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과거사, 끌리는 외관, 준수한 성능의 무브먼트 등 야무진 아이덴티티를 지닌 파일럿 시계로만, 100만 원대 예산에서 선택 가능한 옵션을 선별해 봤다. 아무래도 파일럿 시계의 본고장 독일의 시계가 가장 많고 중국처럼 의외의 국가에서 시작한 브랜드도 당당히 한자리 차지하는 이변도 있었다. 임볼든의 입맛대로 준비한 다채로운 진열대를 마음껏 즐겨 보시길.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사용한 전투기, 록히드 F-104C 스타파이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파일럿 모델. 오버사이즈 인덱스 그리고 오렌지 악센트가 인상적인 다이얼은 비행기 조종실의 컨트롤 패널 디자인을 기반으로 설계됐다고. 속도, 거리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원형 슬라이드 룰은 기능적인 동시에 밀리터리 감성을 불어넣는 디자인 포인트가 되고 있다. 경쾌한 느낌의 파일럿 시계를 찾는다면 고려해 보자. 가격은 1,168달러. 300m 방수를 지원하는 칼리버 ETA 2824-2 OW3 무브먼트로 구동된다.
독일 글라슈테 지방에서 시작한, 5대가 이어오는 가족 경영 회사로 기계식 시계는 물론 마린 크로노미터 등 정교한 만듦새, 자사 고유의 동으로 만든 로터 개발 등 정밀 기계에 관한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알짜배기 브랜드다. 큼직한 인덱스로 시인성이 좋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독일의 파일럿 시계 디자인, 플리거 스타일을 샤프하게 소화해 냈다.
특히 12시 방향 인덱스와 초침에 레드 악센트 디테일은 심플한 인상에 엣지를 보태주는 킬링 포인트인 듯. 6자세차 조정과 탑급 SW 200-1 무브먼트로 오차가 거의 없는 정밀성도 강점. 별도의 마케팅에는 크게 공을 들이지 않아 국내 인지도는 낮은 편이나 독일의 우직함이 깃들어 퀄리티 면에서는 아묻따 믿고 써도 후회 없는 모델 중 하나다. 케이스 직경은 40mm.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했고, 방수는 100m까지 지원한다. 크로노24에서 1,333달러에 판매 중.
이번에도 독일제다. 다마스코는 레겐스부르크에 기반을 두고 1994년에 기계식 시계 시장에 진입한 마이크로 브랜드. 역사는 채 30년이 안 되지만 ‘오버홀이 필요 없는 시계’를 만든다는 당찬 목표로 수준급 엔지니어링 기량을 갖춘 내실 탄탄 시계 제조사로 인정받는다. 아이스하든이라 칭하는 자체 특허 스틸 합금 케이스 소재부터 크라운 디자인과 무브먼트의 각종 부품에 이르기까지 국제기술 특허를 보유했다니, 더 완벽하고 견고한 엔지니어링을 향한 그 투지를 예상할 수 있겠지.
다이얼 중앙의 십자선을 중심으로 큼직한 아라비안 인덱스가 뻗어있고, 3시 방향 위아래로 다마스코 로고와 데이 데이트 윈도우가 나란히 자리한다. 케이스와 크라운, 케이스백 등을 통금속으로 제작한다는 점도 메리트. 특히 DA36의 경우 엔트리급 모델임에도 이 모든 역량을 아낌없이 투자한 걸 보면 다마스코의 진가를 느끼고도 남는다. 오래 봐도 질리지 않을 간결한 디자인, 거품 없는 정직함에 희열을 느끼는 그대여, 주저 말고 기추하길. 해외 직구 또는 공식 딜러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
독일 기반 마이너 브랜드 스테인하트의 비유렌 44mm 핸드 와인딩 모델. 2차대전 당시 독일 공군에 납품되었던 B-Uhr의 복각 모델로, 가장 기본적인 파일럿 워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9시 방향에 스몰세컨즈 때문에 8, 9, 10은 뉴머럴 인덱스가 비어있는데 도리어 언밸런스한 매력이 도드라지기도.
장갑을 낀 채로도 조정이 쉽게끔 공격적으로 돌출된 다이아몬드 크라운, 시간이 확 눈에 들어오도록 큼직하게 만든 다이얼과 인덱스 등 실제 전투 파일럿을 대상으로 만들다 보니 필요에 의해 채택된 디자인 요소가 현재까지 매력적인 비주얼 아이덴티티로 계승되고 있다.
나름 흥미로운 히스토리를 간직하고 있고, 영미권에서도 꽤 인기 있는 모델이니까 중국산이라고 색안경부터 끼고 보진 말자. 1963년 중국 공군 조종사들에게 보급된 시계의 복각판. 시계 전체적인 밸런스가 훌륭한 편이고 중국 특유의 감성이 결합해 레트로 무드가 풀풀 진동하는 디테일로 가득하다.
특히 6시 방향 4개의 한자는 오리엔탈 빈티지의 매력을 증폭시키는 기폭제. 꼬부라진 영어가 아니고 직선의 문자가 신선한 감흥을 더하고 있다. 오리지널 모델의 역사를 살펴보면 스위스에서 생산된 무브먼트를 기초로 만들어졌는데, 이때 스위스 공장의 장비와 디자인을 통째로 구입해 가져다 제작한 시계였다고. 전시용으로 탄생한 모델의 복각판이라 그런지 기본기는 꽤나 충실한 편이다. 38mm.
독일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철학을 계승한 시계들은 공통적으로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없다. 진 566i또한 같은 반경에 있는 모델. 유광의 블랙 다이얼에 양면 AR 코팅 사파이어 크리스탈로 더 새까매 보이는 효과가 있다. 차분하고 우아한 선이 돋보이는 베젤, 클래식한 다이얼 디자인에 스틸 브레이슬릿이 결합되니 포멀한 복장이든 캐주얼이든 어떤 룩에나 은은하게 잘 녹아든다는 점도 메리트.
레더 스트랩과도 찰떡궁합이니 줄질하는 맛도 쏠쏠하고. 특히 RS 모델은 빨강색 초침이 임팩트를 더한다. 고급 시계에 비하면 38mm라는 클래식한 사이즈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은 빈티지 애호가, 손목이 가는 이들에게는 솔깃한 포인트렸다. 방수는 200m까지. 셀리타 SW200-1 자동 무브먼로 구동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