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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 그 사이에 담긴 진심
2024-11-14T08:14:20+09:00

남자가 더 좋아하는 남자, 박종진을 만나다.

해가 유난히 말갛던 가을 어느 날, 이태원 블링크 매장에서 인터뷰이를 만났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그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에디터의 안경이었다. 한눈에 어떤 브랜드의 제품인지 알아보는 그에게 신뢰가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 그는 이런 방식으로 일한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전시하기 위함이 아닌 진심 어린 애정을 드러내는 것. 진정성을 토대로 수많은 애송이(팔로워 애칭)를 양성하고 있는 박종진(@uk_jongjin)을 만났다.

간단하게 소개 부탁한다.

브랜딩 하고 있는 박종진이라고 한다. 안경을 다루는 블링크, 양말 편집숍 삭스타즈, 남성복 브랜드 아티지와 메인으로 협업하고 있다.

브랜딩이라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

회사마다 하고 있는 역할은 조금씩 다르지만, 브랜드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보통 브랜딩이라 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비주얼적인 부분을 비롯해 행사를 기획하기도 하고, 매장에서 손님을 응대하기도 한다.

안경은 메가네야 스트라이크 비스포크, 상의는 게르칠레나 제품.

일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그래서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선례가 없다 보니 벤치마킹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다행히 지금 파트너십을 맺은 브랜드들은 지금의 업무 수행 방식에 만족해해주고 있다. 나 또한 회사에도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게끔 최선을 다하고 있고. 블링크와 일을 한 지는 어느덧 7년 차고, 아티지도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업무와 일상을 나누기 어려울 것 같은데.

확실히 그렇다. 여행 가서도 업무 전화를 한 시간씩 하기도 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러한 삶의 방식이 잘 맞는다. 나에게 일이라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를 넘어 라이프 스타일의 일부다. 지금껏 출근하기 싫다든지, 일하기 싫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 물론 가끔은 완전한 휴식을 가지고 싶을 때도 있지만.

협업 전에도 안경이나 양말에 관심이 많았나.

어릴 때부터 패션은 좋아했지만, 안경이나 양말에 지금처럼 지긋한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일을 하면서 그 분야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된 쪽에 가깝다. 취향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할까. 사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본인의 취향이라는 게 생기기 마련이다. 장점으로 보자면 색깔이 뚜렷한 거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 영역 안에 국한되는 일이기도 하다. 패션을 업으로 삼고 싶거나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선호의 폭을 넓혀 놓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선호했던 스타일도 지금과 달랐다고 알고 있다.

클래식한 스타일을 주로 입었다. 지금도 그러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건 다름없기 때문에, 이 또한 취향의 바운더리가 넓어진 하나의 일례라 할 수 있다. 사실 클래식 복식을 동경하던 어린 시절에는 단지 옷이 멋있고 그 문화를 즐기는 게 좋아서 소비했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 보니 직업이나 환경과 같은 라이프 스타일이 패션과 딱 맞아떨어졌을 때 훨씬 멋지더라. 

러닝하는 사람이 러닝복을 입는 것 같은 건가.

맞다. 요즘은 고프코어가 널리 퍼진 만큼 아웃도어 의류를 일상복으로도 많이 입지만, 그 취미를 실제로 즐기는 사람이 입는 게 개인적으로는 더 와닿는다. 내가 멋지다고 느낀 사람들은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이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다 보니 점점 입고 즐기고 소비하는 게 내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가게 됐다.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듯하다.

직업적인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그로부터 에너지도 영감도 많이 받는다. 좋은 모습은 닮고자 하고 안 좋은 점은 반면교사 삼는 편이다. 취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도, 러닝을 시작하게 된 것도 주변인의 영향이었다. 덕분에 생애 처음으로 완전히 몰두하는 취미가 생겼다.

그전까지는 취미가 따로 없었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랬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들 취미가 하나쯤은 있는 걸 보고 맹목적으로 만들어 보려고까지 했었다. 시도했던 것 중 하나가 백패킹이었는데 내 라이프 스타일과는 맞지가 않았다. 업무와 일상의 경계가 모호한 편이다 보니, 긴 일정을 할애해야 하는 백패킹은 현실적으로 어렵더라. 그에 비해 러닝은 운동화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어 내 라이프 스타일 속에서도 지속할 수 있었다.

러닝에 정말 진심처럼 느껴진다.

얼른 일 마치고 뛰러 가고 싶고, 설레고 그런다. UFC 선수인 이스라엘 아데산야가 ‘무언가에 몰두하고 몰두해서 그것을 쟁취했을 때의 행복감을 많은 사람이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정말 공감이 가더라. 삶에 커다란 동기 부여와 활력이 된다. 일로도 많이 연결됐다. 아무래도 진심으로 즐기는 게 눈에 보여서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취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조언해 준다면.

나도 우연한 계기로 발견한지라 조언할 입장은 아니지만, 가끔은 효율성을 배제하고 행동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굳이 굳이 하는 거. 개인적으로 카멜 커피와 인연이 깊은데, 인천에 살 때는 2시간씩 지하철을 타고 뚝도시장에 있는 카멜 커피에 찾아가곤 했다. 누군가는 커피 한 잔 마시겠다고 그 먼 거리를 다니는 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게 좋았다. 결과적으로는 그 행동이 수많은 인연과 취향의 물꼬를 틔웠고. 본인이 좋거나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비효율적일지언정 굳이 굳이 시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패션 초심자에게도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는지.

브랜드 내에서 클래식한 제품을 구매하는 걸 추천한다. 어떤 브랜드든 시즌마다 컬렉션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을 출시하는데, 그런 것들은 보통 다음 시즌 되면 못 입는다. 새로운 시즌의 시그니처가 또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보디(Bode)는 화려한 디테일이 멋진 브랜드지만, 그럼에도 클래식하고 오래 입을 만한 옷을 사는 거다. 아무리 스테디한 제품이어도 브랜드의 색은 묻어나기 마련이다.

남자 팬이 유독 많다. 비결이 있나.

잘 모르겠다. 그걸 알면 적극 활용할 텐데 말이다(웃음). 아무래도 거짓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좋아해 주시는 게 아닐까 싶다. 대단한 거 없는 사람인 지라 스스로에게 미사여구를 붙여 가며 장황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겸손한 게 아니라 자기 객관화가 잘 된 편이다. 좋아해 주시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 중이다.

최종적인 목표가 있다면.

언젠가는 나만의 무언가를 해보고자 한다. 온전히 나로서 인정을 받아보고 싶기도 하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함 때문도 있다. 다만 업계에 몸담은 기간이 있다 보니 아무것도 몰랐을 때처럼 무턱대고 도전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계속 재고 따지게 되더라. 여건 내에서 어떤 걸 내 것으로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고 있다. 

어떤 걸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명확한 그림이 그려진 상태는 아니다. 다만 패션 분야는 아닐 것 같다. 힘들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그렇다. 현재까지는 라이프 스타일 관련된 걸 좋아하니 그쪽 분야를 해볼까, 사람한테 에너지를 많이 얻으니 요식업을 해볼까 하는 식의 브레인스토밍 수준이다. 라면을 정말 좋아하는데, 주변 사람에게 우스갯소리로 맛있는 레시피 개발해서 라면집 차리면 잘되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한다. 뭐가 될 진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내 것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