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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사망 소식까지, 전쟁터에 뛰어든 우크라이나 스포츠 스타 7인
2023-02-22T17:58:21+09:00

푸틴의 ‘암살 리스트’ 24인에도 등재된, 어느 나라 공인들과 비교되는 스포츠 영웅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유명 우크라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뛰어들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적인 명성과 부를 쌓아 온 그들이기에 안정적인 삶을 택할 법도 하지만, 자신의 가족과 이웃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여정에 기꺼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개인의 안위가 0순위인 모 나라의 공인들이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길 바라며, 운동복 대신 군복을 택한 우크라이나 스포츠 스타 7인들의 각오와 사연, 발자취들을 소개해본다.


출처: 블라디미르 클리츠코 인스타그램(@klitschko) 및 비탈리 클리츠코 인스타그램(@vitaliyklitschko)

비탈리 클리츠코 & 블라디미르 클리츠코 (Vitali Klitschko & Wladimir Klitschko)

복싱 세계 챔피언 형제로 유명한 비탈리 클리츠코와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다. 형인 비탈리는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시장이며, 블라디미르 또한 뛰어난 학식과 사회 공헌 활동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블라디미르는 2월 2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병력을 증원하며 전운이 감지될 당시부터 일찌감치 예비군에 입대하였으며, 비탈리 또한 지난 25일(현지 시각) 전장에 직접 뛰어들 것을 선언하였다.

두 형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러시아의 ‘암살 리스트(hit list)’ 24명에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졌다. 이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비탈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우리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으나, 러시아 제국으로 회귀할 생각이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는 민주주의적이고 근대적인 유럽 국가이다. 협상의 여지는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키예프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확실한 답변을 할 준비가 안 됐다. 아주 오래, 우리가 살아있는 한 아주 오래 버텨낼 것이다.”라며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비탈리 클리츠코는 WBO, WBC 세계 챔피언을 역임했으며, 2014년부터 정치 행보를 시작, 키예프 시장을 연임해왔다. 동생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는 9년간 14차례의 방어전을 치르며, WBA IBF, WBO, IBO, 더 링(The Ring) 헤비급 통합 챔피언을 역임했다.


출처: 바실 로마첸코 페이스북(@VasylLomachenko)

바실 로마첸코 (Vasyl Lomachenko)

전 WBC, WBA, WBO 복싱 라이트급 챔피언이자 현 WBO 인터콘티넨탈 라이트급 챔피언 바실 로마첸코. 2월 27일(현지 시각)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공개되며 예비군 입대 소식을 알렸다. 링 위에서는 마치 곡예를 보는 듯한 전례 없는 테크닉으로 ‘하이-테크(hi-tech)’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현란하고 빠른 사이드 스텝으로 상대의 사각을 잡아 공격하는 시그니처 기술로 ‘매트릭스(matrix)’ 복싱 스타일이라는 용어도 만들어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페더급)과 2012년 런던 올림픽(라이트급)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올림픽 무대보다 더 경쟁이 치열하다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두 차례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396승 1패의 경이로운 아마추어 전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프로 무대에서는 단 12경기 만에 세 체급 세계 챔피언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다. 2020년 테오피모 로페즈(Teofimo Lopez)와의 라이트급 4대 기구 통합 타이틀전에서 석패를 당하며 주춤하는가 했지만, 최근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복귀하여 다시금 복싱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그의 현란한 매트릭스 속에 전란의 주역들이 속수무책 허우적대기를, 그래서 하루빨리 그의 화려한 테크닉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LomUs 인스타그램(@lomus_official)

올렉산드르 우식 (Oleksandr Usyk)

WBA, IBO, WBO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자 앞서 소개한 바실 로마첸코와 절친한 사이인 올렉산드르 우식은 2월 27일(현지 시각) 예비군 입대와 함께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한 화끈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 전쟁을 멈출 수 있다. 제발 그냥 가만히 앉아서 별도의 요구 없이 우리와의 협상에 임해라”라고 말하며, “당신의 아이들을 우리나라로 보내지 말고, 우리와 싸우지도 말아달라…  멈춰라! 이 전쟁을 멈춰라!”라고 호소했다. 

우식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헤비급 복싱 금메달을 획득한 후 프로로 전향, 15전 만에 크루저급 4대 기구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지난해에는 헤비급으로 월장하여 헤비급 최강자 중 한 명인 앤서니 조슈아(Anthony Joshua)를 여유롭게 격파해 두 체급 석권을 달성하였다. 5월 조슈아와의 재경기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우식의 이번 참전으로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현 사태가 조속히 평화롭게 갈무리되어 그의 묵직한 경기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야로슬라브 아모소프 인스타그램(@s_amoskin)

야로슬라브 아모소프 (Yaroslav Amosov)

UFC와 함께 세계 최고의 종합격투기 무대로 평가받는 벨라토르(Bellator)의 웰터급 챔피언 야로슬라브 아모소프 또한 전투력 증대에 한 몫을 보태게 되었다. 아모소프는 지난 27일(현지 시각)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많은 사람이 내가 도망가거나 숨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나는 가족들을 안전지대로 옮겼으며, 내 최선을 다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우크라이나 예비군에 자원하였다.

올해 한국 나이로 30살인 그는 비교적 약관의 나이에 종합격투기 전적 26전 전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이어가고 있으며, 삼보를 바탕으로 타격과 그라운드 모두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는 올-라운더(All-Rounder)이다. 작년 6월 열린 UFC 출신 웰터급 강자 더글라스 리마(Douglas Lima)를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꺾으며 챔피언에 등극,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선수이기에 이번 참전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출처: 세르게이 스타코프스키 인스타그램(@stako_s)

세르게이 스타코프스키 (Sergiy Stakhovsky)

테니스 스타 세르게이 스타코프스키는 군대 경험이 없음에도 기꺼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2013년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로저 페더러를 꺾으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스타코프스키는 ATP투어 4차례 우승 등 준수한 성적을 기록해 왔으나, 36세라는 다소 많은 나이 때문인지 지난 1월 은퇴를 선언하였다. 은퇴 후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이번 사태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그는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전쟁을 지켜볼 수가 없다…온몸을 바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며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그는 비록 군대 경험은 없지만, “총을 쏘는 방법은 안다.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필요하다면 총을 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내 아내에게 극도로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안다. 아이들은 내가 여기(예비군)에 있는 것을 모른다. 아이들은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에는 너무 어리다”라고 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번 사태가 그의 더 평안한 은퇴 생활을 위한 마지막 고비이기를,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출처: 블라디슬라프 헤라스케비치 인스타그램(@iceformulaone)

블라디슬라프 헤라스케비치 (Vladyslav Heraskevych)

얼마 전 막을 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카메라에 ‘No War In Ukraine(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반대)’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어 보였던 스켈레톤 선수 블라디슬라프 헤라스케비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바람과 달리,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전쟁의 불길이 우크라이나를 뒤덮었다. 4년의 올림픽 준비로 고될 만도 하지만, 그는 “손에 총을 들고 조국을 지킬 준비가 되었다”며 곧바로 예비군에 자원하였다.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이지만, 그의 기백 하나만큼은 백전노장 못지않다. 그는 전장에 참여하며 “나는 준비됐다. 나와 우리 우크라이나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랑하며 지켜낼 것이다.” 군대 경험도 없지만, 어떻게든 도움이 될 거라는 그의 자세 또한 귀감이 된다. “경험이 없다면, 다른 일을 하면 된다. 러시아 스파이들이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 (군 경험이 없는) 우리들은 그들을 찾아내는 일 같은 것을 하면 되지 않는가.” 부디 소중한 젊음에 자그마한 생채기라도 남지 않길, 다음 올림픽에서도 그 패기와 열정을 마주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출처: NEXTA 트위터(@nexta_tv)

예브게니 말리셰프(Yevgeny Malyshev)

이 글을 작성하는 도중 바이애슬론 선수 예브게니 말리셰프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바이애슬론 연맹에 따르면 말리셰프는 하르키프 인근에서 벌어진 교전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간 청소년 대표팀에서 활약하였으며, 은퇴 후 우크라이나 군대에 입대하였다. 다가오는 10일 생일을 앞두고 19세라는 아직 제대로 피지도 못한 청춘에 유명을 달리한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먹먹함과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