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들은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삶이 행복해진다는 말은 철없는 아이들의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사회와 현실의 벽 앞에서 현명한 길을 선택하는 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급부가 그저 철없는 몽상가의 이야기로 치부돼서도 안 된다. 적어도 배우 금광산은 꿈이 가진 원대한 힘을 믿은 덕분에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는 이제 다시 찾은 웃음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눌 수 있도록 희망의 메시지를 열심히 써 내려가고 있다.
왜 많고 많은 이름 중 금광산이었나요?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이름 같기도 하고. 사실 어떻게 보면 조금 올드스쿨한 어감이잖아요.
배우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친하게 지내던 동생 중에 ‘백두산’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190cm의 큰 친구였는데, 저도 그 친구와 함께 “비슷하게 우리 ‘산’으로 갈까?”라며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가 광산 김씨라서, 이걸 뒤집고 김을 금으로 바꿔주면 ‘금광산’이 되길래 ‘바로 이거다’ 싶었죠. 외모와 싱크로율도 높은데, 이게 또 없는 이름을 지어낸 것도 아니고 제 이름 그대로니깐 애착이 더 생기더라고요. 이름 때문에 덕도 많이 봤어요.
어떤 부분에서요?
보통 사람들이 저처럼 외모가 특이하거나 캐릭터가 있는 배우들은 얼굴을 잘 기억합니다. 그런데 물어보면 막상 ‘저 배우 많이 봤는데 이름이 뭐였지?’ 이런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제 이름은 기억에도 잘 남을 뿐더러, 얼굴이랑 매칭도 잘 돼요. 덕분에 영화 ‘아수라’나 드라마 ‘리멤버’에서는 딱히 이름이 없는 단역인데도 제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붙여 배역에 바로 적용했었죠. 그래서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게다가 광산 김씨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니깐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각오도 생기고요.
40대의 나이에 늦깎이 배우로 데뷔하셨잖아요. 원래 연극 무대에서 오래 활동하셨었나요?
전혀요. 원래는 운동을 했어요. 고교 시절까지 축구를 했죠. 그런데 잘하는 선수가 너무나도 많은 거예요. 거기에 무릎 부상까지 얻고 나니 ‘내 실력으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죠.
그렇게 축구를 포기하고, 30대 후반까지는 실내 인테리어나 건설 쪽 같은, 소위 막노동이라 불리는 몸 쓰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늦기 전에 마음속으로만 품어왔던 꿈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나이에 실행에 옮기게 된 거죠.
반전이네요. 캐릭터가 너무 강렬해서 사실 오랜 내공 끝에 얻은 것이라 지레짐작했거든요.
그 이미지 때문에 배우로 전향할 때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긴 해요. 분명히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데, 심지어 나이까지 많다 보니 ‘연극판에서 오래 활동한 사람인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엄청 많았거든요. 그 때문에 오디션 제의도 많이 들어왔어요. 첫해에만 20~30번 정도를 봤죠. 물론 제 연기가 부족해서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웃음).
그래도 배우로 입문하고 정말 빠른 속도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고 있어요. 특히 배우 마동석 씨와의 인연이 깊잖아요. 상당수 작품에 같이 출연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처음 만난 건 배달통 광고 촬영장이었어요. 당시에는 매니저 분이랑 같이 계셨고, 현장도 바쁘게 돌아가서 따로 인사를 드리진 못했죠. 그런데 오히려 동석이 형이 지나가면서 절 계속 보시더라고요. ‘저 빡빡이는 도대체 뭐지?’ 이런 눈길로(웃음). 그러다가 ’38사기동대’ 촬영할 때였는데, 제가 첫 씬에서 애드리브를 친 게 기억에 남았나 봐요. 제 연락처를 가져가시더니 그 후로는 계속 오디션 보라며 연결도 해주시고, 정말 많은 도움을 줬죠.
뭔가 특별한 공감대가 있었나요?
사람들이 의외로 모르는 부분인데, 사실 동석이 형도 지금의 배우가 되기까지 정말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어요. 배우를 하기 위해 미국에서 15년 동안 격투기 트레이너에서부터 뮤지컬까지 정말 다양한 일을 했더라고요. 제가 처한 상황이 딱 오버랩되는 느낌이라 더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정말 간이라도 떼어주고 싶을 정도로 저에겐 부모님 다음으로 고마운 친형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마동석 씨와 함께 또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어요. 바로 드웨인 존슨. SNS에서부터 각종 미디어까지 항상 드웨인 존슨을 언급하시잖아요. 롤모델이기도 하고.
프로레슬러로 큰 활약을 이어가면서 본인이 가진 특유의 캐릭터 때문에 결국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았잖아요. 그 뒤로 드웨인 존슨의 팬이 됐어요. 그런데 저도 축구선수를 10년 동안 했는데, ‘나도 저 형처럼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라고요. 항상 속으로만 품어온 꿈을 더이상 미루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보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 사람인 것 같아요.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드웨인 존슨이 원래 프로레슬러였잖아요. 그러고 보니 광산 씨도 작년에 로드 FC라는 단체와 계약도 맺고 격투기 도전 의사를 밝히기도 했는데, 혹시 프로레슬링에 도전하실 생각은 없나요.
프로레슬링과도 어느 정도 인연이 있어요. 제가 배우 일을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했던 게 김일 선생님 이야기를 다룬 단막극이었는데, 그때 프로레슬러들과 친분이 생겼거든요. 최근에는 우리나라 프로레슬링 단체 WWA의 챔피언이자 친한 동생인 김민호 선수 덕분에 홍보대사도 맡게 됐어요.
하지만 제가 직접 프로레슬링을 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일단 제가 가진 부상도 있는 데다가, 프로레슬러들의 경기를 보면 정말 목숨을 걸고 할 정도로 위험하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 가끔은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근육질의 몸, 민머리, 수염 같은 것도 드웨인 존슨의 영향인가요(웃음).
그건 아닙니다(웃음). 원래 몸은 젊었을 때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관리를 해온 거죠. 사실 지금의 캐릭터는 20대 때부터 주변에서 많이 들어온 말이기도 했어요. 다만 인상은 많이 바뀐 편이에요.
다른 인상? 일단 제가 알고 있는 배우 금광산은 강한 비주얼과 대비되는 순박한 심성과 웃는 얼굴의 반전 매력을 가진 캐릭터인데 의외네요. 인상이 어땠길래.
축구를 관두고 방황하던 시절에는 제 인상이 정말 험악한 편이었어요. 그런데 아들이 생기면서 그걸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일부러 최대한 웃으면서 다니기도 했는데, 그게 절 변화시킨 것 같아요. 지금은 오히려 센 인상을 만들기가 어려울 정돕니다. 촬영장에 가면 으레 감독님들이 “광산 씨는 웃는 상이네”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제는 저도 화내는 얼굴보다 밝게 웃고, 외모와 달리 약간은 졸아있거나 소심한 캐릭터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뒤늦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됐는데, 혹시 힘들거나 후회해본 적은 없나요.
그럴리가요. 20대 때 축구를 포기한 이후로 저는 줄곧 돈을 벌고, 어느 정도 벌면 또 놀고, 돈이 떨어지면 또 다른 일을 하고. 이런 식으로 인생을 조금 허비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이 일을 하면서 저 자신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물론 밤새 촬영장 다니고 바쁘게 살다 보니 몸은 피곤한데, 재미가 없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든 적이 없어요. 드디어 제가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은 거죠.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돈도 벌고, 재미도 있잖아요.
조금은 조심스러운 질문인데, 사실 강렬하고 선명한 캐릭터는 반대로 배우가 한정된 틀에 갇혀 버리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리스크에 대한 걱정은 없나요.
아직은 제 모습을 보여드릴 만한 큰 역할을 맡은 적이 없어요. 사실 어디 가서 스스로 연기자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데, 벌써 그런 걱정을 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만약 조금 더 깊은 제 모습을 보여드릴 만한 작품이나 계기가 된다면 그때 가서 이 이야기를 다시 진지하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모습은 꼭 배우가 아니어도 다양한 플랫폼이나 역할로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인 종착지가 꼭 배우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맞나요?
네. 저는 콕 집어 배우라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어요. 최근에는 웹 드라마 제작 연출이라는 꿈도 가지고 있는데, 요즘은 시나리오도 써보고 20~30개 정도의 다양한 아이템도 기획해보고 있어요. 사실 이건 제가 다른 배우분들께 진 일종의 마음의 빚에 대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마음의 빚이요?
5년이고 10년이고 힘들게 고생하는데도 빛을 보지 못하는 배우 분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저는 캐릭터 하나로 지금까지 빠른 길을 걸어왔잖아요. 생각해보면 그런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커요.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라고 생각해봤는데, 웹 드라마 제작을 통해 그런 분들을 더 많이 대중에게 보여드리는 것이 해답 중 하나였던 거죠. 힘들게 고생하는 배우들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건 바로 저희 같은 사람들이니까요.
아직은 조금 먼 미래의 꿈이긴 하지만, 분명 잘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제작자가 되어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제가 좋아하는 드웨인 존슨도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