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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카라 낚시 때문에 일본으로 이민 갔습니다 (+영상)
2025-10-02T16:59:14+09:00
텐카라 낚시 인터뷰

낚시 하나로 시미즈 케이조 만난 한 남자의 이야기.

잠시 상상해 보자. 가족, 연인, 친구 누구를 떠올려도 괜찮다. 그 사람이 낚시가 너무 좋아서 10년 다닌 번듯한 회사를 때려치우고 일본에서 낚시하며 살겠다고 말한다면, 뭐라 대답하겠는가? 당황스럽고, 걱정되고, 말문이 막히고… 웬만해선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을 거다. 허무맹랑한 망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이야기에는 엄연히 주인공이 존재한다. 바로 텐카라 낚시 취미를 계기로 일본으로 이주한 박선기 씨다.

낚싯대를 든 그의 모습은 단순히 취미를 즐기는 이의 풍경을 넘어선다. 그에게 낚시는 패션이다. 스케이트보드가 슈프림이나 스투시의 뿌리가 되었듯, 낚시 역시 자신을 표현하는 스타일의 한 장르인 것이다. ‘멋있는 낚시’를 추구하는 그의 낚시 연대기를 찬찬히 따라가 봤다.

텐카라 낚시 인터뷰

간단하게 소개 부탁한다.

자연과 낚시를 사랑하는 박선기라고 한다. 현재는 한국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홋카이도로 이주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낚시를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나.

23살 때부터 했으니 18년 정도 됐다. 배스 낚시를 주로 하다가 지금은 텐카라 낚시와 플라이 낚시를 주력으로 즐기고 있다. 두 낚시는 대상 어종이 송어인데, 한국에서 송어를 잡을 수 있는 곳은 강원도뿐이다. 일본으로 이주하기 전에 살았던 대전에서 강원도까지는 가는 데만 3시간 30분이다. 그 고생을 하면서도 물고기 한 마리 잡아보겠다고 먼 길을 다녔었다.

일반적인 낚시와 무엇이 다른가.

텐카라 낚시는 일본 전통 낚시법이다. 강이나 바다가 아닌 계류에 직접 들어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고기를 잡는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라는 노래처럼, 송어나 산천어도 항상 계류에 살지만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그들을 따라가는 거다. 보통 낚시는 정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텐카라는 손과 다리를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 사실상 물속을 걸으며 등산하는 거라 체력 소모도 상당하다. 

텐카라 낚시 플라이 낚시

다소 생소한 낚시인데 어떻게 접하게 된 건가.

지인에게 배스 낚시를 알려 주러 나간 날이었다. 지인이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낚시할 때 이런 옷 입으면 멋있지 않겠냐’라며 사진을 보여줬다. 그게 South2 West8이라는 브랜드의 룩북이었다. 충격적일 정도로 멋있더라. 옷도 옷이지만, 그 옷을 입고 계류에서 낚시하는 모습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 모델들이 하고 있었던 게 텐카라 낚시였다.

바다나 배스 낚시를 주제 삼아 의류를 전개하는 브랜드는 당시에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영 멋이 없었다. 자체 제작이 아니라 이름만 바꿨다거나, 낚시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만든 디자인 같다는 느낌이었다. South2 West8은 완전히 달랐다. 옷이 주변 배경에 다 스며들어 있달까. 그 후로 혼자 공부해 가면서 텐카라 낚시를 시작하게 됐다.

낚시와 밀접하게 연관된 브랜드와 그렇지 않은 브랜드를 구별할 수 있나.

디테일이 확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계류 조끼의 등 쪽에는 고리가 있다. 보통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뜰채를 걸어두는 용도다. 그런데 플라이 낚시가 콘셉트라고 말하는 어떤 브랜드의 조끼를 보니 고리가 없었다. 말이 안 되는 거다. 주머니도 그렇다. 낚시를 하다 보면 주머니에 넣어둔 게 흘러내리거나 빠질 수가 있는데,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머니 위치나 잠금 방식을 선택한 옷도 있었다.

그저 콘셉트만 낚시인 게 아니라, 직접 입고 낚시를 했을 때 기능이 나타나는 옷을 만드는 브랜드에 끌리는 것 같다. 내게는 South2 West8이 그런 브랜드였다. 실제로 브랜드 디렉터인 시미즈 케이조 씨를 만나 South2 West8을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낚시가 너무 좋으니까’라고 답하더라. 나는 옷에서 그의 진심을 느꼈던 거다.

South2 West8 네펜데스

시미즈 케이조 씨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건가.

9년 전에 처음 홋카이도를 방문했다. 한국에서는 텐카라 낚시를 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텐카라 낚시의 본토에서 본토의 옷을 입고 낚시를 해보고 싶었다. 그때 South2 West8 매장으로 가서 직원한테 부족한 일본어로 말했다. ‘나 낚시 좋아해서 여기 옷 사 간다’라고. 그 후로 1년에 한두 번씩은 홋카이도에 무조건 갔다. 1년 차에는 옷 사는 사람, 2년 차에는 낚시하는 사람, 3년 차에는 낚시에 미친 사람… 계속 타이틀이 바뀌었다.

4년 차가 되니 물어보기도 전에 직원들이 낚시 포인트를 알려줄 정도로 그들과 가까워졌다. 그러다 내 존재가 시미즈 씨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다. 사실 그럴 만하다. 한국인 부부가 일본까지 와서 옷 사고, 낚시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래서인지 South2 West8의 20주년 파티에 초대를 받았고, 그곳에서 시미즈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살면서 만나보고 싶은 사람 1순위였던 사람이었기에, 너무 떨려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네펜데스 시미즈 케이조

그날은 적당히 인사 몇 마디 나누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비에이에 낚시하러 갔다가 정말 우연히 시미즈 씨를 다시 만났다. 알고 보니 시미즈 씨 별장이 비에이에 있었던 거다. 그가 보기에 타지 사람이 꼭두새벽부터 낚시하는 열정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얼굴도장을 제대로 찍은 셈이다.

덕도 많이 봤다. 이후에 아내와 함께 삿포로에서 살게 됐을 때, 네펜데스의 새로운 브랜드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아내가 이력서를 쓰자마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면접장에 가보니 시미즈 씨가 있었다. 보통 직원 뽑는 데 회장이 들어오는 일은 드물지 않나. 아내는 브랜드에 대한 선호와 더불어 관련 경력과 강점을 갖추고 있었고, 시미즈 씨가 좋게 평가해 준 덕분에 채용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비자도 1년짜리 워킹홀리데이 비자였는데,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5년짜리 취업 비자로 네펜데스 측에서 바꿔줬다. 취업 비자는 돈도 많이 들고 절차가 까다로워서 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네펜데스에서는 처음이라고 들었다. 감사한 일이다.

일본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어디선가 ‘직장인이 30대 후반쯤 되면 제2의 삶을 살고 싶어진다’라는 문장을 봤었다. 번아웃이 올 정도로 일이 힘드니 그 말이 떠오르더라. 마음 한편에 그런 생각을 품은 채 홋카이도의 가미시호로라는 동네로 낚시를 하러 갔다. 인구가 4천 명밖에 안 되는 시골 마을이다.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러 나왔는데, 그 정경이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 나 여기서 살아야겠다, 싶었다. 8년간 홋카이도를 왕복하며 커지던 생각이 정점을 찍은 순간이었다.

바로 이주를 결정한 건 아니다. 환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80일 동안 홋카이도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두 달은 삿포로에 계약한 숙소에서 지내고, 나머지는 떠돌면서 캠핑했다. 지내보니 여기서 살아야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비에이 삿포로 홋카이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10년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로봇 설계 분야였고,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곳이었다. 하던 대로만 하면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니 아깝긴 하더라. 그래도 내게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좇는 게 더 중요했다. 돈은 어떻게든 벌 수 있다. 몸과 정신이 건강한 지금, 하고 싶었던 걸 질리도록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느리게 사는 삶을 원했고, 그 삶은 일본에 있었다.

아내의 영향도 컸다.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을 텐데, 아내는 흔쾌히 함께 해줬다. 인생의 동반자가 ‘우리 한번 해보자’라고 말해주니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내도 낚시를 좋아하시지 않나.

나보다 더 좋아한다. 나는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 오토바이와 낚시를 삶의 일부분처럼 즐겼고, 아내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낚시 동행을 제안했다. 재미없으면 다신 안 갈 테니 단단히 준비했다. 무조건 잡을 수 있는 포인트 확보, 잔소리 절대 금물 같은. 다행히 아내가 너무 재밌어했고, 그때부터 주말만 되면 낚시하러 갔다.

South2 West8 남이서팔

취미를 함께한다는 건 영혼의 교류라 생각한다. 제일 좋아하고 아끼는 걸 나누는 거니까. 이를 친구도 지인도 아닌 평생 같이 살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낚시, 오토바이, 등산 같은 다양한 취미를 공유하다 보니 일종의 전우애처럼 취미애가 생겼다. 나도 아내도 스타일이나 인간관계를 포함한 삶 전반이 바뀌기도 했고. 특히 아내는 전부터 알던 친구들이 기절초풍했다. ‘네가 그런 걸 좋아했었냐’라면서. (웃음)

일본에서는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정착을 위한 기반을 여러 방면으로 쌓는 중이다. 농사를 짓고 싶어서 연습 삼아 텃밭을 가꾸고, 흙이나 비료로 테스트도 해보고 있다. 시미즈 씨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개인적으로 돕기도 한다. 낚시는 일상이다. 사는 곳에서 차 타고 10분이면 강이 있다. 항상 안 가본 포인트를 찾아다니니 매일 해도 늘 재밌다.

일로써는 아르바이트로 잔디 깎는 일을 하고 있다. 평생 아르바이트만 할 수는 없으니, 낚시의 사업화를 계획 중이다. 홋카이도에서 낚시하고 싶은 사람을 대상으로 낚시 가이드를 하는 거다. 지인들에게는 무료로 해준 적이 있긴 한데, 돈 받고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되긴 한다. 그래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예를 들면 비가 올 때 물가를 돌아다니면서 어디가 물이 더러워지고 깨끗해지는지 확인한다.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까.

일본과 한국의 낚시는 어떻게 다른가.

일본이나 서양에는 캐치 앤 릴리즈(Catch And Release)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물고기를 잡으면 놔주는 거다. 낚시에 있어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그래서 물고기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금방 빠지는 바늘을 쓴다. 나도 잡을 때보다 놔줄 때 더 행복하다. 반면 한국은 고기를 낚으면 먹으려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필드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한국은 뭐든지 오래되면 허물고 새롭게 세우려는 경향이 있다. 그대로 두지 않고 댐을 짓고 시설 공사를 한다. 문제는 생태계의 습성을 알고 있음에도 물고기가 다니는 길을 보호하지 않고, 강바닥을 평탄화해서 물고기가 천적으로부터 은신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반대로 일본은 지키는 쪽이다. 나무가 쓰러지면 쓰러진 대로 몇십 년을 둔다. 그래서 한국 계류는 인공적인 느낌이 있고, 일본은 자연 그대로에 가깝다.

텐카라 낚시 플라이 낚시

일본의 낚시 문화가 본인에게 더 잘 맞는 건가.

그런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은 눈치를 많이 보고, 남한테 피해를 안 주려는 성향이 강하지 않나. 낚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계류에서 낚시하다가 누군가를 만나면 어디로 가는지 물어봐야 한다. 같은 방향으로 가면 포인트가 망가지기 때문에, 대답에 따라 반대로 가기 위함이다. 그게 암묵적인 매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낚시하다 보면 불쑥 내 위로 누가 와서 낚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종이나 필드도 그렇지만, 매너에서도 한국은 아쉬움이 있었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일차적인 목표는 낚시 실력을 인정받는 것. 낚시하는 사람들은 고집이 엄청 세서 인정을 잘 안 한다. 그 사람들에게 ‘낚시 진짜 잘한다’라는 칭찬을 듣고 싶다. 멋있게 낚시해서 뽀빠이나 고아웃 재팬에 소개되면 더 좋겠다. 예전부터 동경하던 잡지에 내가 실리면 그만큼 뿌듯한 게 없지 않을까. 낚시가 삶이 돼서 돈도 벌고 즐길 수 있는 나날로 채우는 게 다음 목표다.

텐카라 낚시 인터뷰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나.

모두가 ‘인생은 한 번뿐이다’라고 말하지만, 진정 한 번뿐인 인생처럼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작정 비싼 차 사고 유흥을 즐기라는 말이 아니라,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내 기조다. 결국 필요한 건 결단력이다. 나 또한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서 과감하게 도전한 거다.

다만 나처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면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한다. 대책 없이 퇴사하거나 일을 저지르면 대부분 후회한다.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현실적인 계획을 짜보기 바란다. 내가 실현 가능성을 보기 위해 80일 동안 홋카이도에 살았던 것처럼. 지금 나는 내 선택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