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그의 손끝에서 김치와 고기, 양파가 썰려 나간다. 큰 들통에 끓이는 뭉근한 김치찌개로 채워지는 하루다. 추운 계절 품에서 자라나는 고요를 두르고 골목을 돌아 ‘저-집’을 찾은 당신에게 뜨끈한 한 끼를 내어주고, 술 한 잔으로 마음에 달린 무게를 덜어주는 일로 바쁜 김성배 대표를 만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먹이고, 기르는 일에도 결코 소홀한 법이 없었다. 정확한 걸음으로 ‘저-집’의 내일을 그리는 그와 일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부터 ‘재료 소진’이라는 문구를 SNS에서 볼 수 있었어요. 개업 약 3개월 만에요. 기분이 어떠세요.
손님들께 너무너무 죄송해요. 많은 분이 찾아주셔서 감사한 것보다 못 드시고 돌아가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훨씬 커요. 오픈 초기 때는 양을 가늠하지 못해 실수가 생겼다 해도 지금은 절대 그러면 안 되는 일이잖아요. 더 채비를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 게 진심입니다.
메뉴를 정하는 것만큼 ‘어디에’ 식당을 꾸릴 것인가 선정하는 일도 중요했을 텐데, 이 골목에 자리를 튼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픈을 결심하고 두 달 정도 가양, 등촌, 염창 등등 부동산만 스무 곳 이상을 돌아다녔어요. 강서구는 제가 유치원 다닐 무렵부터 살기 시작한 곳이라 너무 익숙한 지역이에요. 최대한 집에서 가까운 곳을 알아봤어요. 요식업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은 모두 공감하시겠지만, 이 업이 체력적인 소모가 꽤 커서 출퇴근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었어요.
동네를 정하고 나서 창업비용이 넉넉지 않아 권리금이 없는 곳을 일 순위로 알아봤는데, 없더라고요. 코로나19 시기에 오픈을 하는지라 위험부담도 컸고, 걱정도 많았어요. 그래서 고정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 월세가 저렴한 곳을 찾아다녔어요. 선택 이유는 단순해요. 이 가게의 월세가 가장 저렴했어요. 제 입장에선 망설일 필요가 없었고, 요즘엔 맛이 있다면 어디든 손님들이 찾아오는 시대이기 때문에 위치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동네마다 특유의 정서가 있잖아요. 이곳의 분위기나 동네 분들과도 많이 익숙해 지셨나요.
이 동네는 오랫동안 주거하신 분들도 많고 오피스텔이 밀집해 1인 가구도 상당수예요. 젊은 부부들도 많이 사시고요.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평온한 동네에요. 가게에 서서 지나가는 분들과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 건네는데, 모두 잘 받아주세요. 그래서 소통이 잘 되는 느낌이에요. 가끔 커피를 사다 주는 분들, 과일이나 반찬을 가져다주시는 주민들도 계세요. 한마디로 따뜻한 정서가 넘치는 곳이에요.
처음부터 동업할 생각은 없고, 오롯이 혼자 ‘저-집’을 꾸려나갈 생각이셨나요. 요식업 관련 경험도 없었고,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걸 너무 좋아하지만, 일할 때만큼은 욕심이 많고 남에게 맡기기보다는 스스로 하는 게 마음이 편한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혼자 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내가 더 힘든 게 낫지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달라졌어요. 실제로 운영을 해보니 혼자니까 바쁠 때는 손님들께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더라고요. 이게 생각을 바꾸게 된 가장 큰 이유에요. 그래서 내년 즈음엔 마음 맞는 누군가와 함께할 계획입니다.
첫 번째 그릇을 팔았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오픈 첫날 새벽 5시까지 걱정 반, 기대 반에 잠들지 못했어요. 7시에 일어나 가게에 나와 완벽하게 준비를 해놓고 11시가 되었을 때 마음속으로 이제 진짜 시작이라고 각오를 다지며 계속 되뇌였어요.
그런데 12시 30분까지 단 한 분도 오시지 않았어요. (웃음) ‘이러다 진짜 망하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중에 손님이 오셨으니 얼마나 반갑고 행복했겠어요. 그릇을 싹 비우시곤 ‘잘 먹었습니다.’ 해주셨던 한 마디와 손님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냥 너무 좋았어요. ‘희열’이라는 단어의 뜻을 감정으로 느꼈던 순간 같아요.
가게 전반적인 콘셉트를 봐도 그렇고 뻔한 걸 좋아하지 않는 성향 같아요.
저에게 뻔한 건 결국 재미가 없다는 의미에요. 개인적으로 삶에 있어서 ‘재미’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게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는 셈이니까 유니크하고 재미있는 것들을 좋아하고 찾게 되더라고요.
스타일마저 뻔하지 않아요. 이전에 패션 관련 일을 하셨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요.
옷은 그냥 마음에 드는 걸 입는 편이에요. 결국 스타일은 자신감이라는 생각이 강하거든요. 몸 여기저기에 타투도 새겼는데 각각 나름의 의미가 있어요. 아침에 샤워할 때마다 보이니 매일 그 뜻을 다시 새기며 하루를 시작해요. 쉽게 잊고 살아갈 수 있는 의미들을 하루의 시작부터 떠올리게 되는 셈이죠.
과거에는 기획사에서 콘서트 및 팬 미팅 기획, 진행, 무대 연출 등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일했어요. 꽤 오랜 시간 동안요. 이후엔 에어컨 설치 기사, 주물 공장에서도 일해 보고 정말 다양한 직업을 가졌어요. 요식업으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꽤 단순해요. 진짜 ‘내 것’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잔머리 굴리지 않고, 진심으로, 치열하게요.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스스로 그런 성향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했고, ‘내 것’을 꾸리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중 요식업을 선택한 이유는 평소에 요리를 즐기고 좋아했어요. 누군가에게 ‘음식’을 매개로 즐거움과 행복을 전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요. 상대방의 행복이 저에게 투영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요즘 최고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김치찌개, 반찬, 과일. 이 세 개가 최고의 관심사이자 최고의 난제에요. (웃음) 김치찌개 맛은 일정한지, 이번엔 어떤 반찬을 드릴지, 과일은 어떤 걸 드릴지. 하루하루가 고민의 연속이에요. 가게를 열고 나니 다른 것들이 별로 시야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아마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다 공감하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엔 ‘저-집’에 몰두해 계시지만 러닝, 캠핑, 음주 등등 즐기는 취미가 많으신 거 같아요.
88년생들만 회원으로 받아주는 ‘뛰용뛰용’ 러닝 크루에서 활동 중이에요. 동갑내기 친구들 덕분에 세 번이나 풀코스도 완주했어요. 달리기는 스트레스를 푸는 데에 아주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탁 트인 공간에서 한껏 달리고 나면 후련하고 마음이 개운해지는 게 있더라고요. 에너지를 쓰는 것 같지만 되려 받게 돼요.
워낙 ‘밖에서 한잔’ 하는 걸 즐겨요. 그래서 봄과 가을엔 늘 야장을 찾게 돼요. 캠핑장에서도 맛있는 음식에 한잔하고 있자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요. 그 자유로움을 너무 사랑한달까.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그런 거 같아요. 지금까지 쌓아왔던 경험들이나 나의 특징들이 모여 결국 ‘저-집’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가장 좋아했고 잘하는 것을 활용해 이곳을 운영하고 있으니까요. 즐겨 마시는 전통주나 와인을 판매하고, 길에 버려진 쓰레기가 보기 싫어 주웠던 사소함,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 등 모두 바탕이 된 것 같아요.
평소 자주 가시거나 좋아하는 러닝 코스, 캠핑 장소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러닝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이 그렇듯 하러 집 밖에 나가는 것이 제일 어렵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집과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는 편이에요. 집 옆에 있는 가양 구름다리를 통해 한강으로 나가 당산역까지 왕복으로 달리면 딱 10km라 운동하기 좋은 코스에요. 중간에 마주하는 성산대교, 양화대교로 눈요기하기도 좋고요.
다녀왔던 최고의 캠핑장은 포천에 있는 ‘산정호수 돌고래캠핑장–동굴존’이에요. 절벽 바로 밑에서 캠핑을 즐겼었는데,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사람 없고 고요한 곳을 선호하는 편이라 그냥 네이버지도 길거리뷰로 길을 따라 피칭할 수 있는 곳을 찾곤 해요.
아무래도 일주일 중 가게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쓰니까 일과 취미, 그 밸런스를 맞추기 힘들 거 같아요. 그런데도 시간을 내서 꼭 하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요.
‘저-집’을 운영하기 전에는 아주 다채롭게 시간을 보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삶 자체가 정말 단순해지더라고요. 생각의 폭이 아주 좁아진 것도 사실이에요. 이 점이 당연하면서도 많이 아쉬워요.
그래서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매주 일요일 쉬는 날엔 전시회 가고,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경조사도 챙겨요. 시대에 뒤처지는 건 저에게는 특히 견딜 수 없는 일인 거 같아요. 먼 미래를 내다보지는 못하겠지만 현재를 사는 ‘감각’을 꼭 쥐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을 내서 꼭 하려고 하는 것은 ‘나’를 잃지도 잊지도 않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어요.
이번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 상주하는 가게에 있을 때는 어떤 순간 문득 행복을 느끼세요.
화장실에 디퓨져 향이 은은하게 퍼져있을 때, 반짝거리는 주방 벽 스테인리스와 테이블을 볼 때, 김치찌개 색깔이 곱게 나왔을 때, 고기가 서걱서걱 잘 썰릴 때, 쿠쿠 밥솥에서 증기 배출을 될 때, 손님들께서 첫 한 숟가락을 드시고 ‘음~’이라는 감탄사를 뱉으실 때 등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는 정말 많아요. 원래도 작은 행복에 감사해하는 편이거든요.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이는 작은 팁이 있다면요.
오래 끓이자. 건더기가 흐물흐물~ 해야 진짜라!
사장님이 그리는 ‘저-집’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일단 정확하게 성장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정확하다’는 의미는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이라는 뜻이에요. 외부의 어떤 영향이나 타인의 말이나 다양한 임시방편 등등 가게를 꾸려가며 흔들릴 만한 많은 요소들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거죠. 단단한 뿌리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먼 미래를 그려보진 않았지만, 체력이 된다면 저녁엔 예약제로 한식 오마카세를 꾸려보고 싶기도 하고, ‘저-집’처럼 조그맣게 청국장집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저-집’의 규모를 좀 더 키워보고 싶기도 하구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우선은 지금의 저-집에 집중하고 있어요. 손님들 100%를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99.99%는 만족할 만한 식사와 시간을 대접해 드리는 게 최우선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임볼든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매일 들고 다니는 EDC를 소개해 주세요.
출퇴근은 오토바이를 이용해요. 원래는 클래식 바이크를 즐기다 지금은 장을 봐야 하고 과일이나 야채들을 실어 와야 해서 명불허전 벤리(BENLY)를 타고 다녀요. 헬멧은 덱스톤(DEXTON) 사 500TX 모델이에요.
텀블러는 일회용 제품을 쓰지 않는다는 가게의 신념과 같이 항상 들고 다녀요. 출근 전 집에서 커피를 내려 여기에 담아와요. 그리고 가게 관련 열쇠 꾸러미, 제가 아프면 손님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늘 챙겨 먹는 센트룸 사의 종합 비타민과 오메가3, GNC 사의 밀크시슬, BCAA 등을 챙겨 다닙니다.
저-집
주소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51길 17-10 1층 저-집
문의 0507-1382-8039
영업시간 점심 11:00 ~ 15:00 / 브레이크 타임 15:00 ~ 17:00 / 저녁 17:00 ~ 20:30 / 일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