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설된 지 반년이 조금 넘은 하정우의 SNS에는 매번 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다. 연예인을 향한 댓글은 보통 애정표현이 대다수지만, 여기는 뭔가 이상하다. 별명 지어 주세요, 유튜브 채널명 추천해 주세요, 첫 차 이름 뭐로 할까요… 댓글 창에 인터넷 작명소가 열린 이유는 하정우가 일일이 답글을 달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정우 표 유머 감각은 유명하다. 배우 김향기에게 선사한 ‘김냄새’라는 파격적인 별명만 봐도 그렇다. 덕분에 가볍고 친근한 이미지를 지녔고, 본인 또한 그러한 모습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유쾌함 뒤에는 가볍지만은 않은 단단한 내실이 자리한다.
하정우라는 사람의 면면은 스크린에서만 접하기엔 너무나 다채롭다. 관객석에서는 몰랐던, 작품 바깥에서 만나는 하정우의 진중함을 소개한다.
배우 하정우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하정우는 친숙한 배우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호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익숙함 속에 담겨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잊을 새 없이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니까. 충무로 다작왕으로 이름난 그의 최종 목표는 영화 100편 출연하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는 그의 철학으로부터 기인한 행동이다. 대표작을 꼽자면 열 손가락이 부족할 필모그래피, 1억 관객을 동원한 최연소 배우라는 기념비적인 타이틀은 꾸준한 활동의 결과다.
그저 탄탄대로만 걸어왔을 듯한 하정우에게도 처음은 있었다.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제대로 각인시킨 <추격자> 이전에도 1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더 이전에는 오디션에서 수차례 고배를 마시며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기울어버린 가세 때문에 20대의 절반 이상을 돈에 허덕이기도 했다. 그럴수록 그의 발걸음은 연습실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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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라 해야 할지 탓이라 해야 할지, 그의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운 연기력은 종종 관객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재능을 타고났다든지, 연기가 아니라 실제 모습 아니냐든지 하는 식으로. <용서받지 못한 자> 속 하정우를 보고 군 시절의 쓰라림이 되살아나는 걸 보면, 아니 땐 굴뚝에서 피어난 오해는 아니겠거니 싶다. 하지만 그렇게 곡해하기엔 하정우의 대본은 너무나 지저분하다.
그의 연기는 공부-연습-조율의 단계를 거쳐 산출되는, 치밀한 노력의 결과값이다. 먼저 시나리오를 교과서 삼아 연구하며 캐릭터에 뼈와 살을 붙인다. 대사는 물론 손짓 한 번, 눈썹의 작은 까딱임까지 계획되어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연습에 돌입. 연습 횟수를 기록하는 바를 정(正)자가 대본을 빼곡하게 채운다.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한 ‘하루에 만 번씩 읽으면 그러지 말라고 해도 감정이 실린다’는 그의 말은 다분히 진심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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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단한 노력은 현장을 넘어 일상에서도 이루어진다. <범죄와의 전쟁>을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중국집 장면. 극 중 최민식을 무시하는 하정우의 심리를 완벽하게 대변한 소주 가글은 하정우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기사식당에서 입을 헹구듯 술을 마시는 손님을 보고 착안했다고. 단순히 운이 좋아서 발견한 광경이 아니었다. 관찰과 기록, 이 두 가지는 그가 평상시에도 놓지 않는 행동이니까. 자연스럽고 깊이 있는 연기를 위한 의식적인 노력인 셈이다.
관객이 스크린에서 목격하는 자연스러움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부자연스러운 과정에서 탄생한다. 그를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면면히 작품에서 만날 수 있었던 건, 담담하게 분투해 온 하정우의 이면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영화감독 하정우
시대를 앞서간 롤러코스터 감독
하지만 노력과 결과가 정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은 하정우도 피해 갈 수 없었다. 각고의 에너지를 쏟아부었음에도 좌절을 안겨 준 작품이 그에게도 있었다. 바로 두 번째 연출작이었던 <허삼관>이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화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흥행 성적을 거둔 것은 그에게 뼈아픈 기억. 배우만 하라는 혹평이 비수처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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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이 씁쓸하게 극장에서 내려간 지 10년. 그는 새로운 연출작 <로비>와 <윗집 사람들>의 공개를 앞두고 있다. 숨 고르기가 조금 길어졌을 뿐, 감독의 꿈은 여전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하정우의 관심은 연기를 넘어 영화 전반에 있었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배우보다는 영화감독이 더 앞선 꿈이기도 했다. 그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코미디’는 하정우가 만드는 이야기를 관통하는 키워드. 연출 데뷔작인 <롤러코스터>부터 <윗집 사람들>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코미디가 빠진 작품은 한 편도 없었다.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유일한 기준이 재미라고 말한 사람답달까.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코미디 장르를 고수하는 뚝심은, 하정우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주성분이 유쾌함이기 때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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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에 역주행 신화가 존재하듯, <롤러코스터>는 때늦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숏폼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 댓글 창은 웃느라 바쁜 자음의 향연이다. ‘모든 인물이 하정우 같다’고 평가받는 이 작품이 주목받는 건, 하정우 표 위트가 좀 더 효과적으로 먹혀들어 갈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화가 하정우
이래 봬도 15년 차 작가
작년 10월, 미술계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 하정우의 개인전 때문이었다. 유수의 작가가 거쳐 간 권위 있는 공간인 만큼, 전업 작가가 아닌 배우가 전시를 개최한다는 사실은 다소 놀라운 일이었다. 실제로 전시 기자 간담회에서는 유명세의 권력을 언급하며 각오를 묻는 날 선 질문이 그에게 던져지기도 했다.
답변은 이러했다. 각오가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서 있지 못했을 거라고. 2010년에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안 좋은 내용이 98% 정도였다고. 지금 작가로 인정을 받고 안 받고는 나에게 그렇게 큰 의미는 아니라고. 어느덧 열네 번의 개인전을 치렀음에도 하정우는 ‘작가’라는 타이틀 앞에 겸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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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붓을 잡을 때만 하더라도 그림은 수단에 가까웠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치기 위한, 모아 온 그림을 죄다 팔아야 했던 아버지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한. 지금은 연기로 해소되지 않는 마음의 덩어리를 쏟아내기 위한 행위에 가깝다. 연기가 감독의 오브제가 되어 의도를 재현하는 논리의 영역이라면, 그림은 억눌린 창작욕을 분출하는 감정의 차원이었다. 그렇게 그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선순환을 만들었다.
사실 하정우는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이 없다. 데생만 오래 할 까봐 그랬단다. 대신 파블로 피카소, 장 미쉘 바스키아, 엘리자베스 페이튼 등 여러 화가의 작품을 스승 삼아 그려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명확한 스타일을 규정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는 지점이지만, 그럼에도 ‘그리고 싶은 그림’을 고집하는 강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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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 평론가의 시선이 어쨌건 하정우의 작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죽을 때까지 그릴 것 같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 그는 그저 그리고 싶을 뿐이다. 그에게 붓을 잡을 이유는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걷는 사람 하정우
소문난 걷기 예찬론자
‘걷는 사람’이라는 별칭이 붙으려면 어느 정도여야 하는 걸까? 하정우의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 첫 단을 장식하는 제목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하루에 3만 보, 가끔은 10만 보. 한강 변을 자주 걷는 그는 가볍게 걸을 땐 한남대교부터 잠실대교까지, 좀 더 갈 땐 광진교까지도 간다. 지금도 한강 어딘가를 집 마당처럼 즐겁게 거닐고 있을지도.
‘걷기’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하정우의 기묘한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가벼운 수상 공약으로 내걸었던 국토대장정은 동료 배우들과 577km를 횡단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변해버렸고, <아가씨> 촬영 당시에는 강남에서 마포까지 매일 걸어 출근했다. 하루 10만 보를 위해 하와이에서 새벽 5시부터 걷기만 하는 걸로 모자라, ‘걷기 학교’라는 모임을 만들고 스스로 교장이 되어 사람들을 걷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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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보여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던 정처 없는 시절, 그는 그저 걸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가만히 있을 때면 꼬리를 물던 상념이, 발을 내딛는 동안엔 조금씩 흩어졌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두 다리만 움직일 수 있다면 누구나 계속 걸을 수 있다는 사실. 그 단순한 진리가 그를 걷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하정우에게 걷기는 만병통치약과 같다. 번잡한 머릿속을 비우는 휴식의 시간이자, 건강과 관리를 책임지는 꾸준한 운동 루틴이다.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게 하는 영감의 창구이면서 스스로를 다잡는 의식이기도 하다. 그는 걷기 속에서 삶의 균형을 찾고, 자신을 단련하며, 인생의 힌트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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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한다. ‘우린 각자의 한강이 있어야 한다’고. 그가 ‘걷기 학교’의 교장을 자처하는 건, 단순한 유머가 아닌 자신이 발견한 길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꼭 걷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삶을 지탱해 줄 무언가를 지니기를 바라는 하정우의 한 마디에는, 배우도 감독도 화가도 아닌 ‘김성훈’의 인간적인 온기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