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타이틀은 자신 있게 2020 연말결산이라고 달았다. 하지만 사실 임볼든이 대중음악에 대한 권위 있는 미디어도 아닐뿐더러, 올해 발매된 앨범/싱글만을 대상으로 선정한 것도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에디터들의 개인 취향에 의거한 2020 리스트. 올해 귀에 진물이 나도록 반복 재생을 돌린 각자의 최애 싱글을 고르고 골랐다.
에디터 푸네스의 추천곡
Track 01. 라이너스의 담요 – 우주여행 (Feat. 조정치)
이 노래를 들으면 중력 사정권에서 벗어난 기분이 든다. 일단 우리를 지구 밖으로 내보내 전지적 우주인 시점으로 만들어 버리고, 시간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 둥둥 떠오르게 하는 사랑하는 이와 동행까지 시켜주니까. 당신과 살고 싶은 별을 찾아 함께 떠난 ‘우주여행’에서 바라본 것은 파란 지구와 그 안에 반짝이는 저마다의 생(生)들이다.
예상컨대 아무리 우주로 먼 길 떠났어도 작게 빛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했다면, 그 속에 마음 부비며 살고 싶어 다시 지구별로 돌아오게 될 거다. 이 곡의 부작용이라 함은 출근길 버스 안에서 틀면 노곤한 기분에 퇴근하고 싶어지는 게 문제. 이럴 땐 무단결근하지 않도록 귀소본능 발휘해 이탈한 정신을 차분히 다시 불러들이자.
Track 02. 모트 – 로켓
‘로켓’은 10월 발매된 모트 싱글 앨범으로 몽롱한 그녀의 목소리가 반복 재생의 늪으로 인도한다. 멜로디를 흥얼거리다가 곱씹게 된 가사는 다소 염세적인 편. 고장 난 로켓 때문에 불시착한 이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내 버려진 채, 누군가에게 구원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고도를 기다리는 디디와 고고처럼. 그녀가 써 내려간 곡 설명같이 ‘우리 모두 다음엔 제대로 된 로켓을 타고 안전한 곳에 착륙하기를’ 바라며, 아울러 로켓을 고치면 다시 원하던 그곳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 또한 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Track 03. 웨스턴 카잇 – 짝사랑
웨스턴 카잇 1집 앨범은 2017년 발매 이후 주야장천 듣고 있으니 2020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긴 하다. 언제, 어디에서 들어도 공기처럼 내려앉는 편안한 음색과 이와 상반되는 발칙한 가사가 그녀의 주 무기. 그 중 ‘짝사랑’은 ‘인형의 꿈’, ‘나였으면’ 같은 애절한 가슴앓이 발라드와 달리 어딘지 심드렁해 보이기까지 한다. 만약 이 노래가 꽤 마음에 들었다면 최근 새로 발매된 싱글 ‘Why Are My Photos Bad?’도 들어보자. 정규 2집 앨범이 발매되는 그때, ‘유스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길 팬심을 담아 바라본다.
에디터 형규의 추천곡
Track 04. Primal Fear – Hounds of Justice
독일의 정통 헤비메탈 밴드 프라이멀 피어는 그렇지 않아도 원래 좋아하는 밴드였다. 그런데 ‘Hounds of Justice’라는 제목을 보고 ‘설마?’ 싶었는데, 알고 보니 밴드의 기둥인 보컬리스트 랄프 쉬퍼스와 베이시스트인 맷 시너는 실제로 프로레슬링의 열렬한 팬이라고. 이 ‘정의의 사냥개들’은 바로 다름 아닌 WWE의 2010년대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스테이블, ‘더 실드’의 별칭이기도 하다. 헤비메탈과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필연적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곡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구닥다리 빨랫줄 기타리프는 정통 헤비메탈 팬이라면 그대로 지나치기 힘들지.
Track 05. 유키카 – 서울여자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인이 한국으로 건너와서 한국말로 노래를 부르고, 제목은 무려 ‘서울여자’. 이 혼돈의 카오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2020년 최고의 싱글로 꼽고 싶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시티팝 넘버이기도 하다. 레트로한 느낌의 도회적인 멜로디와 유키카의 깔끔하고 청량한 목소리 조합도 좋지만, 줄곧 한국을 동경해온 그녀의 진심이 마이크로 단위로 디테일하게 전달되는 가사가 심장을 폭격한다.
덕분에 요즘 ‘유키카 같은 서울여자 만나고 싶다’ 같은 멘트를 입버릇처럼 남발하게 되어버린 건 비밀. 여담이지만, 최근 유키카와 에스티메이트와 계약이 종료됐는데, 부디 더 좋은 새 둥지를 찾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콘셉트를 절대 버리지 말고 뚝심있게 끌고 나가길. 부디 그녀의 앞날에 행운을.
Track 06. LeBrock – Runaway
올 한해 바이크를 타면서 헬멧 블루투스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왔던 곡. 이유? 물론 ‘좋아서’라는 단어로 설명이 되겠지만, 조금 더 디테일하게 이야기해보자면 곡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경험 측면이 크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 저 멀리 펼쳐지는 산과 들, 바다를 배경 삼아 바이크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 이 곡이 흘러나오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 순간에 가장 잘 어울렸고, 그 무엇보다도 좋았다. 물론 이는 사람의 심장박동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르브록 특유의 설렘 가득한 멜로디와 리듬섹션 같은 요소가 있기에 가능했겠지만.
에디터 신원의 추천곡
Track 07. Bruno Major – Nothing
애청하는 유튜브 음악 채널 Thanksforcoming, 일명 땡포컴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노래다. 사람이나 음악이나 첫인상이 중요한 건 매한가지. 특히 음악의 초입부는 계속 재생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만드는 포인트다. 사뿐하게 속삭이는 대화처럼 시작하는 인트로가 좋았다. 그 잔잔한 무드는 2분 45초, 곡이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듣고 나면 왠지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인데, “츄리닝 입고서 내가 매번 지는 닌텐도 게임을 하고, 넌 TV를 보고 나는 너를 보고”라며 연인과의 집 데이트를 묘사하는 솜사탕 같은 가사가 한몫하는 듯. 회사에서 스트레스받거나 일이 생각대로 안 풀려서 짜증 날 때 1순위로 찾아 들었던, 마음에 따뜻하고 달달한 밀크티 한잔의 감성이 필요할 때 당 충전하기 좋은 띵곡이다.
Track 08. Renee Dominique – Somewhere only we know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알게 된 필리핀 뮤지션 르네 도미니크. 그녀의 보컬은 담백하고 섬세하다. 개인적으로 꺾고 지르는 류의 창법을 좋아하지 않아서 기름기 쏙 뺀 목소리를 찾아 헤매는 편인데 일단 이 조건에 정확하게 부합했고, 동시에 마음을 툭툭 건드는 감성은 어찌나 탁월한지. 소녀와 여인 사이를 오가는 특유의 무드가 계속해서 르네의 노래를 찾게 만든다.
이 곡은 영국의 록 밴드, Keane의 정규 1집 앨범 타이틀로 이미 많은 뮤지션들이 커버했지만, 쓸쓸하고 몽환적인 가사와 멜로디를 가장 잘 살려내기로는 르네 도미니크의 버전이 최고인 듯싶다. “난 지쳐가고 있기에, 시작할 어딘가가 필요해. 우리만 아는 그 어딘가에 대해 얘기해 보자.” 웨스 앤더슨 감독의 문라이즈 킹덤 속 아이들, 수지와 샘이 서른살이 됐을 때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것만 같다.
Track 09. 아이유 – 나의 옛날이야기
“쓸쓸하던 그 골목을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지금도 난 기억합니다.” 풋풋하고 애틋한 사랑을 추억하며 읊조리는 독백 같은 노래. 노래가 한 곡 끝나고 나면 아주 짧은 단편 영화를 한 편 감상한 듯한 먹먹함이 밀려온다. 화창하고 쨍쨍한 여름날보다는 한해의 끝을 붙잡고 센치해지는 겨울밤에 어울리는 노래. 고단했던 일과를 끝내고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따뜻한 이불 속에서 이 노래를 들어 보시길. 다만, 추억에 과하게 몰입하다가 이미 끝나버린 연인에게 연락하는 건 금물.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이 곡의 멜로디처럼 가끔씩 순수했던 날들의 감성을 적셔주는 것으로 만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