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펼쳐진 북미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 슈퍼볼 때마다 함께 따라오는 화두는 역시 광고다. 이 광고 전쟁 속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브랜드의 기발한 센스를 엿볼 수도 있고, 동시에 전 세계의 흐름과 동향을 살펴보는 고마운 참고서가 되기도 한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 그저 웃기고 재미있는 광고도 있었지만, 팬데믹 사태 이후로 세계가 나아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전기차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한 완성차 업체들, 슈퍼볼 최초로 등장한 암호화폐 관련 기업의 광고들,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여행업계, 친환경 문제 등의 흐름이 모두 슈퍼볼 광고 안에 들어있었다. 이 흐름을 주도했던 광고의 주인공 중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몇 개를 모아 소개한다.
BMW | ‘Zeus & Hera’
완성차 업계에 부는 전동화의 바람이 거세다. 이는 2022년 슈퍼볼에 등장한 광고만 봐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수준이다. 단적인 예로, 올해 슈퍼볼에 광고를 내보낸 자동차 제조사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전면에 전기차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광고를 내보낸 건 BMW로, 2015년 이후 7년 만에 내보내는 슈퍼볼 광고이기도 하다.
BMW는 최근 출시한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 iX와 함께 고대 그리스 제우스 신을 연기한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내세웠다. 대충 내용은 일상에서 번개(전기)가 필요한 이웃 주민의 시답잖은 부탁이나 들어주면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제우스가 iX를 타면서 전기로 이를 작동시키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줄거리다. 사실 뻔한 시나리오긴 하다.
Kia | ‘Robo Dog’
반면 EV6를 앞세운 기아의 광고는 상당히 잔잔하면서도 감성적인 콘셉트로 꾸몄다. 로봇 개인 로보독을 등장시켰는데, 배터리 방전으로 작동이 정지된 로보독을 V2L 시스템을 탑재한 EV6로 충전해 다시 살려내는 듯한 연출을 그려낸다. 앞선 BMW 광고와 비교하면 인풋이 얼마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예산과 기간이 소요됐다고.
참고로 이 광고를 위해 기아가 로보독 제작에 들인 시간은 총 1,900시간이었으며, 광고 제작에도 무려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의외로 반응은 나쁘지 않아서, BGM으로 깔린 보니 타일러의 ‘Total Eclipse of My Heart’가 감성적인 분위기에 시너지를 더하며 꽤 호평을 받았다.
Coinbase
여전히 떡상과 떡락에 울고 웃는 코인 시장의 모습을 보여주듯, 올해는 슈퍼볼에 최초로 암호화폐 기업들의 광고도 등장했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바로 코인베이스. 무려 60초짜리 광고였는데, 영상은 1분 내내 그저 화면을 부유하는 QR 코드만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실제로 이 QR코드를 찍으면 코인베이스 앱 다운로드로 자동 연동이 되는데, 여기서 앱을 받아 신규가입을 하면 15달러의 비트코인을 제공하는 이벤트였다. 덕분에 광고 직후 코인베이스 다운로드는 1분 만에 2천만 건을 달성했고, 애플 앱스토어의 다운로드 순위도 186위에서 2위로 단숨에 뛰어올랐다고 한다.
Expedia | ‘Stuff, Made to Travel’
코로나19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제 많은 국가가 이를 인정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단계를 밟고 있다. 특히 최근 유럽이 여행 규제를 풀기 시작하면서 팬데믹 사태로 동결된 여행업계도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해 단 한 건도 없었던 여행 업체들의 광고가 올해는 슈퍼볼에 등장한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이미 앞선 기사에서 부킹닷컴의 광고를 소개했는데, 이와 함께 익스피디아 또한 슈퍼볼에 광고를 내보냈다. 다만 둘의 분위기는 꽤 다르다.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견지했던 부킹닷컴과 달리, 익스피디아는 일상을 넘어 세상으로 나가자는 진중하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다행히 이 메시지를 전달했던 이완 맥그리거가 패신저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Liquid Death | ‘Kids Hydrating at a Party’
한편 리퀴드 데스의 광고는 황당하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캔으로 건배를 하며 술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마시고 날뛰다가 지쳐 곯아떨어지는 아이들, 그리고 당당하게 이 음료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임산부를 보여주는 충격의 광고. 심지어 영상 속의 아이들은 악마 같은 표정을 짓고 있으며, BGM도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프리스트의 ‘Breaking the Law’가 흘러나온다.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이 광고의 정체는 사실 생수다. 이 회사는 환경문제를 위해 생수 용기를 플라스틱이 아닌, 재활용 캔을 사용하기 때문. 하지만 특유의 과격하면서도 골 때리는 센스만큼은 끝까지 놓지 않는다. ‘Death to Plastic, Murder your Thirst’라는, 극단적인 워딩으로 표현하는 친환경적인 슬로건을 보면 그저 코웃음이 나온다. 물론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생수 회사들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