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 말한다. 마운드의 힘, 즉 투수력이 승부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2019년에는 더 뚜렷해졌다. 반면 ‘거포’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타고투저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19시즌부터 바뀐 공인구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19시즌을 앞두고 공인구 교체를 결정했다. 공인구 둘레는 약 1mm 늘었고, 무게가 1g가량 무거워지면서 반발력이 줄어들었다. 종전의 반발계수 0.4134~0.4374에서 일본프로야구(NPB)와 같은 0.4034~0.4234로 소폭 감소했다. 줄어든 0.01의 반발계수는 국제대회 공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비거리는 2~3m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홈런 가뭄이다. 지난 시즌 KBO리그에서는 역대 최고 홈런을 기록했다. 10개 구단이 정규시즌에 총 1,765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하지만 올 시즌 전반기 마감을 앞둔 7월 11일 오전 기준 10개 구단이 기록한 홈런 개수는 637개에 불과하다. 전년 대비 40%도 미치지 못한 수치다. 이미 팀당 144경기 중 최소 87경기 이상을 치른 점을 고려하면 홈런 수 급감이 도드라진다.
타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투수들의 평균 자책점은 낮아졌다. 지난 시즌에는 5.17이었다. 올해는 4.29(이하 11일 기준)로 하향세를 보였다.
KBO는 왜 공인구를 바꿨나
KBO의 공인구 교체는 타고투저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 시즌 역대 최고 홈런 기록과 함께 최초로 40홈런이 넘는 타자가 5명이나 나왔다. 김재환(두산), 로맥(SK), 박병호(현 키움), 로하스(KT), 한동민(SK)이 그 대상이다. 이대호(롯데), 최정(SK), 이성열(한화), 전준우(롯데), 러프(삼성)도 3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타자들은 신이 났다. 하지만 공격 시간이 늘어나면서 경기 시간도 길어졌다. 이에 KBO는 ‘스피드업’을 외쳤다.
또 외국인 투수들뿐만 아니라 국내 투수들의 역량을 키우겠다는 심산이다. 차세대 토종 에이스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국제 경쟁력 강화다. 올해 열리는 프리미어12, 2020 도쿄올림픽 등을 앞두고 미리 리그에서 국제 대회 규격의 공인구를 사용해 빠른 적응을 돕겠다는 의도다.
2018년 거포들은 어디에?
2019시즌 SK 로맥과 최정이 홈런왕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나란히 20홈런을 돌파하며 경쟁에 불을 붙였다. 로맥과 최정은 지난 시즌 각각 43홈런, 35홈런을 기록한 바 있다. 작년보다 홈런 수는 줄어들었지만 최근 기세가 심상치 않다.
반면 거포라 불렸던 러프, 김재환, 이대호, 한동민 등은 홈런 부문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특히 최정은 스스로 타격 침체를 극복했다. 6월에만 타율 0.447로 맹타를 휘둘렀다. 한 달 동안 홈런도 10개나 터졌다. 생각의 전환부터 타격 자세까지 바꿨다. 배트 무게도 20g 줄였다. 그렇게 최정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키움의 박병호와 샌즈도 그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물론 홈런 수는 감소했지만, 이들은 꾸준히 홈런포를 가동하고 있다.
반면 거포라 불렸던 러프, 김재환, 이대호, 한동민 등은 홈런 부문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공인구 반발계수 조정에 울고 있다.
바뀐 공인구의 나비효과
바야흐로 선발 투수의 시대다. 현 리그 순위를 살펴봐도 투수력이 강한 팀이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이 가운데 토종 투수들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김광현(SK), 이영하(두산)와 더불어 문승원(SK), 장민재(한화), 김동준, 브리검, 안우진, 최원태, 한현희(이상 키움), 고우석과 차우찬(이상 LG) 등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밖에 박종훈(SK), 유희관(두산) 등도 시즌 10승을 향해 달리고 있다. 선발 투수들의 역할이 커졌다.
2010년 한화 시절 류현진 이후 9년 만에 한 시즌 평균자책점 1점대 투수가 나올지 관심도 쏠리고 있다.
바뀐 공인구로 인해 비거리가 짧아졌고, 외야 뜬공이 속출하고 있다. 외야 수비가 중요해졌다. 아울러 벤치에서는 다양한 득점 루트를 만들고 있다. 도루가 증가한 이유다.
바뀐 공인구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반대로 투수들은 웃는다.
확실히 경기 시간도 줄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홈런이 줄어들면서 리그 재미를 반감시켰고, 이것이 관중 수 감소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홈런을 대체할만한 흥미 요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2018년 홈런은 2019년 홈런과는 다르다. 2019년에는 유독 거포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고, 홈런 갈증도 극심하다. 바뀐 공인구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반대로 투수들은 웃는다.
공인구가 바뀌면서 리그 판도도 바뀌었다. 반발력이 떨어진 공인구가 올 시즌 리그의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