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진 기록 본능에 가장 충실히 반응해 주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현재는 과거가 되고, 무심히 흘려보낼 수 있었던 과거는 어떤 의미가 되어 다시 지금으로 회귀한다. 어느 시점과 현재를 잇는 카메라가 영화에 등장하면 단지 도구로만 쓰이는 법이 없다.
카메라가 가진 이러한 상징성 덕, 주인공보다 더 진하게 기억되거나 사건의 실마리가 되어주거나, 풍성한 해석의 여지를 던져주곤 한다. 항상 렌즈 속에 담겨 기억되었던 수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이젠 우리가 그대들의 이름을 불러볼 때. 영화 속에 등장한 카메라와 그에 얽힌 잔잔한 썰 몇 개 풀어봤다.
누가복음 24장 37∼39절을 인용한 오프닝 시퀀스부터 수갑 찬 박흥국이 넋을 놓고 앉은 살인 사건 우중 풍경까지 강렬한 시작을 보여준 영화 ‘곡성’. 아마 당신도 미끼를 문 우를 범했을지 모른다. 뭣이 중한 줄도 모르고. 나홍진 감독 세 번째 장편 영화 ‘곡성’은 관객에게 ‘의심’이라는 덫을 놓는 발칙한 화법으로 687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영화 속 열쇠를 쥔 듯 의뭉스러움으로 점철된 외지인은 사진으로 죽기 전과 후, 사람의 모습을 담아 자신의 방에 전시한다. 아마 그 어떤 카메라 덕후일지라도 영화를 보며, ‘그래서 무슨 카메라로 찍는데?’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는 전무하겠다만, 악귀의 모습을 한 채 천주교 신부 수련을 받던 양이삼의 모습을 담는 그의 손 안 카메라를 목도하면 노란 ‘S’ 글자가 눈에 든다.
아울러 영화의 엔딩에도 훈도시 떡밥 받아먹지 못한 우리를 조롱하듯 일광도 외지인과 똑같은 카메라로 널브러진 종구를 향해 셔터를 누른다. 그 둘이 모종의 관계 혹은 비슷한 방식으로 악행을 자행하고 있다는 확인 사살을 도와준 상징적인 소품이 바로 지금 소개할 미놀타 하이매틱 S(Minolta Hi-Matic S)다. 이는 P&S 카메라로 눈대중으로 거리를 가늠해 촬영하는 목측식이다.
재미있는 비화도 있다. 카메라가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수입제한이 있었던 시기라 일본 카메라 브랜드들이 국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방법은 합작뿐이었다. 그리하여 삼성정밀이 1979년 미놀타와 기술 협업을 통해 삼성 마크를 박은 미놀타 하이매틱 S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 지금은 삼성이 카메라 사업을 접었지만, 그 시작점이 된 제품이 바로 이 물건이기도 하다. 당시 출시 가격은 9만 원으로, 그때 평균 월급이 15만 원이었다고 하니 카메라가 사치품 범주에 들었다는 사실이 납득이 된다.
이 제품은 플라스틱 바디라 매우 가볍다는 장점이 있다. S 모델은 완전 자동식이라 초점만 맞추면 나머지는 카메라가 알아서 한다. 신속한 촬영이 가능하다는 게 자동카메라의 맛 아니겠나. 셔터 스피드는 1/4~1/450초, 화각은 38mm, 조리개값은 F2.7이며, 팝업 플래시가 탑재되어 있고 저조도에서 노출 경고등도 작동된다. 배터리는 AA 건전지 2개를 사용하고, 크기는 130×79×55mm.
작년 부국제에도 초대된 ‘커밍 홈 어게인’을 만든 웨인 왕 감독의 1995년 작 ‘스모크’는 담배 가게 주인장 오기를 중심으로 5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가 폴 오스터가 1992년 출간한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며 그가 직접 각본에도 참여했다. 담배를 참 맛있게도 뻑뻑 피워대는 오기는 브루클린 3번가와 7번가가 만나는 모퉁이 아침 8시 풍경을 매일 사진으로 남기는 괴짜스러운 취미를 가졌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4천 장. 그는 말한다. 이 사진들은 단 한 장도 같지 않고, 이곳은 세상 일부분이지만 여기서도 매일 어떤 일이 생긴다고. 내 구역에 대한 기록을 위해 모퉁이에 선 그의 앞엔 이 카메라가 있다. 공전의 히트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많이 팔려나가 너무나도 유명한 보급기 캐논 AE-1이다. 1976년 선보였고 1984년까지 만들어졌으며 무려 100만 대가 넘게 팔렸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로 시즈루 카메라로 더욱 친숙할 수도 있겠다.
이 카메라는 무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데, 바로 중앙 처리 장치(CPU)가 들어간 첫 35mm SLR 카메라다. 아울러 TTL 측광기를 장착해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양을 측정하는 자동 노출 기능을 탑재했다. 캐논 FD 마운트를 사용한다.
언급했듯 TTL 중앙중점 측광 방식이며, ISO 25~3200, 셔터스피드는 1/1000까지, 심도 미리 보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전자 제어식이라 배터리가 없으면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는 아쉬운 점도 있다. 바디 크기는 141x87x47.5mm, 무게 약 590g. 여담으로 브랜드 이름에서도 이 모델을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자동 노출 제어를 뜻하는 AE(Automatic Exposure)에다가 1이라는 숫자를 붙여 최고라는 의미를 부여했으니 말이다. 필카 구매로 중고 시장에서 니콘 FM2와 고민중이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듯.
남겨진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큰 키, 미스 마이어, 비브, 비비안, 유모, 간병인, 이웃, 방에 자물쇠를 달고 은둔한 여자, 신문을 수집했고, 대담했고, 유별났고, 괴팍한 사람.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를 일괄하는 키워드는 하나로 통한다. 바로 비밀스럽다는 것. 스파이라고 소개할 만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그녀가 이 세상을 살다 갔다는 단서는 바로 수십만 장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사진이다.
영화를 만든 존 말루프는 2007년 경매로 400달러를 주고 산 상자 속에 든 필름을 현상했다. 인화된 사진을 보고 범상치 않음을 느낀 그는 사진의 주인인 비비안 마이어의 궤적을 추적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2015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며 다시 한번 그녀의 별난 삶이 재조명되기도.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적나라하게 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롤라이플렉스 카메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6X6cm 판형으로 정사각형 사진을 찍는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 롤라이플렉스를 그녀는 오랜 시간 사용했다. 전면의 렌즈 두 개 중 하나는 필름 면에 화상이 맺히는 테이킹 렌즈고, 다른 하나는 촬영자가 피사체를 볼 수 있는 뷰잉 렌즈다.
때문에 굳이 카메라를 얼굴에 밀착시키지 않고도 아래를 내려다보며 초점을 맞출 수 있었고, 사진 속 인물들은 그녀의 표적이 된 줄도 몰랐다. 그저 그녀는 태연하게 피사체의 자연스러운 표정과 상황을 담아내면 됐다.
그녀가 평생에 걸쳐 사용한 카메라는 롤라이플렉스 3.5T, 3.5F, 2.8C, 오토맷, 라이카 바르낙, 이하게 엑작타, 자이스 콘타렉스 등이다. 롤라이플렉스는 튼튼한 바디도 훌륭하지만 칼 자이스, 슈나이더 등 좋은 렌즈를 적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1929년 나온 오리지널 롤라이플렉스 모델은 1/300초까지의 림-세트 콤파 셔터와 자이스 75mm/f4.5 렌즈가 장착되었다.
클래식 정수를 느끼게 해주는 롤라이 사는 1995년 삼성이 인수하였으나, 외환위기로 1999년 독일에 다시 매각되었다. 2007년 함부르크 기반 회사가 롤라이 상표권을 취득해 상품을 판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