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라는 로테이션 소개팅에 나갔다. 운명의 짝을 만났냐고? 결론부터 말하면, 우선 재미는 있었다.
로테이션 소개팅
혹은 단체 소개팅
친구가 로테이션 소개팅에 다녀왔다고 했다. 요즘 유행이란다. 일반적인 소개팅과는 달리 한 번에 여러 명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날 친구는 15명의 이성을 만났다. 8명에게 번호를 받았고, 그중 3명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줬다. 지금 2명의 이성과 연락하고 있는 중이라고.
요즘 사람들 모이는 곳에 에디터가 빠질 수 없지. 바로 로테이션 소개팅을 찾아봤다. 프립, 문토, 소모임과 같은 취미 모임 플랫폼에 다양한 로테이션 소개팅이 있었다. 참여자의 나이대는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최소 5명부터 최대 15명까지 모임마다 인원은 다양했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모두 비슷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여러 명의 이성을 만나는 방식. 10~30분 동안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시간이 지나면 남자가 다른 테이블로 이동한다.
로테이션 소개팅 신청
선착순 아니고요
프로필 사진부터
문토 로테이션 소개팅에 신청했다. 유감스럽게도 첫 소개팅은 실패. 참여조차 할 수 없었다. 너무 늦게 신청했을까. 하루 종일 대기 리스트에 있다가 자동 취소됐다. 내가 뭐가 모자라서! 소개팅에 참여하는 이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프로필 사진에 얼굴이나 몸이 드러나 있다는 것. 맞아 신청 조건으로 ‘깔끔한 외모’가 있었지. 내 프로필은 캐릭터 루피가 울부짖고 있었다.
아무나 안 뽑아요
로테이션 소개팅을 신청할 땐 본인의 신상정보를 적어 내야 했다. 나이, 키, 직업, 장점과 같은 것들이다. 장점으로는 흰 피부, 운동 좋아함, 다정다감 등 나를 수식하는 말을 쓰면 된다. 명함이나 사원증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자에겐 키 조건이 붙기도 한다. 174cm를 넘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
소개팅 호스트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솔로> 남규홍 PD가 출연자를 엄선하듯, 호스트는 사람들이 낸 신상정보를 토대로 참여자를 선별했다. 외모는 단정한지, 하는 일은 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등 검증을 거친 사람만이 소개팅에 참여할 수 있는 듯했다. 검증을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 대기자들이 열 명씩 쌓여갔다. 그만큼 신청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
로테이션 소개팅 실전
실화입니다
내 운명을 찾아
두 번째 소개팅 신청은 성공했다. 얼굴이 나온 사진으로 프로필 사진을 바꾼 뒤였다. 소개팅 장소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카페. 소규모 모임으로, 남자 6명과 여자 6명이 2:2로 짝 지어 30분 동안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모든 대화가 끝나면 더 얘기해 보고 싶은 이성 2명을 적는다고 했다. 서로 호감이 있어야만 연락처가 공유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소개팅 장소에 도착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늑하고 로맨틱한 분위기. 프로필 카드도 적었다. 나이와 직업, 키, 지역, 종교, 음주 및 흡연 여부 등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이다. 프로필 카드 내용을 기반으로 자신을 소개한 뒤 대화가 시작됐다. 사람들의 나이는 30대 초중반이 대부분. 직업은 공무원부터 요식업, 대기업 엔지니어까지 다양했다. 물론 어색하다. 낯선 네 명의 남녀가 처음 모였으니까.
대화는 어떻게?
대화 질문지가 주어지기도 한다. 눈앞에 있는 질문지를 뽑아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다. 어색한 첫 만남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별로 도움은 안 됐다. 예를 들면 ‘전화가 좋아, 카톡이 좋아?’와 같은 질문들. 저는 카톡이 좋아요. 저는 전화가 좋아요.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대답하자 질문은 끝이 났다. 이 대화로 상대방에 대한 어떤 정보를 알 수 있을까.
그보다는 ‘일하면서 카톡 할 수 있는지’, ‘재택근무는 자주 하는지’ 등의 질문이 더 좋았다. 짧은 대답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들이다. 그 질문에 답하며 나 또한 상대방의 하루를 알게 됐다. 일은 얼마나 많고, 일하지 않을 땐 무엇을 하는지. 일이 없을 땐 주로 운동한다는 그 남자의 어깨가 넓었던 기억이 난다. 대화를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모습을 읽으려 했기 때문이리라.
로테이션 소개팅의 남자들
베스트와 워스트
그날 저녁 로테이션 소개팅에서 6명의 남자를 만났다. 얼굴과 성격, 함께 나눴던 대화 모두 제각각이었다. 하하 호호 웃음이 나는 사람과 침묵만이 이어지던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무엇이 달랐을까?
이런 남자 YES
표현은 확실하게
나에게 호감을 느낀 남자가 있었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줄곧 눈 맞추려 했고, 내 말에 질문하는 타이밍도 자연스러웠다. 무턱대고 들이대는 게 아닌, 내게 호감 있다는 걸 느낄 정도. 사랑을 쟁취하는 남자 너무 좋지 않나. 시간은 짧다. 긴가민가 고민할 시간은 없다.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
호감 여부를 떠나 좋은 기억으로 남은 남자도 있다. 그 순간에 충실했던 남자다. 서로 모르는 네 명의 남녀가 처음 만나면 당연히 낯설고 어색하겠지. 하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노력하는 남자가 있었으니. 먼저 자기 얘기를 꺼내고, 다른 사람들을 살피는 그 남자 덕에 분위기는 쉽게 누그러졌다. 노래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가사가 생각났다. ‘만남 그 자체에 연연하기보다, 한 번을 만나더라도 그때 분위기에 최선을 다하려는’ 그런 사람. 짝을 찾으려는 조급함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려는 모습이 좋았다고 할까.
이런 남자 NO
용기가 없다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쳐다보던 남자가 기억난다. 눈은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끝 흐리길 일쑤. 마치 화장실 급한 사람처럼 안달복달했다. 아마 긴장해서 그럴 거다. 성격이 소심하거나, 여기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겠지. 하지만 돈 내고 온 만남 자리에서 소외되는 건 너무 슬프지 않나. 누군가와 꼭 매칭되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밖으로 드러낸다는 게 더 중요하다.
패션 테러리스트
스웨트 티셔츠 한 장 입고 온 남자는 인기가 없었다. 유행 다 지난 듯 색 바랜 티셔츠였다. 집에서나 편하게 입을 옷을 왜 입고 나왔을까.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깔끔하게 차려입고 와 더욱 비교됐다. 옷에 힘 잔뜩 주라는 말은 아니다. 좋은 사람 만날 땐 좋은 옷을 입으라는 거다. 단정하고 깨끗하게.
면접 보세요?
어떤 남자와의 대화는 꼭 면접 같았다. 취미는 뭔지, 직장은 어디에 있는지 등 형식적인 질문 답변만 오갔다. 남자가 너무 말을 아꼈다고 해야 하나.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은 느껴지지 않았고, 우리 사이에 대화랄 건 없었다. 어쩌면 취업 면접에서 더 많은 얘기를 했을지도. 내가 마음에 안들어서라고? 나 어디 가서 안 빠지는데.
로테이션 소개팅 어때?
못 먹어도 고!
그날 밤 세 커플이 탄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잠깐의 만남이 아쉬웠던 이들은 이제 자유롭게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가겠지. 내 얘기는 아니다. 내 사랑의 작대기는 엇갈린 것 같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재밌었으니까.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도 좋았다. 평소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이 많은 사람을 어디 가서 만나볼까. 무엇보다 의미 없는 대화로 시간 낭비할 일 없다는 게 최고 장점. 조금만 얘기해 봐도 바로 느낌 온다는 거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