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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산업의 진화를 이끌고 있는 세 개의 견인차
2023-02-22T18:05:57+09:00

미래의 게임, 그 단상에 대한 스케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의 대유행으로 대다수 산업이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가운데, 일부 영역에서는 전에 없던 가파른 성장세가 관찰되고 있다. 배달 서비스, 원격 교육, 게임 분야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언택트(untact)가 전 세계적인 요구가 되면서 수혜 아닌 수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게임 산업은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다. 배달 서비스나 원격 교육의 성장 같은 경우 먹고 사는 문제 혹은 노동력의 재생산과 같은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에 직결되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게임은 전혀 무관한 영역이지 않은가. 게임을 못 한다고 배를 주리는 것도, 사회가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상적인 성적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보면, 2020년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약 17조 93억 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9.2% 성장한 수치이다. 사실 성장률 자체만 보면 다른 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무엇을 근거로 성장을 얘기하냐고?

게임백서 통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피시방이나 아케이드 게임(쉽게 말해 오락실 게임)이 포함되어서 그렇다. 대신 2019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PC 게임 분야가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고, 모바일 게임 분야는 21.4%, 가정용 게임기로 즐기는 콘솔 게임은 24.9% 늘어났다.

세계 게임 시장은 더 크게 성장했다. 게임 관련 시장조사기관 뉴주(Newzoo)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게임 시장은 전년 대비 19.6% 성장해서 매출이 약 1,749억 달러, 우리 돈으로 200조 원이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에는 1,521억 달러 매출에 9.6% 정도 성장했으니, 2020년에는 두 배 정도 더 성장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특히 모바일 게임과 콘솔 게임 시장의 약진이 눈에 띈다. 2019년 대비 모바일 게임매출은 25.6%, 콘솔 게임은 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공간, 매체를 넘어서다

이와 같은 게임 산업의 비약적 성장을 이끄는 트렌드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크로스 플레이, 게임구독, IP 게임이 그것이다. 크로스 플레이는 하나의 게임을 모바일과 PC, 콘솔 게임기 등에서 모두 즐길 수 있는 걸 의미한다. 넷플릭스가 스마트폰이나 TV, 컴퓨터 등 기기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원할 때,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기기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대표적으로 <포트나이트>나 <배틀그라운드>, 작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어몽 어스> 같은 게임은 PC와 모바일, 가정용 게임기에서 모두 즐길 수 있다. 최근에는 <리니지> 제작사 NC소프트에서도 ‘퍼플on’이라는 이름의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크로스 플레이 대열에 합류했다.

크로스 플레이를 지원하는 게임이 늘어나는 이유는 단순하다. 특징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각 기기 사이의 호환성을 요청하는 게이머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모바일은 휴대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즐기긴 좋지만, 화면이 작고 게임 컨트롤이 불편하다. 반면 콘솔이나 PC는 큰 화면에서 재미있게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들고 다니며 게임을 하긴 어렵다. 그래서 모바일 게임은 모바일 게임, PC 게임은 PC 게임, 콘솔 게임은 콘솔 게임으로 나눠서 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콘솔 게임을 PC에서 이어서 하고 싶거나, 고사양 모바일 게임을 조작이 편한 PC로 즐기고 싶다는 소망이 이제는 게임 산업의 기본값이 된 것이다. 

하나의 타이틀을 여러 플랫폼에서 출시한 경우도 있었지만, 세이브 파일이 공유되지 않아 각각의 플랫폼을 오가며 게임을 이어서 플레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크로스 플레이를 지원하는 플랫폼이나 게임 타이틀은 이와 같은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다는 데서 큰 호응을 얻어왔다. 콘솔 게임을 PC에서 이어서 하고 싶거나, 고사양 모바일 게임을 조작이 편한 PC로 즐기고 싶다는 소망이 이제는 게임 산업의 기본값이 된 것이다. 

온라인 게이밍 서비스의 미래, 그리고 어른들의 사정

크로스 플레이가 현실화 될 수 있었던 데는 인터넷 기반 게임 서비스 및 구독 서비스가 한몫했다. 게임 진행 상황은 이제 CD나 하드디스크 같은 전통적인 저장장치가 아니라 게이머 계정에 귀속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게임이 인터넷 연결을 필수로 요구하는 모바일 게임 양식을 채택하고 있다. 

여기에 게임 사업 모델은 패키지 게임 판매에서 다운로드 판매, 아이템 판매나 구독형(일정 기간 해당 게임 무제한 플레이 가능) 혹은 부분 구독형(가입 기간 특전 제공) 사업 모델로 변화해왔다. 예를 들어, 현재 약 1,5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MS 엑스박스 게임 패스는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면 100여 개의 게임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애플도 애플 아케이드라는 게임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고 해도, 현재의 변화가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는 아니다. 예전에도한 달 이용권을 결제하는 방식 등으로 온라인 게임을 이용할 수 있었다. 여기에 게임 수만 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고 해도, 현재의 변화가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음악 서비스가 MP3 파일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바뀐 것처럼, 게임 구독 서비스도 향후 스트리밍으로 게임을 즐기는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가 될 것이다. 이미 MS 엑스클라우드를 비롯해 아마존 루나, 구글 스테디아, 페이스북 게이밍, 엔비디아 지포스 나우 등 주요 기업들이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에 대한 온갖 얘기들은 미래시제에 국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보인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와는 달리 게임은 서비스와 유저가 인터랙티브하게 반응해야 하는데, 그런 반응 속도도 늦고, 게이머들이 좋아하는 최신 게임도 적다.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구독 서비스에서 저작권과 수익 배분 문제, 다시 말해 어른들의 사정을 해결해야 한다.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구독 서비스에서 저작권과 수익 배분 문제, 다시 말해 어른들의 사정을 해결해야 한다. 음원이나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역시 예전에 많은 갈등을 빚었던 것처럼, 저작권과 수익 배분 문제는 콘텐츠 서비스에서 피해 갈 수 없는 과제이다.

지난한 과정이더라도 이러한 법적·사회적 문제가 일단 해결된다면, 다른 게임구독 서비스와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 산업은 삽시간 내에 융성할 것이다. 규칙이 정해지면 그에 맞춰 움직이면 되니까.

게임, 현실을 만들어내다

마지막으로, 게임 지식재산권(IP), 후속작이나 관련작을 만들 수 있는 게임 캐릭터 및 세계관, 브랜드에 대한 권리의 중요성이 점차 증대하고 있는 현상도 게임 산업 전반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작년에 인기를 끌었던 <동물의 숲>이나 <리니지M>, <쿠키런 킹덤> 등이 모두 기존 게임 IP를 활용한 게임이다.

넷플릭스에서 공식적으로 게임 사업 진출을 선언한 이유도 이 게임 IP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 콘텐츠도 그렇지만, 게임에서의 IP는 특히 중요하다. 게임 제작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시간과 자금이 투여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한 게임이 성공하면 조금 수월하게 후속작이나 관련작을 만들 수 있고, 더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다. 슈퍼마리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인기 게임일수록 여러 가지 시리즈를 반복하며 게이머에게 친숙해진다. 하나의 IP를 영화나 만화 같은 다른 분야로 확장해 다양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게임은 ‘체험형 경험’을 제공하는 콘텐츠라서 대체로 이용자들의 애착이 영상이나 음악 콘텐츠에 비해 깊은 편이다. 게임이 아이돌 그룹의 노래라면, 게임 IP는 아이돌 그룹 자체라고 생각해도 좋다.

과거의 게임이 현실의 충실한 재현을 목표로 했다면, 오늘날의 게임은 게임 속 캐릭터나 세계관 혹은 게임 커뮤니티 문화가 현실에서 유행하는 등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게임이 현실의 충실한 재현을 목표로 했다면, 오늘날의 게임은 게임 속 캐릭터나 세계관 혹은 게임 커뮤니티 문화가 현실에서 유행하는 등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메타버스를 이끌어 온 매개체도, 앞으로 이끌어 나갈 주역도 결국 게임이다.

또한, 즐기는 장르에서 보는 장르, 그러니까 스포츠로 바뀌고 있기도 하다. 한때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문화였던 e스포츠는, 이제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아직 여러 가지 따뜻하지 못한 시선을 받을 때가 많지만, 이미 게임은 독립된 영역을 구축한 문화적 소세계이다. 현재의 가파른 성장세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대 바깥의 결말일 것만은 자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