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을 주제로 한 국내 첫 대규모 전시, <로컬 크리에이티브 2024: The Next Community>가 막을 열었다. 50팀이 넘는 로컬 브랜드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소개하는 흥미로운 장이었다. 로컬 크리에이티브라는 표현, 누군가에겐 다소 낯설고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지. 대전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성심당이요. 바로 그거다.
성심당뿐만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었던 태극당부터 보난자 커피, 서울브루어리, 도보마포까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들의 공통점은 그 뿌리를 지역에 둔다는 점이다. 일부러 찾아 헤맨 적도 없는데, 로컬 브랜드는 어느 순간 우리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건 분명 그들이 가진 선명한 매력이 빛나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로컬 브랜드가 뭔데
갑자기 튀어나온 건 아닙니다
로컬 브랜드란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지역 특성과 고유 자원을 활용해 맞춤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 설명은 거창해 보이지만, 여행을 예시로 생각해 보면 쉽다. 어느 나라를 가든, 어느 지역을 가든 여행 플랜에서 빠질 수 없는 게 관광지와 현지인 맛집 아니겠는가. 그 이유는? 그곳에서만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는 희소가치 때문이지. 로컬 브랜드라는 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이전부터 함께 해왔다. 개념이 정립되고, 보다 브랜딩이 명확해지고, 비즈니스에 특화되면서 화두로 떠오른 것.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면 로컬 비즈니스는 개별 브랜드보다는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지역 활성화 정책 정도가 대표적이었다. 임실이 치즈 마을을, 전주가 한옥 마을을 형성한 것처럼. 하지만 지금은 자발적으로 지역 브랜드를 자처하는 수많은 브랜드가 흐름을 만들고 이끌고 있다. 특히 모든 게 서울에 밀집되면서 대다수에게 생경해져 버린 지방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편. 이제는 나라에서도 로컬 브랜드 사업 육성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추세다.
로컬 큐레이터의 활약도 로컬 브랜드가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성수교과서, 도보마포, 신사무디 등 영향력이 큰 큐레이터가 소개한 로컬 식당이나 상점은 순식간에 인기 폭발. 이번 전시 현장에서는 로컬 큐레이터 대표주자 성수교과서 제레박과 짧은 인터뷰를 나눌 수 있었다. 그가 말하길, 서울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큐레이터들이 생겨나고 있고, 아직도 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는 지역은 무궁무진하다고. 앞으로도 로컬 브랜드와 로컬 큐레이터의 상생은 이어질 예정이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어디서도 먹지 못한
지역성으로 만들어 낸 새로운 경험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특장점을 찾아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게 로컬 브랜드의 기본적인 공식. 지역 토박이나 오랜 시간 거주한 현지인이 브랜드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로컬 자원에 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 뛰어난 편이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이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무언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한 셈.
제주에 자리한 해녀의부엌은 다이닝 공간이자 공연장이다. 이게 무슨 조합일까. 제주 해녀와 청년 예술인들이 합심해 시작한 브랜드로, 해녀가 먹는 식사와 해녀의 삶을 담은 공연을 제공하는 게 이곳만의 특징. 제주 출신이자 해녀 집안에서 자란 대표가 자신의 전공인 연기와 고향의 문화인 해녀를 접목해 탄생하게 되었다.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지점을 제대로 찾아낸 거다.
식사가 이루어지는 2시간 동안 방문객은 하나같이 새로움으로 가득한 공간을 향유하게 된다. 톳흑임자죽, 뿔소라꼬지, 군소무침, 우뭇가사리양갱 등 쉽사리 접하기 힘든 메뉴 구성은 미식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모두 제주 바다에서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만들어진다고. 식사와 함께 상연되는 연극은 지금껏 알지 못했던 해녀의 삶을 짧게나마 들여다보게 해준다.
해녀들이 고생스레 채취한 해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해녀의부엌. 수익 일부를 어촌마을 발전 기금으로 기부하고, 해녀의 해산물을 20% 높은 가격에 구매하고 있다. 작년 기준 소멸 위험 지역이 전국 시군구의 절반 이상인 시대. 지역과 상생하며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로컬 브랜드의 가치는 더욱 반짝인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새 매료되는 스토리텔링
로컬 브랜드가 이목을 끄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면 바로 스토리. 브랜드를 시작하는 출발점 자체가 일반적인 기업과는 다르지 않은가. 상품이나 기술력이 아닌 지역성으로부터 시작하다 보니, 지금껏 지역에 켜켜이 쌓인 수많은 이야기가 브랜드에 자연스럽게 녹아나게 된다. 달리 보자면 브랜드 정체성이 확실하다는 말이겠지. 뚝뚝 묻어나는 지역에 대한 애정도 느낄 수 있고 말이다.
여기, 원도심 자체가 하나의 테마파크가 된 곳이 있다. 바로 공주 원도심 봉황동 마을. 마을스테이 제민천은 마을을 관광지로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주민의 생활공간에 머물면서 지역과 교류하고 마을의 일상을 여행하는 총체적인 경험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새롭게 건물을 짓는 게 아닌 마을 내 공간에 역할을 부여했다. 게스트하우스가 객실, 동네 식당이 레스토랑, 책방이 컨시어지가 되는 식. 자연스럽게 마을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었다.
마을에는 그 자체로 마을의 역사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를 머금은 공간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오래된 숙박업소 공간을 리모델링한 국밥집 가마솥국밥보쌈, 재생건축 공간 카페 루치아의 뜰, 공주 원도심 1호 독립서점 가가책방, 100년 넘은 한옥에 자리한 현대미술 갤러리 마주안, 비어 있던 건물을 청년 리빙 랩으로 탈바꿈한 공주 노인회관까지. 지역 주민이 만들어 온 농도 짙은 삶의 이야기는 마을 지도를 빼곡하게 채웠다.
작년 가을에는 마을페스타 제민네로가 열렸다. 페스타가 진행되는 한 달 동안 철거 직전이었던 건물은 극장과 도서관, 공연장 등 문화예술 복합공간으로 변신. 그렇게 활력을 잃어가던 마을은 헤리티지와 문화가 공존하는 매력 넘치는 공간이 되었다. 본래 로컬이 가진 잠재력을 브랜딩의 힘으로 끄집어낸 성공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좋은 취향에 모이는 사람들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다
지금은 그야말로 취향의 시대. 크리에이터들의 창의성으로 일궈낸 다양성 넘치는 로컬 브랜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껏 몰랐던 새로운 취향에 눈 뜨게 하고 있다. 단순히 상품을 소비함을 넘어 문화적 커뮤니티를 형성하기까지 한다고. 그리고 공간의 역할을 확장해 개인과 도시를 연결하기 위한 다채로운 시도를 펼치는 브랜드가 있다. 편집숍 모어댄레스(more than less)에서 시작된 공간, mtl이다.
한남과 효창, 동탄에 공간을 둔 mtl은 카페라고 정의하기엔 다소 폭넓은 영역을 다루고 있다. 커피는 사람과 사유를 모으는 일종의 매개. 미각을 넘어 의견을 나누며 발전하는 공유의 장, 더 나아가 다양성을 포괄하는 커뮤니티의 역할을 도맡고 있다. 그렇다고 커피에 소홀하다는 말은 아니고. 지금은 한국에도 매장을 연 베를린 3대 로스터리 중 하나, 보난자 커피의 원두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곳이 바로 mtl이라는 사실.
mtl에서는 다양한 담론과 수많은 인사이트가 오가며 새로운 가치 경험이 탄생한다. 고품질 커피와 비건 디저트부터 서브 컬처 씬의 음악, 도서 셀렉션, 리빙 및 패션 아이템 등 그 영역도 넓디넓다. 젊은 감각의 동네 문화센터 같은 느낌이랄까. 그만큼 지역 주민의 라이프 스타일은 풍성해지고,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는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까지 형성된다.
카페테라스에서 요가 클래스를 하고, 어글리바스켓과 협업해 못난이농산물 팝업을 연다. 주말에 오픈덱 디제잉을 진행하고, 러닝 세션을 열어 동네 사람들과 인근 지역을 달린다. 그 외에도 mtl은 폭넓은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단절과 고립으로 타인과의 교류가 점점 낯설어지는 지금, 이들의 행보는 보여지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다가오는 25일에는 효창 지점에서 러닝 세션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니, 이번 기회에 지역 커뮤니티에 발을 살짝 담가 보는 것도 좋겠다.
서문에서도 언급했듯 이번 로컬크리에이티브 2024 전시에 소개된 브랜드만 50팀이 넘는다. 대표적인 브랜드만 소개했는데도 이 정도. 개성 넘치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로컬 브랜드가 그 외에도 수두룩하다. 알고 보면 우리 동네에도 매력적인 로컬 브랜드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우연히 마주친 브랜드와 다정하게 눈맞춤할 준비를 서두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