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시크 트렌드를 기점으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무테안경.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무테는 중장년의 안경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필자 또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르노 클래식 파나토믹(Lunor Classic Panatomic)을 만났을 때, 그 선입견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그건 지금껏 머릿속에만 있던 이상적인 안경을 실체화한 느낌이었다.
어느덧 파나토믹을 착용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여태 여러 안경을 거쳐왔지만, 그중에서도 이 모델은 범용성이 돋보이는 인상적인 모델이다. 르노는 어떤 브랜드인지, 클래식 파나토믹의 매력은 무엇인지 실착자의 관점에서 적어보고자 한다.
르노는 어떤 브랜드일까
스티브 잡스가 선택한 안경
르노, 라고 했을 때 안경보다는 자동차를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을 테지. 르노는 안경 좀 안다 싶은 사람은 다 아는 브랜드다. 모르더라도 착용한 사람은 무조건 본 적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안경이 바로 르노였기 때문이다. 그려지지 않는가,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고 무테안경을 쓴 잡스의 모습이. 그게 바로 르노의 간판 모델 클래식 룬드다. 뉴진스 하니가 뮤직비디오에서 스티브 잡스 오마주로 착용하며 다시금 인기를 몰았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안경이라는 타이틀 하나로만 설명하기엔 조금 아쉽다. 르노는 1991년 설립된 독일의 클래식 아이웨어 브랜드. 고안경의 미학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접목한 디자인이 특징적이다. 그래서인지 클래식하면서 엔틱한 느낌을 자아내는 모델이 다수 존재한다. 200단계가 넘는 수작업 공정을 거쳐 생산되는 만큼 만듦새 또한 훌륭. 여러 모델이 있지만 무테가 특히 유명하다.
한국과의 인연도 생각보다 깊은 편이다. 르노의 전 세계 최초 플래그십 스토어가 서울에 있다는 사실. 이를 기념한 서울 스페셜 에디션 모델도 출시된 바 있다. 최근에는 미스터카멜 박강현과 협업을 진행하며 한국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는 중이다.
무테 입문자가 느낀 장점
이렇게 예쁜데 편하기까지
편안한 착용감
고백하자면 필자는 베레모 사이즈 60호, 얼굴 여백 또한 적잖이 있는 편. 덕분에 새로운 안경을 써볼 때마다 양옆에서 누가 누르는 거 아닌가 싶은 압력을 종종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이 모델은 감사하게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렌즈 가로 48mm, 브릿지 21mm로 사이즈 자체가 다른 라인에 비해 여유 있게 나왔다. 무테이기 때문에 렌즈 사이즈는 변경 가능하지만, 브랜드에서 의도한 쉐입을 가능한 유지하는 게 아무래도 좋겠다.
가끔은 쓰고 있다는 것조차 잊게 만드는 가벼운 무게도 착용감에 플러스 요소다. 렌즈 포함 15g이라고 하니, 숫자로 보니 더 와닿지 않는가. 렌즈에 테가 없는 무테 특성상 당연한 결과일 지도. 다른 안경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체감될 정도로 피로감이 덜하다. 다만 피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착용감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 피팅 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자유로운 변주
앞서 언급했듯 무테는 렌즈 변경이 자유롭다. 사이즈뿐 아니라 렌즈 모양 또한 바꿀 수 있다 보니,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새 안경 들이는 기분을 낼 수 있다. 코 패드 또한 탈착할 수 있어 각자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착용하면 된다. 르노는 특유의 W 브릿지로 코 패드 없이도 착용이 가능하지만, 독일 브랜드인 만큼 아시안 평균 콧대의 필자에게는 부적합할 듯.
결론은 디자인
파나토믹을 사게 된 실질적인 이유이자 가장 만족도가 높은 건 결국 디자인이다. 엔틱 골드 버전 특유의 빈티지한 색감은 그 어떤 브랜드에서도 본 적이 없다. 브릿지와 힌지 부분에서는 스테인리스의 결을 볼 수 있는데, 마치 칠이 벗겨진 듯한 질감이 연출돼 엔틱함이 배가된다.
면면히 들여다볼수록 파나토믹의 숨은 진가를 발견할 수 있다. 기계적이면서도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나사 디테일. 빈티지한 테의 색감과 잘 어우러지는 레오파드 아세테이트 템플 팁. 담백하게 실루엣에 포인트를 더하는 힌지 디자인까지. 클래식은 영원하다 했던가, 시대를 타지 않는 디자인인 만큼 언제 어디에도 착용하기 좋다.
단점이란 말은 과하지만
조금만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살벌한 가격
안경 가격은 워낙 천차만별이지만 뿔테의 경우 20~30만 원, 비싸도 50만 원대 정도면 양질의 테를 맞출 수 있다. 그런데 파나토믹은? 정가 기준 안경테만 무려 75만 원. 렌즈값을 더하면 거의 100만 원에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가격이다. 그 값어치를 하는가를 논하자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겠다만, 어쨌든 객관적으로 적지 않은 금액인 건 확실하니까.
무테는 일반적인 안경과 달리 렌즈에 직접 구멍을 뚫어 브릿지와 템플을 연결해야 한다. 지지할 수 있는 영역이 한정적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안정감 있는 프레임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제작 또한 정밀한 작업이다 보니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고. 자연스럽게 생산 단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는 셈. 재료 또한 무게나 내구성을 위해 고가의 티타늄이나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한다. 르노는 뿔테나 메탈테도 비싸긴 하지만 말이다.
쉽지 않은 관리
무테는 충격으로 인한 변형이나 손상, 파손 등에 취약하다. 렌즈를 보호해 줄 테가 없으니 당연하다. 게다가 템플이나 브릿지가 렌즈에 직결되어 있다 보니 구조물에 충격이 생기면 고스란히 렌즈로 전달된다. 그러다 보니 평상시에도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히 다뤄야 하는 게 현실. 안경은 가능한 양손을 사용해 벗는다든지, 바닥에 내려놓을 땐 살포시 놓는다든지 하는. 아이러니한 건 조심히 다루다 보니 다른 안경보다 훨씬 깨끗하게 사용하게 된다는 점이다.
유의해야 할 사항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면
공식 플래그십 스토어와 취급 안경원 중 어디서 구매할지 잘 결정하도록 하자. 가격 측면으로 따졌을 땐 안경원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매장에 따라 할인이 크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 규모가 큰 안경원의 경우 여름이나 겨울에 주기적으로 세일 기간을 가지니 체크하도록 하자. 필자 또한 안경원에서 구매했고, 10만 원 이상 저렴하게 구매했다.
다만 A/S 퀄리티는 공식 매장보다 떨어질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템플 팁 결합부 부품에 문제가 있어 구매처에 수리를 맡겼었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지만 금방 떨어져 버렸다. 이후에 공식 매장에 요청하니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구성품 또한 다를 수 있다. 정식 구성에는 가죽 케이스가 제공되는데, 필자는 안경이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는 목제 케이스를 받았다.
온라인 구매를 생각하고 있다면 절대 말리고 싶다. 안경은 무조건 써봐야 한다. 사진상으로는 그렇게 예뻐 보이던 게 막상 얼굴에 얹으면 예상과 많이 다른 모습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반대로 영 아니다 싶었던 모델이 찰떡같이 어울릴 수도 있다. 안경 하나로 인상이 확 바뀔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고르도록 하자. 운명의 안경을 만날 당신의 여정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