해주세요.
직업이 직업인지라, 태블릿과 PC 일체형의 와컴 모바일 스튜디오 프로가 제겐 가장 중요한 EDC입니다. 구입할 당시에는 가장 비싼 모델이었는데, 이걸로 카페에서 작업도 하고 드라마도 틀어놓고 해요. 자연히 에어팟도 제겐 중요한 아이템이 되겠네요. 애플워치는 일반적인 스케줄이나 메시지 확인용으로 주로 써요. 키 링은 크림소다라는 일본의 락커빌리 문화를 다루는 패션 브랜드 제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