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이 대세인 요즈음, 무료함에 몸부림치는 우리에겐 다행히도 넷플릭스가 존재한다. 그러나 무수히 쏟아지는 콘텐츠 중 뭐부터 선점할지 유튜브와 각종 포털을 헤매다 길을 잃은 그대여, 이번엔 실화 기반 드라마에 포커스를 맞춰 보는 건 어떨까. 그저 킬링 타임을 넘어서 관심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누가 부러 말해주지도 않았던, 픽션보다 충격적인 역사 속 사건을 마주하는 일. 무엇을 상상했든 생각보다 짜릿할 것이다.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
최초의 흑인 여성 백만장자 마담 C.J 워커. 영화보다 영화 같은 그녀의 성공 스토리에 빠져들 시간이 왔다. 박진감 넘치는 시원시원한 전개에 템포도 빠르고, 마담 C.J. 워커로 열연한 옥타비아 스펜서 여사의 연기는 장기전으로 돌입한 코로나로 지쳐버린 일상에 팔딱팔딱 튀어 오르는 생기를 부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남편에게 버림받을 정도로 심한 고통을 안겨준 탈모 덕에 발모제 사업에 발을 들이고. 1900년대 초 흑인 인권도, 여성 인권도 바닥을 치던 그 시절에 최초의 백만장자 흑인 여성 사업가로 입지를 굳힌다. 픽션이었더라도 동화처럼 느껴질 비현실적 이야기. 이것은 실화였다.
뭐, 밑바닥에서도 가장 아래 있던 그녀가 사업을 일구는 과정이 얼마나 척박했을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그럼에도 ‘카네기, 포드, 록펠러를 합친 것만큼 성공하고 싶다’는 당찬 열망을 끊임없이 밀고 나갔던 마담 C.J.워커의 이야기. 마음에 비타민이 필요한 날에 이 드라마가 함께 하기를. 회당 40분, 4부작.
그레이스
잔혹한 살인마인가, 다중인격성 질환인가, 사이코패스인가. 아니면 그저 마녀사냥에 내몰린 무고한 피해자일 뿐인가. 19세기 캐나다를 뒤흔들었던 살인범 그레이스 마크스의 속내를 까발리는 아슬아슬한 심리전 속으로 초대한다.
1843년, 영국령 캐나다에서 두 명의 하인이 고용주와 내연녀를 살해하고 도피하다 발각되는데. 그중 한 명이 16살 소녀 그레이스였다. 정신과 의사 조던 박사의 정신 감정을 받으며 과거를 회고하는 그녀의 증언을 따라가며 때로는 무고한 피해자의 모습을, 또 다른 때는 자신의 다른 인격에 지배를 받는 다중인격자의 면모를 보이다가도 용의주도한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내비치는 그녀의 실체에 다가서 보자. 수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숱한 의문을 남긴 미궁의 범죄자 그레이스의 이야기는 요즘 나오는 그 어떤 범죄 드라마보다도 치명적이다. 회당 45분. 6부작.
오, 할리우드
할리우드 드림을 꿈꾸는 무명 배우 잭 카스텔로, 그의 일상은 전혀 안녕하지 못하다. 새벽같이 줄을 서가며 배역을 잡으려 애쓰지만, 콧대 높은 캐스팅 담당자의 눈에는 그저 얼굴 하나 믿고서 달려드는 뜨내기일 뿐. 아내는 출산을 앞뒀고 캐스팅은 먼 나라 얘기고 돈은 없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어딘지 구린 유혹. 기름 아닌 욕구를 채워주는 주유소의 취직 제안이다.
1940년대판 라라랜드. 그러나 주인공이 백인 아닌, 흑인, 여성, 아시안, 성소수자라는 점이 다르고 오디션으로 정정당당하게 스타가 되는 게 아닌 성공을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던 현실 속 할리우드의 검은 속내를 노골적으로 반영한 버전이라 볼 수 있겠다. 또한, 상당수 실존 인물과 사건을 기반으로 제작됐다는 점, 현실의 비극에 설탕을 가미한 부분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닮아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밝은 색채, 영화 촬영장 특유의 역동적인 분위기, 강도 높은 수위, 당시 유행하던 패션을 그대로 재현한 의상과 통통 튀는 전개 덕에 가볍게 순삭하는 킬링타임용으로도 그만이다. 만약 빅뱅이론 쉘든의 팬이라면 성공을 빌미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악명높은 에이전트, 헨리 윌슨으로 분한 짐 파슨스의 연기를 보는 맛도 쏠쏠할 것. 회당 50분. 7부작.
그리고 베를린에서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은 오직 홀로코스트 때 잃은 유대인 인구를 복원하는 것. 가정마다 평균 10명 내외의 아이를 낳으며 수많은 금지 조항이 족쇄를 만든다. 인터넷, 유튜브, 스마트폰 전부 금지. 공동체 일원을 제외한 외부인들과의 교류도 금기. 21세기 이처럼 비현실적인 통제가 가능한 이유는 부동산업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바로 유대교 종파 중 하나인 ‘하시디즘 공동체’의 얘기다.
“우리 공동체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고 싶었어.” 여기 숨 막히는 뉴욕의 신앙 공동체를 떠나 베를린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한 여인이 있다. 그러나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던 그녀의 뿌리는 쉽사리 놓아주질 않는데. 바로 지금, 그녀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끈질긴 추격전이 시작된다.
템포가 빠른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묘한 분위기로 시작해 하시디즘 마을에서 베를린으로 무대가 옮겨오면서부터 점점 밝은 색채로 변해 가는데, 다큐인가 싶을 정도의 사실적인 연기력, 탄탄한 연출 덕에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젖어 드는 허리케인급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시리즈가 흥미롭다면, 20분 분량의 ‘그리고 베를린에서 메이킹 필름’도 참고하시길. 회당 55분. 4부작.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 손을 묶었어요. 소리 지르면 죽인다고 했어요”라고 증언하는 피해자의 말. 반면 강제로 침입한 흔적은 없고, 출입문과 창문은 잠겨 있었고, DNA도 인기척은 느낀 이웃도 없었다며 불충분한 증거를 근거로 피해자를 몰아붙이는 경찰. 결국 피해 소녀는 경찰에게 기소를 당하는 상황까지 이른다. 허위 신고라는 사유로 말이다.
드라마는 2016년 퓰리처상 수상 기사 ‘강간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원작으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워싱턴주와 콜로라도주에서 홀로 거주하는 여성만 노렸던, 28건의 연쇄 성폭행 사건을 다룬다. 2008년 피해자를 기소한 형사와 2011년 피해자에게 공감하며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친 형사, 그리고 다양한 피해자의 양상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며 살인범 자체보다는 피해 여성과 형사의 태도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도 관전 포인트. 실상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제작됐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회당 50분. 8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