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향으로 표현하는 시대. 감각적인 조향, 인상적인 잔향, 스토리를 입은 브랜드까지. 이제 향수는 단순한 향기를 넘어 태도와 이미지, 존재감을 말해주는 언어와도 같다. 그래서일까. 향수는 점점 정교해지고, 그만큼 가격도 올랐다.
하지만 좋은 향은 반드시 비쌀 필요가 없다. 어쩌면 니치 향수보다 더 자연스럽고 실용적이며, 매력적일 수도 있는 법. 지갑을 덜 열어도 충분히 근사한 향은 있다. 오히려 담백해서 더 오래 남기도 한다. 10만 원 이내의 가성비 남성 향수를 소개한다.
10만 원 이내 가성비 향수

의류 브랜드 자라는 향수도 잘 만든다. 종종 유명 조향사와 협업하여 멋진 향수를 선보이는데, 바이브런트 레더는 바이레도 ‘라 튤립’을 만든 조향사 제롬 에피넷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제품. 첫 향은 상큼한 듯 씁쓸한 베르가못이 가볍게 퍼지고, 이내 레더 향이 씁쓸하게 따라온다. 베르가못의 상큼함이 잦아들면, 잔잔한 레더 향이 묵직한 잔상을 남긴다. 과하지 않고 깔끔한 남성미가 느껴지며, 시원함과 따뜻함의 균형이 좋아 데일리 향수로도 부담 없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잘 차린 남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클래식. 세련되지만 과하지 않고, 클래식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첫인상은 깨끗하고 정제되어 있다. 이탈리안 베르가못과 라벤더, 그리고 약간의 파인애플이 밝게 퍼지며 시작된다. 흔할 수 있는 조합이지만, 어딘가 단정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주는 건 은은한 우디함 덕분이다. 시간이 지나면 오크 모스와 화이트 시더우드가 서서히 자리를 잡는다. 잔향은 강인하지만 무겁지 않은 느낌.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향수가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향수다. 늦은 아침, 햇살이 드는 침실, 갓 꺼낸 하얀 셔츠와 따뜻한 시트의 감촉을 향기로 옮긴다면 이런 느낌일 것. 일요일 아침 늦잠 같은 여유를 닮았다. 은은한 은방울꽃과 깨끗한 비누 향이 감각적이다. 잔향으로 갈수록 화이트 머스크가 부드럽게 퍼지며 포근하게 착 감긴다. 출근 전 셔츠를 여미는 아침, 또는 주말 아침 커피를 내리는 여유로운 순간에 잘 어울린다.

이름 그대로 대지의 향기를 담았다. 자연을 말하지만, 거칠기보다 조화롭고 겸손하다. 말쑥한 셔츠에 흙냄새가 은은히 배인 듯한 느낌. 첫 향은 쌉싸래한 오렌지 껍질과 자몽의 쓴맛. 익숙한 시트러스 계열이지만, 곧이어 땅 냄새 같은 미네랄 우디 노트가 올라온다. 플린트(수정 돌)가 만든 금속적이고 건조한 흙 향은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더한다. 따뜻함과 차가움이 교차하는 독특한 잔향으로 오랜 여운이 남는다.

1996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여름 향수의 정석, 아르마니 아쿠아 디 지오. 청량함과 섬세함의 완벽한 균형 덕분에 계절과 시간을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마치 이탈리아의 해변을 닮았다. 베르가못과 오렌지의 상쾌함이 투명하게 터지고, 이어 자스민과 로즈마리의 플로럴 노트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아쿠아틱한 향조는 시원한 바다 공기를 연상시킨다. 잔향은 시더우드와 따뜻한 파출리가 과하지 않은 관능미를 남긴다.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공기감이 좋다.

일상에 기분 좋은 포근함을 더해주는 향수. 무심한 듯 잔잔하게 살결에 스며든다. 전체적인 인상은 은방울꽃의 깨끗하고 청초한 향기. 마치 햇살에 말린 이불 위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이후 자스민과 장미가 화사하게 피어오르며 감성을 더하고, 부드러운 머스크와 앰버가 잔향으로 남아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과한 꾸밈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깨끗한 느낌이 조용하고 부드럽게 쌓인다.

르 페쉬에, 프랑스어로 죄 혹은 유혹. 이 향수에 붙은 이름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무심하고 절제된 남자가 한 번 쯤은 자신을 편하게 놓아주고 싶을 때 손이 갈 법한 향. 첫 향은 부드럽고 잘 익은 복숭아, 그리고 은은한 시트러스. 섬세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시작 뒤엔 자스민과 앰버, 바닐라가 따뜻하게 스며든다. 그 뒤엔 샌달우드와 머스크가 여운처럼 남아 관능적이면서도 정제된 느낌을 완성한다. 안정적이지만 지루하지 않다.