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가장 많은 소음을 발생시키는 물건이 바로 키보드다. 동료 직원이 큰 소리를 내면 짜증이 일고, 적막한 사무실 정적을 깨는 소리가 내 타건음이면 눈치가 보인다. 전자는 내 영역 밖의 일이라 치고, 후자는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 어떤 키보드를 사야 하나 검색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 그렇게 초록 창과 사투를 벌이기 시작하면 도통 헤어 나오기 힘든 이 키보드라는 토끼 굴로 자연스럽게 입장하게 된다.
하늘 아래 같은 키보드 없다지만, 지금 살펴볼 키보드의 핵심 주제를 잊지 말자. 사무실에서 쓰기 좋은 즉, 조용한 키보드다. 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헤엄치다 경쾌한 클릭음과 키감에 꽂혀 청축을 고른다면 당신은 적어도 한쪽 뺨 정도는 내놓을 결심, 해야 할 거다. 어떤 물건을 골라야 조용한 소리는 물론 손맛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지 이 사무실 키보드 추천 리스트를 살펴보자.
에디터가 매년 가는 ‘SMKX(서울 기계식 키보드 엑스포)’. 올해 초 그곳에서 만난 ‘키친자’ 5인과 나눈 이야기’도 읽고 가도록. 그중에는 1억 넘게 쓴 사람도 있다.
어떤 키보드 소리가 더 정숙해?
키보드 타입 정리
키보드는 대표적으로 접점 방식과 무접점 방식으로 나뉜다.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키를 누를 때 물리적 접점이 생기고, 안 생기고의 차이. 전자에는 멤브레인 키보드 그리고 그 하위 항목인 펜타그래프, 기계식 키보드가 속한다. 접점과 무접점 키보드는 구조 및 작동 방식이 다르므로 타건 소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각각의 특징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멤브레인
컴퓨터를 사면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는, 아마 키보드에 관심 있지 않은 이상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을 키보드가 바로 멤브레인 키보드다. 키캡을 빼면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러버돔이 눌리면서 스위치 아래 접점과 멤브레인 시트가 닿아 입력이 되는 방식. 리모컨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거다. 사실 키감 다 포기하고 소리만 작게 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멤브레인 키보드에 키스킨 끼워 쓰면 아주 저렴하고도 손쉽게 고민이 해결된다.
펜타그래프
멤브레인 키보드와 작동 방식은 유사하지만 키캡 아래 X자 모양 지지대가 접었다 펴지는 데서 차이가 난다. 얇은 실루엣이 특징이며 노트북 키보드 를 떠올리면 된다. 구매 선택지가 많지 않지만 높은 휴대성과 특유 가벼운 키감으로 마니아층은 두터운 편.
기계식
키보드 생활의 꽃이자 소음 유발의 대표주자. 하지만 구세주처럼 저소음 모델이 등장했다. 스위치별 그리고 제조사에 따라서도 키감, 키압, 소리가 다르니까 구입 전 타건 기회가 있으면 꼭 해보도록. 글과 영상으로는 부족하다. 경쾌하고 큰 소리와 확실한 구분감의 클릭형 청축, 청축보다 소리는 순하고 적당한 구분감을 가진 넌클릭형 갈축, 구분감 없이 쑥쑥 들어가고 비교적 소리도 작은 리니어형 적축, 흑축이 대표적이다.
무접점
일단 비싸다. 물리적 접점 없이 일정 깊이에 도달하면 축전량이 감지되어 키가 입력되는 방식으로 일본 토프레(Topre) 사 제품과 중국 노뿌(Noppoo) 스위치가 대표적. 토프레의 키감은 ‘도각도각’, 노뿌는 ‘보글보글’이라고 표현한다. 가격은 전자가 더 나가지만 노뿌 키감을 선호하는 이들도 많다. 토프레는 소위 키가 올라 올 때 나는 ‘뚜껑 치는 소리’가 노뿌 보다 날카롭게 들린다.

구매 시 이런 점도 고려하면 좋다
어디서, 어떻게 쓸 것인가
키보드 배열
휴대성과 직결된다. 사무실에서도 쓰고 휴대도 하고 싶다면 레이아웃도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다. 아울러 자신이 하는 업무와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엑셀 문서를 주로 다루는 사람이 텐키리스를 쓸 수 없을 테니까. 딜리트와 방향키 없는 60% 레이아웃, 키캡 호환성 포기해야 되는 65% 변태 배열, 합리적이지만 휴대성까지 바라면 안 되는 텐키리스 등 타협과 선택이 필요하다.
기타
기왕 구매하는 거 게임용으로도 사용하고 싶다면 유선을 지원하는지, 키캡 소재, 스위치를 바꾸고 싶다면 핫스왑이 가능한 제품인지, 얄상한 실루엣을 원한다면 로우프로 파일 키보드를 구매하는 게 좋을 지 등. 아울러 키보드 자체 높이가 높다면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팜레스트를 별도 구매해야 하는지도 따져보자.
조용한 키보드 추천 7
빌런이 되지 않기 위해
당신이 사무실 키보드 빌런이 되지 않도록 펜타그래프부터 무접점까지 살뜰히 추천한다. 소리는 물론 키감, 디자인도 간과하지 않았다.

The Good
- 적수 없는 가성비.
- 타건감, 소리, 만듦새 모두 출중.
The Bad
- 높이가 높아 장시간 타이핑에 손목 피로감.
- CapsLock 상태 표시 위치 애매.
2024년 키보드 씬을 달군 모델이 있었으니 일명 독거미. 대륙의 실수라고도 불리는 아우라 F87 Pro는 가격 대비 키보드 퀄리티 상향화를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큰돈을 쓰지 않고도 훌륭한 제품을 만나볼 수 있고, 그 시발점이 된 모델이 바로 이것. 국내 정발 제품 구매 시 AS도 문제없다. 직구 시 가격은 더 낮아지지만.
플라스틱 하우징이지만 텅텅거리는 통울림을 잘 잡았고, 5중 흡음재, 공장 윤활, 스테빌도 잘 잡힌 편. 핫스왑이 가능하며, 유무선과 블루투스 지원 등 연결성도 좋다. 유선 모델도 있으니 구매 시 잘 체크하자. 87% 텐키리스 배열로 공간 활용도가 높지만, 숫자키를 원한다면 아우라 F108 풀배열 모델도 있으니 참고하도록. CapsLock 상태 표시가 키캡 위가 아닌 옆에서 확인 가능한 점은 다소 의아한 부분. 사무실용으로는 저소음바다 혹은 저소음피치축을 선택하면 된다.

The Good
- 무접점 키보드의 황금 밸런스. 이건 그냥 최고.
The Bad
- 토프레니까 키캡 놀이는 가볍게 포기하자.
- 다음에는 타입 C 포트를 기대해 본다.
확실히 저소음 모델이라 토프레 일반 모델과 달리 뚜껑치는 소리가 크지 않다. 또한 통 울림 이슈가 있었던 형제 모델 레오폴드 FC980C와 달리 통 울림도 잘 잡힌 편. 도각이는 느낌, 구분감, 키압 모두 필자 기준 완벽했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굳이 텐키가 필요하지 않다면 레오폴드가 창시한 군더더기 없는 66% 배열의 콤팩트 함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첫눈에 예쁘다고 반할 정도의 모습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폰트부터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 과하지 않고, 실용적이고, 깔끔하고, 단정하고, 근데 질서는 있는 느낌이다. 미워할 수 없는 공돌이 감성 가득하달까. 아쉬운 점은 현재는 판매되지 않아 중고 거래로만 구매가 가능하다는 것.

The Good
- 커스텀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 묵직한 알루미늄 키보드의 맛.
The Bad
- CapsLock 안에 숨겨 둔 전원 스위치.
- 뽑기 운에 따라 채터링 현상 발생.
CNC 풀 알루미늄 키보드다. 알루미늄 키보드 가성비 비전 레이니 75를 WOB의 자회사가 바로 PMO. 한눈에 봐도 레이니와 비슷한 외모로 레이니 75 후속작처럼 여겨진다. 이 제품의 특이점은 상판과 하판 하우징 분리가 가능하다는 것. 볼캐치 방식으로 결합되어 키캡 분리, 축 교환, 보강판, 흡음재 등 커스텀 시 손쉽게 빌드업할 수 있다.
81키 75% 배열로 VIA 소프트웨어 지원, 핫스왑, 자유로운 키매핑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빈 개스킷, 추가 흡음재가 포함된 넉넉한 구성이 마음에 든다. 방향키 옆에 LED 효과를 넣은 디테일도 호감 포인트. 상옵, 중옵에 따라 뒷 무게추 소재, 스위치, 보강판이 다르니 참고하자. 보글보글 소리가 매력적인 레서판다축은 적당한 키압, 저소음이지만 키감까지 꽤 잘 잡았다.

The Good
- 게임할 때 래피드트리거 기능 유용하다.
The Bad
- RGB 백라이트 주세요.
토프레 가격 압박이 있다면 노뿌 무접점으로 입문해도 좋겠다. 물론 가격보다는 취향에서 갈리는 것이 크겠지만. 저소음 적축보다는 아무래도 타건음이 큰 편이나 절간이 아니고서야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이 제품은 유무선 겸용이자, 기기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블루투스 기능도 탑재했다.
하지만 동글 수납함 어디 갔나요. 그럼에도 무접점, 블루투스 풀배열의 조합이라는 메리트는 무시할 수 없다. 타이핑 소리는 보글과 사각, 그 언저리쯤. 이 감성적인 소리로 입덕한 사람들이 많다는 한무무의 아성은 현재 진행 중.

The Good
- 키캡 색깔 영롱.
- 키보드 여러 요소들의 뛰어난 밸런스.
The Bad
- 복불복 스테빌 소리.
독거미랑 같은 공장에서 출고되는 키보드다. AK74에 있던 노브는 없어지고 가격은 더 낮아졌다. 원하는 기능에 따라 모델을 선택하면 되겠다. 저소음 키보드에 방점을 찍는다면 피치축이 최고지만, 어느 정도 손맛도 챙기고 싶다면 라임축을 고르자. 만약 일정 소음이 용인되거나 타자를 많이 치는 업무가 아니라면 쫀득한 크림치즈축을 추천.
프리플로우 아콘 AK68은 일단 키캡 색감을 너무 잘 뽑았다. 손과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다. AK74의 하우징 구조가 개선된 버전으로 통울림도 나이진 느낌. 넉넉한 8000mAh 배터리 용량도 장점이다. 다만, 에디터의 경우는 괜찮았지만, 몇몇 후기에서 찰찰 거리는 스테빌 소리에 대한 이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입문용 풀배열 기계식 키보드를 찾는다면 꽤 좋은 선택이 될 거다.

The Good
- 저소음 키보드지만 밋밋하지 않은 타건감.
The Bad
- 키보드 각도 조절 미지원.
- 어색한 키 배열에 적응 필요.
독특한 99키 배열이다. 키보드 위 처음엔 갈 곳 잃은 손을 만날 수 있겠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자리는 덜 차지하고 숫자 패드까지 챙길 수 있는 키보드는 흔치 않다. 108키 버전도 있으니 이것 또한 선택. 무엇보다 키감이 환상이다. 저소음 스위치는 사실 어느 정도 타건감은 접고 들어가야 하는데 저소음 딥씨는 심심하지 않아 보글보글한 키감이 매력적이다. 특유 리니어 스위치의 밋밋함은 잊어도 좋다.
스위치로 간단하게 연결 방식을 변경할 수 있지만, 뒷판에 있어 다소 불편하긴 하다. 워낙 키보드 자체가 묵직하니까. 키압도 다소 높게 느껴진다. 가성비 키보드가 쏟아지는 마당에 이 가격을 지불해야 하나 생각이 들 수 있지만, 타건감과 소리 등 이 키보드만이 가진 매력은 분명히 있다.

The Good
- 메탈 보강판으로 내구성도 뛰어나고 깔끔한 폰트, 마감도 고급스럽다.
- 애플 매직 키보드에는 없는 LED 백라이트 기능을 넣어 올빼미족이라면 대환영.
The Bad
- 가끔 게임용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면 유선 연결을 지원하지 않으니 참고하자.
- 검은색이라 오래 쓰면 만질만질해진다.
같은 집안 로지텍 K380은 다소 탱탱거리면서 보강판 치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감이 있었는데 순하다. 댐핑을 잘한 느낌. 애플 매직 키보드와 비교해도 훨씬 부드러운 편이다. 키감은 말랑말랑하고 착지가 부드럽다. 기계식과 달리 키가 푹푹 들어가는 맛이 없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팬터그래프치고는 깊이 눌리는 편이라 키감도 썩 훌륭하다.
임원석에도 어울릴 법한 점잖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이다. 정장을 빼입고 있는 직장인 같달까. 플라스틱 소재지만 마감도 깔끔하다. 아울러 손가락 부분을 둥글게 설계한 인체공학적 기존 키보드 디테일을 간과하지 않은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