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닫기

임볼든 앱을 홈 화면에 추가하여 간편하게 이용하세요.

하단 공유버튼() 선택 후, '홈 화면에 추가(홈 화면에 추가)'

머리속 패션을 끄집어내서 두 손에 쥐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프리즘웍스 CEO 안종혁
2023-02-22T18:18:06+09:00

기적은요, 스케치 한 장에서 시작되더라고요.

국산 스트릿 패션 브랜드 프리즘웍스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뒷자리가 ‘000’으로 바뀌면서 무슨 거대한 일이라도 벌어질 거라고 억측과 예언이 난무했던 2000년도 Y2K. 그 떠들석한 밀레니엄이 평화롭게 지나갈 무렵, 스니커를 수집하던 한 소년의 가슴 속엔 어떤 동경이 피어났다. 때마침 몸집을 마구 키우던 인터넷이 전해온 뉴스 ‘베이프, 네이버후드 등 비전공자의 패션 브랜드 론칭에 전 세계가 열광했던 성공 스토리’는 CEO 겸 디자인 디렉터 안종혁이 단돈 400만 원과 스케치 한 장 들고서 ‘이렇게 생긴 옷 만들어주세요’라며 호기롭게 공장 문을 두드리게 만드는 패기와 비전을 심어주었다. 무모했기에 더 짜릿했던 경험,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프리즘웍스의 역사는 시작된다.

패션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중학교 시절 운동화에 푹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패션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2000년경부터 인터넷이 급속하게 확산하는 시기여서 국내 스트릿 커뮤니티뿐 아니라 해외 커뮤니티 정보도 활발하게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베이프, 네이버후드 같은 1세대 스트릿 브랜드에 매료됐는데요, 먼저 패션 비전공자들이 전형적인 틀이나 고정방식을 벗어나서 그들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대담함이 멋졌고요. 패션이 본고장이라 불리는 유럽권에서도 인정을 받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지금도 미스터 포터 같은 유럽의 유명 편집숍을 가면 재패니즈 관이 따로 있어요. 

10~20년 전만 해도 격차가 컸지만, 요즘은 국내 브랜드도 많이 따라잡아서 유럽에 진출하고 주목도 받고 있죠. 프리즘웍스도 현재 영국 리즈 지역의 ‘All Bluse Co’라는 편집숍에 입점해 있습니다. 

평소 사복 패션을 어떻게 매치하는지 궁금합니다. 즐겨 찾는 아이템이 따로 있을까요?

특별히 사복 패션에 신경을 쓰진 않아요. 의류를 만드는 업에 종사하다 보니 제가 입는 일보다는 옷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데 집중을 하게 되더라고요. 보통은 캐주얼하고 편안한, 아메리칸 캐주얼 룩을 추구하고, 주로 신발에 투자하는 편입니다. 요즘 특별히 즐겨 찾는 아이템은 IYSO의 스니커즈에요. 

SNS로 서칭하다가 다소 생소한 브랜드임에도 디자인이 콘텐츠 구성이 너무 잘 돼 있어서 한번 구매해봤는데 디자인, 퀄리티, 착화감 등 어느 하나 모자라는 게 없더라고요. 국내에 이렇게 신발을 잘 만드는 브랜드가 있다는데 새삼 놀라고 반가웠습니다. 벌써 세 켤레째 쭉 구입해서 신고 있고, 제가 마니아가 된 걸 보고 주변에서도 많이들 구매했습니다. 한국 태생의 훌륭한 신발 브랜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내심 꾸준한 응원을 보내게 되더라고요. 

동종 업계에서 다른 경력 없이 바로 브랜드를 론칭하고 사업을 시작하셨나요?

대학 시절 군 복무로 인해 붕 뜬 한 학기에 재미 삼아 시작해본 게 프리즘웍스였어요. 네. 한마디로 진지하게 시작한 사업이라기보다는 경험에 가까웠습니다. 초기 투자 자본도 고작 쌈짓돈 400만 원이었어요. 친구랑 둘이 딱 이백씩 모아서 시작했습니다. 발상도 심플했어요. 항공 점퍼가 주로 가볍고 튼튼한 나일론으로 제작되잖아요. 근데 저는 면으로 만든 항공 점퍼가 입고 싶었고, 시장에 없다면 내가 입고 싶은 옷 내가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류에 대한 전문지식 하나 없이 밀고 나갔다는 게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작업을 맡길 의류 봉제 공장도 주변인들에게 수소문해서 찾았어요. 그때만 해도 소량 주문 제작을 기피하던 시절이라 딸랑 디자인한 그림 하나 들고서 이런 옷을 만들고 싶다며 공장 사장님께 매달려서 첫 제품이 탄생했어요.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어서 더 재밌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업에 뛰어들 때 주변의 만류는 없었나요? 창업을 밀고 나갈 수 있던 원동력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해요.

사업이라기보다는 색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달려들어서 더 부담 없이 매진할 수 있었어요. 아마 열정도 바로 ‘일이 아니라는’ 포인트에서 지속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다 보니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렇게까지 오래 할줄은 꿈에도 몰랐죠. 저조차 몰랐으니까요. 브랜드 초창기에는 여느 동기들처럼 취업 준비를 하기도 했어요. 

재미 삼아 시작했던 취미가 나이키 매니아, 쇼프, 무신사 등 당시 스트릿 커뮤니티에서 꽤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일이 진행됐고, 결국 취업과 사업, 학업과 사업의 기로에 서게 된 거죠. 이대로 놓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제대로 해볼 각오로 휴학을 했는데 그때 선보인 야상이 대박을 터트립니다. 사이트는 다운되고 1분 만에 품절되고 통장에는 돈이 막 들어오는, 그 세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진 겁니다.

그때 그 히트를 계기로 진지한 사업 노선에 들어섰어요. 제가 고심해서 디자인하고 작업물을 업체에 맡기면 그럴듯한 형태로 만들어진다는 것. 라벨이나 포장지 행택이 의류에 부착되는 과정, 제가 디자인한 제품들이 공산품으로 나온다는 사실이 매력적이고 재밌었어요. 브랜드를 꾸준히 지속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다 여기서 비롯한 게 아닐까요.

프리즘웍스가 2010년 시작해서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는데요. 론칭 이후 10년 이상 살아남았고, 계속 성장세를 타고 있다는 것.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괄목할 만한 성과인 것 같습니다. 감회가 각별하시겠어요.  

10년간 정말 많은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사라졌습니다. 얼마 전 타 브랜드의 멤버들과도 10년 동안 죽지 않고 버텨냈다고, 꾸준하게 성장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얘기를 나눴어요. 마케팅에 별다른 투자를 해오지 않았던 터라 퀄리티와 디자인에 대한 입소문 하나로 사랑받았고, 꾸준한 애정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프리즘웍스는 급변하는 시대에 휘둘려 따라가기보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메리칸 캐주얼’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유연하게 풀어가면서 고유의 색깔을 보여드리는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10주년 기념으로 전시와 더불어 10개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신다고요? 어떤 기준으로 협업 브랜드를 선정하고 컨택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10주년 컬래버레이션의 경우, 제가 브랜드를 시작하고 그간 알게 된 친한 브랜드들과 작업을 진행했고요. 어떻게 보면 저희처럼 최소 5년에서 12년까지 버텨낸 브랜드와 함께했습니다. 이 협업은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컬래버레이션과 좀 다른 개념으로 봐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매 시즌마다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는데, 최근 펜필드, 험멜, 휠라, 토앤토, 쏘로굿 등 평소에 잘 만들지 않던 복종이나 다른 콘셉트의 브랜드와 일할 기회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런 대기업들의 경우 먼저 제안이 오면 내부 검토 후 진행 여부를 결정합니다.

다채로운 협업을 진행하면서 유독 힘들었다거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시니어 모델 김칠두 선생님이 프리즘웍스에서 데뷔했어요. 모델 아카데미에서 수료생 프로필을 보내왔는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바로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딱 저희가 추구하는 느낌 그 자체였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3년 동안 쭉 메인 모델을 맡겨 왔는데, 함께 협업을 진행하던 험멜 측에서 시니어 모델에 대한 반대 의견이 좀 거세게 나왔었어요. 왜 젊은 사람 섭외 안 하고 할아버지를 써야 하냐고. 

하지만 메인 모델을 교체할 생각도 없었고 마케팅팀에서 그냥 밀어붙여서 예정대로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대성공이었어요. 이후에 김칠두 선생님이 뜨면서 홍보 효과도 상당했고요, 타이밍과는 별도로 모델로써도 훌륭했으니까요. 막상 잘되고 나니까 반대하던 사람들이 훌륭한 선택이었다며 태도를 180도 바꿨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 이만큼 했으니까 내년에는 더 잘해야겠다는, 기대에 부흥해야 한다는 압박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상품 개발이나 아이디어는 어떻게 해소하나요?

2018년까지는 제가 이제껏 쌓아둔 보따리를 전부 다 풀었어요. 만들고 싶었던 옷은 정말 다 만든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이후의 아이디어 뱅크는 새롭게 올라오는 젊은 피들에 맡기고 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멤버를 보면 열정이 엄청납니다. 마치 프리즘웍스의 첫 옷을 만들었을 때, 10년 전의 저처럼요. 트렌드를 숨 가쁘게 따라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에 밴, 이 시대의 주역들이 솟아오르는 아이디어를 마음껏 분출하고 실현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게 맞는 것 같아요. 

8년간 소진할 아이디어를 쌓아두셨다니, 대체 어떤 옷들이 그렇게 만들고 싶었나요?

기본 골자는 프리즘웍스의 첫 작품, 코튼으로 만든 항공 점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형태 자체를 파격적으로 바꾼다기보다는 소재에 변화를 주는 거예요. 본질은 유지하되 디테일을 살짝 비트는 방식으로. 최근에는 벨로어 패딩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상당했습니다. 다만, 잘 팔리는 것을 보고 카피 제품이 쏟아져 나와서 가슴 한구석이 살짝 아리긴 했죠. 정형화된 것에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한 발짝 더 나가는 시도에 매력을 느껴요. 

그 연장선으로 원단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일본에서 거래해온 원단 공급처가 있어요. 한국도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원단 기술에서는 따라잡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거래처와 연계해서 시장에 없는, 제가 추구하는 원단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오랫동안 고착되었던 패션업계의 노동법 위반 이슈가 요즘 들어 또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프리즘웍스의 근무환경은 어떤 편인가요? 

아시다시피 프리즘웍스는 바닥에서 올라온 스트릿 브랜드입니다.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와는 다른 뿌리에서 시작한 만큼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근무환경과 복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야근을 싫어하는 타입이라서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을 때는 8시간의 법정 근무시간 및 공휴일을 준수하고 있고 가급적 업무 시간에만 집중해서 일을 진행하도록 독려하는 편입니다. 

지난 10년간 프리즘웍스를 거친 사람이 열 명이고 퇴사한 사람은 딱 두 명이예요. 모두 본인의 브랜드를 론칭하려고 독립 개념으로 사표를 냈고, 그 중 한 명은 다시 돌아와서 복직했어요. 직원들에 대한 처우는 직원들이 직접 답해야 가장 공정하고 정확하지 않을까요. 일단 현재까지의 이직률로 봐서는 그래도 다닐만한 회사인 것 같습니다.

임볼든에서는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거나 접하기 어려운 외국 브랜드를 자주 소개하고 있는데요, 클래식 패션의 본고장, 영국에서 역으로 한국 브랜드 제품을 수입한다는 점이 반갑고 신선합니다. 어떤 계기로 영국 편집숍에 입점하셨어요?

외국에서는 인스타그램을 통한 비즈니스가 활발한 것 같습니다. 영국으로 입점 제안을 받은 것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였어요. 디엠으로 시작해서 이메일로 이어졌고, 또 이메일이 한국 방문으로 이어져서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직접 만지고 입어 보더니 퀄리티를 높게 평가하더라고요. 특히 일본 브랜드에 비해 단가는 합리적인데 제품과 디자인은 동등하게 견줄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성장했고, 그 점에서 한국 시장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수 있겠죠. 격차가 뚜렷했던 불과 몇 년전과는 달리 지금은 국내에도 잘 만드는 브랜드가 정말 많습니다.   

편집숍에서 옷을 구매한 영국 고객들이 자진해서 올리는 인스타그램 포스팅도 인상적이었어요. 프리즘웍스를 입고 만족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발적 홍보라고 해야 할까요. 프리즘웍스 계정을 태그해서 본인의 착샷을 올리는데, 똑같은 옷이라도 영국인이 입으면 사뭇 달라보이는 게 신기했습니다. 분명 일반인인데 중년의 아저씨가 걸쳐도 화보컷이 되더라고요. 또 그 피드를 보고 개인 고객들이 연락을 해오는 연쇄작용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에도 F/W 아우터를 중심으로 주문량은 계속 증가 추세고요. 내년쯤에는 해외 배송도 시작해 볼 생각입니다.

매일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 EDC(시계, 지갑, 가방 등)를 소개해주세요.

한번 구매한 제품은 잘 버리지 않고 오래 사용하기 때문에 소비에 신중한 편이에요. 지갑은 파란색의 고야드 모델을 6년째 사용 중이고요. 처음에 순전히 색감만 보고 구매했는데 질리지 않아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내구성은 별로라서 아쉬워요. 시계는 애플 워치를 사용합니다. 아내가 생일 선물로 에르메스 버전을 사줬는데 스트랩을 바꾸고 다녀서 아무도 에르메스 버전인지 모르더라고요(웃음).

스트랩은 이번 ‘10주년 기념’ 협업 브랜드의 제품입니다. ELK라는 가죽공예 브랜드에서 만들었고요, 오더 메이드로 2가지 가죽을 믹스해서 제작했습니다. 직접 사용해 퀄리티와 완성도가 높아서 10주년 이벤트에도 협업을 제안해서 함께 작업했어요. 가방은 포터의 제품을 즐겨 삽니다. 백팩부터 토트팩, 브리프 케이스 등 다양한 품목을 구비하고 있는데, 역사가 오래된 만큼 퀄리티가 제대로예요. 매년 1~2개씩 계속 사 모으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