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등장한 이래 이런 적이 또 있을까. 지난 3월 24일 스태티스타가 공개한 이 지도는, 지금 세계에 어떤 상황에 부닥쳐있는지를 보여준다. 지역적이거나 국가적 차원이란 차이는 있지만, 일부 국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학교가 문을 닫았다. 학교가 문을 닫았다는 건 그 사회가 잠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택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치사율도 낮은 전염병으로 지구 전체의 지역 경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외계인이 쳐들어오거나 좀비가 갑자기 창궐하지 않는 이상,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서울, 뉴욕, 도쿄, 파리, 런던, 상파울로, 이스탄불, 베이징이 멈췄다. 어린 시절 부루마불 게임에서 보던 주요 도시 중에서 갈 수 있는 도시는 이제 (사실상)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은 IT 산업도 피해갈 수 없었다. MWC와 구글 I/O 같은 주요 행사가 취소됐고, 애플 WWDC 같은 행사는 웹 행사로 바뀌었다. 로봇 자율 주행 트럭을 만들던 스타스키 로보틱스를 비롯해 재정이 위태로웠던 기업은 폐업했다. 차량공유회사 겟어라운드, 위성 통신회사 원웹 등 몇몇 스타트업은 파산을 고려 중이다.
우버, 에어비앤비를 비롯해 여행, 숙박, 공유경제 사업을 하던 많은 기업도 벼랑 끝에 몰렸다. 돈이 흐르지 않자 이들은 일단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택했다. 그나마 살아남으면 다행이지만, 이미 많은 회사와 일자리가 사라졌다. 안 그래도 수익을 못 내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정리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는 도화선이 됐다.
구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페이스북 같은 거대 IT 기업은 딜레마에 빠졌다. 넷플릭스 이용이 늘면서 인터넷 트래픽 과부하가 문제로 떠올랐다. 결국, 넷플릭스는 EU의 제안을 수용해 유튜브와 함께 기본 화질을 낮췄다. 아마존은 갑자기 혼란 속 백기사가 됐다. 주문량이 폭증했지만, 물류 처리 능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필수 상품이 아니면 배송을 미루겠다고 선언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이용 시간이 늘었으나 광고주가 줄어들었고, 애플은 제품 생산 계획이 모두 늦춰졌다.
원격 근무와 학습이 시작되면서, Zoom과 MS 팀즈, 슬랙 같은 원격 대면 앱 이용자는 많이 늘어났다. 일상은 빠르게 재택근무와 교육으로 넘어가는데, 이번엔 스마트 기기가 없거나 사용법에 미숙한 노인과 어린이, 노숙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문제가 됐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현재 집 없는 어린이가 미국 뉴욕에서만 10만 명이고, 이들이 사는 대피소에는 와이파이도 지원되지 않는다.
그저 일어나고 있는 일만 정리해도 이렇게 혼란스럽다. 하지만 몇 가지 뚜렷한 흐름은 있다. 먼저 IT는 인류를 구하진 못했지만, 일상을 지탱하는 생명선이란 사실이 분명해졌다. 예전에는 인터넷 회선만 기간 산업 취급을 받았다면, 이젠 인터넷 서비스도 기간 산업과 마찬가지로 멈추면 안 되는 존재가 됐다.
일과 생활의 중심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었다. 일도 취미도 교육도 모두 인터넷으로 하는 시대로 강제전환했다. 마지막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거라던 신기술은 별로 힘을 쓰지 못했다. 힘을 쓰진 못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힌트를 얻었다. 갈 길을 겨우 찾았다고나 할까.
거대 IT 기업은 오히려 소중한 존재가 됐고, 당분간 테크래시는 크게 거론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세계에는 테크래시라 불리는, 거대 IT 기업들에 대한 반발이 상당히 격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엘리자베스 워런은 공약으로 아마존이나 구글, 페이스북 같은 독점 기업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팬데믹은 그런 흐름을 거꾸로 돌렸다. 거대 IT 기업은 오히려 소중한 존재가 됐고, 당분간 테크래시는 크게 거론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클라우드로 옮겨간 삶은 당분간 혼란스럽겠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낸다.
6개월에서 1년이 지나면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처럼,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동안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 같은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운영했던 분야는 빠르게 서비스 로봇이 그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 간 이동이 막힌 상황에서 자동화 말고는 대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모든 변화를 빠르게 이어주는 기술로, 5G에 대한 투자 역시는 늘어날 수 있다.
위기를 둘로 나누면 위험과 기회가 된다고 한다. 코로나19 상황이 빨리 끝나고, 혹은 계속되어도 어쨌든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야 한다면,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너진 자리는 분명히 보인다. 그 자리에 다시 어떤 집을 지어야 할까? 모두가 굳세게 생각해야 할 때다.
Edited by 조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